이스라엘, 요르단

이스라엘, 요르단 여행3 - 가이샤라(Caesarea)

큰누리 2017. 2. 11. 23:41

2017. 1/12. <가이샤라(Caesarea)>

1/11. 밤 10시 넘어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한 우즈베키스탄 항공에서 장어덮밥과 삼각김밥을 먹고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영화를 보기엔 기내 시스템이 후지고 준비된 프로그램도 형편이 없어서 좀 따분했다. 7시간 30여분 만에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4시간 쯤 대기한 후 이스라엘 텔아비브행 우즈베키스탄 항공으로 갈아타고 다시 5시간 여만에 도착. 대략 18시간 정도 걸린 것 같은데 3국 경유에다 갑자기 휴대폰 시각이 자동 전환되어 정확한 시간 계산이 어려웠다. 결국 한국에서 설정한 시각 그대로인 디카에 찍힌 사진으로 사진 정리를 할 때 시간을 확인했다.

 

몸이 파김치인데 한국보다 7시간 늦은 이스라엘(요르단 포함) 텔아비브 국제공항(일명 벤구리온공항)은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아침 09:00이었다. 검색이 끝나고 짐을 찾아 나서니 현지 가이드가 대기하고 있다가 바로 1시간 남짓 걸리는 첫번째 여행지 가이샤라로 안내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날이 화창하고 초여름 같은 날씨라 입고 있는 옷이 부담스럽고 더웠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실패한 것이 현지 날씨에 맞는 옷을 준비하지 못한 것이었다. 얇은 티셔츠에 바람막이 춘추용 점퍼 차림이면 딱 좋은데 두툼한 티셔츠에 초겨울 점퍼를 입었으니...

 

여행 첫날(1/12) 일정은 가이샤라 유적-나자렛 수태고지기념교회-나자렛 성 요셉교회-갈릴리의 가나 혼인잔치교회-갈릴리 킹 솔로몬호텔 투숙

 

 

<가이샤라(Caesarea)>

BC25년부터 BC13년에 유대 왕 헤롯이 지중해 팔레스틴 해안에 세운 도시로 당시 로마의 황제였던 아우구스투스(시저, Caesar)의 이름을 따서 가이샤라라고 했다. 헤롯은 유대인이 아니었지만 안토니우스의 지원으로 유대 왕이 되었는데 권력 다툼에서 안토니우스가 옥타비아누스에 패배하고 말았다. 옥타비아누스가 '아우구스투스'란 이름으로 황제가 되자 헤롯은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충성을 다하였고 그 대가로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헤롯은 가이샤라에 왕궁, 로마식 수로, 원형극장, 히포드롬(전차경기장) 등을 건설했고, 가이샤라는 로마로 가는 해상 관문이자 상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음향효과까지 잘 계산된 원형극장은 수천 명을 수용할 수 있었고, 2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해안의 전차경기장은 영화 <벤허>의 전차경주 장면 촬영지이다. 그 외에 배가 안전하게 정박할 수 있도록 만든 방파제, 헤롯 궁전 터, 로마 총독관저 터, 주거지 터 등이 현재 남아있다.

 

가이샤라가 건설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스라엘을 점령한 로마는 총독부 관저를 예루살렘이 아닌 이곳에 짓고 이스라엘을 통치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심판한 빌라도(필라투스) 총독이 이곳에서 근무했음이 관저 터에서 발견된 석문을 통해 확인되었고, 예루살렘에서 선교활동을 하다 체포된 사도 바울은 베스도총독의 재판을 받고 이곳에서 2년 동안 복역했다.

 

중세에 들어 십자군 전쟁이 일어나면서 십자군은 가이샤라를 성지 예루살렘과 유럽을 잇는 관문으로 사용했다. 항구와 성채 일부를 정비하고 십자군은 이슬람군과 전투를 벌였으나 1265년 맘루크 술탄 바이바르스 1세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다. 이후 가이샤라는 아랍의 통치를 받게 되고 쇠퇴하기 시작했다.

가이샤라는 '건축광'으로 불리며 오늘날 이스라엘을 관광으로 먹여 살리는데 크게 기여한 헤롯이 만든 건축 중 규모가 가장 크다. 
1950년 히브리대학교에 의해 가이샤라 유적이 발굴되기 시작해 로마 신전, 히포드롬(전차경기장), 원형극장, 수로 등과 이후 시기의 유적들이 발굴되었다. 가이샤라는 헤롯이 본격적으로 개발한 도시(건물)를 기초로 이후의 점령자인 고대 로마부터 비잔틴, 십자군 전쟁, 중세의 이슬람 시기의 유적이 겹치거나 공존한다. 

내가 이스라엘 요르단 여행을 선택한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 가이샤라 유적과 제라쉬의 고대 로마유적 때문이었다. 결론적으로 아주 만족스러웠고, 고대 로마유적 외의 유적과 페트라, 성지 유적 등도 그에 못지 않게 매력적이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 벤구리온국제공항>

국제공항에는 존 F.케네디, 벤구리온처럼 그 나라 영웅들의 이름이 붙은 경우가 종종 있다. 어려서 벤구리온은 이스라엘 건국의 영웅이라고 들었지만 귀찮아서 이걸로 끝...

공항 출구 건물 정면의 모자이크가 인상적이다. 아름다운 모자이크는 원조인 서로마제국이었던 이탈리아에도 많이 남아있지만 동로마제국 소속이었던 이스라엘과 요르단에도 많다.

 

 

<속으로 '옷 잘못 입었다, 덥다!'를 연발하며 따라간 첫번째 유적지 가이샤라의 로마식 수로와 지중해>

파아란 지중해를 마주하고 짧은 구간이나마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있는 헤롯이 세웠다는 로마식 수로이다. 칼멜산으로부터 가이샤라로 물을 끌어왔다고 한다. 우리의 개념과 달리 로마의 수로는 지하나 지상이 아니라 아치교 위쪽이다.

 

 

 

 

<가이샤라의 출입구인 십자군 시대의 성벽과 해자>

가이샤라 유적 중 십자군 유적임을 확연히 알 수 있는 것은 출입구 주변의 해자, 성벽, 출입문과 해안의 성벽 등이다.

 

 

<가이샤라의 출입구인 십자군 시대의 성문>

지붕의 뾰족한 아치형 구조가 십자군 시대 유적임을 의미한다.

 

 

<출입구(십자군 시대 성문)에서 본 가이샤라>

 

 

<가이샤라 유적 안에서 돌아본 가이샤라의 출입구(십자군 시대의 성문)>

사진의 오른쪽에 로마 신전 터가 있다.

 

 

<가이샤라 유적지 안내도>

 

 

<가이샤라의 로마 유적지 님페온>

당시 거주민들의 중심지에 있던 분수 터이다. 님페온 뒤쪽과 서쪽은 건물 터만 남은 거주지이다.

 

 

<님페온 옆의 주거지 터>

복원공사가 한창인 이곳을 우리는 그냥 통과했다. 현재 출입이 금지된 듯 싶다.

 

 

<가이샤라 해변 쪽의 로마 시대 석관>

카페 등 편의시설이 모여있는 해변 쪽에 로마시대의 석관 몇 개가 놓여있는데 화관장식, 장미모양, 괴물 고르곤 머리 등 외관 장식들이 독특하고 다양하다. 사진은 화관장식을 한 석관.

 

 

<가이샤라가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음을 증명하는 보스니안 모스크>

중세기 이후 현대까지 오랜 동안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고 십자군과의 격전지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슬람의 유적 중 이름이나마 확실한 것은 이것 뿐이다.

 

 

<가이샤라 전차경기장(히포드롬) 출입문>

전차경기장은 로마시대의 유적이 아니라 헤롯 시기에 세운 초기의 유적이다. 이 문을 끼고 동쪽 정박지 쪽으로 해안을 따라 십자군 해안 성벽이, 조금 더 동쪽으로 우리가 처음 본 헤롯 시기에 세워진 로마식 수로가 있다.

 

 

<가이샤라 전차경기장(히포드롬)이 시작되는 지점 풍경>

원경 오른쪽 끝의 성벽은 십자군 시기의 성벽이고, 그 건너편에 로마식 수로가 있고, 그 사이가 헤롯 시기에 만든 배 정박지(항구)라고 한다. 사진 중앙의 가이샤라에서 가장 바다쪽으로 돌출된 건물은 편의시설과 전시장인데 관광객 눈으로 보기엔 최고의 뷰 포인트이다. 사진 이쪽으로 헤롯 시기와 로마 시기의 유적들이 있다.

 

우리는 가이드가 이끄는 대로 넓디 넓은 전차경기장 해안쪽을 따라 앞으로 전진... 엉성한 철책을 지나 해변의 방파제쪽으로 나가자 시퍼런 지중해의 바닷물이 발등으로 사정없이 들이쳤다. 나는 유적만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힐링도 되고 시각적으로도 손색 없는 관광지였다.

 

 

<가이샤라 전차경기장(히포드롬)과 입구에서 본 해변>

위 사진 중앙의 고층 현대식 건물 아래쪽이 헤롯 궁전 터와 로마총독 관저 터이다. 왼쪽의 긴 3층 계단이 끝나는 지점부터 전차경기장이 시작된다.

 

 

<전차경기장 중간 쯤에서 되돌아본 풍경>

왼쪽부터 전시장, 해안 성벽이고 오른쪽은 규모가 엄청나게 큰 히포드롬(전차경기장)이다.

 

 

<가이샤라 유적을 대표하는 곳 중의 하나인 히포드롬(전차경기장)과 모자이크화>

'히포드롬'은 말(horse)을 뜻하고 제라쉬처럼 거대한 고대 로마 유적지에는 히포드롬이란 이름을 가진 커다란 전차경기장이 꼭 있다.  남아 있는 관람석의 모자이크를 보니 히포드롬에서는 전차경기 뿐 아니라 검투도 벌어졌던 모양이다. 운동장쪽으로 드러난 관람석 중 한 곳에 모자이크화가 있었는데 방패를 든 병사 그림이었다.

 

이곳은 영화<벤허>의 촬영지로 유명하다. 영화를 여러 번 보았지만 경기장에 대한 기억은 가물가물...

 

 

 

<가이샤라 히포드롬(전차경기장) 전경>

생각보다 훨씬 커서 전경 촬영이 쉽지 않다. 로마 총독관저 터에서 촬영한 전체 경기장 모습.

 

 

<로마총독 관저 터에서 본 가이샤라 해안, 로마총독 관저 터, 전차경기장(히포드롬)>

  

 

<로마총독 관저 터와 헤롯 궁전 터>

사진에서 바로 앞쪽은 로마총독 관저 터이고, 바다쪽은 헤롯이 지은 (산호, 해안)궁전 터이다. 안내도에는 헤롯 궁전 터를 Lower Palace, 로마총독 관저 터를 Upper Palace라고 했는데 총독관저는 신축한 것인지 헤롯 시기의 궁을 개조한 것인지 모르겠다.

로마(황제)로부터의 인정을 갈망한 헤롯이 만든 로마식 도시이니 헤롯의 궁을 로마가 썼건, 곧 바로 이곳을 점령한 로마가 증축했건 큰 차이는 없을 것 같다. 

 

 

<로마총독 관저 터의 우물>

 

 

<헤롯 궁전(해안궁전, 산호궁전) 터>

안내도를 보니 궁전에서 사진 중앙의 바다 구역을 보는 구조가 아니라 정원처럼 바다를 중앙에 끼고 사방을 둘러 궁전이 세워져 있었다. 상당히 운치 있고 호화로운데 이후에 둘러본 헤롯이 반란에 대비해 지었다는 요새(헤로디온 요새, 마사다 요새)의 구조들은 정말 특별하고 완벽했다.

 

 

<폰티우스 필라투스 명문이 새겨진 석판 모조품>

'폰티우스 필라투스'는 예수 그리스도를 심판한 '본디오 빌라도'의 라틴식 표기이다. 이 석판은 가이샤라 건설과 거주자의 실체를 확인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가이샤라 로마총독 관저 터 안내문>

안내판 가장 왼쪽 공간은 지중해, 바로 옆 건물은 헤롯 궁전, 오른쪽은 총독관저와 부속기관, U자형은 전차경기장이다.

 

 

<가이샤라 헤롯 궁전 터와 로마총독 관저 터>

 

 

<가이샤라 서쪽 끝에 남아 있는 원형경기장 외관>

입구에 이곳에서 발견된 대리석 조각 파편들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 왼쪽 위의 사람들은 원형경기장 가장 위쪽에 올라선 모습이다. 사진 오른쪽 밖에 작은 상영관이 있어서 짤막한 영상물을 보여주는데 늦게 도착해서 내용 확인은 못했다.

 

 

<가이샤라 원형경기장 앞의 건축양식 콜렉션 전시장>

 

 

<가이샤라 원형경기장>

이스라엘, 요르단 유적지 관광 중 처음이자 최대의 원형경기장인데 규모가 상당했다. 원형경기장은 올라가서 조망해야 제대로 파악이 되는데 나는 너무 늦게 도착해서 올라갈 시간이 없었다. 그 아쉬움을 이튿날 제라쉬의 야외 원형극장 2개에서 달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