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 온달산성(丹陽 溫達山城)≫
--현지 안내문--
소재지 : 충북 단양군 영춘면 하리 산67번
지정 : 사적 제264호
지정일 : 1979. 7. 26.
축성 시기 : 삼국시대~통일신라시대
크기 : 면적 : 31,640㎡
온달산성은 소백산에서 북쪽으로 뻗어내려 남한강에 접하는 성산(城山)이라 불리는 봉우리(해발 454.5m)의 정상부에 축조된 테뫼식 석축산성이다. 베틀재, 관적령(串赤領) 등 소백산을 가로지르는 고갯길과 남한강의 수운을 동시에 통제하기에 유리한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둘레는 682m로 비교적 규모가 작은 산성이나, 납작한 석재를 이용하여 내외 협축(夾築)의 방식으로 높이 7~8m의 성벽을 웅장하게 쌓았다. 성문은 모두 3개로 현문식(懸門式) 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북쪽과 남쪽 성벽에 각각 치성(稚城)을 축조하였다. 또한 사다리꼴 형태의 작은 출수구를 지대가 낮은 북쪽 성벽에 설치한 것이 특징이다.
고구려의 온달(溫達)장군이 신라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았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끌형 (조두형) 화살촉 등 고구려 계통의 유물 일부가 확인된 점 이외에는 고구려의 축성 근거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다락문 형태의 출입구, 성벽을 통과하는 수구, 성벽의 기단 보축시설 등에서 신라의 축성방식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출토유물에 있어서도 굽다리접시(高杯)를 비롯한 신라 토기편이 격자문 암키와, 철제 솥 등과 함께 주로 수습되어 산성의 주체 및 경영 시기를 짐작케 하고 있다.
--국가유산청의 안내--
남한강이 보이는 성산의 정상 부근을 돌로 둘러쌓은 산성이다. 온달산성은 고구려 평원왕(재위 559~590)의 사위인 온달장군의 이야기가 이 지방에 전해오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성이 언제 쌓아졌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조선 전기에 이미 성산성이란 이름으로 있었던 기록이 있다. 벽의 안팎을 모두 비슷한 크기의 돌로 가지런히 쌓아올린, 둘레 683m의 소규모 산성이다. 성 안에서는 삼국시대의 유물이 출토되며, 우물터가 남아있고, 성벽 바깥부분에는 사다리꼴 모양의 배수구가 있다. 남서쪽 문터의 형식과 동문의 돌출부는 우리나라 고대 성곽에서 드물게 보이는 양식으로 주목할 만하다.
성의 북동쪽 남한강의 강변 절벽 아래에는 온달굴이라는 석회암 동굴이 있고, 성을 바라보는 북쪽 강 건너의 산에도 온달과 관계되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성벽의 보존상태가 좋아 축성법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유적이다.
---------------------------------------------------------------------------------------------------
온달산성은 4월 21일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다달이 하는 답사의 일환으로 참석했다. 온달산성 이외에 향산리 삼층석탑, 도담삼봉, 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 등을 답사했다. 온달산성으로 오르는 갈은 산길이나 나무계단이 잘 닦여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상보다 가파르고 높아 오르는데 많이 힘들었다. 입구에 있는 규모가 제법 큰 낙양성문, 수·당 황궁 세트장도 궁금하긴 했지만 함께하는 답사라 그냥 패스했다. 힘든 과정 중에도 봄이 한창인 때라 막 피어오르는 나무 새순과 길 양쪽, 산성 안의 야생화들을 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성은 여러 면에서 인상적이었는데 첫째, 비슷한 크기의 납작한 돌로 차곡차곡 쌓아올렸고 특히 성벽 내부도 흙이 아닌 돌로 채운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것을 안팎이나 무너진 단면에서 모두 확인할 수 있었다. 둘째 성은 타원형, 혹은 길죽한 사다리꼴 모양이었고, 서쪽과 남쪽의 높이가 높아 성 안에서도 성곽이 잘 보였을 뿐 아니라 성 아래의 마을과 남한강이 훤히 보여서 전술적인 것을 떠나 시야가 툭 트여 즐거웠다. 근래에 본 성 중에서 전망이 아름다웠다. 세째, 추정 우물터, 치성, 석환, 수구 등이 제법 잘 보존되었다. 특히 성곽과 관련된 치성이나 수구 등의 보존상태가 아주 좋았다. 네째, 산 정상을 에워싸고 축성한 테뫼식 산성으로 동문이나 남문은 사다리가 없으면 올라갈 수 없는 현문식(懸門式) 구조인 점이 인상적이었다.
<국가유산청에서 캡처한 단양 온달산성 전체 배치도>
<온달산성 입구의 온달동상>
<온달산성 입구의 수·당 황궁 드라마 세트장(낙양성문)>
세트장 규모가 제법 크다. 4월 31일~5월 4일에 다녀온 서안, 낙양 답사에서 이런 낙양성문은 못 보았는데... 대신 낙양의 용문석굴과 무덤은 좀 보았다.
<단양 온달관광지 안내>
<단양 온달산성 입구 성황당>
산신각인지 성황당인지 헷갈려서 잘 아는 분께 확인한 결과 성황당이라고 했는데 가끔 본 성황당과는 구조가 좀 다르다.
<아름답지만 오르기 힘들었던 온달산성 오르는 길과 계단>
특히 철판 위에 설치한 계단이 힘들었다! 아래 오른쪽은 중간에 있던 사모정(思慕亭)인데 아직은 시야 확보가 잘 안 되는 위치이다.
<온달산성 동문지~북문지 구간과 치성>
동문쪽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북문 옆에 툭 튀어나온 치성이 있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남문에도 치성이 있는데 내려가지 못했다.
<점판암으로 촘촘하게 쌓은 온달산성 동남쪽 성벽>
아래 사진은 산성 입구에서 본 온달산성의 주요 축성 재료인 점판암이다.
<온달산성 남문지~동문지와 현문(懸門)>
윗사진 중앙쯤에 있는 계단을 올라 온달산성으로 진입한다. 현재 북문지과 무너진 서문지로는 출입할 수 있으나 동문지, 남문지는 계단을 이용하지 않으면 높아서 진입이 불가능하다. 이런 성문을 현문식(懸門式) 구조라고 한다. 두 번째 사진의 동문 단면을 보면 성곽 내부는 일반적으로 흙으로 채우는데 온달산성은 내부까지 돌로 쌓은 것을 알 수 있으며 특히 서문쪽에서 잘 확인할 수 있다.
<성 안에서 본 온달산성 동문지~남문지 성벽>
<온달산성 동문지에서 본 남문지~북문지>
높이 때문에 정상 오른쪽 나무 뒤의 남문지, 서문지는 보이지 않지만 온달산성 내부를 모두 볼 수 있는 곳이다.
<온달산성 북문지>
성도 아기자기하지만 시야가 툭 트인 높은 곳에서 조망한 첩첩 둘러쌓인 산들과 초록초록한 녹음, 남한강이 무척 아름다웠다.
<온달산성 북문지쪽의 추정 우물터>
<온달산성 서문쪽으로 올라가며 내려다 본 북문지~동문지>
돌로 쌓은 성벽처럼 성벽 위에 길처럼 넓은 공간이 있는 것이 새삼 신기했다. 해미읍성이나 낙양읍성 같은 곳에서 더러 보기는 했지만 산성에서 보는 것은 처음인 듯하다.
<온달산성의 석환(石丸, 돌 폭탄)>
종합정비기본계획에 따라 진행된 학술발굴조사 과정에서 성벽 안쪽을 따라 무더기 출토되었다. 지름이 10~20cm와 30~50cm 정도 크기의 둥근 강돌로 성 밖에서 옮겨 온 것으로 보이며, 성을 방어하기 위해 투석전을 벌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016년 수집.
<온달산성 서문쪽에서 내려다 본 북문지~동문지>
온달산성 정상쪽에서 아래의 낮은 산을 반 바퀴 휘감아 흐르는 남한강이 보인다.
<온달산성 서문지쪽으로 오르는 가파른 길>
<무너져내린 온달산성 서문쪽>
무너진 단면을 보면 성벽 내부의 축성방식을 제대로 볼 수 있으며, 윗사진의 오목한 곳을 통해 내려갈 수 있다. 시간이 넉넉했더라면 내려가서 왼쪽으로 돌아가면 남문 아래까지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만...
<온달산성 서문지~남문지 성벽과 석환(돌 폭탄)>
<온달산성 남문지>
문 위의 네모난 공간은 무엇이었을까? 배수구?
<온달산성 남문지 위에서 본 서문지 방향>
<남문지 위에서 조망한 온달산성과 주변 풍경>
북문과 동문, 남한강, 주변의 산들이 시원하게 보인다. 이곳에서의 조망 때문에 최근에 한 답사 중에서 이곳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남문지쪽 정상에서 내려오며 본 동문지>
우리가 계단으로 올라 온달산성으로 처음 진입한 문이다.
<온달산성 중턱의 조망의자>
<온달산성 북문지를 나와서 본 치성과 동문지쪽 성벽>
<온달산성 수구와 북문지쪽 치성>
사진 왼쪽 끝에 내가 유일하게 확인한 수구가 보인다.
<온달산성 입구 동춘식당의 산채비빔밥>
산나물과 도토리묵 무침, 산채비빔밥 모두 맛있다!
'충청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양 도담삼봉 (0) | 2025.07.04 |
---|---|
단양 향산리 삼층석탑(보물 제405호) (0) | 2025.07.04 |
칠갑산 얼음분수 축제 (0) | 2025.02.20 |
공주 공산성, 청양 장곡사 입구 칠갑산 맛집 (0) | 2025.02.14 |
공주 군밤축제 (0) | 2025.0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