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 열하일기 코스 39

열하일기 따라가기7 - 초기 청나라 황궁 심양고궁(성경황궁)

심양고궁은 답사 3일차인 8/2. 요양에서 심양으로 이동한 후 백탑보공원의 백탑에 이어 두번째로 들렀다. 고궁을 먼저 보고 실승사(황사)에 들렀으나 사진 분량이 많아 3일차 맨 마지막으로 내용을 돌렸다. 심양고궁은 초대 칸(汗) 청태조(누르하치)가 동경에서 심양 중위성으로 도성을 옮긴 후 대정전과 십왕정을 지으면서 후금의 황궁이 되었다. 1626년 2대 청태종(황타이지, 황태극)이 칸을 계승하고 황궁을 정비한 후, 1636년 국호를 청으로 고치고 이곳에서 황제로 등극했다. 3대 성종(순치제)이 중원으로 진출하여 북경으로 천도한 후로는 황제가 동북지역을 순회할 때 머무는 행궁이 되었다. 심양고궁은 자금성의 1/12 크기로 한족, 몽고족, 만주족의 양식이 혼합된 궁궐이다. 내부는 동원(동로), 중원(중로),..

열하일기 따라가기6 - 심양 백탑보공원, 실승사(황사)

요양호텔에서 조식 - 호텔 맞은편의 요양백탑, 광우사 - 관제묘를 찾아 헤매다 1시간 후 관제묘 외관 관람 - 동경성(요동성) 터 천우문 - 요동벌판을 가다 십리하시장 간판으로 십리하 위치 확인 - 다시 요동벌판을 달려 심양 백탑보 - 혼하강을 건너 심양 진입 - 심양고궁 - 실승사(황사) - 실승사 앞 전시장에서 백자, 채색 불상 관람 - 심양 금사만식당에서 현지식으로 저녁 - 심양 동방은좌호텔 투숙. 8/2. 열하일기 따라가기 3일차 일정 중 심양고궁은 백탑보 다음에 들렀지만 분량이 많아 다음 7편으로 따로 뺐다. 십리하를 출발해 요동벌판을 건너던 연암 일행은 지루해지면 구첩(口妾)놀이로 무료함을 달랬다. 구첩이란 지나가는 여자를 무작위로 첩으로 삼는 놀이인데 생김새를 잘 모르기 때문에 (입으로만 첩..

열하일기 따라가기5 - 요양백탑과 광우사, 관제묘, 동경성 천우문, 십리하

요양호텔에서 조식 - 호텔 맞은편의 요양백탑, 광우사 - 관제묘를 찾아 헤매다 1시간 후 관제묘 외관 관람 - 동경성(요동성) 터 천우문 - 요동벌판을 가다 십리하시장 간판으로 십리하 위치 확인 - 다시 요동벌판을 달려 심양 백탑보 - 혼하강을 건너 심양 진입 - 심양고궁 - 실승사(황사) - 실승사 앞 전시장에서 유명도요 작품인 백자, 채색 불상 관람 - 현지식으로 저녁 - 심양 동방은좌호텔 투숙 어제 촬영한 사진과 요양백탑 사진을 보내는 단체 카톡 소리에 새벽에 잠에서 깨었다. 혹시나 하고 커텐을 젖혔으나 우리 방에서는 이웃 건물만 보여 복도로 나가 반대편을 볼 수 있는 곳을 찾으니 엘리베이터 앞이었다. 넓은 통유리로 너머로 아침햇살을 등진 요양백탑이 실루엣으로 보였다. 지저분하고 흠집이 있는 유리가..

열하일기 따라가기4 - 봉황산(오룡산), 설리참, 통원보, 초하구, 연산관, 청석령

07:30. 단동 월량도 베니스호텔 출발- 압록강단교- 압록강 보트 투어(쾌속정으로 압록강 복판에 있는 북한령 우적도와 강 건너 의주 통군정 주변을 둘러보는 50위안 옵션 관광)- 일보과- 호산장성- 구련성 터- 단동으로 되돌아와 해금강에서 시고 짠 냉면으로 점심식사- 압록강 지류인 애(라)하를 건너- 변문진(책문)- 오룡산(봉황산) - 설리참(설례참)- 통원보(시장에서 고량주 구매)- 초하구- 연산관- 청석령 정상에서 도로봉쇄로 차를 돌려 내려오는 길에 이민환열사 묘 참배- 고속도로로 요양으로 이동(이동 중 무지개, 용두모양 구름을 봄)- 요양 마마스쿡에서 삼겹살로 저녁식사- 요양빈관(호텔) 투숙. 봉황성 성장에게 역관을 통해 단자를 보내면 성장은 출입허가를 하고 변문이 열리게 된다. 봉황성부터는 '하..

열하일기 따라가기3 - 압록강 보트 투어, 호산장성, 구련성 터, 변문진

07:30. 단동 월량도 베니스호텔 출발- 압록강단교- 압록강 보트 투어(쾌속정으로 압록강 복판에 있는 북한령 우적도와 강 건너 의주 통군정 주변을 둘러보는 50위안 옵션 관광)- 일보과- 호산장성- 구련성 터- 단동으로 되돌아와 해금강에서 시고 짠 냉면으로 점심식사- 압록강 지류인 애(라)하를 건너- 변문진(책문)- 오룡산(봉황산)- 설리참- 통원보(시장에서 고량주 구매)- 초하구- 연산관- 청석령 정상에서 도로봉쇄로 차를 돌려 내려오는 길에 이민환 항일열사묘 참배- 고속도로로 요양으로 이동(이동 중 무지개, 용두모양 구름을 봄)- 요양 마마스쿡에서 삼겹살로 저녁식사- 요양빈관(호텔) 투숙. 중국인, 한국인 관광객이 섞여있다. 2개의 철교 중 앞쪽은 6.25 때 미군의 폭격으로 잘린 단교이고, 뒤쪽의 ..

열하일기 따라가기2 - 연행사와 연행 코스, 열하일기

조선시대 외교의 기조는 사대(중국)교린(일본) 정책이었는데 명나라에 보낸 사신은 조천사(朝天使), 청나라에 보낸 사신은 연행사(燕行使)라 불렀다. 연행사는 정기사행(세폐사, 성절사, 정조사, 동지사)과 임시사행(진주사, 진하사, 변무사, 문안사, 고부사)으로 나뉘며, 연행사는 삼사(정사, 부사, 서장관), 통역관 등 30~40명의 정관과 정사나 부사의 자제나 친지인 자제군관과 기타 수행원 200~600명으로 구성되었다. 서명응, 홍대용, 박제가, 박지원, 이덕무, 유득공, 김정희 등이 자제군관으로 동행하였으며, 이들은 청의 선진문물을 도입하는 전도사 역할을 하였다. 연암 박지원은 1780년 건륭제 70세 생일축하사절인 성절진하사 정사(삼종형인 영조 부마 박명원)의 자제군관 자격으로 동행하였다. ♣ 국내 ..

열하일기 따라가기1 - 대흑산 비사성, 단동 월량도 베니스호텔

♣ 09:50. 인천공항 출발하여 1시간 여만에 다롄(대련)공항 도착. ♣ 다롄공항에서 버스로 40분 정도 이동하여 뤼순(여순)감옥을 1시간 정도 관람. ♣ 대련 송도횟집에서 김치찌개로 점심식사. ♣ 대련에서 1시간 40분 정도 이동하여 고구려 비사성 터인 대흑산에 올라 비사성 성문, 점장대(당왕성) 관람 및 조망. ♣ 고속도로로 4시간 정도 이동, 21:20에 단동 월량도 베니스호텔 도착. 열하일기 따라가기 첫번째 코스인 뤼순(여순)감옥을 번외로 한 이유는 다롄(대련)이나 그곳에 있는 뤼순(여순)감옥은 열하일기와 무관하기 때문이다. 대련쪽 대흑산의 비사성도 열하일기와 무관하지만 열하일기 중국 출발점인 단동과 한꼭지로 묶기 위해 편의상 1편으로 잡았다. 중국에서 열하일기를 따라가는 출발점은 압록강을 사이..

열하일기 따라가기 번외 - 뤼순(여순)감옥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다롄시(大連) 소재. 중국 국가중점역사문화재. 1902년 러시아가 건축하였으나 러일전쟁 후 일본이 1907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확장하였다. 규모는 26,000㎡로 3층 높이에 길이 725m의 붉은색 담벽으로 둘러싸여져 있으며, 약 2,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감방 275실, 검신실, 고문실, 사형장 등과 15개의 공장이 있다. 수감자 대부분은 중국인, 한국인, 러시아인 정치범, 사상범이었으며 안중근, 신채호, 이회영, 박희광 등의 항일지사들이 이곳에서 순국했다. 1906년~1936년 사이의 수감자는 2만여 명에 달했고,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 후에는 수감자가 급격히 늘었으며, 전쟁 막바지에 이른 1942년~1945년에 700여 명의 수감자가 이곳에서 처형을 당했다. 1945..

북경11 - 마지막 코스 천단공원

천단공원 입구에 있는 천단에 대한 중국 측의 안내는 다음과 같다(문맥이 어색한 부분은 수정함). 천단(天壇)은 명, 청의 황제가 오곡의 풍작을 기원하며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곳으로 명나라 영락제 18년(1420년)에 건설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대부분이 청나라 때 건설되었으나 기본 구조는 명나라 가정황제 때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천단공원의 면적은 273만㎡(자금성의 4배)이고 내부 및 외부에 2중의 담을 쌓았으며 남쪽은 정방형, 북쪽은 원형으로 2중의 담은 내단과 외단으로 나눈다. 내단에는 기년전, 원구단, 황궁우 및 황제가 제사를 올리기 전에 목욕제계하는 재궁 등의 건물이 있으며 그 외에 단폐교, 장랑, 칠성석, 구룡백 등의 경관이 있다. 이 중 신락서는 외단의 주요 건물로 명, 청대에 제례악..

북경10 - 후퉁의 전통가옥 사합원과 십찰해 주변

후퉁(胡同)은 우리 말로 '골목, 혹은 골목길'로 이해하면 된다. 어원은 우물을 의미하는 몽골어 'xuttuk'에서 유래됐다고도 하고 물이 부족한 북경에서 물을 나르는 통로였기 때문에 붙었다는 설도 있다. 1267년 원나라 때 현재의 북경이 세워지면서 정한 건설에 관한 규정에 의하면 폭 24보(약 37.2m)는 대가, 12보(18.6m)는 소가, 6보(약 9.3m)는 후퉁으로 불렀다고 한다. 명나라 3대 영락제 때 수도를 남경에서 북경으로 옮기면서 북경성 안의 대도를 계승해서 성을 만들었지만 건설에 관한 규정이 흐지부지 되면서 현재의 후퉁인 골목길들이 출현했다고 한다. 청나라 때에는 2076개, 중국 건국년도인 1949년에는 이미 6,000개가 넘었다고 한다. 좁은 후퉁은 비만인 사람이 지나가기 힘들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