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복건성, 산동성 27

산동성 여행1 - 위동페리 타고 출발

여행 일자 : 2014.08.02~07(5박 6일), 카페을 통해서 9명 단체여행. 여행지 : 중국 산동성의 영성, 석도, 태안, 임치, 청도의 유적 답사. 산동성은 해상 위치로 우리나라와 가장 가깝고 위도로 보아 우리나라와 거의 동일선상에 있으며 면적은 남한의 2.5배 정도의 크기이다. 경비 : 여행 경비-79만원, 비자 발급비-5만원, 공동경비-3만원. 쇼핑 옵션 일체 없음. 교통 : 위동페리로 출국은 인천에서 위해로, 입국은 청도에서 인천으로 입국. 준비물 : 중국을 몇번 드나들다보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와서(!) 전날에 겨우 500위안 환전을 하고, 집에 있는 해외여행용 약 파우치 챙기고, 비상식품은 깻잎 캔 달랑 1개에 1회용 커피 5개, 입을 옷 몇개, 우산, 썬크림 정도를 챙겼다. 환전과 쇼핑..

중국 복건성 여행16 - 배에서 본 구랑위와 하문, 그리고 귀국

고랑서(구랑위) 관광은 마지막 날, 마지막 일정이다. 첫날의 영정현 토루군에서부터 둘째 날의 영정현토루군+남정현 토루군과 하문시 남보타사와 환도로, 세째 날의 무이산 천유봉 등산과 구곡계 뗏목 유람, 그리고 대홍포, 마지막 날의 고랑서 관광... 남한보다 더 큰 복건성을 비행기까지 타가며 많이도 돌아다녔다. 4박 5일 간의 짧은 일정이었음에도 아쉬움과 귀국한다는 사실에 대한 반가움이 한꺼번에 들었다. 강행군과 더위에 지쳐서였을 것이다. 지쳐서 고랑서의 이렇다 할 명소를 거의 포기하다시피 한 것은 해외여행에서 처음이었다. 비싼 돈을 들였음에도 도저히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당시에는 시원섭섭하다 정도였지만 글을 올리면서 고랑서에서 제대로 된 관광을 포기한 점이 많이 아쉬웠다. 짧은 시간 안에 복건성 쪽으로 ..

중국 복건성 여행15 - 고랑서(구랑위)의 명소 숙장화원, 일광암

고랑서의 숙장화원은 일제에 정복 당한 대만을 피해 나온 림이가(린얼지아)가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래기 위해 1813년에 지었다. 대만이 일본으로부터 수복된 후 림이가는 숙장화원을 헌납하고 대만으로 돌아갔다. 숙장화원은 총면적 20,328㎡이며 그 중 건물은 2,451㎡, 수역 면적은 3,342㎡라고 한다. 숙장화원은 크게 보산(補山, 뿌샨)과 장해(藏海, 쭈앙하이)로 나뉜다. 보산구역에는 완석산방(頑石山房), 십이동천(十二洞天), 역애오하(亦愛吾廈), 청조루(廳潮樓), 소란정(小蘭亭)이 있고, 장해구역에는 미수당(眉壽堂), 임추각(壬秋閣), 진솔정(眞率亭), 사십사교(四十四橋), 초량정(招凉亭)이 있다. 고랑서(구랑위)의 주민은 약 2만여 명으로 섬 주민의 상당수가 피아노를 가지고 있으며 음악을 사랑한다..

중국 복건성 여행14 - 바다의 화원 고랑서(구랑위)의 이모저모

고랑서(중국어 구랑위)는 복건성 하문시 관광의 꽃이다. 본래 화강암의 구릉지로 된 황폐한 섬이었으나 명나라 말에 정성공이 청에 대항하기 위한 군사 거점으로 삼고, 청나라 말에 공공조계장정에 따라 섬 전체가 개방된 후 각국의 영사관들이 들어서고 섬 전체가 별장지가 되었다. 작은 백악관으로 불리는 팔괘루(바과러우), 19세기 유럽풍의 대사관, 저택들이 중국 전통의 양식과 어울려 '만국건축박물관'으로 불린다. 1년 내내 열대, 아열대성의 수목과 꽃으로 덮혀 '바다의 화원'으로도 불린다. 고랑서(鼓浪嶼)라는 이름은 섬의 남쪽에 있는 바위에 파도가 부딪치면서 나는 소리가 북소리 같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원래의 이름은 원사주(위엔사저우, 圓沙州)였다. ≪대만을 개척한 명나라 무장 정성공≫ 고랑서(구랑위)에서 가..

중국 복건성 여행13 - 무이궁(무이고대명인관)과 대홍포

무이구곡 1곡 선착장에서 내린 후 무이산박물관에 잠깐 들렀다가 송가(宋街)를 지나 무이고대명인관으로 갔다. 무이궁이라고 들었는데 무이궁과 고대명인관은 무슨 관계이지? 변변한 안내문이나 설명서도 없고, 외국어 같은 한국어를 하는 현지 중국 가이드는 만나지도 못했다. 그러니 짐작으로 보고, 느낄 밖에... 뭔가 엄숙함이 느껴지는 곳인데 참 답답했다. 무이고대명인관이 과거에 무이궁이었다는 것은 무이궁을 나올 때 알았다. 우리가 들어간 쪽의 패방에는 '宋街'라고 써 있었는데 나올 때 본 문에는 '무이궁'으로 써 있었다. 무이궁(중국어 : 우이궁)은 주희기념관 옆, 대왕봉 남쪽에 있는 무이산에서 가장 오래된 도교 궁관이다. 당나라 때인 742~755년에 설립되어 송나라 때에는 건물이 300여 칸에 이르렀고 '충우..

중국 복건성 여행12 - 무이구곡계(4곡부터 1곡), 무이산박물관

무이구곡 뗏목은 9곡이 있는 성촌선착장에서 출발하여 1시간 50분 만에 무이궁이 있는 1곡 하선장에 도착했다. 9곡이 상류이므로 1곡 쪽에서 뗏목으로 역행할 일은 없을 것 같다. 날씨가 좋을 때 물길 따라 흐르는 뗏목에 몸을 맡기면 신선이 따로 없을지 모르지만 너무 더웠다. 비싼 돈에 공식 팁까지 지불했건만 관광객들은 4곡을 지날 때 쯤 졸기까지 했다. 주파이(竹筏, 뗏목) 유람을 마치고 선착장 근처에 있는 무이궁으로 갔다. 무이궁은 원래 도교관이었지만 현재 무이산과 관련된 고대 명인의 흔적을 전시하는 무이고대명인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기념품을 파는 무이궁 앞의 작은 상가는 송나라의 거리를 재현한 송가(宋街)이다. 무이구곡계는 6곡의 쇄포암과 은병봉, 2곡의 옥녀봉이 일반적으로 가장 인기가 있다. 하지만..

중국 복건성 여행11 - 무이구곡계(9곡부터 5곡까지)

'구곡계'란 강이 산을 둘러싸고 아홉굽이를 이루며 흐른다는 뜻이다. 무이구곡계는 삼보산에서 발원하여 9곡의 성촌선착장에서 무이궁이 있는 1곡까지 9.5km 구간의 풍경구를 말한다. 무이산을 제대로 보려면 천왕봉을 오르며 조망한 후 '주파이(죽벌, 竹筏)라고 부르는 대나무 뗏목을 타고 구곡을 둘러보아야 한다. 무이구곡계 뗏목 유람은 강물의 높이에 따라 1시간 30분~2시간 정도 걸린다. 굵은 대나무 7개를 엮은 뗏목 2척을 묶어 만든 주파이는 중앙에 2열로 6개의 대나무 의자가 고정되어 있고, 사공이 앞과 뒤에서 노를 젓는다. 현재 무이구곡의 뗏목은 300척, 사공은 600명, 이들 중 여자는 80명 정도이고 운항면허증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주파이도 고유 선박 번호가 있다. 승선 비용은 100위안(18,..

중국 복건성 여행10 - 무이산의 천유봉

무이산 입구의 보도회전센터호텔에서 10여분 거리의 무이산으로 이동→ 무이산 천유봉 등산(2시간)→ 하산(1시간)→ 보도회전센터호텔에서 점심식사 후 무이산 구곡계 뗏목 유람(1시간 50분)→ 무이산박물관, 무이궁(주희기념관) 관람→ 무이산 대홍포 관람(30분)→ 무이산 입구에서 저녁식사 후 무이산공항으로 이동→ 하문 seashine 호텔에서 숙박. 武夷산은 복건성 서북부의 남평시(南平, 난핑)에 있는 중국 국가 5A급여유경구이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및 자연유산이다. 야생 동식물과 희귀 곤충류, 무이산에서만 볼 수 있는 천연자원들이 많아 유네스코 지정 2개의 유산으로 보호받고 있다. 중국 당국에서 분류한 무이산의 '중국 국가급풍경명승구' 의하면 무이산(武夷山, 중국명 우이산)명승구는... 1) 36봉우리..

중국 복건성 여행9 - 하문시 환도로

복건성 여행 2일차 마지막 코스는 환도로 드라이브였다. 남보타사에서 나와 바로 환도로로 갔다. 환도로는 하문시 항구를 따라 난 도로인데 우리나라의 자동차 전용도로 같았다. 버스의 바닷가 반대편 좌석에 앉았던 탓에 고랑서(고랑위, 현지어 구랑위)는 꼬리도 못 보았고, 대신 시가지 쪽의 다양한 건물들은 실컷 보았다. 남보타사에서 환도로로 나가는 길의 상당 구간이 몽땅 하문대학교였다. 중국에서도 내놓으라 하는 풍치 좋은 바닷가의 명문대학교! 10분 남짓 후에 우리의 차가 선 곳은 대만의 금문도가 보이는 해변이었다. 금문도는 대만과 중국의 접경지역에 있는 대만 소유의 섬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직접 현지에서 보니 마땅히 중국이 소유했어야 할 코 앞의 섬이었다. 그러니 이 섬을 놓고 중국이 공산화된 이후 두 차례..

중국 복건성 여행8 - 가장 미련이 남은 하문의 남보타사

장주시 남정현(장저우시 난징현)의 토루군을 둘러보고 다시 하문시로 향했다. 버스로 꼬박 3시간이 걸렸다. 첫날 하문(샤먼)에서 영정현으로 이동할 때 얼핏 본 해창대교를 건너고 고층빌딩들이 늘어선 하문 시가지가 차창으로 스쳤다. 하얀 철책이 세워진 고가도로 같은 곳은 남보타사 관람 후 드라이브(?)를 한 환도로였다. 상당히 긴 환도로를 따라 돌면 하문의 명소인 고랑서(고랑위)를 감상할 수 있다고 하는데 유감스럽게 반대편 차창에 앉아서 볼 수 없었다. 관광버스는 뜨거운 태양과 인파로 붐비는 하문대학교 서문 앞에 우리를 떨어뜨리고 주차문제 때문에 사라졌다. 그 많은 인파들... 토루군 관광할 때를 제외한 모든 관광지에서 지긋지긋한(!) 인파에 시달렸다. 평소에도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지만 더위 때문에 사람들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