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고궁박물관 전시물 1
<국립고궁박물관 전경>

<국립고궁박물관 층별 배치도 및 전시내용>
* B1F : 궁중서화, 왕실의례, 과학문화, 열린 수장고, 고궁배움터
* 1F : 대한제국, 기획전시실 Ⅲ, Ⅳ, 어차, 디지털 문화유산 나눔방, 뮤지엄숍
* 2F : 기획전시실 Ⅰ, Ⅱ, 조선국왕, 왕실생활

<국립고궁박물관 1층, 연(輦)>
대비, 왕, 왕비, 왕세자, 왕세자빈이 행차 때 탔던 정식 가마.


<국립고궁박물관 1층, 가교(駕轎)>
왕, 왕세자, 혹은 왕실 어른이 장거리 행차 때 탔던 가마로 정조의 화성 행차 때 어머니 혜경궁 홍씨가 탔던 것과 비슷.


<국왕의 의자, 어좌(御座)>
어좌에는 왕실을 상징하는 붉은 칠을 한 후 금색 용과 구름을 그리고 모서리에 용머리를 장식했다.

<어좌 위에 설치된 천장 장식, 보개(寶蓋)>
정전이나 편전에서 어좌 위에 설치된 보개는 국왕의 상징인 용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사진은 경복궁 근정전의 보개.

<어좌(御座) 뒤의 병풍 일월오봉도>
국왕의 자리 뒤에 놓는 병풍으로 다섯 개의 산봉우리와 해, 달, 소나무, 물이 그려져 있다.

<금보와 옥인>
윗사진은 태조에게 시호를 더하여 올리며 만든 금보, 아래 왼쪽 금보는 성종 승하 후 시호를 올리며 만든 금보, 오른쪽은 효명세자가 왕세자 책봉 때 받은 옥인이다.


<영조 어진과 어진을 모시는 의자(교의)>
교의(交倚)는 어진을 봉안하고 제사를 올린 창덕궁 신선원전에서 사용하던 것.

<국왕의 최고 예복 면복과 왕비의 최고 예복 적의(翟衣)>

<국왕의 최고 예복 면복과 보조 착용 도구 및 장식>
윗단은 면복의 겉옷 의(衣)와 국가 제사 때 깃에 덧다는 방심곡령이고, 아랫단 왼쪽은 무릎 앞에 드리우는 장식 폐슬과 허리 뒤로 드리우는 오색직물 및 비단 허리띠(대대와 수), 구슬이 드리워진 관모(면류관)이다. 오른쪽은 옥으로 장식한 옥대와 중단 위에 두르는 하의인 상(裳), 허리 양쪽에 드리우는 옥 장식 패옥이다.


<왕비의 최고 예복 적의(翟衣) 착용 순서>

<왕비의 최고 예복 적의(翟衣)와 보조 착용 도구 및 장식>
윗단은 왕비와 왕세자빈, 대한제국 시기의 황후와 황태자비의 궁중 대례복으로 가장 격식 있는 여성 예복 적의(翟衣)이다. 두 번째 단 안쪽의 흰옷은 적의 안에 입는 옷 중단과 어깨에 드리우는 비단 띠 하피이고, 중간 단은 머리장식과 허리 양쪽에 드리우는 옥 장식 패옥, 무릎 앞에 드리우는 장식 폐슬, 허리 뒤로 드리우는 오색 직물과 비단 허리 띠인 대대와 수이다. 아랫단은 청색 신발(사진 밖)과 청색 버선, 손에 드는 옥판 옥규, 옥으로 장식한 허리띠 옥대이다.


<왕비의 최고 예복 적의(翟衣)에 갖추는 머리 장식들>
높은 가발에 비녀, 봉황 모양 머리꽂이, 나비 모양과 백옥 떨비녀, 의례용 머리띠, 난초와 용 모양 비녀 등을 장식했다.

<궁궐의 현판들>
왼쪽은 왕세자의 호위를 담당한 계방(桂坊)의 현판과 경희궁 동궁 북쪽에 있던 전각인 양덕당(養德堂) 현판이다. 오른쪽은 국왕 자문처인 옥당의 현판과 국왕을 보좌한 내각 현판이다.

<왕세자 교육 관련 현판과 서적>
왼쪽 윗단은 왕세자 정기강론 규칙을 새긴 현판, 아랫단은 역대 국왕의 교훈을 담은 책과 왕세자가 성균관에 입학하는 의례과정을 담은 책이다. 오른쪽 윗단은 국왕이 왕세자 교육기관에 내린 당부를 새긴 현판, 아랫단은 왕세자 교육을 담당한 관리의 일기와 왕의 경연을 담은 책이다.

<경복궁 경회루 연못 바닥에서 발견된 청동용>
1865년 경복궁을 재건할 때 경회루에 가라앉힌 청동용 한쌍 중 하나. 용은 물을 다스린다고 믿어 화재를 예방하고 궁궐을 수호하고자 만든 것이다.

<옥책, 옥보, 옥인의 함>
왕이나 왕비, 왕세자 등의 도장을 담은 함과 옥책(아랫단)이다.

<금보함과 옥책, 공문서에 찍는 인장과 관인>
왼쪽은 어보와 인주의 외함을 함께 넣는 함, 정조에게 시호를 올리며 만든 금보와 옥책이고, 오른쪽은 공문서에 찍는 인장과 관인이다.

<오자치의 공신 초상(성종7, 1476)>
오자치는 1467년(세조 13)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공로로 적개공신 칭호를 받았고, 왕명으로 충훈부에서 초상을 그렸다.

<조선왕조실록(태조실록, 성종실록, 중종실록)>
'조선왕조실록'은 태조부터 25대 철종까지 역대 국왕의 행적을 편년체로 기록한 책으로 총 1,700여 권에 달한다. 공정한 기록을 위해 왕조차 함부로 열람할 수 없었으며, 화재나 전란으로 파손되는 것을 대비해 여러 질을 만들어 중앙과 지방의 사고에 나눠 보관했다.

<국조보감과 함, 국조보감 의궤>
왼쪽은 숙종 국조보감과 함, 오른쪽은 국조보감 보자기와 함끈, 아래는 국조보감 편찬과 봉안과정을 기록한 의궤이다.

<순종 왕세자 시절 혼례 과정을 기록한 의궤>
의궤(儀軌)는 조선 왕실의 행사 과정을 기록한 책으로 혼례, 상례 등 일생 의례부터 궁궐 건축, 서적 편찬, 국왕의 초상화 제작 등 중요한 국가 행사가 있을 때마다 의궤를 편찬했다. 국왕의 결정사항, 관련 문서, 행사 담당자와 장인 명단, 행사에 사용된 물품과 반차도 등을 그림으로 남겼다.

<선원계보기략과 헌종 대 궁궐지>
'선원계보기략'은 '선원록'과 함께 국가의 주도로 작성한 국왕을 중심으로 조상과 자손의 계보를 정리한 왕실 족보이다. '궁궐지'는 조선궁궐에 대한 기록서로 헌종 대 궁궐지는 숙종의 명으로 처음 편찬되었다.

<궁궐의 기와 장식과 석수>
윗단은 장식기와인 용머리 모양의 기와(용두)와 장식기와인 잡상, 중간단은 청색 기와, 아랫단은 궁궐의 정전 같은 중요한 건물 곳곳에 배치된 상서로운 동물 형상인 석수(石獸)이다.

<숙직용 인장과 야간 통행증 통부(通符)>
왼쪽은 궁궐 내부 경비 담당인 오위도총부 위장이 숙직하던 위장소의 인장과 국왕의 호위병이 사용한 야간 순찰 책임자의 증표이다. 야간에는 궁궐 출입이 금지되었으나 오른쪽의 바둑알 같은 '통부(通符)' 증표가 있으면 통행이 가능했다.

<선의왕후가 왕세자빈 책봉 때 받은 옥인, 죽책, 교명과 함>

<화유옹주묘 출토품>
영조의 딸인 화유옹주와 그녀의 남편 창성위 황인점의 묘에서 출토된 도자기, 비녀, 은주전자, 벼루 등의 부장품이다.

<왕세자(순종) 탄생 기념잔치 병풍>

<후궁의 출산을 담당한 관청의 기록>

<정조의 태항아리와 태지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