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서안, 낙양

서안의 당나라 황실정원 화청궁(華淸宮)

큰누리 2025. 7. 8. 16:36

≪서안의 당나라 황실정원 화청궁(华淸宮)≫

당나라 황실의 온천 별장이었던 화청지는 서안에서는 25km 정도, 진시황 병마용 갱에서는 서쪽으로 10㎞ 정도 떨어진 여산 자락에 있다. 온천이 출수되어 역대 황제들이 행궁을 세워 휴양을 했던 곳으로 당나라의 현종과 양귀비가 자주 찾았다고 한다. 양귀비는 피부를 관리하기 위해 이곳에서 온천욕을 즐겨서 양귀비 관련 온천탕이나 그녀가 좋아했다는 해당화 온천탕 등이 있다. 어탕유지 온천古源 3호 출수구 앞에 반나의 양귀비가 발로 목욕물의 온도를 체크하는 조각상이 있다. 온천 온도는 43도 정도로 현재에도 사용되고 있다. PS :'華淸宮'과 '华淸宮'은 똑같이 '화청궁'으로, '華淸宮'은 한자(번체), '华淸宮'은 간체이다. 이놈의 간체 때문에 안내문을 이해하는데 4~5배는 더 애를 먹었다.  

화청지는 온천이 있어서 역대 황제의 별궁이었으며, 양귀비와 당 고종이 애용했다. 근대에는 서안에 들렸던 장개석이 장학랑 등에게 잡혀 장개석과 국·공 합작을 강요받은 서안사변을 당했던 곳이다. 그래서 그와 관련된 건물이 몇 개 있으며 장개석이 도망간 여산 동굴(보이진 않지만)도 있다. 중국 현대사를 뒤바꾼 사건이라 양귀비, 현종 못지 않은 스토리텔링이 되어 강조되고 있었다. 1시간 남짓 넓은 화청지를 대충 관람했는데 복원한 유적이라 그저 그러려니 했지만 의외로 볼거리가 제법 있었다. 수많은 전각, 특히 온탕과 관련된 유적은 사실에 근거해 복원된 듯했다. 연화탕과 해당탕, 양귀비가 온천욕 후 몸을 말렸다는 1칸 정도의 정자, 온천 출수구 1과 2, 상당한 규모의 연못과 작은 연못들, 정원에 심은 꽤 오래된 석류나무나 활짝 핀 복숭아꽃이 인상적이었다. 

 

≪1936년 중국 현대사의 분수령이 된 서안사변≫

서안사변은 1936년 12월 12일 중국 섬서성 서안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국민당 총통 장개석(장제스)이 동북군 총사령관 장학량과 양호성에 의해 감금된 후 국·공합작과 항일 투쟁을 요구받은 역사적 사건이다. 장개석이 서안을 방문하자 장학랑 등은 그를 감금하려 했고, 오간청에서 총소리를 듣고 놀라 달아나려다 체포되었다. 부인 송미령의 설득으로 공산당과 2차 국·공합작에 동의하고 12월 24일에 석방되었다. 서안사변으로 중국 내전이 중단되고 항일 민족통일전선을 형성했으며, 공산당은 기사회생하여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하는 중국 현대사의 분수령이 되었다. 

 

<점심을 먹은 서안의 식당 '悅來(열래)'>

진시황릉과 병마용갱을 보고 근처의 悅來라는 중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콩나물, 고추볶음, 돼지고기버섯볶음, 김치에 탕수육과 고기볶음이 나왔는데 메뉴로만 보면 한식당 같았다. 대부분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식당으로 안내하는 현지 가이드의 센스가 돋보였다. 맛있게 식사하고 화청지로 출발!

 

<화청지 입구의 황제 동상들>

동상들도 기억에 남았지만 도로 양쪽의 큰 나무에 촘촘하게 매달려 얼핏보면 익은 감처럼 보이는 붉고 작은 등이 인상적이었다. 

 

<화청지 입구의 춤추는 군무 동상과 양귀비 조형물>

윗사진은 동작이 과하긴 하지만 양귀비와 현종이 노는 모습? 아래의 양귀비 조형물은 엄청 큰 크기인데 헝겊 같은 재질로 만들었다. 몇 발짝만 더 가면 앞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것조차 안 될 정도로 시간이 부족했다. 머리를 다쳐 피를 흘리던 양귀비가 현종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머리에 꽃을 꽂은 후로 머리에 꽃을 꽂는 것이 유행했다나? 서안에서 만난 수많은 당나라 복장을 한 젊은 여인들의 머리에는 모두 화려한 인조 꽃들이 꽂혀 있었다. 

 

<서안 화청궁(華淸宮) 매표소>

화청궁 입장료는 성인 1인당 120위안인데 단체할인은 되는지 모르겠다.

 

<화청궁 장생전(華淸宮 長生殿)과 부용호>

장생전(長生殿)입장해서 처음 만난 전각으로 앞에 부용호, 뒤에 여산이 있다. 

 

<서안 화청궁(华淸宮)의 전각과 복숭아꽃>

3월 31일인데 우리나라보다 5도 정도 더워서 서안이나 낙양에는 배, 복숭아, 사과꽃들이 한창이고, 긴팔을 입기에는 꽤 더웠다. 

 

<장생전(長生殿) 앞에서 본 화청궁 부용호와 망경문(望京門)>

 

<서안 화청궁(華淸宮) 배치도>

화청궁 뒷산은 진시황릉, 진시황 병마용 갱 뒤에 있는 여산이다. 정상 아랫쪽에 서안사변 때 장개석이 도망쳐서 숨은 동굴이 있다.

 

<서안 화청궁(華淸宮) 구룡호>

정상까지 케이블카가 운행중이다. 화청궁에 서안사변 때 장개석이 머물거나 온천욕을 한 건물들이 있다.

 

<서안 화청궁 비상전(飛霜殿)>

 

<서안 화청궁 선춘각(宣春閣)>

 

<화청궁 선춘각(宣春閣) 고욤나무에 접붙인 감나무>

어렸을 때 보고 처음 본 고욤나무에 접붙인 감나무이다. 이국 땅에서 이런 걸 보다니... 우리 어릴 때에는 열매는 크지만 나무가 작은 개량 감나무를 원래 키가 큰 고욤나무 중간을 자르고 그 위에 감나무를 사진처럼 붙이면 정상적으로 잘 자란다. 나무와 감을 모두 건지는 일종의 나무 성형수술로 어려서는 가끔 보았는데 요즘은 종자 개량이 잘 돼서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서안 화청궁(华淸宮) 어탕 앞의 서각판>

별다른 안내문도 없고 가이드도 놓쳐서 무엇인지 모르겠다.

 

<서안 화청궁 어탕(御湯)>

황제의 야외 온천탕인가?

 

<서안 화청궁 태자탕(太子湯)>

 

<서안 화청궁 御湯유지 양귀비像>

양귀비가 온천탕 앞에서 발로 물 온도를 체크하는 중이다.

 

<서안 화청궁 御湯유지의 온천수들>

내부에 있는 온천 출수구에서 관광객들을 위해 설치한 시설인 듯...

 

<화청궁 온천古源 3호 尙食湯 안팎>

화청궁 온천古源 3호 뒤에 있는 상식탕(尙食湯)은 고귀 관료나 수행관을 위한 온천이라고 한다. 규모가 커서 대중목욕탕 같다. 

 

<화청궁 온천 御書亭 유지>

 

<서안 화청궁 석가루(夕佳樓)와 온천古源 1, 2호 출수구>

석가루 아래에 온천 출수구 1호(左)가, 그 앞에 2호(右)가 있다. 석가루는 양귀비가 온천욕 후 몸(머리)을 말렸다는 작은 정자이다.

 

<서안 화청궁 성진(星辰)탕>

 

<서안 화청궁 연화탕 온천遺址>

 

 

<서안 화청궁 해당탕(海棠湯) 온천유지> 

 

<서안 화청궁 해당탕 앞 비석들>

 

<서안 화청궁(華淸宮) 이원(梨園)>

화청궁은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주제로 한 중국식 오페라(장한가 쇼)로 유명한데 이곳도 그런 행사를 위한 무대가 아닐까 싶다.

 

<서안 화청궁 망호루(望湖樓)>

 

<화청궁의 서안고촌 명목 석류>

'서안고촌의 유명한 나무'란 뜻인데 우리나라의 보호수인 듯하다. 이곳에서 오래 묵고 품위도 있는 이런 석류나무를 여러 기 보았다.

 

<서안 화청궁 白蓮榭(백련사)>

처음 본 한자인데 '사(榭)'는 '정자 사'이다.

 

<서안 화청궁 양비지(陽妃池) 안팎>

'장개석 목욕실'이라고 안내되어 있다. 서안사변 때 장개석이 이곳에 있었기 때문에 장개석 관련 건물들이 몇 채 있다. 

 

<서안 화청궁 오간청(五間廳) 안팎>

이곳도 장개석이 서안사변때 총소리를 듣고 놀라 달아난 곳이다. 규모가 가장 크고 내부의 사진으로 보아 서안에서 국민당 집무실로 사용하고, 잡힌 후 풀려나기 위해 국·공합작을 맺은 곳인 듯하다. 

 

<장개석이 관련된 화청궁 동음헌(桐陰軒)>

 

<서안 화청궁 碑亭과 곽말약 글 비석>

 

<서안 화청궁의 등꽃>

 

<서안 화청궁 香凝池(향응지)>

모택동과 함께 중국 공산당을 창당하고 이끈 주언라이(주은래)가 목욕한 곳이라고 한다. 국민당을 대만으로 쫓은 이후였을 것이다.

 

<서안 화청궁(华淸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