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서안, 낙양

낙양 용문석굴-서쪽 용문산의 석굴들

큰누리 2025. 7. 19. 21:01

≪낙양 용문석굴(龍門石窟)≫

용문석굴(龍門石窟)은 중국의 고대 석조 예술 보물 중의 하나로, 허난성 루오양(河南城 洛陽市) 남쪽 13km 지점에 있다. 동쪽에 향산(香山), 서쪽에 용문산(龍門山)이 있으며, 그 중앙을 이하(伊河)가 관통하며 흐른다. 석굴은 주로 강의 서쪽(용문산) 절벽에 집중되어 있다. 용문석굴(龍門石窟)은 둔황의 막고굴(莫高窟), 산시의 운강석굴(雲崗石窟)과 더불어 중국의 3대 고대 석굴로 꼽히며, 200011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용문석굴의 조성은 북위(北魏) 효문제가 수도를 山西省의 평성에서 루오양(洛陽)으로 옮긴 서기 493년에 시작되었고, 이후 동위, 서위, 북제, , 당나라와 오대, , 금나라에 이르기까지 약 400년간 계속되었다. 현재까지 확인된 동, 서 양쪽의 석굴은 2,300 , 불탑 80개, 불상 약 11만 개, 비각 2,800여 기이다. 동쪽 香山의 주요 석굴은 당나라 무측천 시기에 조성되었다. 용문석굴의 30%북위 시대에 조성되었는데 대표적인 석굴로는 고양동(古陽洞, 1433), 빈양중동(賓陽中洞, 140), 연화동(蓮花洞, 712), 위자동(魏字洞, 1181), 황보공굴(皇甫公窟, 1609) 으로 그중 고양동(古陽洞)에 새겨진 19개의 조각 명문은 북위 서예 예술의 걸작으로 꼽히는 용문20(龍門二十品)’이다용문석굴 중 당나라 시대에 조성된 것은 전체의 약 60%를 차지하며, 대표적인 것은 봉선사(奉先寺, 1280), 잠계사(潛溪寺, 20), 만불동(萬佛洞, 543), 극남동(極南洞, 1955호), 대만오불동(大萬伍佛洞, 2055), 고평군왕동(高平郡王洞 2144), 간경사(看經寺 2194) 이고, 봉선사동의 대노사나불(大盧舍那佛) 불상군이 대표이다. 이들 석굴은 모두 조각이 정밀하고 예술적으로 매우 뛰어난 당나라 최고 전성기의 예술작품이자 인류 미술의 걸작이다.

 

용문석굴은 중국 북방 불교예술 중 최고의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이는 역사 연구의 실물 자료일 뿐 아니라 서로 다른 시대와 다양한 양식을 보여주는 예술의 진수를 담고 있다. 이 가운데 용문이십품(龍門二十品)’과 당나라 서예가 구양순의 이궐불감비(伊闕佛龕碑)’는 북위와 당나라 시기 서예 예술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용문석굴은 북위와 당나라 황실의 신앙과 정치적 권위가 집중된 장소로, 석굴 예술 가운데 황실이 주도한 불상 조성과 조각들이 특히 주목된다. 이는 고대 중국 황실 정치 아래에서 불교예술이 실질적으로 봉사하던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당시의 동방문화는 이를 통해 왕권과 신앙, 예술이 결합된 독특한 양식을 형성했고, 이는 민간 예술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용문석굴은 1,500여 년의 역사를 지녔으며, 민중들의 창조정신과 예술혼이 담긴 귀중한 유산이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국가는 용문석굴 보호에 큰 관심을 기울였으며, 석굴 보존과 합리적 이용이 함께 추진되었다. 하략...  (챗GPT 가 번역한 현지 안내문)

 

≪서안, 낙양여행 3일째(25.0402) 일정≫

- 06:40. 서안 다와 시안 찬바호텔에서 아침 식사 후 07:00에 기차역(서안 북역)으로 출발.

- 08:25. 우리나라의 어지간한 공항보다 더 큰 서안 북역 출발용문역에 1시간 20 만(9:50)에 도착.

- 용문역의 컴퓨터 인식 오류로 1시간 대기11:00에 용문석굴행 전동카트를 탐 10분 정도 이동 후 다시 여권 내고 산 티켓으로 조별 입장하는데 여권 인식 오류로 또 대기 용문역과 석굴 입구에서 1시간 30분 지체되어 11:50쯤부터 정신없이 용문석굴을 봄.

- 석굴 대부분이 모여있는 서쪽의 용문산 산자락을 타고 강(伊河)을 바라보는 대부분의 면에 불상 등이 조각되어 있었음. 불상이나 보살상, 금강역사상 등 불교 조각 외에 비석이나 글씨도 있었음. 굴 크기도 손바닥보다 작은 것부터 엄청난 크기까지 제각각인데 전체적으로 크게 세 그룹 정도로 분류할 수 있을 듯함. 가장 큰 노사나불이 단연 압권인데 완성도나 크기 모두 대단함. 목 없는 불상이 많고 노사나불을 수호하는 서, 남천왕상도 손상됨. 하지만 노사나불 좌우 보좌불이나 동, 북천왕 상태는 아주 좋음. 자료가 있으면 좋은데 용문석불이나 백원(백거이 묘) 모두 자료가 없어서 아쉬움. 

- 서쪽 산 석불을 다 보고 다리를 건너 맞은편에서 조망하려 했으나 시간에 쫓겨 못함.

- 향산사는 포기하고, 동산 위에 있는 백거이 묘(백원)를 봄. 묘는 특별할 게 없지만 둘러싼 비석 몇 개가 나름 볼만함

- 13:10. 백원(백거이 묘)까지 보고 전동 카 타고 나옴.

- 14:50. 낙양 관림 관람

- 15:45. 마지막 코스인 낙양 고묘박물관 관람. 

- 낙양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19:20에 서안북역 행 기차를 탑승

- 21:00. 시안북역 도착. 역에서부터 대명궁 덕안문 옆에 있는 주차장까지 30분을 걸어 우리 버스에 탑승, 호텔로 출발.

- 23:00. 서안 다와 시안 찬바호텔 도착.

 

<서안 북역>

어지간한 지방 공항만 하다. 08:25에 서안 북역에서 출발하여 1시간20분 만인 9:50에 용문역에 도착했다. 역에서도 여권 검사!

 

<용문석굴 매표소>

이곳에서 현지 가이드가 매표하는데 30분 이상 걸렸다. 그리고 또 한참을 기다려 전동카를 타고 10분 거리에 있는 용문석굴 입구에 도착했다. 중국인 관광객도 많고, 입장 전에 신원 확인이 철저해서 시간이 많이 걸린다.

 

<전동카에서 본 용문석굴 서산(용문산) 북쪽>

용문석굴은 사진의 이하(伊河)를 사이에 두고 동쪽(향산)과 서쪽(용문산)에 석굴이 있다. 유명하고 큰 노사나불 등의 석불은 주로 사진에 보이는 서쪽(용문산)에 있다. 오른쪽부터 기와지붕 같은 안에 있는 잠계사(潜溪寺), 중앙의 넓은 차양(!) 아래는 북위의 빈양동(賓陽洞)으로 명문 '이궐불감비(伊闕佛龕碑)'가 있다. 사진 왼쪽의 작은 석굴 그룹은 만불동(萬佛洞)일 것이다. 

 

<용문석굴, 향산사, 백원 배치도>

 

<용문석굴 입장문(검표소), 서산 용문석굴 진입로>

왼쪽의 검표소를 통과하는데 단체로 입장해야 되고, 여권까지 제시하며 매표했음에도 일행 중 1명이 시스템에 걸려 또 대기했다. 중국은 전산화를 제대로 하려면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용문석굴 동산, 서산을 관통하는 강 이하(伊河)>

강 건너편은 백원(백거이 묘), 향산사, 동쪽 석굴이 있는 香山이다.

 

<용문석굴 龍門, 서산 입구>

매표소→전동카→검표소→진입로→아래 왼쪽의 용문→ 아래 오른쪽의 을 지나야 용문석굴이 대부분 포진해 있는 용문산(서산) 석굴이 있다. 서쪽 용문사의 석굴을 보고 다리를 건너 동쪽 향산의 용문석굴, 향산사, 백원(백거이 묘)을 보는데 우리는 시간에 쫓겨 서쪽 용문석굴과 백거이 묘만 보았다. 

 

<용문석굴 龍門에서 본 향산사>

 

<용문석굴 최초 관람지 잠계사(潛溪寺)>

오른쪽 기와는 당나라의 잠계사(潛溪寺, 20), 왼쪽의 회색 차양(!)을 친 큰 석굴은 북위시대에 만든 빈양동(賓陽洞,140)이다. 잠계사(潛溪寺) 석굴 앞에 두 번째 사진의 비가 있는데 내용은 파악하지 못했다. 왼쪽의 빈양동(賓陽洞) 역사적으로 중요한 명문 '이궐불감비(伊闕佛龕碑)'가 있다.

 

<용문석굴 잠계사(潛溪寺)>

잠계사(潛溪寺, 20호)는 당나라 정관15(641), 태종의 넷째 아들인 위왕 태(魏王 泰)의 발원으로 조성되었다.  9.4m, 깊이 6.7m, 원형 천정 높이 10.6m 크기의 석굴이다. 본존 좌불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나한·보살·신왕이 협시하고 있다.

 

<용문석굴 잠계사(潛溪寺)와 빈양동(賓陽洞) 중간의 석탑>

 

<잠계사(潛溪寺)와 빈양동(賓陽洞) 중간의 진원십자권비>

 

<용문석굴 빈양동(賓陽洞)과 작은 석굴>

아래 사진은 윗사진 맨 오른쪽에 있는 석굴을 확대한 것이다. 입구 양쪽에 보살상과 금강역사상이 있고, 내부 본존상의 목이 없다. 

 

<용문석굴 빈양동(賓陽洞)의 꼬꼬마 불상>

중앙의 큰 직사각형 위에 아주 작은 불상 좌상이 있다. 용문석굴 중에서 가장 작은 불상은 2.5cm 정도라고 했는데 그 수준이다. 

 

<용문석굴 빈양동(賓陽洞)의 이궐불감비(伊闕佛龕碑)>

빈양중동 남쪽벽에 있는 마애비(磨崖碑)로 당나라 시기인 641에 위왕 태가 생모 문덕왕후를 위하여 빈양3동을 보수, 재불동(齎祓洞)을 신조한 것을 위왕의 명령으로 저수량(褚遂良)이 쓴 비문으로 중국 서예 예술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용문석굴 빈양동(賓陽洞)의 석굴 2개>

빈양동에서는 2개 큰 석굴이 두드러지는데 아래의 북쪽 석굴이 더 유명한 듯하다. 2개의 본존불은 얼핏 보면 상당히 비슷한데 입구의 금강역사상 유무로 구분하면 쉽다. 아래의 본존불이 훨씬 유려하고 협시불의 상태도 좋다. 

 

<용문석굴 빈양동(賓陽洞)과 이궐불감비(伊闕佛龕碑)>

 

<용문석굴 마애삼불감(摩崖三佛龕) 1, 2>

 

<용문석굴 황보공굴(皇甫公窟, 1609)>

룽먼에서 가장 잘 보존된 석굴 가운데 하나서산의 남쪽에 있으며, 527년에 완성되었다. 석굴 위에 목재 구조물을 본떠 만든 지붕이 있으며, 석굴의 주벽에 7개의 커다란 불상을 가로로 새겼다. 바닥과 입구에는 '마애삼불감'이라고 적혀있다.

 

<용문석굴 서쪽(용문산)에서 가장 규모가 작은 석굴군>

 

<용문석굴 만불동(萬佛洞) 입구>

 

<용문석굴 만불동(萬佛洞)의 아미타불과 소불 15,000개>

앞의 금강역사상은 마모가 심하지만 석굴 내부는 천장의 연화문, 본존불과 뒷벽의 부조 불상, 옆벽의 작은 소불상 모두 상당히 양호하다. 천장 연꽃 부분을 붉은색으로 칠하고 글을 새겼다. 화려한 색깔이나 벽면에 촘촘하게 새긴 소불상, 광배 위로 새긴 부조 불상 등 여러 면에서 특별하고 화려해서 기억에 남은 석굴이다.

 

<만불동(萬佛洞) 아미타불 좌우의 인왕상과 작은 석굴들>

 

<용문석굴 511, 512호 쌍굴 중 하나>

오른쪽은 왼쪽 굴 내부를 확대한 것이다. 이 부근의 석굴이나 불상들은 규모나 구조, 의상 등이 아래 석굴, 불상과 비슷하다.

 

<용문석굴 557호 淸明寺(唐) 밖과 안>

 

<용문석굴 만불동~老龍洞 사이>

이 즈음부터 시간에 쫓겨 어디인지도 모르고 줄을 따라 급하게 훑기 시작했다. 볼 것은 많은데 입장하기 전에 시간을 소비해서... 

 

<용문석굴 노룡동(老龍洞)>

노룡동(老龍洞)은 당나라 때 만든 동굴로 긴 말굽 모양의 평면과 돔 모양 천장의 동굴이다. 석굴 벽에는크고 작은 벽감들이 불규칙하게 배열되어 있으며 불상 외에 다양한 내용의 그림들이 새겨져 있다.  

 

<용문석굴 연화동(蓮花洞 712호)>

기본적인 석굴 조각은 북위 숙종 효명제 때(520~525) 만들어졌으며, 동굴 내부는 폭 5.5m, 깊9.8m의 장방형 평면 석굴이다. 굴 천장에 거대한 연꽃이 조각되어 연화동(蓮花洞)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정면 벽에는 아미타불 입상이 있고, 북쪽에는 보살이 손에 정병을 들고 경전을 설법하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남쪽 벽 위쪽에 겨우 2cm 크기의 작은 천불들은 용문석굴에서 가장 작은 조각상이다.

 

<용문석굴 연화동(蓮花洞 712호) 동영상>

 

<용문석굴 당자동(唐字洞)>

당나라 초기에 만들었으며 내부는 미완성이다. 외벽에 목조 구조물을 본뜬 처마가 있다.

 

<용문석굴 위자동(魏字洞 1181)으로 추정>

시간에 쫓겨 올라가지 못하고 통과했다. 이름은 입구의 이정표로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