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마이산 금당사, 금당사 석탑과 금당사 괘불탱

큰누리 2026. 5. 27. 19:10
금당사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마령면 마이산남로 217

 

≪마이산 금당사(金塘寺)≫

전북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마이산에 자리한 금당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이다. 고려 말까지 완주의 경복사(景福寺)와 함께 열반종의 중심 사찰이었으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쇠락하였다. 조선 숙종 원년(1675)에 현재 위치로 옮겨 중창하며 금당사로 불렸는데, 당시 위치는 지금보다 약 1.5km 떨어져 있었다고 한다. 옛 자리는 고금당(古金塘)이라 불렸으며, 자연 동굴을 법당으로 사용해 혈암사(穴巖寺), 금동사(金洞寺)라고도 불렸다. 창건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백제 의자왕 10년(650)에 고구려 승려 보덕의 제자 무상이 그의 제자인 금취(金趣)와 함께 세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통일신라 헌덕왕 6년(814)에 중국 승려 혜감(惠鑑)이 창건했다는 것이다. 금당사는 여러 차례 중건과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으며, 한때 대찰의 위용을 갖추었고 고려의 고승 혜근(惠勤, 1320~1376)도 이곳에서 수도했다고 전해진다.

현재는 극락보전, 지장전, 삼성각, 나한전, 요사 등이 남아 있다. 경내에는 숙종 18년(1692)에 명원(明遠) 등 4인이 그린 금당사 괘불탱(보물 제1266), 숙종 원년(1675) 이전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목조 삼존불좌상(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8호)과 고려 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금당사 석탑(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이 있다. 절 근처에는 마이탑사와 단군을 모시는 이산묘가 자리하고 있다.

 

<진안 마이산 금당사 일주문>

금당사는 존재를 전혀 몰랐는데, 마이산 돌탑과 탑사, 은수사를 들르기 위해 주차장에서 내리니 일주문이 보였다. 당연히 탑사 일주문인 줄 알았는데, ‘금당사 일주문’이었고 금당사는 그곳에서 멀지 않은 왼쪽 도로변에 있었다. 오래전(25년 전쯤) 필름 카메라로 촬영하던 시절, 가족들과 마이산 탑사와 은수사를 방문했었는데 그때는 반대편(북부)으로 들어가서 보고 나왔기에 남부 주차장 방향은 처음이라 낯설었다. 이번에는 북부쪽은 전혀 거치지 않았다.

 

<진안 마이산 도립공원 입구>

주차장에서 내려 금당사 일주문을 지나면 이곳이 있다. 이곳을 지나면 금당사가 있고 30분 정도를 걸어야 마이산 탑사가 있다. 날이 좋아 주변의 풍경과 야생화, 탑영제 등을 보며 걷는 게 즐거웠지만 덥거나 추울 때에는 미니밴 같은 탈거리가 있으면 좋을 듯하다.

 

<진안 마이산 금당영지, 금당사>

노란 목재 건물들은 최근에 신축한 것으로 보이는 성보박물관, 범종각 등이다. 성보박물관 앞쪽에 금당사 석탑이 있다.

 

<마이산 금당사의 아름다운 흙담과 시주 기와>

 

<마이산 금당사 지장전, 극락보전>

 

<마이산 금당사 나한전과 요사체>

 

<마이산 금당사 나한전과 앞의 석탑>

이번에 마이산의 사찰들(금당사, 탑사, 은수사)을 둘러보면서 유독 눈에 들어온 것은 최근에 조성한 짝퉁 느낌의 석탑들과 석불상이 많다는 것이었다. 금당사에는 이 석탑 외에 월정사 구층석탑을 닮은 작은 석탑,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닮은 석탑이 있고, 오리지널 금당사 석탑도 있다. 

 

<마이산 금당사 나한전>

 

<마이산 금당사 극락보전 옆에서 본 성보박물관과 범종각>

 

<마이산 금당사 극락보전 옆의 깜찍한 돌거북상>

 

<마이산 금당사 극락보전>

우리는 국립민속박물관 답사팀으로 마이산에 4월 20일에 들렀다. 답사 자료에 의하면 '이곳 금당사의 주불전은 대웅보전이고 금색으로 칠했다가 다시 되돌렸다, 대웅전은 정면 3칸에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었다'는 등의 내용이 있는데 현장에는 전혀 비슷한 건물이나 설명이 없었다. 그런데 극락보전 앞의 '금당사 목불좌상' 안내문에는 '대웅전에 목조삼존불상이 모셔져 있다. 중략...'라고 적혀있다.

 

<마이산 금당사 극락보전의 목불좌상>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

안내문에 '대웅전에 모셔져 있는 목조삼존불상'으로 소개된 불상이다. 안내문의 설명에 의하면 이 목조삼존불상은 조각승인 희장(熙藏 또는 熙裝)이 1650년에 좌대와 함께 조성하였다. 중앙에 가장 높은 부처인 아미타불이 있고 양옆으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자리하고 있다. 현재는 중앙의 본존불만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아미타불좌상은 칼로 깎은 듯 경직된 모습을 하고 있다. 날카로운 눈과 직선적인 코, 꽉 다문 입, 작고 얇은 입술의 넓적한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이 드러나 있지 않다. 중앙 계주와 정상 계주가 표현된 머리는 육계가 불분명하다. 무릎 위에 살짝 내려놓은 양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는데, 신체에 비해 매우 크게 표현되었다. 둥글게 움츠리고 있는 어깨, 도식화된 옷자락 표현, 평평한 가슴 등은 조선 후기 불상의 특징이다. 좌우에서 보좌하는 보살은 모두 보관을 쓰고 연꽃 줄기를 들고 있다.

 

<마이산 금당사 극락보전 좌우의 벽면>

한쪽에만 불화가 있다.

 

<마이산 금당사 지장전과 삼성각>

 

<마이산 금당사 지장전>

 

<마이산 금당사 지장전의 지장보살, 시왕상>

 

<마이산 금당사 삼성각>

 

<마이산 금당사 삼성각 앞의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닮은 석탑>

오른쪽 원경의 건물은 성보박물관과 범종각이다.

 

<마이산 금당사 극락보전과  앞의 석조물>

사찰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석조물이다. 이무기 같은 용?


<마이산 금당사 아래쪽의 월정사 팔각구층탑을 닮은 석탑과 요사채>

 

<마이산 금당사 범종각>

 

<마이산 금당사 한쪽의 석불과 석물들>

 

≪진안 마이산 금당사 석탑≫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

금당사 석탑은 2층 기단(바닥돌) 위에 세워진 석탑이다. 현재는 5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3층부터 5층까지의 탑신부(몸돌)만이 원래의 석탑 부재이며, 1층과 2층은 옥개석(지붕돌)이 두툼하고 층단이 없는 것으로 보아 다른 석탑의 부재를 모아 쌓아 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기단부는 돌이 없어져 다른 돌로 대신하였으며, 상륜부 역시 없어진 것을 후대에 만들어 올려놓았다. 이 탑은 인근 지역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소규모 석탑으로, 구조나 제작 수법을 보아 고려 시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시대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석탑이 크게 파손되었으나, 숙종(1674~1720) 때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고쳐 세웠다.

 

<석탑의 부분별 명칭>

 

<진안 마이산 금당사 석탑>

아래 사진은 사방에서 본 모습...

 

<진안 마이산도립공원 입구 식당의 점심밥상>

국립민속박물관 답사에서 기대되는 것 중의 하나가 답사지에서의 점심 식사이다. 3년째 답사를 하면서 모두 맛있게 먹었는데 이곳은 나나 일행 모두 반응이 좋지 않았다. 돼지등갈비구이와 비빔밥 등 내용이 괜찮았는데도 반응이 좋지 않았던 것은 음식이 식어서였던 듯하다. 등갈비는 내가 좋아하는 데도 딱딱하게 굳어서 내 몫조차 못 먹었다. 된장찌개는 아주 맛있었다. 

 

<직접 못 보고 자료로만 본 금당사 괘불탱>

보물 제1266호.

금당사 괘불탱 4.97m, 길이 9.66m의 탱화로 괘불탱은 야외에서 큰 불교행사가있을 때 걸어두고 예배를 드리던 그림이다. 이 괘불탱화는 단독의 관음보살입상을 그리고 광배의 끝부분은 화려한 색으로 불꽃무늬를 그린 후 불꽃무늬 안 좌우에 각각 작은 불상 10구씩 배치했다. 관음상은 머리에 수많은 부처의 얼굴의 있는 보관을 쓰고 있으며, 좌우에는 봉황을 그렸다. 이목구비는 작게 표현되었고, 신체에 비해 얼굴이 큰 편이다. 연꽃가지를 들고 있으며, 화려한 장식과 문양의 옷 모습이 화면을 압도한다. 채색은 주로 주홍색을 사용하였으며 복색과 분홍색, 흰색을 이용하여 은은한 분위기를 표현하였다.

숙종 18(1692)에 명원(明遠) 4인이 그린 이 괘불은 전체적으로 화려하고 은은한 무늬와 색상이 17세기 후반 불화의 모습이 잘 나타나 통도사의 관음보살 괘불탱화 및 무량사의 미륵불괘불탱화 등과 함께 장엄형 괘불탱화의 최고 걸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 괘불을 걸고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내린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