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답사 1번지에 해당하는 유배의 땅 강진, 구강포 윗자락의 만덕산 기슭에 정약용의 유배지이면서 다산학의 산실인 다산초당이 있다. 茶山은 차(茶)나무가 많은 만덕산의 별칭으로 정약용의 호인 다산도 여기에서 유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다산 정약용은 18년의 유배생활 중 10년을 다산초당에서 지내면서 , 등의 역작을 완성했다. 다산은 1801년 천주교 박해사건인 신유사옥에 연루되어 경기도 장기로 귀양을 갔는데 황사영 백서 사건으로 서울로 불려갔다가 강진으로 유배지가 옮겨졌다. 초당으로 거처를 옮기기 전에는 대역죄인이란 이유로 현지인들이 기피한 까닭에 머물 곳이 없어 주막집 뒷방에서 4년, 기타 보은산방, 제자 이청의 집을 전전했다. 그러다가 유배살이 8년째인 1808년 봄에 외가 친척(다산의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