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은 도굴되지 않았기 때문에 출토된 유물의 대부분이 원형 그대로이다. 그럼에도 지하궁전의 큰 규모에 비해 유물의 양이 너무 적다. 중국여행을 전문으로 블로그를 운영하는 분의 글을 보니 대부분의 출토 유물이 국민당 정부에 의해 대만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정릉의 발굴은 1949년 이후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발굴된 유물이 적을까? 정릉에는 전시실 2개(라는 것은 사진 정리하면서 알았다)가 있고 인근의 장릉에도 일부 유물이 전시되고 있다. 양은 적지만 최고 권력자의 사후를 위한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섬세하고 값진 유물을 보니 민초들의 삶과 무관한 엄청난 황제의 권력이 느껴졌다. 가장 그 느낌이 큰 것은 황후의 보관(봉황, 용관)과 다산을 바라며 100여명의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