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 열하일기 코스

북경6 - 정릉 출토 유물들

큰누리 2012. 6. 10. 01:00

정릉은 도굴되지 않았기 때문에 출토된 유물의 대부분이 원형 그대로이다. 그럼에도 지하궁전의 큰 규모에 비해 유물의 양이 너무 적다. 중국여행을 전문으로 블로그를 운영하는 분의 글을 보니 대부분의 출토 유물이 국민당 정부에 의해 대만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정릉의 발굴은 1949년 이후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발굴된 유물이 적을까?

 

정릉에는 전시실 2개(라는 것은 사진 정리하면서 알았다)가 있고 인근의 장릉에도 일부 유물이 전시되고 있다. 양은 적지만 최고 권력자의 사후를 위한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섬세하고 값진 유물을 보니 민초들의 삶과 무관한 엄청난 황제의 권력이 느껴졌다. 가장 그 느낌이 큰 것은 황후의 보관(봉황, 용관)과 다산을 바라며 100여명의 아이들을 일일히 수 놓은 백자의였다.

 

 

<정릉의 제2전시실>

우리가 그냥 통과한 제1전시실에는 무엇이 있었는지 궁금...  

 

 

 

<황후 대례복으로 판단되는 백자의(百子衣)의 앞과 뒤>

까다로운 비단에 일일히 수를 놓은 작품이다. 황후가 다산하기를 희망하는 내용 같은데 클로즈업해서 아이들을 세어보니 앞, 뒤로 77명이었다^^. 윗사진 왼쪽 아래의 작은 물건이 바로 전족용 신(버선?). 

 

 

 

<전족 신발(버선?)>

20cm도 안 되는 이 신발(버선)을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웠다. 신분이 높은 집안의 여자는 평생 자리에 눕거나 앉아 자식이나 낳고 남편 수발이나 들라는 이야기인데... 여아가 어릴 때 발가락을 꺾은 후 천으로 꽁꽁 묶어 발의 성장을 막았다고 한다. 한달에 한번 정도만 씻기 위해 풀었다니 상상해보시라, 끔찍~~~

 

 

<황후의 구룡구봉관 정면>

옆 장식이 없지만 가장 화려한 관 중의 하나이다. 정릉 말고 장릉의 능은전에 진주가 달린 비슷한 관이 아래 쪽의 사진에 하나 더 있다. 둘다 정릉 출토품이다.

 

 

<황후의 구룡구봉관 측면과 떨잠> 

 

 

 <흠집 하나 없이 완벽한 형태로 출토 된 용무늬 비단과 연꽃무늬 공단>

 

 

 

<기타 출토품들(제기, 옥으로 만든 허리띠, 청화백자, 나무 인형, 금화 등)>

 

 

 

 

이상은 정릉 전시실 출토품 ↑.

  

 

이하는 장릉 능은전 전시 정릉 출토 유물↓.

<장릉의 능은전에 전시 된 정릉 출토 금관>

 

 

<장릉의 능은전에 전시 된 정릉 출토 면류관>

 

 

<장릉의 능은전에 전시 된 정릉 출토 가죽관>

 

 

<장릉의 능은전에 전시 된 정릉 출토 황후의 봉(鳳)관>

 

 

<장릉의 능은전에 전시 된 정릉 출토 황후의 머리 장식들>

 

 

<장릉의 능은전에 전시 된 정릉 출토 옥 허리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