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22.04. 경복궁2(교태전, 경회루, 태원전, 광화문)

큰누리 2022. 6. 25. 15:01

 

 

 

<뒷마루에서 본 왕의 침소인 강녕전(康寧殿)>

 

 

<왕의 침소인 강녕전(康寧殿)과 왕비 침소인 교태전(交泰殿) 행각>

왼쪽은 강녕전 뒷마루이고, 오른쪽은 교태전 앞면이다. 오른쪽의 담장 같은 시설은 행각이라고 하는데 시녀들의 숙소나 창고 등으로 사용된다.

 

 

<강녕전(康寧殿)에서 교태전(交泰殿)으로 통하는 양의문(兩儀門)과 교태전>

왕이 왕비의 침소로 드나드는 문이다. 교태전 마루 너머로 후원의 아미산 굴뚝들이 보인다.

 

 

<왕비의 침소인 교태전(交泰殿)>

왕의 침소인 강녕전과 왕비의 침소인 교태전은 지붕마루가 없다. 이런 지붕을 무량각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전(殿)'이 들어가는 건물 좌우에는 대칭으로 별도의 부속건물들이 있는데 특이하게 교태전은 좌우의 건물이 붙어있다. 크기도 강녕전에 비해 1/2 정도이다. 

교태전(交泰殿) 좌(동쪽) 건물은 원길헌(元吉軒), 우(서쪽) 건물은 함흥각(含흥閣)이다.

 

 

 

<왕비의 침소인 교태전(交泰殿)과 동쪽 건물인 원길헌(元吉軒)>

 

 

<왕비의 침소인 교태전(交泰殿) 북동쪽 담장>

경복궁의 담장은 대비 침소인 자경전이 유명하지만 이곳도 상당히 아름답다. 이 담장은 교태전(交泰殿) 북쪽에 있는 후원과 아미산 굴뚝으로 이어진다. 첫번째 사진의 오른쪽 건물은 교태전(交泰殿) 동쪽 건물인 원길헌(元吉軒)의 뒷쪽이다. 

 

 

 

≪아미산(峨楣山) 굴뚝≫

왕비의 침전 뒤쪽에 인공으로 계단식 정원을 만들고, 가운데 단에 육각형 굴뚝 4개를 나란히 세웠다. 흙을 구워 만든 연한 주황색 전벽돌 몸체 위에 기와지붕을 얹고 그 위에 4개씩의 작은 굴뚝을 모았다.

 

몸체에 조각된 여러 무늬들은 각각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봉황은 왕비를, 박쥐는 부귀를, 매화와  국화는 군자의 심성을, 학, 사슴, 불로초, 소나무, 대나무, 돌 등 십장생은 장수를 뜻한다. 정원의 아랫단에는 돌로 만든 그릇인 돌함지와 화분 등이 놓였는데, 함월지(涵月池)는 달이 담긴 호수를, 낙하담(落霞潭)은 노을이 비친 연못을 의미한다.

 

계단식 정원은 산을, 돌함지는 호수를, 굴뚝의 무늬는 동식물의 생태를 상징하여 아미산 정원은 신선이 사는 자연의 세계를 상징한다.

 

 

<원길헌과 교태전 후원의 아미산 굴뚝>

 

 

 

 

<뒷마루에서 본 왕비의 침소인 교태전(交泰殿)>

 

 

<교태전에서 본 서쪽 含元殿(함원전)쪽>

 

 

<교태전 일원(구역) 서쪽 끝에 있는 우물과 그 부근의 자물통>

 

 

 

≪흠경각(欽敬閣)과 함원전(含元殿)≫

흠경각과 (맞은편의) 함원전은 농본사회를 운영하는 왕의 역할과 밀접하게 관련되는 건물이다. 농업 위주의 전통사회에서 시간과 천체의 운행에 맞추어 정치를 하기 위해 천체기구들을 왕실에 가까이 두었다. 세종은 옥루기륜(玉漏機輪), 앙부일구 등의 시계와 간의를 만들어 흠경각 일원에 설치하였다. 경회루 남쪽에 있던 보루각, 궁성 서북쪽의 간의대 등도 흠경각과 관련된다.

 

이와 달리 함원전은 불교 행사가 자주 열렸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 이채롭다. 현재의 건물들은 1995년에 복원되었다.

 

 

<교태전 서쪽의 含元殿(함원전)>

흠경각과 함원전과 정확하게 교태전 밖 서쪽에 남북으로 늘어서 있다. 함원전은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불교 행사가 자주 열렸던 곳이라고 한다.

 

 

≪경회루(慶會樓)≫

왕실의 큰 연회를 베풀거나 외국 사신을 접대하던 곳으로 1867년에 재건되었다. 높은 2층 마루에 올라 서쪽으로 인왕산, 동쪽으로 궁궐의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하며, 주위의 넓은 연못에서 뱃놀이를 했다고 한다. 세로 7칸, 가로 5칸, 바닥면적 933㎡(282평)로 현존 목조 건물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2층 마루는 3겹으로 구성되었는데, 중심 3칸은 天地人을, 그 바깥은 1년 12달을, 가장 바깥의 24기둥은 24절기를 의미하는 등 동양적 우주관을 건축으로 상징했다. 중건 당시에 경회루 연못에 2마리 청동 용을 넣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실제로 1997년 준설공사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含弘門(함홍문)에서 본 경회루(慶會樓)>

含弘門(함홍문)은 강녕전 서쪽에 있다. 근정전-사정전-교태전이 남북으로 일렬로 늘어서 있고 세 전각 서쪽에 경회루가 있다.

 

 

 

<수정전 방향에서 본 능수벚꽃과 어우러진 경회루(慶會樓)>

내가 들른 당시에 능수벚꽃이 가장 아름답게 개화한 시기여서 관람객들이 능수벚나무 앞에서 줄을 서서 기념사진 촬영을 했다. 수정전 방향에서 보면 능수벚꽃과 어우러진 가장 아름다운 경회루를 볼 수있다.

 

 

<경복궁 수정전(修政殿)>

장영실(蔣英實) 선생이 자격루를 세웠던 곳.

조선 세종(1418~1450) 때의 과학자 장영실 선생이 자격루(自擊漏, 자동 시보장치가 붙은 궁중표준 물시계)를 발명하여 설치했던 보루각(報漏閣)의 옛터이다. 장영실 선생은 세계 최초의 측우기(測雨器, 1441)를 비롯하여 간의(簡儀, 태양 고도 측정기), 혼천의(渾天儀, 천문시계)규표(圭表, 태양 고도 측정기) 등을 만들어 조선시대 과학 기술을 세계적 수준으로 향상시킨 위대한 과학자이다.

 

윗사진은 수정전 측면과 그 너머로 보이는 근정전이고 두 번째 사진은 수정전 정면 사진이다.

 

 

 

<수정전(修政殿) 앞마당쪽의 풍기대(風旗臺)>

풍기대는 대 위에 구멍을 뚫어 깃대를 꽂고 그 깃대에 기를 달아 바람의 방향과 속도를 가늠했던 기상 관측기구이다. 18세기 유물로 추정하며, 탁자 모양의 돌 위에 긴 팔각기둥을 세우고 넝쿨무늬를 정교하게 새겼다.

 

 

<남서쪽 방향에서 본 경회루(慶會樓)>

 

 

<서쪽에서 본 경회루(慶會樓)와 강녕전(康寧殿), 수정전(修政殿)>

중앙 원경의 건물은 왕의 침소인 강녕전이다.

 

 

<서쪽에서 본 경회루(慶會樓)>

 

 

<경회루 뒤편의 하향정(荷香亭)>

하향정(荷香亭)은 경회루 연지 북쪽에 있는 정자로, 1959년에 지어졌다. 일반 정자에서는 보기 드문 육각형의 형태이며 규모는 작지만 건축 기법이 섬세하고, 익공(翼工) 형식의 조선 후기 궁궐 건축 양식을 따랐다.

 

 

<경복궁의 빈전·혼전인 회안전(會安殿 터, 문경전(文慶殿) 터>

회안전과 문경전은 사진에서 잔디밭으로 보이는 공간으로 태원전 앞의 공간에 있던 전각이다. 회안전(會安殿)은 고종 초 경복궁을 중건할 때 태원전, 문경전과 함께 흉례(凶禮, 왕실의 상·장례)에 쓰기 위해 지었다. 1890년에 대왕대비 신정왕후 조씨와 1895년에 명성왕후 민씨의 시신을 임시로 모셨다. 1896년에 경운궁(덕수궁의 본 이름)을 지으면서 옮겨 갔다.

 

문경전(文慶殿) 1890년에 대왕대비 신정왕후 조씨의 신주를 모신 혼전(魂殿)으로 쓰였고 1896년 경운궁을 지으면서 옮겨 갔다.

 

 

≪태원전(泰元殿) 일원≫

왕과 왕비가 죽으면 빈전(殯殿)에 관을 모시고, 교외에 마련된 산릉에 시신과 관을 묻은 후에는 혼전에 신주를 모셔 정해진 장례 기간을 치른 후에 종묘로 신위를 옮겨 모시게 된다. 

 

태원전(泰元殿)은 경복궁의 빈전(殯殿)으로, 문경전은 혼전(魂殿)으로 건립되었다. 주변에 공묵재, 영사재 등 상례용 건물들도 들어서 일곽을 이루었으나, 일제 강점기에 철거를 겪고 한때 청와대 경호부대가 주둔하는 등 변화를 겪었다. 2006년 이 일원의 복원공사가  마무리되어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태원전(泰元殿)의 위숙(違肅)문과 경안(景安)문>

태원전은 바깥문인 위숙(違肅)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공묵재가 있다. 위숙(違肅)문과 남북 일직선 상으로 안쪽에 경안(景安)문이 있고, 경안문 안쪽에 태원전 본전이 있다. 

 

 

 

<태원전(泰元殿)과 회랑>

왕과 왕비, 대비 등의 시신을 안치했던 곳이라 그런지 특이하게 문과 태원전 사이에 긴 회랑이 있다. 태원전(泰元殿) 규모는 정면 5칸이다.

 

 

 

<태원전(泰元殿)에서 내려다 본 회랑>

 

 

<태원전 공묵재(恭默齋)에서 본 영사재(永思齋)>

 

 

<나오는 길에 서쪽에서 본 근정전(勤政殿)>

 

 

<광화문 홍예문의 천장화들>

광화문 석축부에는 3개의 홍예문이 있다. 가운데 문은 왕의 전용문, 오른쪽(東)은 문신용 문, 왼쪽(西)은 무신용 문이었다. 문신용 문인 오른쪽 문에는 기린, 중앙의 왕 전용문에는 주작(봉황), 무신용 문인 왼쪽에는 거북이 그림이 있다.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光化門)>

광화문은 경복궁 남쪽에 있는 정문으로 경복궁에 들어가려면 광화문-흥례문-근정문 등 3개의 문을 거쳐야 한다. 문 양쪽에는 해치 조각상이 있고, 석축부에는 3개의 홍예문이 있다. 1395년 경복궁과 함께 세워졌다가 임진왜란 때 방화로 소실되었다.

1864년 흥선대원군에 의해 경복궁과 함께 복원되었다가 1927년 일제에 의해 조선총독부를 가린다는 이유로 건춘문(경복궁 동문) 쪽으로 이전되었다. 

 

1950년 한국전쟁 때 목조 부분이 불탄 것을 1968년 철근 콘크리트로 재건축하였으나 위치도 어긋나고 현판도 박정희 대통령이 쓴 한글이었다. 2010년 비교적 온건한 모습으로 복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광화문(光化門) 앞 동쪽의 해치 석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