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예산 수덕사(修德寺)

큰누리 2025. 8. 25. 16:34

≪25년 6월 16일의 국립민속박물관대학 예산 답사≫

25년 6월 16일 예산이 국립민속박물관대학 답사지로 선정되어 덕숭산 수덕사와 그 입구에 위치한 수덕여관, 윤봉길 의사 유적지와 윤봉길의사기념관, 남연군 묘, 김정희 선생 고택과 추사기념관, 월성위(김한신)과 화순옹주 부부 묘, 화순옹주 홍문 등을 다녀왔다. 수덕사는 23년 겨울에 다녀왔지만 남연군 묘는 12년쯤 전에 다녀왔는데 주변이 너무 많이 달라져서 한참 동안 기억을 살려야 했다. 윤봉길의사와 예산의 추사 김정희선생 유적은 처음이었다. 대신 추사 선생의 유배지였던 제주도 대정의 추사관은 비교적 최근인 21년에 다녀왔고 그에 대한 글까지 썼기 때문에 기억에 남았다. 제주도 대정의 '추사관'과 예산의 '추사기념관'은 전시내용이 전혀 달라 비교를 하면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이번의 답사, 특히 수덕사는 뿌연 빗속에서 둘러보아서 건물들이 또렷하지 않은 단점은 있었지만 몽환적인 느낌이 드는 장점도 있었다. 같은 장소를 답사해도 그렇게 느끼는 감정은 다르다.

 

≪예산 수덕사(修德寺)≫

소재지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덕숭산 남쪽.

수덕사는 현존하는 백제 고찰의 하나로 창건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백제 위덕왕(554~597) 재위시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창건 이후 백제의 고승 혜현(惠現)스님이 주석하며 법화경 강론을 폈으며, 고려 충렬왕 34년(1308)에는 대웅전(국보 49호)이 건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후 조선시대 중종 23년(1528), 영조 27년(1751)과 46년(1770), 순조 3년(1803)에 색채보수, 부연과 풍판의 개수 등 4차례 보수한 기록이 중수기에  있다. 만공스님 대에는 대웅전 전체를 해체보수하였고, 이때 포벽에서 고려, 조선 양 시대에 걸쳐 그린 벽화가 발견되어 주목을 끌었다. 조선시대에 그려진 벽화 안쪽에서 발견된 고려 벽화는 주악비천도, 공양화도(供養花圖), 수화도(樹華圖) 등이 있었으며, 조선시대에 그려진 오불도(五佛圖) 등이 있었지만 유실되고 없으며, 현재는 그 모사본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고 사진자료가 일부 전해진다. 현재 대웅전 내부 대들보에 남아있는 금룡도(金龍圖)는 우아한 색채와 생동감 있는 필치의 걸작으로 고려미술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현재 수덕사는 한국 불교를 중흥시킨 도량으로 경내에는 대웅전, 청련당, 백련당, 조인정사, 황하정루, 근역성보관, 금강문, 천왕문, 일주문 등의 당우가 있으며, 대웅전 앞에 통일신라말 고려초에 제작된 삼층석탑이 있다. 산내에는 정혜사, 소림초당, 향운각, 금선대, 전월사의 암자와 토굴이 있고, 정혜사에는 능인선원이 있어서 경허·만공스님의 선맥을 계승하는 선원으로 선객들이 줄을 잇는 도량이다. 덕숭산 서쪽 줄기에는 비구니 제일선원인 견성암이 있으며 김일엽스님이 주석한 환희대와 극락암, 선수암의 비구니 암자가 있다.    (현지 안내문 요약) 

 

**출처 : 23.1202에 들린 수덕사 : https://hhl6103.tistory.com/1676 [큰누리의 여행 스케치:티스토리]

 

<덕숭산 덕숭총림 수덕사 선문(禪門) 안팎과 옆면>

선문은 일반적이지 않은데 수덕사에는 배흘림기둥 4개가 받드는 아주 웅장한 선문(禪門)이 있고, 그 안에 우리에게 익숙한 일주문이 있다. 이번 답사는 처음이 아니라 비교적 느긋하게 둘러보았고, 문 안팎을 촬영하여 비교해 보았다. 

 

<수덕사 근역성보관>

안개비에 뿌옇게 젖은 배경의 덕숭산이 몽환적이다. 선문부터 일주문 사이(사진 부근)에는 단풍나무가 많아 가을에 무척 아름답다.

 

<수덕사 일주문(一柱門) 안팎>

 

<수덕사 가람 배치도>

 

<수덕사 금강문(金剛門) 안팎과 금강역사像>

금강문의 금강역사는 부처와 불법을 수호하는 수문신장이다. 입을 다물고 방어자세를 취한 밀적금강과 '아' 모양으로 입을 벌린 나라연금강은 시작과 끝을 연결하는 영원과 통일을 상징한다. 손에 든 것은 금강저라고 한다.

 

<수덕사 사천왕문(四天王門) 안팎>

 

≪만공선사와 선풍, 스님은 결혼을 하나 안 하나?≫

경허스님은 조선 말기 쇠진해진 선풍을 투철한 정진력과 깨달음으로 진작시킨 근대 한국불교의 중흥조로 추앙받고 있다. 경허스님의 수제자인 만공스님은 스승의 뜻을 계승해 선풍을 진작시켜 나갔다. 덕숭산에 금선대를 짓고 수년 동안 정진하면서 전국에서 모여든 납자들을 제접하며 수덕사와 정혜사, 견성암을 중창하고 많은 사대부중을 거느리며 선풍을 드날렸다. 또한 일제 강점기 때 선학원을 설립하고 선승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선우공제회운동을 펼쳤다. 특히 만공스님은 조선총독부가 개최한 31본산 주지회의에서 미나미 조선총독이 "테라우치 전 총독이 조선불교에 끼친 공이 크다"고 말하자 "테라우치는 조선 승려로 하여금 일본 승려를 본받아 파계하도록 하였으니 큰 죄인이다. 마땅히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큰 고통을 받을 것이다"라고 한 뒤 정교분리론을 주장했다는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결혼이 허용된 종파의 스님들을 본 입장에서 다소 강경하게 느껴지는 '파계를 하게 해서 무간지옥에 떨어진다'는 만공선사의 일화는 다시 생각해보면 참선을 중시하는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스님들이 결혼을 안 한다, 혹은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내 기억에 조계종을 제외한 다른 종파 소속의 스님들은 결혼을 하는 경우가 많다.

 

<수덕사 만공기념관>

 

<수덕사 칠층석탑>

 

<수덕사 황하정루>

 

<덕숭총림을 이끈 스님들>

 

<수덕사 범종각>

 

<수덕사 범종각의 종을 치는 나무 고래>

둥근 통나무를 매달아 범종을 치는 것만 보았는데 수덕사의 당목(종을 치는 나무)은 입을 벌린 고래이다. 너무 귀엽다! 임찬웅선생님의 해설이 없었다면 이번에도 그냥 패스할 뻔했다. 언제적 종인지 모르겠지만 비천상, 연꽃, 당초문 등이 섬세하고 아름답다. 몸통에는 '德嵩山修德寺梵鐘'이라고 적혀 있다. 

 

<수덕사 범종의 용뉴 부분>

우리나라 범종은 종을 매다는 용뉴 중 한 쪽이 떨어진 걸로 알았는데 이곳은 양쪽이 붙어있다. 여러 가지를 새삼 깨우쳤다!

 

<수덕사 대웅전과 청련당(사진상 右), 백련당(左)>

 

<수덕사 대웅전과 삼층석탑>

 

<수덕사 삼층석탑>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수덕사 삼층석탑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졌다. 불가에서 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조형물로 일종의 무덤이다. 석가모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자신의 사리를 탑 속에 보관하라는 말을 남긴 뒤부터 승탑을 만들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에 나무로 만든 목탑을 세웠으나 삼국시대부터 석탑을 만들기 시작했다. 수덕사 삼층석탑은 바닥돌부(기단부)가 2층으로 되어 있는데 위·아래층 바닥돌 양쪽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겨 넣었다. 지붕돌은 처마가 수평을 이루다가 끝부분이 살짝 들려져 있으며 지붕돌 받침은 4단으로 되어있다. 꼭대기(상륜부)에는 머리 장식을 받치는 네모난 돌받침 위에 구슬 장식이 올려져 있다. 

수덕사 삼층석탑은 통일신라 시대인 665년(문무왕5)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석탑의 전체적인 양식과 조각 방법 등을 볼 때, 통일신라 시대의 양식을 따르면서도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이 잘 나타나므로 고려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수덕사 대웅전>

 

<수덕사 대웅전 옆면과 공포의 헛첨차> 

사찰 전각의 측면 중 수덕사 대웅전은 강진 무위사와 더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단아하고 짜임새가 아름답다! 아래 사진 중앙의 기둥머리를 뚫고 나온 부분을 헛첨차라고 하는데 공포의 하부를 보강하는 역할을 한다. 사실 임찬웅선생님의 설명을 빌린 것이지 나는 한옥, 특히 지붕 부분만 나오면 헷갈리고 정신이 혼미(!)해진다. ㅎㅎ...

 

<수덕사 삼성각 앞 관음상>

관음상 뒤에 있는 이끼 낀 바위는 관음바위이다.

 

<수덕사 삼성각> 

 

≪수덕사 대웅전≫

지정 : 국보 제49호.

수덕사 대웅전은 백제 위덕왕(554~597) 재위시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한다. 석가, 아미타, 약사 삼존불을 모신 이 대웅전은 1937년 수리공사 때 발견된 묵서의 내용으로 보아 1308년(충렬왕 34)에 건립되었다. 건축은 고려시대에 유행된 주심포 양식이고 정면 3칸, 측면 4칸의 맞배지붕이다. 바른 돌쌓기 형식의 기단에 사각형의 자연석으로 기둥 놓을 자리를 북돋게 조각한 주춧돌을 놓았고, 그 위에 배흘림 기둥을 세웠다. 정면의 각 칸에는 섬세한 빗살 3분합문이 있고, 측면에는 맨 앞쪽에 출입문을 설치하였다. 뒷면에는 각 칸에 문을 장식하고 있지만 중앙 칸에만 문을 달았다. 외부에 노출된 가구(架構)는 나무가 간직하고 있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며, 측면 맞배지붕의 선과 노출된 목부재의 구도는 아름다움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건축된 연대가 확실하고 조형미가 뛰어난 점으로 한국 목조 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건물이다.   (현지 안내문)  

 

<수덕사 대웅전 내부>

수덕사 대웅전 내부는 사진촬영 금지이고, 다른 전각도 예전에 들렀을 때 내부촬영 금지가 아니어도 촬영을 하려고 하면 상당히 싫어하셨다. 그래서 엄두를 못냈는데 이번에는 전혀 터치하는 분이 없어서 염치불구하고 그동안 못한 촬영을 실컷 했다. 죄송합니다!!!

내가 항상 궁금했던 것은 대웅전 내부 대들보에 남아있는 금룡도(金龍圖)였는데 안내문의 설명대로 한 부분만 제대로 남아 있지만 우아하고 생동감이 넘쳐서 고려미술의 아름다움이 충분히 느껴졌다. 다음은 벽화가 없는 기둥과 벽이었는데 시간의 흐름이 그대로 느껴지기도 하고 벽화가 없어도 충분히 짜임새 있고 아름다워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주불 위에 의례히 있는 닫집(보개)이 없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대웅전 내부 사진촬영,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수덕사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중앙은 석가여래는 확실하지만 좌우의 약사불과 아미타불은 좌우가 바뀐 수인을 똑같이 하고 있어서 구분을 못하겠다. 금칠이 잘 되어서 목조가 아니라 금동불상 같다.

 

<수덕사 대웅전 주존불의 뒷모습>

3단으로 된 연꽃잎 하나하나에 무늬를 새기고 바닥에 채색까지 한 섬세함이 돋보인다. 

 

<수덕사 대웅전 대들보의 금룡도와 천장을 받치는 나무들>

금룡도는 희미하지만 우아함이 밀리진 않는다! 다른 곳에도 그림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대부분 그림뿐 아니라 채색도 지워졌다. 그대로 둔 것이 오히려 기품을 더하는 것 같다.

 

<수덕사 대웅전 뒷면의 문과 괘불대>

왼쪽은 주불 뒤에 있는 문이고, 오른쪽은 탱화를 걸 때 사용하는 괘불대의 나무이다. 궁궐의 용상 뒷쪽에 문이 있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사찰 전각 뒤쪽에 쪽문이 있는 것은 처음 인지했다. 이 날 민속박물관 답사지에다 안내하는 분이 딸린 덕분에 그동안 모르고 넘어갔던 많은 것을 새롭게 알았다!

 

<수덕사 명부전>

 

<수덕사 관음바위>

안내하시는 임찬웅선생님으로부터 다소 황당한 바위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잊었다.

 

<수덕사 관음바위 앞(백련당)의 문 고정 거북이>

2개가 있다. 신기해서 한 컷!

 

<수덕사 백운당쪽>

 

<수덕사 심연당과 불이문>

템플 스테이를 하는 장소인 듯하다. 

 

<수덕사 심연당에서 견성암으로 오르는 길의 숲속>

우리는 비구니 스님들의 수련장소인 견성암까지 보고 답사를 마치기로 했다. 안내문에는 견성암을 '여승당'으로 표현했다. 수십년 전에 들렀을 때에는 정상부분에 있는 정혜사까지 들었는데 또 그곳까지 갈 일이 있으려나? 이 숲도 특별한 게 없음에도 안개비로 인해 몽환적인 느낌이 든다.

 

<수덕사 견성암(여승당)>

견성암은 큰 건물 3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오는 길에 본 백운당, 황하정루>

대웅전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통과한 가장 큰 건물인 황하정루(오른쪽)는 옆에서 보면 이렇게 생겼다. 왼쪽과 아래는 백운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