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인천

화성 용주사(龍珠寺)

큰누리 2025. 12. 9. 02:42

 

≪화성 용주사(龍珠寺)≫

-효찰(孝刹)대본산 용주사-

용주사는 신라 문성왕 16년(854) 때 세운 갈양사(葛陽寺)로부터 시작되었다. 갈양사는 청정한 도량으로 고려시대까지 이어가며 971년에 수륙도량으로서 우리나라 최초의 수륙대제(水陸大齊)를 치렀다. 그러나 갈양사는 고려시대의 잦은 외침으로 역사의 기록으로만 남아 있었다. 조선의 정조대왕은 보경스님의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설법을 통해 큰 깨달음을 얻고 자신의 생부인 사도세자의 넋을 기리기 위한 대대적인 작업을 수행했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묘를 양주 배봉산에서 이곳 화산(花山)으로 옮기고 능침사찰(願刹)을 갈양사 터에 새로 지은 것이 현재의 용주사이다. 

정조는 대웅보전의 낙성식 전날 밤, 자신의 꿈에 나타난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용의 모습을 보고 감명을 받아 능침사찰의 이름을 용주사(龍珠寺)라고 지었다. 그후 용주사는 정조의 원력에 근거하여 효행 본찰로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용주사에는 용주사 동종불설대보부모은중경판, 대웅보전, 금동향로, 용주사 상량문 등 다수의 국보, 보물과 경기도 유형문화유산이 있다. 또한 용주사는 전국 25교구 중 제2교구로서 현재 수원, 용인, 안양 등 경기 남부에 걸쳐 100여 개의 말사와 암자를 거느리고 있다.

 

PS : 륙대제(水陸大齊)는 물과 육지를 떠도는 영혼과 아귀를 달래고 위로하기 위해 불법을 강설하고 음식을 베푸는 불교의 큰 의례이다.

 

<화성 용주사 안내도>

일반 사찰과 달리 효(孝)와 관련된 건물이나 탑 등이 있고, 능침사찰 특성상 홍살문, 삼문 등이 있는 점이 독특하다. 특히 호성전(護聖殿)은 장조(사도세자) 부부와 정조 부부의 위패가 봉안된 점이 인상에 남았다. 

 

<화성 용주사 천왕문과 사천왕상>

두 번째 사진의 사천왕상은 왼쪽은 東方지국천왕과 南方증장천왕, 오른쪽은 西方광목천왕과 北方다문천왕이다.

 

<화성 용주사 홍살문>

홍살문(홍전문, 紅箭門)은 왕실의 묘나 궁전, 관아 등의 정면 입구에 세워 신성한 영역을 알리는 문이다. 용주사는 사찰 중 유일하게 홍살문이 있는데 이유는 정조가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고자 용주사를 세우고 호성전(護聖殿)을 건립하여 위패를 모셨기 때문이다. 용주사에서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 정조와 효의왕후 위패를 모시고 1년에 6번 제사를 지냈으나 일제 강점기인 1907년에 중단되었다. 2008년 6월 24일, 100년 만에 사도세자의 제향을 모시면서 홍살문을 복원하고 호성전 현판을 걸어 효찰대본산 용주사가 세워질 당시의 모습을 회복하고자 했다.

 

<용주사 효행박물관과 입구의 석조>

국립민속박물관 단체 답사라 안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패스했다. 정조의 능행반차도가 벽에 그려져 있다. 아래 사진은 효행박물관에서 본 입구쪽인데 양쪽으로 아름다운 무늬가 새겨진 비석의 머리부분으로 보이는 석조가 눈에 들어왔지만 특별한 설명은 없었다.

 

<용주사 효행박물관 앞의 석조물과 인물상>

 

<화성 용주사 부모은중경탑, 오층석탑>

오른쪽의 화성 용주사 오층석탑(경기도 유형문화유산)은 원래 다른 곳에 있던 것을 용주사 지장전 뒤쪽으로 옮겼다가 지금의 위치로 이전한 것이다. 높이 4.5m, 화강암으로 만들었으며 이중 기단 위에 탑신을 세우고 상륜을 얹었다. 상층 기단의 한 면에만 위패 모양의 조각을 새긴 것과 하층 기단의 모든 면에 여의두문(고사리 모양) 모양의 안상을 새긴 것이 독특하다. 5층에 해당하는 맨 위의 탑신은 나중에 복원한 것으로 보이며, 고려 시대의 석탑이다.

 

<화성 용주사 삼문>

능침사찰(원찰)이기 때문에 볼 수 있는 문이다.

 

<화성 용주사 세존사리탑과 천보루(天保樓)>

세존사리탑(世尊舍利塔)은 용주사의 원래 절이었던 갈양사(葛陽寺) 때 성정스님이 부처의 사리 2과를 사리병에 담아 이 탑 모셨다고 전해진다. 높이 4m인 오층석탑 기단부에 안상을 새기고 기단의 가운데를 잘라 결구하였다. 전체적인 조각수법과 양식으로 보아 고려 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탑 뒤의 건물 천보루(天保樓)는 대웅보전 안마당으로 들어가는 거대한 문루로 일반적인 사찰의 건축이 아닌 궁궐이나 대갓집의 건축양식을 따랐는데 사도세자를위한 원찰이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특히 좌우에 연결된 'ㅁ'자형의 나유타료와 만수리실은 사찰보다 궁궐건축의 느낌이 강하다. 건물 밖 현판은 천보루(天保樓), 안의 현판에는 홍제루(弘濟樓)라고 적혀 있다. 앞면 5칸, 옆면 3칸 규모이며, 앞쪽으로 1칸만 돌출되어 있다.

 

<화성 용주사 만수리실>

천보루와 회랑 형태로 연결된 독특한 이름의 'ㅁ'자형 건물이다. 반대편인 동쪽에는 같은 크기, 같은 구조의 '나유타료'가 있다.

 

<화성 용주사 대웅보전(大雄寶殿)> 보물.

화성 용주사 대웅보전은 사찰의 가장 중심에 있으며, 석가여래와 동방 약사여래, 서방 아미타불의 삼세불을 모셨다. 내부와 외부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에 팔작지붕이다. 또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형식이다. 대웅전 안에는 목조 삼세불 좌상과 후불탱화, 삼장보살도와 같은 문화재가 있는데, 당대 최고 수준의 걸작품이다. 정조는 이 절을 자신의 꿈대로 용주사라 짓고 대웅보전의 현판을 직접 썼다. 

 

<화성 용주사 대웅보전(大雄寶殿) 좌우의 건물들>

첫번째 사진(서쪽)에는 범종각, 천불전, 시방칠등각이 있고, 두 번째 사진(동쪽)에는 법고각, 관음전, 호성전, 지장전이 있다.

 

<용주사 대웅보전에서 본 천보루>

천보루 안쪽 현판은 홍제루(弘濟樓)이다.

 

<용주사 대웅보전 앞의 염주를 목에 건 고양이>

일반적인 냥이라면 당장 물어뜯었을 텐데 2겹이나 되는 염주를 진득하게 잘 걸고 있는 게 신기하다. 절에서 살다보니 나름 득도를 한 모양이다. 화분의 물을 마시는 중...

 

<화성 용주사 대웅보전 앞의 괘불대와 독특한 계단 대우석>

용주사 대웅보전은 장대석을 쌓고 그 위에 세웠으며, 중앙에 소맷돌이라고 부르는 대우석(臺隅石)을 설치한 6단의 계단이 있다. 대부분의 사찰 대우석에는 연꽃, 당초문을 새기지만 용주사는 삼태극(三太極)과 비운(飛雲), 모란 무늬가 새겨져 있다. 

 

<화성 용주사 호성전, 지장전>

 

<용주사 호성전(護聖殿)>

호성전(護聖殿)은 용주사에서 가장 독특한 전각 중의 하나이다. 장조와 헌경왕후(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 정조와 효의왕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불상은 위패 위쪽에 아주 작은 삼존상이 봉안되어 있다. 

 

<용주사 지장전(地藏殿)>

 

<용주사 호성전 뒤의 전강대종사 사리탑>

 

<용주사 전강대종사 사리탑 옆의 담장>

전강대종사 사리탑 뒤의 중앙선원으로 들어가는 담장인데 기와를 쌓은 담장과 기와를 얹은 흙담이 작은 공간에 다양하게 있다.

 

<용주사 대웅전 뒤쪽과 천불전, 시방칠등각>

 

<용주사 시방칠등각(十方七燈閣)>

'시방칠등각'은 태어나서 처음 본 사찰 전각이라 의미를 몰라 당황했다. 호성전과 더불어 가장 낯선 이름의 전각이었다. 한자로 뜻을 풀어보려 해도 의미가 어려웠다. '사방에 촛불을 잔뜩 켜두는 전각'인가? 옆에 걸린 '산신각 건설...' 운운하는 플래카드와 탱화로 미루어 산신각, 혹은 삼성각으로 추측했다. 중앙의 석가모니불 좌우에 호랑이를 동행한 산신과 칠성으로 보이는 탱화가 있다. 

 

<용주사 시방칠등각(十方七燈閣) 옆의 목탁을 든 동자승像>

 

<용주사 천불전>

 

<용주사 천불전 앞 전각들>

대웅보전, 나유타료, 천보루(홍제루)이다.

 

<용주사 동종> 국보.

용주사 동종은 신라의 종 형식을 갖춘 고려 초기의 거대한 범종이다. 종 맨 위에는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음통이 있고, 고리 역할을 하는 용뉴는 용이 여의주를 물고 두 발로 힘차게 종을 들어 올리는 모습을 하고 있다. 종의 네 곳에 있는 'ㄷ'자 모양의 유곽 안에는 9개의 돌출된 연꽃 봉오리 모양의 유두가 있다. 

종의 몸체 앞뒤에는 비천상을, 좌우에는 삼존상을 새겨 넣었고, 그 사이사이에는 종을 치는 부분인 둥근 당좌가 있다. 종의 어깨와 입구 부분의 넓은 띠는 서로 다른 문양을 하고 있다. 종 몸체에 통일신라 문성왕 16년인 854년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후대에  새긴 글이 있으나, 종의 형태와 문양이 그 시대의 다른 종과 일치하지 않아  학계에서는 고려 초기의 종으로 추정한다.

 

<나무 고목에 그린 용주사의 관음상, 코끼리상>

여러 불화를 보았지만 정말 독특한 소재의 그림이다. 자른 나무를 대충 다듬은 후 그대로 활용하여 그 위쪽 양면에 관세음보살을 그리고 아래에는 코끼리를 그렸다. 관세음보살이 코끼리를 탄 모습인지, 아니면 그냥 위 아래로 배치한 것인지는 나무가 고르지 않아 판단이 안 선다. 면이 울퉁불퉁하지만 그림이 아주 섬세하고 곱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