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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융건릉 및 안산, 의왕, 군포, 시흥쪽 능원묘 답사. 그리고 딱따구리

큰누리 2012. 6. 1. 16:54

이른 아침에 화성의 융건릉으로 출발했다. 능침을 오르려면 관리자한테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일반인들이 많은 시간에 대놓고 능을 오르기 곤란해서 서두른 것이다. 융릉은 비명횡사한 아버지 사도세자(추존 장조)를 향한 정조의 효심이 능 곳곳에 베어있는, 특징이 많은 곳이다. 금관을 쓴 문인석, 모란과 연화문을 넣은 병풍석, 꽃봉오리 모양의 引石과 문자, 화려한 장명등, 추존왕릉에는 세울 수 없는 무인석 등 다른 능에서 볼 수 없는 융릉의 특징들이다. 정조 본인의 건릉은 아버지의 융릉에 비해 검소하다.

 

생각보다 날은 춥지 않은데 5년 동안 내 사랑스러운 동반자 디카가 갑자기 '렌즈 에러'를 일으키는 심통을 부렸다. 그래서 융건릉에서는 단 한장도 사진을 못 건졌다, 정말 오르기 힘든 능침인데... 대신 독특한 경험을 했다. 

사진을 포기하니 눈에 많은 것이 들어왔다. 오로지 눈으로 보고 그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었을까? 게다가 답사 참가자에게만 주는 답사지 설명서를 잃어버려 오늘은 내 기억력 테스트하는 날이 되고 말았다. 사진의 비문과 찍힌 시간을 대조해서 사진에 이름은 붙였는데 어디에 묘가 있었는지 가장 간단한 그건 잘 모르겠다.

 

첫번 답사지는 안산에 있는 현종의 3女인 명안공주와 남편 오태주 묘역이었다. 이 공주, 얼마나 철이 없는지 앉아서 시어머니에게 밥상 받는 걸 보고 노한 남편이 따귀를 한대 때렸다가 귀양갈 뻔 한걸 남편 오태주가 귀양길에 공주를 동반하려고 짚신을 더 많이 준비했다는 '짚신 기지'로 겨우 면했단다. 딸의 따귀를 때린 사위는 밉지만 귀양길에 딸을 보낼 수 없어서 사위 귀양 보내는 것을 접은 것이다.

공주가 일찍 죽어 손이 끊어지지자 왕에게 재혼 재가를 요청했다 거절 당해 결국 손이 끊겼다는 야사도 이곳과 관련 있다. ♣공주 부마는 원칙적으로 재혼이 불가능하다고... 왕가랑 인연을 맺는다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시기를 잘못 만나면 반역 누명 쓸 수도 있고, 마나님을 온식구가 상전으로 모셔야 되고, 배우자 사후 남들은 다 하는 재혼도 못하고...

 

 

<안산의 현종 3女인 명안공주와 남편 오태주 묘역>

비석이 다른 곳보다 많고 모양도 다양한데 묘역이 좁아 한꺼번에 사진에 담기 어려웠다(이 때부터 디카가 거짓말처럼 정상 작동되었다.). 명안공주 묘역을 찾는데 엄청 애를 먹었다. 좁은 골목길을 몇 번 헤매고나서야 묘역으로 오르는 좁은 골목길을 찾았는데 눈이 무릎 높이로 얼어붙어 상당히 위험했다. 

 

 

<안산의 현종 3女인 명안공주와 남편 오태주 묘역 진입로>

너무 힘들게 찾은 곳이라 다음 분을 위해 진입로를... 이 건물 뒷산(소나무가 보이는 곳)에 묘가 있다.

 

 

<세조의 외동딸인 의숙공주와 하동 정씨 묘역>

세조는 조선 왕중에서 드물게 근빈 박씨 한분 밖에 후궁이 없고, 정비는 정희왕후이다. 근빈 박씨에게서는 왕자 둘을, 정희왕후에게서는 추존 덕종과 예종, 그리고 의숙공주 등 왕자 둘과 공주 하나를 두었다.  

의숙공주와 하동 정씨 묘역은 넓은 부지에 앞으로 저수지가 있는 시야가 탁 트인 곳이다. 이장한 곳이라 조선 초기양식인 독특한 송이버섯 모양의 비석 외엔 특별한 게 없지만 그래도 묘비 상태가 상당히 좋다. 새로 만들어 세운 이곳의 문인석 표정이 얼마나 코믹한지 개그맨 표정 저리 가라이다.

 

 

<김인백의 妻인 안동권씨 묘역>

다음은 의왕시청 바로 왼쪽 옆 산에 있는 김인백의 妻인 안동권씨 묘역이었다. 의왕시청 옆에 있는 김인백의 부인 안동권씨 묘는 조선 8대 명당이라고 한다. 조선 8대 명당이라더니 문외한인 내가 봐도 정말 좋았는데 풍수는 모르지만 가슴까지 탁 트이는 묘역이었다. 그렇게 몫 좋은 곳에 있는데 후손들이 땅값 생각하지 말고(땅값 올랐다고 팔지 말고) 오래 보존했으면 싶다. 

 

 

<군포 갈치저수지에 있는 두부 전문점>

갈치저수지(이름이 너무 재미있다!)에 있는 두부 전문점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들어서자마자 짠내가 몹시 비위에 거슬렸는데 간장 냄새였다. 냄새와 달리 나온 반찬은 그야말로 진수성찬이었다. 집에서 직접 만든다는 청국장과 두부, 된장 등, 장맛이 일품이다. 특히, 명이나물에 두부를 싸먹는 맛과 양평 산이라는 지평막걸리, 청국장 맛이 일품이었다. 

 

 

     <군포 갈치저수지에 있는 두부 전문점 '산모롱이 두부마을'의 두부보쌈정식>

두부나 청국장, 순두부 등이 너무 맛있었다. 막걸리도! 간장에 절인 명이나물의 독특한 맛이 아직도 혀끝에... 아래 오른쪽 끝의 미역 같은 것이 명이나물이다. 간장게장, 청국장, 된장, 순두부, 오이피클 등 모두 맛있다!

 

 

다음 코스는 효종의 5女인 숙정공주 묘역으로 비문과 이수의 무늬, 석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여기서 정말 운 좋게 나무를 쪼아대는 딱따구리(추측) 2마리 처음 봤다. 덩치가 클 줄 알았는데 자그마한 녀석이 얼마나 열심히 나무를 쪼아대는지 나무 한 그루가 껍질이 벗어진 체 죽기 직전이다.    

 

 

     <효종의 5女인 숙정공주 묘역의 딱따구리의 만행(?)>  

딱따구리는 난생 처음 봤는데 그 조그만 덩치로 나무 한 그루의 껍데기를 다 벗겼다. 너무 멀어서 포착 상태 불량!

 

 

 

     <효종의 5女인 숙정공주 묘역>

 

 

     <성종 庶3남인 안양군 묘역>

다음은 군포의 성종 庶3남이자 귀인 정씨의 1남인 안양군 묘역. 연산군이 생모인 윤비의 죽음을 안 직후 귀인 정씨와 엄씨의 모함이 원인이라 하여 어머니 귀인 정씨와 함께 연산군에게 가장 먼저 날벼락을 맞은 장본인이다. 이장 묘이긴 하지만 후손들이 묘역을 정성스럽게 잘 가꿨다. 특이한 점은 동자석이 상반신만 있는 것.

 

 

     <시흥 장유 선생 묘역 인근의 납골당>

이어 시흥행, 효종의 장인인 장유 선생 묘역을 찾다가 지척에서 납골당을 만났다. 신기해서 한 컷. 

 

 

     <시흥 장유 선생의 아버지인 장운익 선생의 신도비>

효종의 장인 장유 선생 묘역 아버지인 장운익 선생의 신도비 아래쪽으로 있는데 입이 떡 벌어질 지경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신도비가 장관이었다. 장유 선생 묘소 위쪽에 따로 있다.

 

 

<효종의 장인 장유 선생의 신도비>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신도비라고...

  

 

 

<효종의 장인 장유 선생의 묘역>

 

 

시흥의 두 번째 코스는 광해군의 장인인 문양부원군 류좌신 묘역. 후손들이 잘 가꾼 유택에 향토유적으로 지정된 재실 영모재, 좀 아래쪽에 있는 신도비 볼거리였다. 류좌신 선생 묘는 향로석 이외에 또 다른 받침돌이 특색이라고 한다. 새로 단장한 묘역이라 잔디가 자리를 잡지 못한 데다 녹기 시작한 황토에 발이 빠져 상당히 애를 먹은 곳이다. 발의 흙을 털다 광나루님의 차를 놓쳤는데 나오는 길에서 문양부원군 신도비를 발견했다. 고개를 90도로 돌린 거북이가 인상적이었다. 

 

 

<시흥의 광해군 장인인 문양부원군 류좌신의 재실 영모재>

시흥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옥이라고 한다.

 

 

<시흥의 광해군 장인인 문양부원군 류좌신의 묘역>

향로석 뒤 양쪽으로 받침대가 더 있다.

 

 

<광해군의 장인인 문양부원군 류좌신의 신도비>

특이하게 비신을 받친 거북이가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마지막 코스는 태종 이방원을 도와 조선을 건국하는데 1등 공신이었던 이숙번 묘. 얼마나 가파른지 앙코르 왓 답사할 때 70도 계단을 연상시켰다. 이장한 것이지만 조선 초기의 석물과 사각형의 묘가 잘 보존되어 있다. 47차 능원묘 답사는 다른 기보다 아주 여유있고 좋았다. 날씨 또한 잘 받쳐줘서 좋았고...

 

 

<태종 이방원을 도와 조선을 건국한 이숙번 묘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