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창경궁의 봄2

큰누리 2012. 6. 2. 16:08

<창경궁의 역사>

창경궁은 조선 9대 성종이 1483년(1484년 완공) 창덕궁 동쪽에 세운 궁궐이다. 창덕궁과 경계 없이 하나의 궁궐로 사용하여 둘을 합쳐 東闕이라 칭하였다. 창경궁 터의 역사는 고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세종이 즉위한 1418년 고려의 남경 이궁 터에 상왕 태종을 위해 수강궁을 세운 것이다. 성종은 창덕궁이 좁아 세 명의 대비를 위한 공간으로 수강궁을 확장 보완하면서 공사 도중 창경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창경궁은 창건 초기에는 쓰임새가 그다지 많지 않았으나, 임진왜란 이후 창덕궁이 정궁 역할을 하면서 離宮으로서 활용 빈도가 높아졌다.

 

동양의 궁궐은 보통 정전을 남향으로 하여 남북 중심축을 따라 건물을 엄격하게 배치하는데, 창경궁의 중심 부분은 특이하게 동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고려 때 동향이었던 것을 존중했다고도 하는데, 입지 여건 상 동향으로 짓는 것이 지형에 더욱 자연스럽고 적합했기 때문인 듯하다. 이처럼 창경궁은 자연지형을 고려하면서도 기능과 용도에 따라 생활의 편의를 추구하여  조성했기 때문에 아름다움과 친근함을 두루 갖춘 궁궐이 되었다.

창경궁은 임진왜란 때 다른 궁궐과 함께 불 탔다가 1616(광해 18)년에 재건되었다. 이때 재건된 명정전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정전 건물이다. 현재 남아 있는 내전 건물들은 1830년 환경전 화재 이후 1834(순조 34)년에 재건한 것이다.

 

왕조의 상징이었던 궁궐은 일제의 '훼손'에 의해 왕궁으로서의 존엄성을 잃게 된다. 1907년부터 창경궁 안의 건물들은 대부분 헐어내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하여 공개하였으며, 1911년에는 이름마저 창경원으로 격하시켰다. 또한 종묘와 연결된 부분에 도로를 개설하여 맥을 끊었다.

1983년부터 동물원을 이전하고 본래의 궁궐 모습을 되살리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아직 많은 전각을 복원하지 못했지만, 아름다운 자연과 어우러진 창경궁의 모습에서 왕실 생활의 체취를 느낄 수 있다.   -창경궁 안내 책자에서 발췌-

 

 

<창경궁의 식물들> 2010. 4/11.

초본은 대온실과 자생식물학습장 주변에서 촬영했다.

 

 

 <복수초> 

 

 

<비자나무>

 

 

<산자고>

 

 

<살구꽃>

 

 

 

 <생강나무>

 

 

<얼레지>

 

 

<오얏꽃 = 자두꽃> 

 

 

<제비꽃 = 오랑캐꽃>

 

 

<종지나물>

 

 

<진달래>

 

 

<피나물>

 

 

<할미꽃>

 

 

<현호색>

 

 

<히어리 = 송광납판화>1 

 

 

 

 위 사진은 2010. 0411. 창경궁에서, 아래 사진들은 2010. 0405. 우리 동네에서

 

 

<개나리>

 

 

<백목련>

  

 

 

<산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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