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 답사 2

병인양요, 신미양요 격전지 김포 덕포진

소재지 및 지정 : 김포시 대곳면 신안리 산 103-1 외. 사적 제292호. 덕포진은 조선시대의 진영으로 포대 및 파수청이 있던 곳이며 조선 전기에 처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기록에 의하면 현종 7년(1666)에 광성보, 덕포진 용두돈대와 함께 새롭게 설치되었다고 한다. 덕포진은 한성으로 통하는 바닷길을 통제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로서 병인양요 때는 프랑스 함대, 신미양요 때는 미국 함대와 싸웠던 격전지이다. 1980년 발굴 조사 당시 고종 11년(1894)에 만들어진 중문 4포와 소문 2문이 포대에 거린 채 발굴되었으며, 포탄과 상평통보가 같이 출토되었다. 건물 터에서는 주춧돌과 화덕자리가 발견되었는데, 건물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둘레에 맞담을 쌓듯이 둘러친 석벽이 있었다. 덕포진..

경기도. 인천 2012.11.21

김포의 장릉 원찰 금정사, 대포서원

금정사는 신라 진흥왕 때 창건되었으며, 창건 당시의 명칭은 고상사(高上寺)였다고 전한다. 조선 인조는 즉위 5년(1627)에 자신의 부모를 원종과 인헌왕후로 추존한 후 묘를 양주에서 김포로 이장하고 장릉이라 하였다. 능 부근에 있던 고상사를 현 위치로 옮겨 재건하면서 원찰로 지정하고 봉릉사로 개칭했다. 1930에 당시의 주지 영송화상이 중수했고, 1938년에 일제가 김포 현청을 헐어낸 자재를 주지 성화대사가 구입하여 다시 크게 중수했다. 6.25 이후 쓰러져가던 사찰을 1974년 주지 정념스님과 고근스님이 다시 대웅전, 범종각을 짓고 뒷산인 금정산과 법당 앞의 물맛 좋은 샘물을 염두에 두고 금정사로 개칭했다. -이상 금정사 연혁에서 요약 발췌- 김포에는 신기할 만큼 절이 없다. 그런데 금정사라는 절이 있..

경기도. 인천 2012.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