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파일 연등 2

개화산 약사사

개화산(開花山)의 원래 이름은 주룡산(駐龍山)인데 신라시대에 주룡선생이라는 도인이 이곳에 살면서 매년 9월 9일에 동자 두 세명을 데리고 높은 곳에 올라가 술을 마시며 구일용산음(九日龍山飮 : 구구절에 용산에 올라 술을 마시다)이라고 하였다 하여 주룡산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선생이 돌아간 후에 그 자리에 이상한 꽃 한 송이가 피어났고 그 이후부터는 개화산(開花山)이라 일컬어졌다고 한다. 선생이 살던 곳에 절이 세워졌는데 처음에는 절 이름을 개화사(開花寺, 고려 공민왕 2년 1353년)라 하였으나, 개화사에 있는 좋은 약수 때문인지 조선 말기쯤에는 약사사(藥師寺)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산 정상에는 조선 조에 사용했던 봉화대가 있었으나 그 터만 남아있던 것을 최근에 복원하였다. 또한 개화산에는 미타사(고려..

서울특별시 2017.06.22

괴산 송시열 묘와 청천리 백로, 왜가리 서식지

사적 제417호. 소재지 : 충북 괴산군 청천면 청천리 101. 우암 송시열(1607-1689) 선생의 신도비와 묘소는 원래 수원 무봉산에 있었으나 영조 33년(1757)에 이곳으로 이전했다. 묘소에는 2기의 묘비와 문인석, 망부석 등이 갖추어져 있다. 신도비는 묘소 아래에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집의 비각 안에 정조의 어필로 정조 3년(1779)에 세운 것이다. 국난이 있을 때에는 땀을 흘린다고 한다. 송시열은 조선 중기의 학자이며 정치가로 노론의 영수이다.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庵), 화양동주(華陽洞主)이며 본관은 은진이다. 인조 11년(1633)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봉림대군(효종)의 스승이 되었다. 병자호란 후 낙향하여 학문에 정진하고, 효종이 즉위하자 다시 등용되어 반..

충청도 2016.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