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괴산 송시열 묘와 청천리 백로, 왜가리 서식지

큰누리 2016. 5. 6. 22:57

<송시열 신도비 및 묘소>

사적 제417호.

소재지 : 충북 괴산군 청천면 청천리 101.

우암 송시열(1607-1689) 선생의 신도비와 묘소는 원래 수원 무봉산에 있었으나 영조 33년(1757)에 이곳으로 이전했다. 묘소에는 2기의 묘비와 문인석, 망부석 등이 갖추어져 있다. 신도비는 묘소 아래에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집의 비각 안에 정조의 어필로 정조 3년(1779)에 세운 것이다. 국난이 있을 때에는 땀을 흘린다고 한다.

 

송시열은 조선 중기의 학자이며 정치가로 노론의 영수이다.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庵), 화양동주(華陽洞主)이며 본관은 은진이다. 인조 11년(1633)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봉림대군(효종)의 스승이 되었다.

병자호란 후 낙향하여 학문에 정진하고, 효종이 즉위하자 다시 등용되어 반청을 기치로 북벌계획을 추진하였으며 현종 때에 좌의정에 올랐다. 숙종 15년(1689)에 세자 책봉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려 제주에 귀양갔다가, 국문을 받기 위해 상경 도중 남인의 책동으로 정읍에서 사사되었다.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문묘와 많은 서원에 배향되고 있다.   -현지의 안내문에 의함-

 

송시열 선생 묘소와 신도비 답사를 한 날, 왜가리 번식지라서 천연기념물 제13호로 지정된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에 먼저 들렀다. 그러나 진천의 노원리에서는 단 한 마리의 왜가리나 백로를 보지 못하고 독한 왜가리똥에 윗부분이 말라죽은 은행나무만 보았을 뿐이다. 진천, 청주, 괴산을 하루 종일 돌면서 노원리에서는 한 마리도 못 보고, 차로 냇가를 스칠 때 간혹 몇 마리만 보아서 많이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13번째 답사지인 송시열 선생 묘소 답사를 마치고 내려오다가 우연히 왜가리, 백로 서식지를 만나는 행운이 따랐다. 신도비각 옆에 난 3번 꺾인 돌계단으로 묘소까지 올랐는데 하루 종일 쏘다닌 탓도 있지만 계단이 길고 높아서 무척 힘들었다. 그래서 길이 없는 반대편 직선 산자락을 타고 내려오는데 백로 울음소리가 들렸다.

조금이라도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지만 우리가 있는 묘소 근처에서는 나뭇가지 사이로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어두워져서 먼 발치로 보고 내려왔지만 대낮이라도 높은 나뭇가지에 둥지를 틀거나 앉아있어서 더 이상의 접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돌아와서 자료를 찾아보니 괴산군 청천면 청천리 일대가 왜가리, 중대백로 집단 서식지였다. 왜가리나 백로는 목을 한번 구부린 자세를 취하는 큰새 정도라는 것 밖에 몰랐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새라고 한다. 우렁이, 미꾸라지, 개구리, 붕어 등을 먹고 살기 때문에 농약을 치지 않는 청정지역이 아니면 살 수 없다고 한다.

 

일에 치어 그 동안 답사가 뜸했는데 이 날 하루에 13곳을 답사하는 기록을 세웠고, 모처럼 봄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어서 좋았다. 게다가 생각지도 못한 왜가리, 백로 집단 서식지를 볼 수 있어서 더욱 즐거웠다.

 

 

<송시열 선생 신도비각>

마지막 답사지라 날이 저물어 사진이 칙칙하다. 비각 왼편으로 보이는 긴 계단을 힘들게 오르면 묘소가 있다.

 

 

 

<송시열 선생 신도비>

 

 

 

<송시열 선생 신도비각에서 묘소로 이어지는 험난한 계단>

내 기억으로 이렇게 긴 돌계단을 3번 꺾어 올라야 묘소가 있다.

 

 

 

 

 

<송시열 선생 묘>

선생의 묘는 봉분은 큰 편이지만 명성에 비해 석물들은 단촐하다. 문인석은 크기나 모습 모두 단아하다.

 

 

 

 

<송시열 선생 묘비>

폭과 맞먹을 정도로  비석의 두께가 두껍다.

 

 

<송시열 선생 묘 후면>

 

 

<송시열 선생 묘역 아래의 송자현손(宋子玄孫) 묘>

송자는 송시열 선생을 지칭하는 말일 것이다. 이름은 없고 왕자사부부군 배영인윤씨지묘(王子師傅府君), 配令人尹氏之墓)라고 쓰여있다.

 

 

 

<송자현손(宋子玄孫) 묘에서 본 백로 무리>

무성한 나무 사이로 확인한 백로는 20여 마리쯤 되었다. 왜가리와 백로는 일반적으로 이동이나 서식을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내가 이 무리를 백로라고 단정한 이유는 사진을 확대해 보니 무늬가 없는 순백색이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왜가리는 머리에 검은 댕기 같은 무늬가 있었다.

 

 

 

<출구쪽에서 본 백로, 왜가리떼와 둥지들>

하얀 점처럼 보이는 것은 백로나 왜가리이고, 고사되거나 그 직전의 나무 상부에 삐죽삐죽 얹혀진 것은 둥지들이다. 왜가리, 백로들이 앉아있거나 둥지를 튼 나무들은 독한 산성 새똥으로 인해 대부분 말라죽었거나 죽기 직전의 상태이다. 한 두마리가 냇가에서 먹이사냥을 하거나 나는 모습은 가끔 보았는데 이렇게 무리진 모습이나 둥지들을 본 것은 처음이어서 무척 신기했다.

 

 

 

<송시열 선생 신도비각 앞의 송씨사당 숭모재(崇慕齊)>

폐허 직전의 사당이 저문 날씨 때문에 더욱 을씨년스럽다.

 

 

 

<귀경길에 본 서울 종로구 조계사의 초파일 연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