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 유배지 2

21.07. 추사관, 추사 김정희의 생애와 글씨들

-현지 안내문- ≪제주 유배시절의 추사(秋史)≫ 1840년 10월부터 절해고도 제주도에서 시작된 추사의 유배생활은 외로움과의 싸움 그 자체였다. 추사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수많은 편지를 썼고 지인들이 보낸 편지를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었다. -중략- 특히 유배생활 만 2년이 지난 1842년 11월에 귀양살이의 옷가지와 음식을 챙겨주던 아내가 죽었다. 부인의 상을 당한 추사는 '놀라고, 울렁거리고, 혼이 달아나서 아무리 마음을 붙들여 매려 해도 길이 없다'며 통곡의 제문을 적었다고 한다. 외로움과 슬픔 속에서도 추사가 제주에서 큰 탈 없이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남다른 학구열과 초의나 허련 같은 지인의 방문도 있었지만, 육지와 다른 제주의 풍토도 한몫 했다. -중략- 제주도의 입장에서 보면 뛰어난 유배객을..

제주도 2021.09.29

21.07. 대정현성 터, 추사 유배지

≪추사 유배지(사적 제487호)≫ 위치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 1661-1.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는 시,서,화 분야에서 독창적이며 뛰어난 업적을 남긴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학자이자 예술가이다. 헌종 6년(1840) 55세 되던 해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제주도로 유배되어 헌종 14년(1848)까지 약 9년간 이곳에서 머물렀다. 유배 초기에는 포교 송계순의 집에 머물렀다가 몇 년 뒤 이곳 강도순의 집으로 옮겨 왔다. 이곳에 살면서 제주 지방 유생들에게 학문과 서예를 가르쳤으며 제주 지역의 학문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차를 매우 좋아한 김정희는 다도의 대가인 초의선사와 평생 우정을 나누었으며 제주 지역에 차 문화를 도입한 선구자이기도 하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김정희는 추사체를 완성하..

제주도 2021.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