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요르단

이스라엘, 요르단 여행21 -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박물관, 예루살렘 성벽

큰누리 2017. 4. 17. 22:37

이스라엘 요르단 여행 7일째인 1/18의 일정은...

들레헴 Oriental Palace Hotel- 베들레헴 에수탄생기념교회(The Church Nativity)- 헤로디움(Herodium)- 베들레헴 목자들의 들판교회(The Shepherd’s Field Chapel)- 목자들의 들판교회 앞 Bo'az Field Souvenir Shop에서 쇼핑- 레스토랑 Grotto에서 현지식 점심- 예루살렘 유대인 학살 추모관(야드바셈)- 예루살렘 올드 시티 투어- 비아 돌로로사 코스- 골고다 성묘교회- 예루살렘 바위돔, 통곡의 벽- 베들레헴 Oriental Palace Hotel에서 저녁 식사 및 숙박.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박물관(Yad Vashem Holocaust Museum)>

총 관람시간 : 1시간(야외, 역사박물관).

내부 사진촬영 불가.

특이사항 : 관람자가 많아 혼잡을 막기 위해 뒤로 매는 가방 반입 불가.

 

나치에 의해 학살된 600만 명의 유태인을 추모하기 위해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설립한 박물관이다1953년 희생자들의 이름을 기억하라(Yad Vashem)'는 의미로 건립된 기념관을 크게 확장하여 2005년 박물관으로 재개관하였다이스라엘의 건축가 모쉐 사프디(Moshe Safdie)가 설계하였다.

 

박물관은 역사박물관, 미술관, 전시관 학습센터 영상센터, 교회당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주 건물은 역사박물관으로 180m의 길이이며 외관이 프리즘 형태이다내부에 유물 및 사진, 생존자들의 증언 자료, 희생자들의 소지품 등 각종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설립 이래 50여 년 동안 수집한 홀로코스트에 대한 13800만 페이지의 문서를 보관하고 있다생존자 10만여 명의 증언과 사진 40만 여 장, 나치의 공식 문서, 나치 만행 조사위원회의 문서, 이스라엘 기관의 문서 등이 망라되어 있다박물관 끝에 있는 '이름의 홀(Hall of Names)'은 원뿔형 탑으로 희생자 260만 명의 사진과 이름이 20개 이상의 언어로 둥근 벽면 전체를 채웠다예루살렘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박물관 세계 각국 곳곳에 있는 홀로코스트 박물관 및 추모관의 본부 역할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에서 요약 발췌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박물관 입구>

홀로코스트(Holocaust)는 구약성서에서는 희생물을 통째로 태워버리는 특수한 제사를, 일반적으로는 인간이나 동물을 대량학살하는 것을 말하지만 고유명사로 쓸 경우엔 제2차세계대전 중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을 의미한다. 홀로코스트 박물관은 예루살렘 뿐 아니라 미국에 7개가 있고 그 밖에도 파리의 쇼아 기념관, 베를린 홀로코스트 기념관 등이 있다.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박물관 방문자 센터>

홀로코스트 역사박물관에 매는 가방을 반입할 수 없기 때문에 이곳에 매는 가방을 맡기면 좋다. 수신기도 빌려주는데 우리 수신기가 성능이 더 좋음에도 불구하고 주파수가 맞지 않아 이곳 것을 빌려 썼다.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야외 박물관>

기념비, 의인의 나무들이 있다.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박물관 측면>

프리즘 형태로 된 시멘트 건물이다. 억울하게 죽은 유대인의 사진, 유물을 전시한 곳 답게 외관은 삭막하지만 내부는 일반 박물관과 분위기가 비슷하고 전시물의 양도 많다.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박물관의 전시 내용>을 시기별로 살펴보면....

1. 나치 집권 : 추악하고 탐욕스러운 유대인을 막는 것이 나치의 임무라 믿고 진화론을 도입하여 인종 청소를 정당화(전시장에 검박한 유대인 중산층 가정 재현).

2.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책을 압수한 후 모두 불태워 문화, 사상,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기 시작.

3. 크리스탈 라이트 : 유대인의 상점을 부수고 사회의 흐름을 지켜본 결과 동조하는 분위기가 읽혀지자 유대인 억압 강행(이 시기에 아인슈타인 등 망명).

4. 유대인이 가장 많이 사는 폴란드를 침공하여 유대인 박해 시작, 유대인에게 노란 별을 달게 함.

5. 유대인들을 게토(ghetto)로 묶어 통제(폴란드의 게토 재현). 유대인들은 게토 안에서 일상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 링겔발룸 박사가 자신의 게토 거주자 모두에게 모든 것을 기록하게 하여 묻었다가 발각되어 죽임을 당했으나 역사적으로 나치의 만행에 대한 객관적인 증거를 남김.

6. 독일이 소련과의 상호 불가침조약을 어기고 소련을 침공한 후 특수부대를 창설하여 점령한 소련에서 유대인을 색출하여 학살하기 시작. 나치 자원자들(주로 독일의 민간인, 식자)은 학살을 거부하지 않고 방조, 혹은 동조함.

7. 유대인 홀로코스트 수용소 :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유대인을 몰아넣고 도착 즉시 죽이는 수용소 고안, 따라서 규모가 클 필요가 없었음. 죽인 사람은 건장한 유대인 남성에게 뒤처리를 3개월간 시킨 후 그들 역시 죽이고 새 사람으로 교체. 수용소에서 가장 중요한 법은 '유대인들이 죽는 순간까지 그 사실을 모르게 하는 것이다'로 죽임을 속이고 가스사 시킴.

 

8. 아우슈비츠 : 죽음의 수용소와 노동 수용소 둘로 나뉨. 연합군은 아우슈비츠의 존재를 알았고, 죽음의 수용소로 유대인을 이송하는 철도(편도만 있음)를 파괴하라는 요청도 무시함.

9. 대가 없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유대인을 도운 이웃에 관한 내용 전시.

10. 강제수용소의 모습 전시

11. 데스 마치 : 패망의 기운이 짙어지자 나치는 모든 포로를 죽이거나 끌고 가기로 하여 폴란드 유대인 330만명 중 300만명이 죽음.

12. 1948년 후속조치 : 살아남은 유대인 중 상당수가 어린이였기 때문에 독립 후 그들을 이스라엘로 데려옴.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박물관 입구, 출구>

입장한 이후부터는 내부 촬영 불가이다. 다른 내용이라면 도촬을 감행했을지 모르지만 워낙 경건한 곳이라 촬영은 접고 열심히 관람을 했다. 나오기 직전에 1컷만 촬영을 했다. 두번째 사진은 한 마을 주민 전체가 합심하여 그 마을 인구와 맞먹는 유대인을 숨겨준 마을에 대한 내용으로 기억한다.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박물관 '이름의 홀'>

'이름의 홀'은 역사박물관 끝에 있는 원뿔형 탑으로 홀로코스트 희생자 320만명의 사진과 이름을 전시한 곳이다.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박물관에서 내려다 본 예루살렘 시가지>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박물관>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의 이름 모르는 기념관>

일행을 찾느라 안에 들어갔는데 내부가 컴컴했고 그나마 둘러볼 시간이 없어서 바로 나왔기 때문에 기억이 분명하지 않다.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박물관 야외 조형물들>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박물관 야외의 야누스 코르자크 광장>

야누스 코르자크 선생님이 두려움에 떠는 어린이들을 껴안은 동상이다. 야누스 코르자크는 비유대인으로 폴란드 작은 마을의 교사였으나 나치가 유대인 어린이들을 잡아갈 때 함께 동행했고 어린이들과 함께 독가스실에서 죽었다.

 

 

<예루살렘 시가지와 벽화>

 

 

 

<예루살렘 트램>

 

 

<예루살렘 성벽과 성문>

두번째 사진은 북쪽의 다마스쿠스문이다. 버스로 지나치며 건물 틈에서 보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촬영이 불가능했다. 우리는 북문인 다마스쿠스문을 지나 꽃문(아랍인들은 '초소의 문'으로 지칭)이라 불리는 북동쪽의 헤롯문으로 입장했다. 둘레가 8km인 예루살렘 구시가지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모두 8개의 성문이 있다.

동쪽 : 사자문(Lion's Gate, 스데반문, 마리아문)과 황금문(Golden Gate, 미문).

서쪽 : 자파문(Jaffa Gate, 욥바문).

남쪽분문(,Dung Gate)와 시온문(Zion Gate, 다윗문)

북쪽 : 다마스쿠스문(Damascus Gate)과 헤롯문(Herod's Gate, 꽃문), 새문(New Gate)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