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요르단

이스라엘, 요르단 여행24 - 예루살렘 구시가지(Old City), 통곡의 벽

큰누리 2017. 4. 22. 21:10

이스라엘 요르단 여행 7일째인 1/18의 일정은...

베들레헴 Oriental Palace Hotel- 베들레헴 예수탄생기념교회(The Church Nativity)헤로디움(Herodium)베들레헴 목자들의 들판교회(The Shepherd’s Field Chapel)- 목자들의 들판교회 앞 Bo'az Field Souvenir Shop에서 쇼핑- 레스토랑 Grotto에서 현지식 점심- 예루살렘 유대인 학살 추모관(야드바셈)- 예루살렘 올드 시티 투어- 비아 돌로로사 코스골고다 성묘교회- 예루살렘 바위돔, 통곡의 벽- 베들레헴 Oriental Palace Hotel에서 저녁 식사 및 숙박.

 

<예루살렘 구시가지 고고학박물관 벽의 검은 고양이>

무너진 예루살렘 옛 성벽 담장에 단아한 자세로 앉은 검은 고양이....

 

 

예루살렘에서의 일정과 인종별 거주 구역

우리의 7일째 일정은 베들레헴과 예루살렘의 모든 코스를 도는 빡빡한 일정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베들레헴쪽의 성지와 헤로디움, 목자들의 들판교회를 둘러보고, 점심을 먹은 후에야 예루살렘에 입성할 수 있었다. 예루살렘에서 먼저 야드 바셈 유대인 추모관을 들렀고 오후 3시 30분을 넘긴 시각에야 예루살렘 성안으로 들어갔다. 십자가의 길과 통곡의 벽을 가려면 시장통과 골목길들을 거치게 되는데 예루살렘은 종교(민족)별로 유대인, 크리스찬, 아르메니아, 무슬림 지구로 나뉜다. 나는 아르메니아인 지역을 제외하고 세 구역을 모두 지나쳤는데 무슬림 구역에서 가장 인간미를 느낄 수 있었다.

  

<예루살렘 성묘교회 입구 구시가지>

십자가의 길(Via Dolorosa) 14지점을 돌고 나오니 날은 이미 어둑해지고 있었다. 10~14지점이 있는 예수 처형지 겸 장지인 성묘교회 앞에서 우리 일행은 어떤 이유인지 잠시 지체했다. 시장인 듯 한데 입구에 기념비 같기도 하고 성문 같기도 한 아래의 구조물이 있었다. 그 외에 분수, 오래된 돔 지붕의 교회도 있었는데 건축형식이 로마 카톨릭교회는 아니었다. 주변에 마틴 루터교회도 있었다.

 

 

 

<예루살렘 구시가지(Old City) 분수와 마틴 루터교회>

이곳도 성묘교회 부근이다.

 

 

<예루살렘 구시가지(Old City)의 교회>

 

 

<예루살렘 구시가지(Old City)>

이 부근쯤에 아르메니안 거주지구가 있다고 들었지만 들르지는 않았다.

 

  

 

 

<예루살렘 구시가지 유대인 구역>

   

 

<예루살렘 구시가지 통곡의 벽 위쪽 유대인 구역의 호텔>

   

 

<예루살렘 고고학박물관과 바위산(성지산)의 알 아크사 사원>

  

  

   

 

<무슬림의 성소인 바위산의 알 아크사 사원>

   

 

<통곡의 벽 위쪽 유대인 구역의 골든 메노라(Golden Menorah)>

메노라는 유대교 의식에 사용되는 7개로 갈라진 촛대로 유대교와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황금돔 사원, 알 아크사 사원, 통곡의 벽(Western Wall, Wailing Wall)>

예루살렘 구시가지에서 가장 높은 곳(통곡의 벽 높이는 19m 정도라고...)에 위치한 바위돔 사원은 지붕이 황금으로 덮여있어 일반인들은 황금돔 사원으로 부르고무슬림들은 알 아크사 사원이 있는 이곳을 하람 알 샤리프라고 하여 성소로 부르고, 유대인들은 성전산이라고 부른다황금사원은 이스라엘이 장악한 지역에 있어서 금요일에는 경찰의 경계를 받으며 무슬림이 들어가서 기도할 수 있다.

솔로몬 왕은 예루살렘에 웅장한 성전을 건축하였지만 바빌론과의 전쟁으로 파괴되었고로마 통치기에 헤롯(헤로데스)왕이 유대인의 환심을 사고자 화려하고 거대한 성전을 지었다헤롯 성전은 AD70년 로마의 티투스장군에 의해 파괴되고 서쪽 벽 일부만 남게 되었는데 이 벽이 바로 통곡의 벽(Western Wall, Wailing Wall)이다.

 

통곡의 벽(Western Wall, Wailing Wall)이란 이름은 로마군이 이스라엘의 수도인 예루살렘을 공격하면서 수많은 유대인이 죽음을 맞이하자 서쪽의 벽이 통곡을 하며 눈물을 흘려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붙여졌다는 설과 수많은 유대인이 성전이 파괴된 것을 슬퍼하여 통곡의 벽이라고 불린다고 하는 설이 있다또 다른 설은 로마 점령 후 세계 각지로 흩어진 유대인들이 비잔틴 시대 이후에야 1년에 한 번씩 성전이 파괴된 날 예루살렘 방문이 허락되었기 때문에 이곳에 모여 허물어진 성벽을 두들기며 통곡했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도 한다.

 

로마의 이스라엘 점령 후 하드리아누스황제는 성전 위에 주피터신전을 지었고로마가 기독교화 되고 이스라엘이 비잔틴제국으로 포함되면서 신전은 교회로 사용되었다

638년경 이슬람 세력이 예루살렘을  점령한 이후에는 선지자 마호메트가 가브리엘의 인도를 받아 승천한 곳이라 하여 메카, 메디나와 함께 이슬람의 3대 성지가 되었다. 칼리프 압둘 말리크는 솔로몬 성전 터에 황금 돔 사원을 짓고, 칼리프 왈리드 1세는 그 옆에 알 아크사 사원을 지었다이후 십자군 전쟁 기간에는 이슬람 세력과 십자군이 번갈아가며 점령하다가 1917년 영국이 점령할 때까지 오스만투르크가 오랜 세월을 지배하였다. 

 

 

 

<황금돔 사원과 통곡의 벽>

 

 

<통곡의 벽(Western Wall, Wailing Wall)>

통곡의 벽이란 슬픈 이름과 달리 유대인들에게는 야외 성전 같은 이다. 중앙의 분리대를 기준으로 그 너머는 남성들이, 이쪽은 여성들이 나뉘어서 벽에 대고 기도를 한다. 통곡의 벽 틈에 소원지를 끼우는 것이 유행인지 우리 일행들도 메모지나 포장지 같은 곳에 급하게 소원을 적어서 끼우는 것이 보였다. 통곡의 벽 돌 틈으로 마른 풀처럼 늘어진 식물은 아비오나라고 한다.

 

 

  

   

 

<통곡의 벽 앞에 놓인 유대인 성서(토라)>

   

 

<통곡의 벽 앞 광장>

  

 

<바위산(성전산) 위의 알 아크사 사원>

   

 

<통곡의 벽을 나와 버스 타러 가는 길의 예루살렘 성문>

바위산(성전산) 성벽 중앙에 있는 황금문은 성문이 없다고 하니 그 북쪽에 있는 사자문(Lidn's Gate)이거나 남쪽에 있는 분문(Dung Gate)이겠지만 확인은 못했다.

 

 

<예루살렘 성벽 아래의 유적들>

예루살렘은 워낙 역사가 중첩되고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등 종교들의 각각의 성지라서 발굴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현재 황금돔 사원이 있는 곳은 예루살렘 성전 터이기도 하지만 무슬림의 성전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발굴 자체를 엄두도 못낸다고 한다. 

우리는 이곳을 끝으로 베들레헴의 Orient Palace 호텔로 돌아가 이스라엘, 요르단 여행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다음 날 이른 새벽 텔아비브 국제공항에서 엄청난 절차를 거친 후 출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