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22.07. 부여 궁남지

큰누리 2022. 7. 22. 00:41

 

 

≪부여 궁남지≫

사적 135호.

주소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궁남로 52 (부여읍 동남리 117).

 

궁남지는 부여 시가지 남쪽에 위치한 백제시대의 별궁에 딸린 연못이다. '궁 남쪽에 연못을 팠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따라 궁남지라 부른다. 「삼국사기」에 '무왕 35년(634년) 궁 남쪽에 연못을 파고 20여리나 되는 긴 수로로 물을 끌어들였으며, 물가 주변에 버드나무를 심고 못 가운데에는 섬을 만들어 방장선산(方丈仙山)을 본떴다는 기록이 전하고 있다.

 

궁남지와 인접해 왕실의 별궁으로 추정되는 화지산유적이 있는데, 이곳에서 초석건물지, 팔각우물 등 위계 높은 유구와 유물이 조사되었다. 궁남지에서는 1990년부터 2006년까지 총 11차례에 걸쳐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백제시대의 도로와 건물지, 수전(물을 쉽게 댈 수 있는 논), 수로, 우물, 저수조 등을 확인하였다.

 

현재의 궁남지는 1965~1967년, 1971년에 실시된 복원공사를 통해 조성된 모습으로 백제시대 당시 궁남지는 이보다 훨씬 규모가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궁남지는 조성 기록이 남아있는 몇 안 되는 백제시대 조경기술을 엿볼 수 있는 중요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지 안내문--

 

 

<부여 궁남지 동문쪽 입구>

궁남지는 동문과 서문 두 곳으로 입장할 수 있고, 두 곳에 주차장이 있다. 동문과 서문 입장하는 곳에는 서동과 선화공주 등(燈) 조형물이 서 있다. 세 번째 사진 '아름다운 그대와'처럼 궁남지 곳곳에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해 놓았다.

우리는 이틀 뒤부터 열리는 연꽃축제를 피해서 갔는데 꽃도 제법 피어있고, 무엇보다 한적해서 좋았다.

 

 

 

 

<궁남지 동문 방향에 있는 오오가하스(대하연) 연꽃단지>

궁남지는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연꽃 대단지이다. 규모도 크지만 모양이나 색깔이 다른 다양한 연꽃과 수련, 기타 수생식물들이 식재되어 있다.

 

아래의 사진들은 오오가하스 연꽃(대하연)인데 연못이 크고 꽃도 크고 화려해서 궁남지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일본에서 2,000년 전의 연씨를 발아에 성공하여 2008년 5월 부여군에 기증하여 재배를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궁남지 연꽃단지의 사잇길과 부처꽃>

연꽃단지에는 사잇길들이 우산살 모양처럼 조성되어 있어서 걷기에 좋은데 동문쪽에는 물을 좋아하는 부처꽃들을 길 주변에 식재했다.

 

 

<궁남지 연꽃단지의 서동, 선화공주 석상(천년의 사랑)>

선화공주, 서동의 '석상 앞에 있는 3개의 작은 연꽃그릇에 동전이 들어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놓았다. 무왕의 왕비가 선화공주가 아니라는 것이 거의 확실해져가고 있지만 아직은 대부분 믿고 싶어하는 듯하다. 궁남지 곳곳에 있는 燈이나 석상 어디에도 선화공주, 서동이란 지칭은 없지만 누가 보아도 두 사람의 조형물들이다.

 

 

<궁남지의 연꽃들>

이 외에도 많은 연꽃과 수련이 있고, 물무궁화나 물토란, 물칸나 등의 수생식물들이 식재되어 있다.

 

 

<궁남지의 열대수련>

이전에 잎에 붉은 얼룩이 있는 수련은 헬보라라고 들었는데 이곳은 그냥 열대수련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이집트 수련과 모양이 비슷하다.

 

 

<궁남지의 워터칸나(타알리아 제니쿨라타)>

워터칸나는 윗사진 중간쯤에 있는 수생식물로 두 번째 사진은 그 꽃이다. 워터칸나 아래에 있는 수련은 호주수련이다.   

 

 

 

<궁남지의 무자위>

무자위는 날개(!)에 올라 발로 밟으면 날개가 돌아가며 낮은 곳의 물이 높은 곳으로 이동한다. 그 원리를 이용해 논에 물을 댈 때 사용된 농기구이다. 어렸을 때 맨발로 젖은 무자위 날개에 올라가면 부드럽고 촉촉한 느낌이 참 좋았는데 지금은 이런 곳 말고는 볼 수 없다.

 

 

<궁남지의 노랑어리연꽃과 주변 풍경>

가장자리가 갈갈이 찢어진 것 같은 노랑어리연꽃도 자세히 보면 참 예쁘고 특별하다.

 

 

 

<궁남지의 가시연꽃(Prickiy Water Lily)과 단지>

거대한 빅토리아연꽃도 별도의 단지가 있는데 심은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크기도 작고 듬성듬성 했다.

 

 

 

<원추리와 연꽃 대단지>

이 즈음에 궁남지에서 연꽃이나 수련을 제외하고 가장 아름답고 무성한 것은 주황색의 원추리와 연지색의 부처꽃이다.

 

 

<궁남지의 연꽃 대단지와 사진 촬영 포인트들>

동문과 서문 사이에 있는 대단지이다. 이 주변에는 이틀 뒤부터 열리는 연꽃축제를 대비해서 이벤트성 글귀나 등불을 많이 설치해 놓았다. SNS와 젊은 사람들을 의식한 것들인데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다소 거슬리기도 했다.

 

 

 

 

 

<부여 궁남지 서문쪽 입구와 안내도>

안내도를 보면 궁남지 안에 얼마나 많고 다양한 연꽃단지를 만들었는지 알 수 있다. 포룡정을 중심으로 작은 연꽃단지들이 우산살처럼 퍼지게 조성되었다.

 

 

 

<궁남지의 돛단배와 포룡정>

포룡정은 위의 사진(안내도)에서처럼 궁남지 가장 중앙에 위치하고 있고, 호수 안에 있는 정자이다.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 이야기≫

포룡정 입구에 있는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 이야기'에 의하면...

백제시대 이궁터로 알려진 궁남지 일대는 아명(兒名)을 서동(薯童)이라 했던 무왕의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사비시대에 왕궁 남쪽 못 가에는 궁궐에서 나와 혼자 사는 여인이 궁남지의 용과 교통하여 아들을 낳았으니, 그가 바로 백제 30대 왕인 무왕 장(璋)이다."

 

그의 어머니가 용과 교통하여 아들을 낳았다고 하였으니 아마도 아버지는 왕이거나 태자였을 것이다. 그러나 궁궐 밖의 생활이 궁핍하였으므로 생계유지를 위해 마를 캐다 팔아서 그의 아명이 서동이 되었다. 

서동의 어머니는 가난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정성껏 키워서 기골이 장대하고 효성이 지극한 장부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밤, 궁중에서 한 노신이 찾아와 왕의 밀명을 전하였는데 신라의 서라벌에 잠입하여 국정을 탐지하라는 것이었다. 

 

서동은 기꺼이 받아들여 마를 파는 상인으로 위장하여 신라에 잠입, 탐지활동을 충실히 수행해 나갔다. 그러던 어느날 신라 26대 진평왕의 셋째 딸인 선화공주와 마주치게 되었다. 이후 두 사람의 만남이 잦아지면서 사랑이 싹텄지만 서로 국적과 신분이 달라 맺어질 수 없는 사이임을 알았다.

헤어질 수 없었던 두 사람은 지혜를 짜내 서동요를 만들어 퍼트리기로 다짐했다. 서동은 서라벌의 아이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서 마를 나누어주며 노래를 부르게 하였다.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정을 통하고 서동방을 몰래 밤에 안고 간다"는 노래였다. 이 노래는 아이들의 입을 통해 온 나라에 퍼져 나갔다. 결국 대궐에까지 알려지게 되어 오해를 받게된 선화공주는 귀양을 가게 되었다. 이를 미리 알고 있던 서동이 선화공주를 백제로 데려와 행복하게 살았다.

 

--우리가 아는 서동과 선화공주 이야기보다 두 사람의 관계, 특히 선화공주의 태도가 적극적이고 내용도 약간 다르다--

 

 

<중앙 연못 주변의 서동, 선화공주 등(燈)>

 

 

<포룡정 앞의 사진촬영 포인트>

 

 

<호수 한가운데에 있는 포룡정(抱龍亭)>

호수 한 가운데의 섬에 떠있는 포룡정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다리이다.

 

 

 

<포룡정에 걸려 있는 서동요(薯童謠)>

 

 

<궁남지 중앙의 호수와 포룡정(抱龍亭)>

 

 

<달 모양의 대형 燈>

 

 

<안쪽에서 본 궁남지 동문방향>

 

 

<부여 한정식집 향우정과 돌솥쌈밥정식>

원래 바로 옆에 있는 '솔내음'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했으나 대기줄이 길어서 이곳에서 돌솥쌈밥을 먹었다. 사진에서 돌솥밥과 된장국은 빠졌고, 먹을만 하다. 우리가 먹은 돌쌈밥정식은 2인 이상 시켜야 하는 메뉴였고 1인분 18,000원이었다. 

 

다른 메뉴 중 단품은 냉면 8,000원, 육개장 9,000원, 시골밥상 10,000원, 돌솥사비정식은 12,000원이다. 정식 메뉴로는 불고기정식 14,000원, 연잎쌈밥정식 17,000원, 돌쌈밥정식 18,000원, 연잎불고기정식 23,000원, 소갈비찜정식은 28,000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