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의 토기>
가야의 토기는 지역마다 형태와 특징이 다르다. 금관가야는 아가리가 밖으로 꺾인 굽다리접시와 손잡이가 달린 화로 모양 토기가 대표적이며, 아라가야는 불꽃 모양의 굽구멍이 뚫린 굽다리접시가 대표적이다. 대가야는 굽다리접시가 가로로 넓고 납작하여 안정감을 주며, 원통형 그릇받침에는 뱀이나 고사리 모양과 같은 긴 띠가 세로로 붙는 것이 특징이다. 소가야의 경우 그릇받침과 항아리의 아가리 끝이 수평으로 꺾여 벌어진 것이 특징이다. 비화가야는 그릇 뚜껑에 애벌레 무늬가 장식되며, 접시는 얕은데 비해 굽다리가 굵은 굽다리접시가 많다.

<가야의 무덤 부장품 상형(象形)토기>
상형토기는 사람, 동물, 사물 등의 형태를 본떠 만든 토기를 말한다. 가야의 상형토기는 집, 배, 짚신 등의 사물이나 새, 말, 사슴 등 동물을 본뜨고 장식한 것이 많다. 이러한 상형토기는 음료나 술을 담아 장례의식에 사용한 후 무덤에 함께 묻은 것으로 보인다.

<가야의 말갖춤>

<가야의 갑옷과 투구>

<가야의 무기와 말갖춤>
왼쪽은 가야의 무기(고리자루 큰칼, 화살촉과 화살통)이고, 오른쪽은 말갖춤(발걸이, 말띠 드리개, 말띠 꾸미개, 청동말방울 등)이다.

<가야의 철기(쇠화살촉, 쇠납작도끼 등)>

<경주 황남대총 출토 금관과 금허리띠>
금관은 머리띠에 나뭇가지와 사슴뿔 모양의 장식이 세워진 형태로 신라 마립간의 신성한 왕권을 상징한다. 금허리띠는 버클에 해당하는 띠고리, 허리끝에 다는 띠끝꾸미개, 가죽 또는 비단 허리띠의 겉면을 꾸몄던 띠꾸미개, 허리띠에 매달아 드리웠던 띠드리개로 구성된다.


<경주 이외 지역에서 출토된 신라의 금동관과 금관 및 장신구>
금동관은 경북 성주와 고령 지산동, 금관은 창녕, 금동 허리띠는 함안, 금귀걸이는 합천과 의령 등 경상도 각지, 금반지는 고령 지산동, 금팔찌는 합천과 창녕 교동, 은팔찌는 창녕 교통에서 출토된 것이다. 즉 경주가 아닌 곳에서 출토된 것들이다.

<울산 중산동 출토 오리모양 토기>

<경주 구정동 출토 목가리개와 판갑옷>

<화려한 신라의 말갖춤(장식)>
금동 말안장 꾸미개, 청동 말방울과 청동 발걸이, 말띠 드리개, 금동 재갈이다. 처음에 실전무구였던 말갖춤은 4세기말 이후 귀금속 장식이 더해져 지위의 상징물이 되었다. 사진은 주로 마립간(왕)의 무덤에서 발굴된 것으로 발견된 곳은 경주의 식리총과 황남대총 남분, 호우총과 금령총, 노동동 142호분 등 다양하다. 서로 겹쳐 일렬로 둔 화려한 말갖춤은 요즘으로 치면 최고급 자동차 여러 대를 나란히 주차해 둔 것이라 할 수 있다.

<신라 쇠창, 고리자루 칼>

<화려한 신라관의 장신구와 토기들>

<황남대총 남분 출토 금제조익형관식, 고깔모양 관>
'조익형관식'은 새날개모양 관꾸미개이며, 아래는 고깔모양 관이다.

<노서동, 황남대총, 서봉총 출토 금장신구>
왼쪽은 경주 노서동 215번지 출토 금귀걸이와 금목걸이, 금팔찌이다. 오른쪽의 금목걸이와 구슬목걸이는 황남대총 북분과 남분 출토, 금반지는 황남대총 남북분과 서봉총 출토품이다.

<경주 금령총 출토 말 탄 사람 토기들>

<경주 호우총과 기타 지역의 금장신구, 옥팔찌>
왼쪽은 경주 호우총의 금귀걸이, 금반지, 금팔찌, 금드리개 등이며, 오른쪽은 황남대총 북분과 노동동의 금드리개, 황오동 금팔찌, 황남대총과 서봉총 출토 옥팔찌이다.

<경주 황남대총 북분 출토 가슴꾸미개>

<금령총, 황남대총, 식리총, 황오동 52호분 출토 장식품들>
왼쪽의 금귀걸이, 목걸이, 납작한 금귀걸이는 금령총 출토품, 아래쪽의 공 모양 금방울들은 황남대총 남분과 식리총 출토품이다. 오른쪽의 금도금 팔찌, 금장식 작은칼은 경주 황오동 52호분 출토품이다.

<황남대총 남분 출토 은관, 경주 식리총 금동장식 신발>

<신라의 토기들>

<신라의 연꽃무늬 수막새>

<함안 성산산성의 신라 목간>
물품에 붙인 꼬리표인 이 목간들은 아라가야를 복속시킨 신라가 함안지역에 산성을 쌓으며 여러 지방의 물자와 인력을 동원했음을 알려준다. 감문(김천), 구리벌(옥천), 추문(의성) 등 신라에 편입된 지역 이름이 적혀있다.

<포항 냉수리 신라비와 글이 새겨진 그릇들>
왼쪽은 포항 냉수리 신라비, 중앙은 7개의 한자가 새겨진 그릇 받침과 '大干, 生, 夫, 本' 등이 새겨진 굽다리접시이다. 오른쪽은 '延壽'를 새긴 은합이다.

<경주 식리총과 호우총의 청동 자루솥>

<한강 유역의 신라 유적>
한강은 지리적,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삼국의 격전지였다. 백제는 고이왕(재위 234~286)과 근초고왕(재위 346~375) 때 번성하였으나, 475년 고구려의 남하정책으로 100여 년 동안 빼앗겼다. 551년 성왕(재위 523~554) 때 한강 유역을 탈환하여 신라는 상류쪽, 백제는 하류쪽을 차지하였다. 2년 뒤인 신라 진흥왕(재위 540~576)은 백제가 차치했던 한강 하류를 빼앗아 대중국 외교 통로와 삼국통일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하였다. 사진은 용인 보정동 고분군, 파주 성동리 고분군, 안성 반제리 고분군의 신라 토기들이다.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신라 진흥왕 16년, 555년)>
진흥왕이 한강 유역을 차지한 후 이 지역을 둘러본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진흥왕의 영토 확장과 순수의 목적, 순수에 참여한 인물들을 기록하고 있다. 원래 북한산 비봉에 있었으나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전하였고, 그 자리에는 모형이 세워져 있다. 이 비는 추사 김정희가 1816년 비봉에 올라 조사해서 밝혀낸 것으로 그 사실이 옆면에 그의 필치로 새겨겨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1층 통로의 경천사 십층석탑>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대리석 탑으로 고려의 전통과 당시 중국 元나라에서 유행하던 양식을 바탕으로 만든 10층석탑이다. 목조 건축장식을 섬세하게 표현하였으며, 탑 아래쪽 3단의 기단부에는 당나라 현장법사와 손오공 등이 인도에서 경전을 구해오는 험난한 여정을 중심으로 나한과 사자를 새겼다. 1907년 일본 궁내부 대신 다나카(田中光顯)가 일본으로 무단반출하였으나 영국과 미국의 언론인 E. 베델과 헐버트의 노력, 우리 국민들의 지속적인 요구로 1918년 환수되었다.

--------------------------------------------------------------------------------------------
≪'사유의 방'의 두 주인공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본래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의 불교조각실 301호에서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국보 제78호와 83호가 전시되다가 상설전시관 2층의 '사유의 방'이란 전시실에서 2021년 11월 12일부터 전시되고 있다.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국보 제78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국보 제78호는 날씬하면서도 탄력있는 신체 표현과 날개와 같은 옷깃, X자형의 천의, 형식적인 옷 주름 표현 등 대체로 중국 동위 및 서위의 불상양식이 반영되어 있으며 국보 제83호 금동미륵반가상과 함께 6세기 후반경의 삼국 시대의 대표적인 불상이다. 정확한 출토지를 알 수 없고 제작지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며, 삼국 중 어느 나라에서 제작했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뒤태가 참 아름답다!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국보 제83호>
국보 제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金銅彌勒菩薩半跏思惟像)은 삼국 시대에 만들어졌으며 국보 제78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함께 삼국시대 금동 불상을 대표하는 걸작품이다. 일제 때 밀반출되어 출토지와 제작지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신라의 작품으로 추측하고 있다. 옷주름이나 손가락 등의 세밀한 표현기법과 사실성 표현이 탁월하다. 머리에 삼면이 각각 둥근 산 모양을 이루는 삼산관(三山冠)을 쓰고 있다.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국보 제 83호와 제78호>

'서울특별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삼청동 답사(칠보사, 백호정 우물, 한국독립당 전시실) (0) | 2025.08.25 |
|---|---|
| 삼청동, 삼청공원 답사 (0) | 2025.08.24 |
| 국립중앙박물관 전시물1 (구석기시대~고구려, 백제) (0) | 2025.06.26 |
| 국립고궁박물관 전시물 2 (0) | 2025.06.19 |
| 국립고궁박물관 전시물 1 (0) | 2025.06.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