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삼청동, 삼청공원 답사

큰누리 2025. 8. 24. 23:09

≪삼청공원, 삼청동 답사≫

25년 6월 5일은 국립민속박물관 전통문화지도사 2급 자격 시험 결과 발표일이었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운영하는 전통문화지도사 교육 프로그램을 1학기 들은 후 자격증 시험을 본 우리는 점심 때 모여 결과가 발표되는 오후 4시까지 삼청동 일대를 답사하기로 했다. 공부를 하기 위해 내 경우 일주일에 2번을 국립민속박물관에 들리지만 따로 주변을 답사한 적은 없었다. 10년도 더 전에 경복궁 외곽과 북촌, 서촌 등을 샅샅이 답사한 적은 있었지만 이후로는 서울 답사와 멀어졌다. 그래서 기대를 안고 답사에 참여했다. 3팀으로 나뉘었고, 안내는 우리 일행중 3분이 나누어 맡았다. 우리 팀을 맡은 분은 총무님이었는데 자료를 철저히 준비하시고 설명도 차분하게 잘해주셔서 답사가 유익하고 즐거웠다. 중간에 삼청공원에서 각자 준비한 도시락을 먹고 본격적으로 답사를 시작했다. 

 

≪삼청동 명칭 유래와 삼청동 소속 7개 법정동≫

삼청동에 도교의 삼청인 태청, 상청, 옥청을 모시는 '삼청전'이 있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삼청'은 이상향을 가리기기도 하는데 산과 물이 맑고 인심도 좋아 '삼청(山淸, 水淸, 人淸)'이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삼청동은 조선시대 한양 최고의 숲과 계곡이었다. 삼청동, 팔판동, 안국동, 소격동, 화동, 사간동, 송현동을 묶어 '삼청동'이라고 한다. 앞의 7개동은 법정동이고, 그것을 묶은 삼청동은 행정동이다. 법정동 삼청동의 반은 북쪽의 북악산이고, 주로 남쪽에 사람이 사는 마을이 있다. 삼청동 입구에 종로 11번 버스 종점이 있는데 그 종점을 기준으로 서쪽은 서삼청동, 동쪽은 동삼청동으로 불렀다. 예전에 답사를 할 때 '종로도서관 주변에 궁궐에 꽃이나 식물을 조달하는 곳이 있어서 화동으로 불렸다, 송현동은 소나무가 많아서 붙은 이름이다, 소격동은 소격서가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라는 이야기 등을 듣고 본 적이 있다.

답사를 하면서 보니 서울 한복판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좁은 골목, 아기자기한 옛날 집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주변에 청와대나 국무총리 공관 등의 보안시설과 경복궁 등이 있어서 고도제한 등이 있었을 것이고, 그 때문에 고층건물이나 개발에 제한이 많았을 것이다. 

 

<전통문화지도사 양성교육 참가자 삼청동 답사 모임>

 

<소격동 종친부 경근당과 옥첩당(敬近堂과 玉牒堂) 앞>

원경에 있는 종친부 경근당과 옥첩당이 원래 위치인 이곳으로 돌아오는 과정, 현대미술관이 건립되는 과정을 예전에 답사를 하면서 목격했었다. 전두환 정권 당시 종친부 건물에 테니스장을 만드느라 현재 종로도서관엔가에 종친부 건물이 옮겨졌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없애지 않고 옮겼다'는 것이다. 앞의 두 건물은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인데 예전에는 국군서울지구병원이 있었다. 

 

<現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舊 국군서울지구병원 터>

국군서울지구병원은 현재 삼청동 안쪽으로 이전했다. 

 

<마네킹으로 만든 피에타>

이 조형물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건설 공사 때 가림막으로 설치한 벽의 재미있는 벽화와 함께 현장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삼청동의 자동차 조형물>

 

<現 삼청동파출소, 舊 소격서 터>

소격서(昭格署) 조선시대에 도교의 의례를 거행하기 위해 설치한 관청이다. 1396년(태조 5) 설치되었고, 연산군 이후 여러 차례 설치와 폐지를 반복하다가 임진왜란 이후 완전히 없어졌다. 

 

<북촌 삼청동 화동길의 중국만두집>

이 건물 뒤쪽에 복정(福井, 우물)이 있다.

 

<북촌 삼청동 화동길의 복정(福井)우물>

복정(福井)우물의 옛 이름은 복줏물로 물이 맑고 맛이 좋아 조선시대에 궁중전용 우물이었다. 평상시에는 뚜껑에 자물쇠를 채우고 군인들이 지키며 일반인이 사용하지 못하게 했으나, 정월대보름에는 일반인도 물을 길을 수 있게 허용했다. 닫혀 있었다가 최근에 복원했지만 먹기엔 불가능해 보였다.

 

<삼청동 화동의 코리아사우나(코리아게스트하우스)>

현재 건물 명칭은 삼청동코리아게스트하우스이고, 4층 건물이며, 1층에 코리아 사우나가 있다. 1948년에 1층은 '삼화탕'이란 이름의 목욕탕, 2층 이상은 '삼화장'이란 이름의 여관이었다. 1층은 인근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목욕탕으로, 윗층 여관은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애용했다고 한다. 60~70년대에는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로 인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경영난 때문에 1층 사우나는 임대 형식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여관은 북촌을 방문한 외국인과 학생들의 게스트하우스로 이용되고 있다.  

 

<화동길에서 본 인왕산과 삼청동>

왼쪽 위에 국립민속박물관도 일부 보인다.

 

<화동길에서 본 북악산과 국군서울지구병원>

중앙의 흰색 건물이 현재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자리에서 옮긴 국군서울지구병원이다. 왜 국군병원이 이곳에 있는가에 대해 일행들은 청와대나 국무총리 공관 등이 있고, '79. 10.23의 박정희 대통령 피살 사건'과 같은 유고를 대비하기 위해서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화동길에서 삼청동으로 내려가는 돌계단과 '북촌 오버투어리즘'>

계단 아래쪽에 '이 지역은 주민들이 실제로 거주하는 곳이니 조용히 해달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관광객으로 인해 발생하는 소음공해, 주거지 무단침입, 쓰레기 무단투기, 교통혼잡 등 이른바 '북촌 오버투어리즘'이다.

 

<팔판동 '삼청동 수제비'의 긴 대기줄>

 

<삼청동 소선재(素饍齋)>

소선재는 한정식 집인 하다. 삼청동길에는 낡은 한옥이 꽤 있는데 도로변의 집들을 이런 식으로 개조해서 영업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왼쪽 건물 앞의 빨간 동물 조형물처럼 삼청동에는 이런 독창적이고 아기자기한 조형물이 많다.

 

<삼청동 MGFS100 갤러리의 '첫만남!!!' 조형물>

 

<삼청공원 입구(금융연수원 버스정류장)의 '꼬꼬매니아'>

 

<삼청공원 입구의 새김아트 벽화>

 

<삼청공원 입구의 플래카드에 묻힌 '삼청의 꿈'>

'삼청의 꿈' 조형물이 맞는 것 같은데, 플래카드에 '삼청의 꿈'이 덮여버렸다.

 

<삼청공원 입구>

 

<삼청공원의 오랑캐장구채>

 

<삼청공원 안내도>

 

<삼청공원>

서울성곽 걷기를 할 때 공원과 이어진 북악산은 관통했었지만 삼청공원에 들린 것은 처음이다. 서울 도심에 이렇게 크고 숲이 울창한 공원이 있다는 것은 주민들에게나 방문객에게나 축복이다. 

 

<미국인들이 좋아한다는 냉동김밥>

궁금해서 도시락 대용으로 가져갔는데 담백하고 맛이 괜찮았다.

 

<삼청공원에서 답사와 모임에 대해 의논하는 일행들>

 

<삼청공원의 김경린의 詩 '車窓'>

딱히 삼청공원과 어울리는 것 같지 않은 이 시가 왜 이곳에 있는 것일까? 혹시 시인이 이곳 출신인가? '한 마리'가 아니라 '한 마디', '바깥'이 아니라 '바같'이다. 첫 부분이 얼마 전에 크게 히트한 황가람의 '나는 반딧불' 삘이 난다, ㅎㅎ...

나는

수족관에 온

한 마디의 어족

 

미끄러지는 

바같 세계가 뿜는 향수로

안경은 차웁다.

 

<삼청공원의 뱃살 체크 도구> 

 

<삼청공원의 정몽주 선생 모자의 시조비>

참 오랜만에 본 정몽주 선생 모자의 시조이다. '단심가'는 대부분 표기가 같은데 '백로가'는 많이 달랐다. 아랫글은 삼청공원에 있는 비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특히 다른 곳은 어머니의 '滄波'였는데 '滄浪', '淸江'으로 다르게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몽주의 단심가(丹心歌)--

이 몸이 죽어 죽어 一百番 고쳐 죽어

白骨이 塵土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一片丹心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정몽주의 모친의 백로가(白鷺歌)--

까마귀 싸우는 곳에 白鷺야 가지마라.

성낸 까마귀 흰 빛을 새오나니

滄波에 좋이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

 

<삼청공원 출구의 일청교(一淸橋)>

 

<삼청공원 삼청터널쪽 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