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석실마을 안동김씨 묘역과 조선 8대 명당≫
석실(石室)마을은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에 위치한 마을로 병자호란 때 강화도로 피난 갔다가 순절한 김상용과 척화파로 활약한 동생 김상헌 형제의 묘가 있는 곳이다. 그에 못지 않게 유명한 것은 조선 8대 명당으로 잘 알려져 있는 안동김씨(장동김씨) 묘역의 김번(金璠, 1479~1544)의 묘이다. 김번의 묘가 있는 명당자리는 원래 남양 홍씨 가문의 소유였으나 홍씨 가문으로 시집 온 안동김씨 성을 가진 부인이 남편과 사별한 후 친정에서 이 묫자리를 잡도록 했다. 홍씨 가문에서도 이 묫자리가 금시발복할 땅이란 걸 알아차리고 몰래 물을 붓고 '물이 나는 곳이라 묫자리로 부적당하다'며 방해했지만 안동 김씨는 기어이 이곳에 묘를 썼다.
전하는 바가 맞다면 본인부터 사후에 이조판서·대제학으로 추증되고, 바로 후대부터 줄줄이 고위관료들이 나오고, 조선 후기에는 날으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로 위세를 떨친 안동김씨 세도정치까지 했으니 맞는 말 같기도 하다. 안동김씨(장동김씨) 묘역에 있는 15대 김상헌 선생의 묘를 비롯한 12대~16대의 묘는 부인의 경우 정일품이나 종일품 부인에게 주는 '정경부인'이 기본이었다.
≪안동김씨(安東金氏)와 장동김씨(壯洞金氏)≫
석실마을의 묘 안내문에 안동김씨와 장동김씨가 자꾸 겹쳐서 확인해보니 안동김씨 묘역 안내도에 '태사공 김선평을 시조로 하는 안동김씨 후예 중 조선시대 한양의 장동(壯洞 : 현재의 궁정동, 청운동, 누상동 일대)에 뿌리를 내려 장동김씨(壯洞金氏)라 불렸던 안동김씨(安東金氏) 12세조 김번과 그 후예들의 선영'이란 내용이 있었다. 즉 장동은 현재의 서울 경복궁주변을 일컫는 말로 그곳에서 산 안동김씨들을 말한다. 그래서 삼청동에 '김조순 제택(第宅) 옥호정 터'가 있고, 장동팔경이라 일컫는 명소도 있었던 것이다.
≪묘비(墓碑)의 종류≫
묘 앞에 세우는 비석은 크게 묘표(墓表), 묘갈(墓碣), 신도비(神道碑)로 나뉘며, 일반적으로 비석은 네모난 형태에 받침과 몸통, 덮개돌의 3부분으로 나뉜다.
* 묘표(墓表)는 가장 간략한 형태의 비석으로 앞면에 누구의 묘라는 내용(관직, 호, 이름 등)을 새기고, 뒷면에 건립 연대를 새긴다. 연대 옆에 자손 명단을 넣기도 한다.
* 묘갈(墓碣)은 윗부분을 둥글게 다듬어 덮개돌 없이 무덤 앞에 세운 비석으로 묘비 중 가장 흔한 형태이다. 묘표는 끝에 명(銘)을 거의 붙이지 않지만 묘갈은 명(銘)을 붙인다.
* 신도비(神道碑)는 임금이나 종2품 이상의 관직을 지낸 인물, 종2품 이상으로 추증된 인물의 묘 앞에 세우는 비로 묘 주인공의 삶(사적)을 새긴다. 묘표나 묘갈과 별도로 사자의 길인 묘 앞 동남쪽(神道)에 세우며, 비신 위에 용 모양의 머릿돌을 올리고 거북 모양의 받침돌을 놓기도 한다.
≪남양주 석실마을 김상용 묘>
먼저 들린 김상용 선생의 묘는 안동김씨(장동 김씨) 묘역에서 다소 떨어진 마을 안쪽에 있고, 묘 입구에 비각과 거대한 신도비가 있다. 김상용(1561~1637) 선생은 조선 인조 때의 문신으로 병자호란 때 순절했으며 부인 안동 권씨와 합장묘이다. 김상용은 김번의 증손으로 병자호란 때 주전파의 대표인 김상헌의 형이며 정치적으로는 서인이다. 선조 23년(1590)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쳤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정철의 종사관이 되어 왜군 토벌과 명나라 군사 접대에 공을 세웠다. 정묘호란(1627년) 때는 유도대장으로 서울을 지켰으며 1636년 병자호란 때 왕을 수행하여 강화도로 피난하였다가 성이 함락되자 성의 남문루에 있던 화약에 불을 지르고 순절하였다. 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강화의 충렬사, 남양주의 석실서원 등에 제향되었다. 조선 8대 명당의 주인인 김번의 증손이다.
<남양주 석실마을 김상용 묘 입구의 충효각과 신도비>
충효각은 접근이 불가능하고, 신도비는 규모가 상당히 크고 머릿돌(이수)의 무늬가 섬세하고 아름답다. 글씨는 판독 포기.

<남양주 석실마을 김상용 묘>
김상용 선생 부부 합장묘이다. 묘비가 압축한 신도비처럼 섬세한데 석실마을의 묘비 대부분이 그랬다. 그뿐 아니라 석실마을의 다른 문인석처럼 이곳의 문인석 표정이 부드럽고 관대의 무늬가 아름답다. 특이점은 묘를 두른 병풍석인데 새겨진 십이지신의 돋을새김이 깊고 모양도 지금까지 본 수많은 병풍석 중 가장 현대적이었다. 최근에 손을 본 듯하다.



<뒤에서 본 김상용 묘와 남양주 석실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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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석실마을의 국립민속박물관 답사팀>
석실마을 김상용 묘에서 안동김씨(장동김씨) 묘역으로 이동하는 국립민속박물관 답사팀이다. 김상용 선생의 묘에서 마을을 관통하여 마을 끝으로 가면 안동김씨(장동김씨) 묘역이 있고, 그 안쪽에 조선 8대 명당으로 불리는 김번 묘가 있다.

<석실마을 안동김씨(장동김씨) 묘역의 묘 분포도>
태사공 김선평을 시조로 하는 안동김씨 후예 중 조선시대 한양의 장동(壯洞 : 현재의 궁정동, 청운동, 누상동 일대)에 뿌리를 내려 장동김씨(壯洞金氏)라 불렸던 안동김씨(安東金氏) 12세조 김번과 그 후예들의 선영이다. 12대~16대 인물들의 묘로 부부 합장묘도 있고, 따로인 묘도 있다(밑줄을 그은 사람은 나홀로 묘). 12대 김번의 부인 남양홍씨, 13대 김생해와 부인 완산이씨, 14대 김대효와 완산이씨, 14대 김극효와 부인 동래정씨, 부인 광주이씨, 15대 김상헌 묘와 부인 성주이씨, 16대 김광찬과 연안김씨 묘이다. 12세조 김번 묘는 가장 안쪽에 따로 있다. 부인의 경우 김번 부인인 남양 홍씨만 정이품이나 종이품 부인에게 주는 '정부인(貞夫人)'이고, 나머지는 모두 정일품이나 종일품 부인에게 주는 최고 봉작인 '정경부인(貞敬夫人)'이다.

<석실마을 안동김씨(장동김씨) 묘역의 도정공신도비(좌), 동지공신도비(우)>
왼쪽은 14대 도정공(都正公) 김극효의 신도비, 오른쪽은 16대 동지공(同知公) 김광찬의 신도비이다. 용 모양의 이수(머릿돌)와 기와지붕 모양의 머릿돌이 나란히 있어서 비교하기 좋다. 이곳 묘역의 신도비와 비석은 모양이 다양하고 아름다워서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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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실마을 안동김씨(장동김씨) 묘역의 16대 김광찬과 정경부인 연안 김씨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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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헌(金尙憲) 선생 묘≫
경기도 기념물 제100호
소재지 :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 산5
조선 인조, 효종 때의 문신으로 활약한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의 묘로, 김상용의 동생이자 영의정을 지낸 김수항(金壽恒)의 할아버지이다. 선조 41년(1608)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 등을 거치며 1623년 인조반정 이후 이조참의에 발탁되고 서인 凊西派의 영수가 되었다.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이 일어난 뒤 예조판서로 청나라와의 화해를 반대하는 척화를 주장한 탓에 이듬해 강화가 이루어지자 파직되고, 인조 17년 명을 공격하기 위한 청의 출병요구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려 다음 해 청나라 심양에 압송되었다. 인조 23년에 귀국하여 좌의정이 되고, 효종이 즉위하여 북벌을 추진할 때 그 이념적 상징으로 '大老'라고 존경을 받았다. 저서로는 <야인담록>이 등이 있다.
<석실마을 안동김씨 묘역의 15대 김상헌 묘>
부인 정경부인 성주이씨 묘는 서쪽 위에 따로 있다. 이곳에 안장된 모든 이들은 12대 김번 조상이 묫자리를 잘 잡아인지 최소한 종2품 이상의 고위직 출신이지만 김상헌은 워낙 유명한 분이라 안내문이 따로 있다. 이분이 지은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라는 시조는 아직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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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실마을 안동김씨 묘역의 13대 김생해와 부인 완산이씨 합장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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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실마을 안동김씨(장동김씨) 묘역의 묘들>
확인을 안해서 확실하지 않지만 윗 사진은 15대 김상헌의 부인인 정경부인 성주이씨의 묘일 가능성이 높고, 아래는 묘역 아랫쪽에 있던 14대 김대효와 그의 부인인 정경부인 완산이씨와 정경부인 연일정씨 등의 묘이다.


<석실마을 안동김씨(장동김씨) 묘역 아랫단의 묘와 비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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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실마을 안동김씨 묘역의 14대 김극효의 부인 정경부인 광주이씨 묘>

<석실마을 안동김씨 묘역의 14대 김극효와 정경부인 동래 정씨묘>


<14대 묘 문인석과 16대 김광찬과 정경부인 연안김씨 묘>
위의 문인석은 14대 김극효와 정경부인 동래 정씨 묘, 아래는 16대 김광찬과 정경부인 연안김씨 묘로 추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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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실마을 안동김씨 묘역의 석실서원묘정비(石室書院廟庭碑)>
석실서원은 정확한 위치 추정도 어려울 정도로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철폐되었고 이 묘정비는 원래 그곳에 있었다. 이 묘정비 외에 다른 비석들(취석, 송백당유허비, 도산석실려 등)도 석실서원에 있었던 비석들이라고 한다.

<석실서원에 있었던 안동김씨 묘역의 취석(醉石)>
취석(醉石)은 ‘술에 취한 돌’이란 뜻으로 술에 취하면 집 앞의 바위에 걸터앉거나 눕곤 했다는 도연명의 고사에서 비롯되었다. 한가로운 자연 속에서의 풍류, 소박하고 욕심 없는 삶을 상징한다. 석실마을 안동김씨 묘역의 취석(醉石)은 원래 석실서원에 있었다고 하며 우암 송시열이 글을 써주었고, 김수증(김상헌의 후손)이 1672년에 비에 새겼다고 한다.

<석실마을 안동김씨 묘역의 철폐된 석실서원에 있었던 비들>
두 번째 사진 기준으로 왼쪽부터 석실서원묘정비(石室書院廟庭碑), 도산석실려(陶山石室閭), 취석(醉石), 고송오류문(孤松五柳門), 송백당유허비(松柏堂遺墟碑)이다.


<철폐된 석실서원에 있었던 비와 도정공신도비, 동지공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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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실마을 안동김씨 묘역 가장 안쪽의 김번 묘 앞>
장동김씨(壯洞金氏)라 불렸던 안동김씨(安東金氏) 12세조 김번의 묘는 안동김씨(장동김씨) 묘역 가장 안쪽에 있다. 그 앞에서 국립민속박물관 답사팀이 임찬웅 해설사님에게 설명을 듣고 있다.

<석실마을 안동김씨 묘역의 조선 8대 명당 중의 하나인 김번의 묘>
안동김씨 묘역의 묘들을 촬영하느라 조선 8대 명당이라는 김번 묘에 대한 설명은 놓쳤다. 사실은 명당이나 풍수에 관심이 없어서 쫓기는 시간에 차라리 묘를 더 보는 쪽을 택했다고 보는 게 맞지만... 평지인데다 봉분이 유난히 커서 전체적인 묘를 파악할 수 있는 뒤에서 보기를 해도 묘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주워 들은 바로는 묘 앞의 공간이 호리병 모양이었는데 그 점이 명당이란 점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김번 묘의 2개의 묘비>
지붕돌이 시각적으로 상당히 부담스럽다. 서쪽에 있던 새로운 비(왼쪽 사진)는 동쪽의 비를 다시 세운 게 아닌가 추측된다.

<뒤에서 본 김번의 묘>
묘 앞의 공간이 명당과 관련 있는 호리병 모양이다. 배산임수니 하는 다른 명당의 개념과는 좀 다른 듯하다. 부인인 정부인 남양 홍씨 묘는 안동김씨 묘역 가장 윗단에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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