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 조선왕릉 유릉(裕陵)≫
조선왕릉은 조선(1392~1897)의 왕과 왕비 그리고 대한제국(1897~1910)의 황제와 황후 73명의 무덤을 가리키는 말이다. 능은 모두 42기가 있으며, 북한에 있는 2기를 제외한 40기가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유릉(裕陵)은 대한제국 2대 황제 순종(純宗 1874~1926, 재위 1907~1910)과 첫 번째 순명황후 민씨(1872~1904), 두 번째 황후 순정황후 윤씨(1894~1966)의 능이다. 순종황제는 연호를 융희(隆熙)로 하고 기울어 가는 나라를 바로잡으려 했으나, 1910년 국권을 일제에 강탈 당하여 이왕(李王)으로 격하되었다. 1926년 창덕궁에서 세상을 떠났고, 순종의 장례일을 계기로 6·10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순명황후는 1882년(고종 19) 순종이 왕세자였을 때 가례를 올려 왕세자빈에 책봉되었고, 1897년 대한제국 선포 뒤 황태자비가 되었다. 1904년에 세상을 떠나 양주 용마산(현재 어린이대공원 부근)에 유강원을 만들어 모셨다. 1907년(융희 1) 순종이 황제가 된 후 황후로 추존되고 유강원도 유릉으로 높여 부르다가 1926년 순종황제가 세상을 떠나자 지금의 자리로 옮겨져 순종과 합장되었다. 순정황후는 1907년 순명황후에 이어 두 번째 황태자비가 되었다가 곧바로 순종이 황제가 되면서 황후로 책봉되었다. 1966년 세상을 떠나 순종과 순명황후의 유릉에 합장되었다. 유릉은 조선왕릉 중 유일하게 세 분이 합장된 능이다.
홍릉과 유릉은 숲을 사이에 두고 가까운 거리에 나란히 있다. 고종과 순종은 대한제국이 주권을 잃은 뒤인 일제강점기에 세상을 떠났으나, 두 능은 대한제국 황제릉의 제도에 따라 만들어져 다른 왕릉들과는 모습이 약간 다르다. 홍릉과 유릉의 주변에는 의민황태자(영친왕), 의친왕, 황세손 이구, 덕혜옹주 등 대한제국의 황족들과 고종의 후궁, 황족 후실들의 무덤이 모여 있다.
<남양주 홍릉과 유릉 외홍살문 유구>

<홍릉·유릉 관람시간 및 입장료>

<조선왕릉 세계유산 홍릉·유릉 표석>
조선왕릉(홍릉·유릉)은 세계 문화 및 자연 유산의 보호에 관한 협약에 따라 인류의 문화유산으로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세계유산 조선왕릉은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능(40기)으로 우리의 전통문화를 담은 독특한 건축양식과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진 신성한 공간이며 지금까지도 이 곳에서 제례가 이어져 오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다. 등재일 : 2009년 6월 30일

<남양주 홍릉·유릉 안내도>

<남양주 홍릉·유릉 입장문>

<유릉(裕陵) 안내 사진>
사진 상태도 좋고 공중촬영한 사진까지 있어서 유릉을 개괄적으로 보기에 좋다.



<유릉(황제릉)과 장릉(왕릉)의 비교 : 황제릉과 왕릉의 차이점>
첫째, 황제릉은 향로 양쪽에 6종류의 동물 석상(14마리)과 문·무석인이 있다.
둘째, 왕릉 앞에는 정자각이 있지만 황제릉 앞에는 승격된 침전이 있다.
세째, 왕릉은 능침(봉분) 앞에 석양, 석호, 석마 등의 석물과 문·무석인, 망주석, 장명등, 혼유석이 있지만 황제릉은 석물들이 향로 옆에 있기 때문에 망주석과 혼유석, 장명등만 있다.

<유릉(裕陵) 재실(齋室)>
재실(齋室)은 왕과 왕비, 황제와 황후의 제향을 준비하는 곳이다. 왕릉의 수호와 관리를 위하여 능참봉 등이 상주했으며 제례 시에는 제관들이 머물면서 제사에 관련된 모든 준비를 하던 공간이다. 능참봉의 집무실인 재실(齋室), 향과 축문을 보관하는 안향청(安香廳),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고(祭器庫), 제물을 준비하는 전사청(典祀廳)과 그 외 부속공간인 행랑(行廊)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홍살문에서 본 유릉(裕陵)>
이 부분에서 왕릉과 가장 큰 차이점은 정자각 대신 침전이 있다는 점, 신로(향로·어로) 양쪽에 동물 석상과 문석인, 무석인이 있다는 점이다. 중국 황제릉의 격식을 따른 것이다. 앞 부분이 복잡(!)한 대신 능침쪽은 봉분을 병풍석으로 두르고, 혼유석과 장명등만 설치했다.

<유릉(裕陵) 향로와 석물들, 문·무인석>
침전 오른쪽에 비각이 있다.


<유릉(裕陵) 제정(祭井)>
홍릉은 능침 쪽 비각 위에 제정(祭井)이 있으나 유릉은 홍살문 바로 서쪽 안에 있다. 보기 흉해서인지 시멘트로 입구를 발랐다.

<유릉(裕陵) 석상들과 침전>
홍릉이 유릉에 비해 가장 초라한 내용이 바로 이 석상들이다. 고종은 살아 생전에 자신이 조성한 홍릉의 완성을 보지 못해서 사후에 완성되었는데 아마 일본의 방해(황제릉이란 이유 때문에)나 금전적인 문제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에 비해 유릉은 일제가 자신들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유릉을 자발적으로(!) 조성했기 때문에 석상 만큼은 확실히 우수하다. 석물 배치는 홍릉과 같으며 바깥쪽부터 말 2기, 낙타, 해태, 사자, 코끼리, 기린, 문석인, 문석인이다.


<유릉(裕陵) 동쪽 석물과 비각, 비뚤어진 소나무>
다른 능과 달리 유릉의 이 방향 소나무들이 유별나게 비뚤어져 자랐는데 일본이 싫어서 혹은 일본인이 능을 조성해서 그렇다나?

<유릉(裕陵)의 첫 번째 말 석상 앞뒤>

<양쪽에서 본 유릉(裕陵) 석상들>
말 2기를 지나 낙타, 해태, 사자, 코끼리, 기린, 문석인, 문석인이다.



<유릉(裕陵)의 무석인과 문석인>

<유릉(裕陵) 침전에서 본 향로와 홍살문, 석상들>


<유릉(裕陵) 비각과 비>

<유릉 침전(裕陵 寢殿)과 기신제(忌晨祭)>
침전(寢殿)은 황제의 제향을 모시는 중심 건물로 왕릉의 정자각보다 격이 높으며 정면 5칸, 측면 3칸이다. 기신제(忌晨祭)는 역대 제왕과 왕후에 대한 기신제향 의식을 지칭하는 것으로 조선시대 국가의식의 규정인 오례의(五禮儀) 중 길례(吉禮)에 해당된다. 제향은 맨 위에 신위를 모셔놓고, 중간의 제상(祭床)에는 음식을 차려 놓으며, 맨 아랫단의 향상(香床)에는 향로와 향합을 올려놓는다. 유릉 제향일은 4월 25일(양력)이지만 변동될 수 있다.



<유릉(裕陵) 침전 뒤쪽과 신도>
신도는 침전 뒤 중앙에 있으며 사자가 침전과 능침을 오르내리는 통로이다.

<유릉(裕陵) 능침(봉분)쪽>
침전에서는 능침(봉분)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 국립민속박물관 답사 팀은 허락을 받고 홍릉(洪陵)만 올라갈 수 있었다.

<유릉(裕陵) 능침(봉분) 아래의 예감과 산신석>
왼쪽의 예감(瘗坎)은 제향 후 축문을 태우는 곳으로 망료위(望燎位)라고도 한다. 높고 굴뚝처럼 생긴 예감은 이곳이 유일할 것이다. 오른쪽의 산신석은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유릉(裕陵) 수복방(守僕房)>
수복방(守僕房)은 능에서 화재나 부정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지키는 수복(守僕)이 근무하는 곳이다. 홍릉에는 수라간, 수복방이 모두 있지만 유릉에는 수복방만 있고 수라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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