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백두산.압록강.고구려유적 답사 6(호산장성, 일보과, 평양고려식당)

큰누리 2012. 5. 31. 09:29

<2009. 08. 23~24. 맑음>

23일 아침은 특별히 늦잠을 자도 좋다는 허락을 가이드로부터 받았다. 그 동안의 강행군, 잘 받쳐준 날씨로 얻은 덤인 셈이다. 답사 기간 동안 일찍 일어난 덕에 일찍 눈을 떴다. 호텔 방, 목욕탕, 침대 등을 촬영하며 동생이 일어나기를 기다린다. 씻고 지정된 8시 30분에 식당으로 가서 식사를 했다. 오늘 일정은 단동의 호산장성과 일보과 조망, 북한에서 직접 운영한다는 평양고려식당에서 공연을 보며 점심을 먹으면 된다. 생각 같아선 고구려유적을 더 보고 싶지만 거리가 너무 멀다.

 

10시쯤에 짐을 꾸려서 호텔을 나섰는데 시내를 빠져나가다 압록강철교 부근에서 풍선을 주렁주렁 매단 체 퍼레이드 하는 10대가 훨씬 넘는 승용차 무리를 만났다. 가이드 말로 중국에서 결혼식은 남에게 잘 보이려는 관습 때문에 부자일수록 좋은 차, 그리고 많은 차를 동원한다고 한다. 차를 보면 신랑, 신부 부모의 재력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무리를 해서 좋은 승용차를 빌리는 경우가 많은데 고급차는 1대당 3시간 대여비가 우리 돈으로 12만원 정도라 한다. 국의 보통 월급쟁이가 한달에 40만원 정도를 받는다니 엄청난 금액이다. 어쨌거나 인생에 있어서 결혼만한 중대사가 어디 있으며 얼마나 좋은 때인가! 누군지 모르지만 행복하게 잘들 사시게!  

 

 

<단동 흠홍호텔 객실>

 

 

<결혼식 퍼레이드. 단동市> 

 

 

지척에 호산장성이 있다. 주차장에 주차하고 바로 홍예문을 지나 일보과로 향한다. 답사지를 받을 때부터 이상한 이름이 인상에 남았다. 호산장성을 오른쪽에 끼고 압록강으로 100m쯤 내려가니 一保跨란 표석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사람들이 대기 중이다. 한자를 보지 않아도 상황파악이 된다. 강에 배가 몇 척 있고 중국과 북한의 경계선인 철조망이 바로 코앞에 있다. 게다가 강폭이 5m정도? 그래서 이름이 ‘한 발짝이면 건넌다’는 뜻의 일보과로구나!

강 이쪽엔 민가 몇 채가 있지만 강 건너 북한 쪽은 나무 한 그루 없는 풀밭이다. 풀밭만 보자니 북한이 한 발짝 앞에 있다는 느낌이 반감되지만 국경으로만 따지면 분명 북한과 가장 가까운 곳이다. 

 

 

 <일보과에서 바라본 북한 쪽 국경선. 압록강>

 

 

<일보과 표석>

 

 

되돌아 호산장성 입구로 나온다. 규모는 작지만 야무져 보이는 호산장성 정상이 아찔하다. 호산장성의 고구려식 이름은 박작성이다. 성을 오르면서 주위를 보니 평야 가운데 유일하게 우뚝 솟은 산인데다 압록강과 닿아있으니 군대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봐도 군사 요충지이다.

 

성 정상 부근에서 커다란 우물까지 발굴됐다니 지리적으로나 산의 모양새 모두 완벽한 방어 요새로서 일등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중국에서 명나라 때 축조한 만리장성의 연장인 성이라며 이름도 바꾸고 고구려역사를 중국에 끼워 맞춘 것처럼 이 성도 중국화 해버렸다. 그래서 정상까지 오르는 길이나 망루 모두 검은 전돌로 말끔하게 덮어서 자연스러운 돌로 귀를 맞춰가며 쌓은 고구려 성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외양이 완전히 변한 박작성이 아닌 호산장성의 정상에 올라 탁 트인 사방을 조망한다. 자연적인 장점을 최대한 이용하여 철통같은 옹성을 쌓았던 성의 귀재, 고구려를 기리는 것 말고 할 일이 딱히 없음이 아쉬울 뿐이다. 

 

 

<호산장성(박작성 터) 입구>

 

 

 <호산장성(박작성 터) 전경>

 

 

 <호산장성 정상에서 바라본 북한과 압록강>

 

 

<호산장성 정상에서 바라본 북한과 압록강. 아래 샛강 왼쪽 끝이 일보과>

 

 

<호산장성 정상에서 바라본 중국쪽. 오른쪽 아래 맨끝이 일보과>

 

 

성곽과 키를 나란히 하는 가죽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를 찍고 주차장으로 내려오니 땡볕에 몸이 달은 일행들이 과일들 사 먹거나 쉬고 있다. 우리나라 것 반 크기의 짜리몽땅한 오이를 사서 한입 베어 무니 아삭하고 상큼해서 갈증이 싹 가신다. 중국에서 먹어본 야채, 과일을 통틀어서 오이는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오이는 욕심이 나서 잔뜩 샀다가 결국 귀국하는 배안에서 반은 억지로 먹어 치워야했다. 외국으로부터 생과일이나 동물은 반입금지라는 것을 깜빡했기 때문이다. 일행 대부분이 나와 상황이 비슷했는데 다른 과일은 어쩔 수 없이 버렸어도 오이만큼은 일순위로 먹어치울 정도로 맛이 좋았다.

 

 

<호산장성 입구 주차장의 일행>

 

 

1시 반경, 마지막 일정인 단동시내의 평양고려식당으로 향했다. 비교적 번화한 곳인데 버스에서 내려 길을 건너려니 신호등도 없고 달랑 한 줄로 그어진 횡단보도 앞을 차들이 마구 달린다. 한국처럼 보행자가 건너기를 기다리는 차는 없다. 알아서 적당히 건너는 모양인데 위험하기 짝이 없다. 빵빵거리는 경적소리는 호텔에서 잠을 잘 때도 몹시 거슬렸는데 우리와는 의미가 좀 다른, 운전자끼리 하는 일종의 사인이란다. 그러니 하루 종일 빵빵 댈 수밖에... 차라리 신호등을 더 설치하면 시내가 조용할 텐데...

 

일행 모두 평양고려식당 안으로 들어서니 그 동안 다녔던 중국의 어느 식당보다 내부장식이 세련되고 손님도 많다. 빨간 조끼에 같은 색의 미니스커트를 단정하게 입은 북한 아가씨들이 테이블 사이를 오가며 서빙을 한다. 지정된 자리에 앉자마자 나온 음식들이 깔끔하고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오징어무침, 찰떡 지짐, 고사리나물, 야채튀김, 쇠불고기, 잡채, 김치에 우거지국이 메뉴이다. 잔치 상차림엔 못 미치고 귀한 손님이 왔을 때 정성을 다해 마련한 음식 수준이다. 한 점씩 골고루 맛을 보니 정갈하고 담백하다.

모두 맛있다고 입을 모으며 식사를 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평양냉면을 먹어봐야 하는 것 아니냐’ 며 냉면을 따로 시킨다. 냉면은 부드럽고 맛이 괜찮았지만 식초와 겨자가 전혀 첨가되지 않아서 자극적인 입맛에 길들여진 사람에게는 별로일 듯하다. 식사가 끝날 무렵 서빙을 하던 아가씨들이 마이크를 들더니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 ‘꾀꼬리 같은’ 북한 사람 특유의 목소리에 부드럽게 동작까지 곁들이니 흥이 난다. <반갑습니다>와 50년대의 한국가요를 주로 불렀는데 식사 중간에 수시로 공연을 하는 모양이다.

 

손님은 중국인 반, 한국관광객 반 쯤 될 성 싶다. 단체로 지불해서 가격은 모르지만 모처럼 푸짐하고 입에 맞는 음식을 먹고 예쁜 아가씨들의 공연까지 보니 기분이 좋다. 가이드의 사전 가르침대로 손바닥이 얼얼할 때까지 박수를 보내고 식당을 나왔다.

 

 

<단동시의 평양고려식당 외관과 메뉴> 

 

 

 

<평양고려식당 공연>

 

 

   

우리의 가이드는 열혈애국 청년(!)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예민해 보였던 인상과는 달리 자신의 직업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우리에게 중국동포의 애환과 장점, 중국공산당 가입과정,  중국에서 공안의 위치, 중국의 역사와 관습 등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섞어가며 상황에 맞닥뜨릴 때마다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한, 중역사와 조선족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눈이 빛나곤 했는데 “남한은 믿음직한 아버지이고, 북한은 어머니이며 우리 중국동포는 버림받은 자식입니다. 우리를 기억해 주시고 백두산에 다시 오고 싶거든 중국쪽으로 오지 말고 기다렸다가 북한쪽으로 가 주십시오. 중국 동북3성은 남한 관광객 때문에 눈부시게 발전했습니다. 앞으로는 그 돈을 동포인 북한에 써 주십시오.”라고 비장하게 말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점심 후에 근처의 상가에 들러 쇼핑이란 걸 처음으로 했다. 복합상가인데 물건이랄 게 별로 없었다. 단동의 특산품인 옥으로 만든 소품들과 악세사리, 그리고 단동페리호로 귀국하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챙기는 참깨와 농산물 정도였다. 나도 신용카드로 참깨 5kg을 샀다. 얼마나 많이들 사는지 참깨 전용 쇼핑주머니가 따로 있었다. 단동페리호에서 본 안내문에도 참깨는 1인당 5kg만 반입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쇼핑이 끝나고 터미널로 직행해서 똑같은 루트로 배를 탔다. 다른 점이라면 입국 때와 달리 공안 두 명이 터미널에 있고 사진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고 고압적이었다는 것이다

 

 

<동항=단동국제선 터미널>

 

 

배에 올라 갈 때와 똑같은 자리를 배정받고 한숨 돌린 후 제대로 된 노을을 감상했다. 저녁 식사 후 둘러앉아 그 동안의 답사여행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다들 많이 지친데다 뱃길도 잔잔해서인지 일행 모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배의 3층 꼭대기에 올라 서울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밝은 별들을 바라보며 그 동안의 답사여행을 짚어보다 내려와 잠이 들었다.

 

24일 아침, 일찍 일어나 씻고 30분 정도 일출을 촬영한 후 밥을 먹으니 섬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이어 인천대교가 보인다. 이제 정말 한국이구나! 밤새 확실하게 자리 잡은 감기로  콧물, 기침 때문에 정신이 없다. 편안함과 섭섭함이 동시에 밀려든다. 백두산과 천지, 고구려의 고분들, 푸른 압록강 물줄기와 야트막한 북한의 가옥들, 끝없는 옥수수밭,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 그리고 일행 모두 안녕!  

 

 

<서해 일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