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백두산.압록강.고구려유적 답사 3(백두산, 천지와 소천지)

큰누리 2012. 5. 31. 09:25

<2009. 08.21. 금. 맑음>

또 다시 버스로 이동이다. 뷔페식인 호텔식당에서 입에 맞을 만한 이것저것을 식판에 담아왔는데 반은 성공, 반은 실패다. 오리 알은 우리나라의 젓갈만큼이나 짜다. 꽃빵에 야채 볶은 것을 적당히 끼운 것과 수박 2쪽으로 아침을 때웠다.

 

오늘은 얼마나 먼 거리를 이동하려나? 이번 여행의 백미인 백두산이 오늘의 코스다. 코따커에게 눈인사를 하고 버스에 오른다. 광나루님의 설명에 의하면 송강하에서 열차를 타고 이동하는 게 너무 힘들기 때문에 버스로 직접 이도백하로 간 후 백두산을 북파코스로 오른단다. 대강은 알겠는데 원래의 일정과 바뀌어서 혼선이 생긴다. 송강하를 거치는 건지 건너뛰는 건지... 어쨌거나 1년 사이에 엄청나게 좋아졌다는 도로를 이용해서 일행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인도하려는 광나루님의 배려인 것만은 확실하다.

 

얼마를 달렸는지 모르지만 배꼽시계가 사인을 보낼 무렵 점심을 먹기 위해 길가의 음식점에 내렸다. 대로만 뻥 뚫렸지 주변에 건물도 없고 다소 어수선해 보이는 이도백하 외곽인 듯하다.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밥상이 나온 걸로 보아 여행사의 단골식당인가 보다. 공기도 신선하고 큰 산들이 주변에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백두산이 가까이 있음에 틀림없다. 어떻게 하면 짬을 내어 주변의 식물을 하나라도 더 찍을까 하는 욕심에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식당 밖으로 나갔다.

식당 앞에서 백두산 돌이라며 꾀죄죄한 차림의 남자가 계란모양으로 깎은 돌을 팔고 있다. 음식은 괜찮았던 성 싶은데 마음이 다른 곳에 있어서인지 기억이 없다. 삼겹살과 야채, 만두, 닭찜?

 

화장실을 지나 식당 뒤로 가니 내 키를 훌쩍 넘는 풀과 꽃들이 무성하다. 우엉 꽃(시골 출신인 나도 꽃을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다.), 뚱딴지, 해바라기, 선갈퀴, 각시취, 큰엉겅퀴... 해바라기는 민가 주변에 의례히 있었는데 아마도 중국인들이 간식으로 씨를 까먹기 위해 심는 게 아닌가 싶다. 차창으로 스치기만 해서 아쉬웠던 이름만큼 고운 자주색의 각시취를 처음으로 제대로 찍었다.

백두산이 가까워질수록 각시취가 자주 눈에 띤다. 가을꽃은 양으로 따지자면 봄 못지않지만 사실은 식물 개체 수는 몇 안 되고 국화과의 꽃들이 대부분이다. 대신 국화과 꽃들이 무리지어 피기 때문에 봄의 화려하고 다양한 꽃들과 맞먹는 아름다움이 있다. 결실을 위해 곤충을 유인해야 하는 봄꽃처럼 화려하진 않아도 무리를 지어 꽃을 피움으로써 봄과 가을의 균형을 맞추는 셈이다.  

 

 

<우엉꽃>

 

 

<각시취>

  

 

<개미취/자원>

 

 

<금불초>

 

 

내 키를 훌쩍 넘는 꽃들과 씨름하는데 가이드 보조인 안양이 어눌한 목소리로 “언니, 빨리 빨리”하며 독촉한다.  나는 일행의 발목을 잡는 사람으로 찍혔다! 마지막으로 자두를 찍고 버스를 향해 뛴다. 중국은 엄격한 산아제한으로 한 가정 한 자녀 낳기를 추진한지 오래인데 아마 저 안孃도 그 부모에게는 금쪽보다 더 귀한 하나 밖에 없는 자식이리라. 그래서인지 넉넉한 사랑 받고 자란 밝고 귀여움이 행동 하나하나에 묻어난다. 그런데 왜 한국인을 상대로 하는 관광가이드를 장래의 직업으로 선택했을까? 한류 여파였을까?

 

이도백하의 깨끗하고 잘 정리된 집들 사이로 낡고 제멋대로인 집들이 가끔 눈에 띤다. 그러고 보니 300여km를 달려오는 동안 옥수수밭 사이에 있는 규격에 맞춘 듯 똑같은 크기에 똑같은 붉은 칠을 한 기와집들을 제외하고는 낡은 집을 본 기억이 없다. 관광객을 염두에 둔 탓일까, 아니면 단순한 개발 바람일까? 1, 2년 내에 초라하지만 정겨운 저 집들은 모조리 사라지고 말 것이다. 우리의 70년대의 새마을운동이 모든 초가집을 슬레이트로 덮어버렸듯이.

 

잔잔한 강을 따라 아담하게 펼쳐진 시가지를 지나니 백두산 진입로이다. 작년까지는 길이 비포장이라 엄청 고생했다는데 반듯한 길이 쫙 뻗어있다. 아직 개발되지 않은 현재 중국의 모습이 정감이 가서 좋기도 하고 당장 엉덩이와 허리를 짓누르는 열악한 도로 사정을 생각하면 포장된 도로가 고맙기도 하고, 이중적인 잣대질이 오락가락한다.

 

각시취와 당귀꽃, 천궁(추측임), 마타리가 도로 맨 앞에, 자작나무와 버드나무, 전나무는 뒷줄에 늘어선 좁은 1차선 도로를 따라 1시간 쯤 갔나? 백두산 입구까지 새로 포장한 왕복 1차선 도로 폭이 너무 좁다. 마주 오는 차라도 만날라치면 아슬아슬하게 길 끝으로 붙어야 한다. 실제로 돌아오는 길에 맞은편에서 한쪽 도랑으로 빠져 위태하게 기운 버스의 뒤 창문으로 곡예 하듯이 승객들이 빠져나오는 장면을 목격했다.

 

오후 2시 30분경, 드디어 백두산 입구 주차장에 도착했다. 셔틀버스를 타고 장백산 입구라 쓰인 문에 도착하니 이번엔 악명 높은 지프차가 대기 중이다. 얼마 전까지는 민간인이 운영하던 것을 지금은 국가에서 운영한단다. 정상까지 한 15분쯤 걸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꼬불꼬불한 산길을 얼마나 높은 속도로 밟아대는지 잘못하다가는 정상에 도착도 하기 전에 좌우로 쏠리는 차안에서 타박상으로 죽을 뻔 했다. 

 

주차장의 버스에서 내린 순간부터 느낀 서늘한 공기가 백두산 정상에서 지프 문을 나서자마자 돌풍까지 합세하니 애써 챙겨 입은 긴팔 옷조차 별 도움이 안 된다. 돌풍과 함께 날아드는 자갈덩이 때문에 비척이며 몇 걸음을 가려니 이번엔 입술이 파래질 정도로 춥기까지 하다. 얼마나 보고 싶었던 백두산 천지인데, 그리고 여기까지 왔는데 대충 보고 갈 수는 없지. 대기소 뒤에서 준비해간 1회용 비옷을 껴입지만 바람에 그것마저도 찢어질 것 같다. 가이드가 비옷의 아래를 묶어주니 한결 났다. 됐다, 가자!   

 

 

<백두산 입구>

 

  

부스러지는 통으로 된 바위덩어리들 사이에 놓인 계단을 밟고 천지를 향해 오른다. 그 사이에도 바람에 자갈들이 날려 얼굴로 달려드는데 완전히 따귀 맞는 기분이다. 카메라 렌즈를 최대한 보호하며 기우는 햇살 따라 명암이 바뀌는 백두산의 사면을 찍어가며 정상에 올랐다. 아, 천지다!

숨을 크게 쉬고 일단 천지, 아니 백두산의 기운을 느껴본다. 가이드 말에 따르면 우리가 복을 많이 쌓아서 천지신명께서 돌보아서 1년에 20번을 올라도 한, 두 번 밖에 볼 수 없다는 천지를 단번에 만났다고. 

장소를 옮겨가며 천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동안에도 천지는 끊임없이 색을 바꾼다. 해를 만나면 청록이나 옥빛, 구름에 가리면 감색, 바람이 불면 물보라로 하얗게 변한다. 끊임없이 얼굴과 눈으로 날아드는 자갈들을 눈물을 흘려 밀어내고 바람에 몸이 비틀거리면서도 천지와 백두산을 욕심스럽게 눈에 담는다. 백두산이 천지의 아름다운 자태를 호락호락 보여주기 싫어 심술을 부리는 것만 같다. 가장 전망이 좋은 천문봉에서 내려다보는 천지는 황홀하리만큼 아름다우면서 아찔하다. 하지만 봉우리에서는 풀 한포기 조차 눈에 띄지 않는다.

 

사진 촬영을 하는 주변을 둘러보니 온통 말뚝과 쇠사슬, 심지어는 철망까지 둘러있다. 부스러지는 돌과 수직의 절벽으로 된 천문봉의 조망 위치 때문에 관광객의 추락방지를 위해 설치한 모양인데 여간 흉하지가 않다. 다른 관광객을 피해가며 천지 사진을 몇 장 더 찍은 후 아쉬운 마음으로 이미 지프 승강장으로 내려간 일행을 쫓아 부랴부랴 내려온다. 추위와 돌풍, 아니 바쁜 일정만 아니라면 얼마든지 느긋하게 조망할 텐데...

아, 천지야. 언제 우리 다시 만나냐? 그래도 그 아름다운 모습을 내게 잠깐이라도 보여줘서 정말 고맙다. 너와의 짧지만 아름다운 만남을 짧은 글로는 표현할 수가 없구나!   

 

 

<천문봉에서 바라본 천지>

 

 

 

 

 

 

 

<매표소 쪽에서 바라본 백두산>

 

 

난폭한 지프로 하산, 입구에서 방향을 틀어 이번엔 온천광장을 들렀다 다시 장백폭포로 향한다. 사진에서 본 것보다 물줄기가 훨씬 큰 장백폭포를 향해 오르는데 계단 양쪽으로 투구꽃, 미역취, 분홍바늘꽃, 분취, 촛대승마, 박새, 큰엉겅퀴, 바디나물인지 천궁인지 모를 흰 꽃이 나를 유혹한다. 시간이 되는대로 몇 컷을 찍지만 산중이라 빛이 모자란다. 후레시가 터지면 터지는 대로 바람에 초점이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찍는다. 아쉽지만 어쩌랴! 일정대로라면 장백폭포 위쪽의 계단을 40분 정도 올라 천지에 손을 담궈야 하지만 중국정부의 갑작스런 출입통제로 장백폭포를 조망하는 선에서 만족하고 발길을 돌린다.

 

 

<투구꽃>

 

 

 

<큰오이풀>

 

 

<천궁으로 추측>

 

 

하늘 위로 해는 남아있지만 우리가 있는 백두산 입구 쪽은 지대가 낮아 이미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더 늦기 전에 마지막 코스인 소천지를 가야한다.

소천지는 중국 쪽에서 <장백산>이라고 커다랗게 누각을 세운 바로 아래에 있다. 입구라 쓰인 곳에서 꼬마 다리를 건너자마자 나무의 신사로 불리는 자작나무의 새하얀 줄기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짙은 녹색의 숲속에서 하얀 줄기가 더욱 빛을 발한다. 백두산의 장대함과는 또 다른 장관이다. 백두산 정상이 아버지라면 소천지는 그 아버지의 사랑스러운 막내딸로 비유할 수 있을까?

 

점점 어두워지는 날 때문에 소천지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자작나무 사이 길을 10분 쯤 걸으니 소천지가 있다. 자그마한 호수에 반영된 하얀 자작나무 줄기들이 너무 예쁘다. 그래서 다른 이름이 은환호인가보다. 하지만 호수 한쪽의 얕은 동굴에 자리한 화려한 중국옷을 입은 무속신앙대상으로 보이는 애매한 조형물이 은은한 소천지의 아름다움을 방해한다.     

 

 

<소천지/은환호> 

 

 

 

<소천지 출구쪽 계곡>

 

 

<소천지>

 

 

 

30분 만에 내려오라는 가이드의 명령을 어기고 주춤거리는데 광나루님이 ‘좀 늦게 내려와도 된다’ 며 자리를 뜬다. 어두워져서 인적이 끊긴 소천지를 동생과 호젓하게 한 바퀴 돌아 나오는 길에 산책코스라 쓰인 곳에 들어서니 보라색 투구꽃이 지천에 널려있다. 이미 백두산에 진입하면서부터 눈에 많이 띄었던 꽃이지만 일부러 심기라도 한 것처럼 무리를 지어 핀 게 둘이 보기에 너무 아깝다. 저렇게 꽃이 아름다운 식물에 독이 있다니...

 

사진을 찍다가 동생마저 놓쳤다. 혼자 입구로 나오는데 출구 팻말이 보인다. 가만, 나가는 건 출구로 해야지? 되돌아서 아래를 향해 난 출구로 가는데 나무계단이 말끔하게 설치되어 있고 나무나 꽃 앞에는 중국식 이름으로 팻말이 세워져있다. 백두산 지역을 돌면서 느낀 거지만 중국은 백두산을 본격적으로 <장백산관광경구>로 지정하고 그에 따른 투자도 엄청나게 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만의 백두산이 아니듯이 중국만의 장백산도 아닌데...

북한은 폐쇄된 사회로 인해 백두산과 고구려유적에 관해서 너무나 많은 것을 잃은 건 아닐까? 백두산관광도 장백산관광으로 중국이 선점했고, 고구려유적 또한 마찬가지이다. 중국은 동북공정을 내세우며 고구려 역사까지 중국사로 편입시키려 하고 있는데 중국과 북한이 중첩될 수밖에 없는 이 두 부분에 대해서 늦었지만 북한은 지금부터라도 제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 아닌가?

 

동생도 일행도 모두 놓치고 출구로 나가니 하산하는 셔틀버스가 막 출발하려 한다. 광나루님으로 보이는 분이 마지막으로 타기에 뛰어가니 낯선 무리들이 버스 안에서 헐떡이는 나를 빤히 주시한다. 난감해하는 나를 보고 가이드로 보이는 여성이 빨리 타란다. 일행이 있어서 안 된다니까 가이드가 누구냐, 자기가 전화를 걸어 연락하겠다며 주춤거리는 나를 몰아세운다. 그래, 일행을 찾아 입구 쪽으로 되돌아가기엔 너무 늦었다. 일단 타고 연락을 하자.

여행사 목걸이의 힘과 친절한 다른 팀 가이드의 도움으로 우리 팀 가이드와 연락이 닿아 다행히 입구 주차장에서 일행을 만날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혼자 처진 나 때문에 일행이 모두 걱정을 했고 가이드는 내가 길을 잃은 줄 알고 일행을 먼저 보내고 혼자 소천지로 돌아갔단다. 모두, 특히 가이드에게 미안하다. 

 

오늘 묵을 백화림호텔은 백두산 주차장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 산속이라 호젓하긴 하지만 내부시설이 너무 낡았다. 목욕탕의 물을 트니 물 색깔이 붉고 쇠 냄새가 심하게 나는데다 물줄기가 약해서 일행들이 여기저기서 투덜댄다. 하지만 백두산이니 만큼 수질은 최고다. 물을 끓이는 시설이 없어서 골동품 같은 보온병에 끓는 물을 담아서 방마다 일일이 나눠준다. 하지만 시설만큼이나 오래된 그 보온병은 보기와 달리 성능이 대단했다. 아침에 그 병의 물로 커피를 타 마셨으니까.

 

물김치, 두부튀김과 계란찜(이 둘은 중국 모든 식당의 공통음식인가 보다!), 잡채, 돼지고기와 마늘종 볶음의 저녁식사는 특별히 기억에 남는 맛이 없다. 오랜 시간의 버스이동에 따른 피로, 백두산 천지와 소천지를 봤다는 뿌듯함, 가을 같은 쌀쌀한 날씨, 그리고 무엇보다 내일 새벽 4시 반에 기상해야 한다는 부담에 다들 일찍 잠이 들었다. 

 

 

<백화림호텔에서 저녁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