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국민약골 경로부대의 경주 남산완전정복 3일차-2

큰누리 2012. 5. 31. 13:14

2009. 12. 27. 경주 남산완전정복 3일차-2

칠불암을 되돌아 나와 20여분 만에 하산을 해서 다음 코스인 미륵곡 보리사지의 석불좌상을 보러 차로 이동하다. 석축 비탈길을 올라 으리으리한 새 대웅전을 지나니 삼성각 옆 왼쪽 끝에 불상의 옆모습이 보인다. 우리 뒤에 초등학생 남매를 앞세우고 부부가 따라오는데 남매의 공중도덕 매너가 말이 아니다. 절과 그 앞의 몇 채 안 되는 인가를 지나면서 인기척이라곤 없었는데 두 꼬마의 떠드는 소리가 적막을 깨며 감상마저 방해한다. 하지만 그 부모는 제재할 기미가 전혀 없다. 불상 촬영을 하는데도 불상 앞에서 어찌나 정신없이 떠들고 오락가락하는지 비켜달라는 양해를 구했는데도 불상 사진에 그 꼬마들이 유령처럼 몇 컷인가 찍힌다. 

 

석굴암 본존불보다 조금 더 근엄한 석조여래좌상은 연화대좌까지 보존상태가 완벽하다. 남산의 불상 중에서 가장 보존상태가 좋다고 한다. 배 모양의 광배 중간을 한 바퀴 둘러 작은 불상들이 부조되어 있고 광배 뒷면에 약사여래좌상이 선각된 점이 독특하다. 불상 뒤쪽에 비석 지붕 같은 오래 된 돌이 몇 개 쌓여 있는데 용도를 모르겠다. 하긴, 그 동안 경주 남산을 돌면서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다듬은 돌과 무늬가 있는 바위 파편들을 하나, 둘 보았는가? 자비로운 부처님의 표정 때문인지 완전한 모습 때문인지 꼬마들의 잡음에도 불구하고 여느 유적보다 기분 좋게 미륵곡 보리사지 석불좌상을 만나고 다음 코스인 불곡 석불좌상을 보러 가다.

 

 

<경주 남산 미륵곡 보리사지 석불좌상> 

 

 

<경주 남산 미륵곡 보리사지 석불좌상> 뒷면의 약사여래상

 

 

보리사지 석불좌상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남산 불곡 석불좌상은 현지인들에게 할매부처로 불리는 7세기 초의 작품이자 남산에서 가장 오래 된 불상이다. 바위를 0.9m 파서 감실을 만든 후 새긴 크지도 작지도 않은 불상이다. 부처님이라기보다 반들반들해진 얼굴과 둥글둥글한 전체적인 모양이 후덕하고 품위 있는 대가 집 마나님 같기도 하고 다소곳한 여염집 아가씨 같기도 하다. 왜 할매부처라 불리는지 알만 하다.

불상을 보는 잠깐 사이에 해가 구름 사이로 들락거려 빛에 따라 변하는 불상의 음영을 고루 볼 수 있었다. 이번 답사에서 감실 불상은 처음이다. 벼랑 끝에도 불상이나 탑을 조성한 신라인들이 왜 감실 불상은 남산에 조성하지 않았는지 잠깐 의문이 든다.

 

 

<경주 남산 불곡 석불좌상, 일명 할매부처> 

 

 

다음은 이번 답사의 마지막 코스인 탑곡 마애조상군이다. 이곳은 몇 년전 건강이 나쁠 때 어렵사리 올랐다가 디카 배터리가 방전되어 단 1장도 촬영하지 못한 씁쓸한 추억이 있다. 커다란 타원형의 바위에 새긴 많은 내용들을 당시엔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아름다운  색깔을 띤 남쪽 바위 불상들이 어렴풋이 기억에 남았다.

산 입구의 계곡 위에 옥룡암이 있고 그 왼쪽 뒤로 탑곡 마애조상군이 있다. 대웅전과 전각이 기역자 형태로 된 최근에 지은 절 치곤 조촐한 편이다. 이번에 돌아본 유적지마다 탑이나 불상은 따로 한 쪽에 노출되어 있고 그 유물들이 원래 있었던 암자나 절터에는 의례 번듯하고 화려한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목재로 지은 절이 시간이 지나면서 화재로 소실되거나 무너지는 건 당연지사지만 새로 지은 번듯한 건물들 때문에 우리가 보고자 하는 유물이나 유적은 뒷방 늙은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새로 지은 번듯한 절도 뒷방 늙은이 같은 유적의 유명세에 힘입어 지었을 텐데...

 

옥룡암 쪽에서 보아 정면(북쪽) 바위 면이 가장 넓다. 석가여래상 아래에 양쪽으로 그려진 사다리 같은 것을 범종이라고 믿었는데 이번에도 틀렸다. 처음엔 사다리로, 이번엔 범종으로... 정답은 9층과 7층의 목탑이다. 그 독특한 목탑 그림 때문에 처음 이 곳을 찾았을 때 마애조상군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반대편(남쪽)의 돋을새김을 한 삼존불의 붉은 색 바위도 불상 못지않게 아름답다. 나는 작품 외의 주변상황, 특히 단조로운 회색 바위에 다른 색이 섞여있을 때 느껴지는 시각적 효과에 대해 호의적이다. 환조로 제작되어 바위 밖에 홀로 서 있는 여래상은 마모가 심하다. 기타 동쪽의 불상들과 서쪽의 버드나무와 대나무 사이의 여래좌상 등 참으로 많은 내용들이 파노라마처럼 그려진 바위이다. 등장인물이 34명이나 된다고 하니 자연석에 이렇게 많은 내용과 도상들을 표현한 작품도 흔치 않을 것이다.

 

 

<경주 남산 탑곡 마애조상군> 북쪽면

 

 

<경주 남산 탑곡 마애조상군> 동쪽면1

 

 

<경주 남산 탑곡 마애조상군> 동쪽면2

 

 

<경주 남산 탑곡 마애조상군> 남서쪽면

 

 

<경주 남산 탑곡 마애조상군> 남쪽면1

 

 

<경주 남산 탑곡 마애조상군> 남쪽면2

 

 

<경주 남산 탑곡 마애조상군> 서쪽면

 

 

드디어 남산을 완전정복 했다! 태어나서 한꺼번에 이렇게 많이 산을 탄 것도 처음이고 불상을 많이 본 것도 처음이다. 그것은 광나루님을 제외한 일행 모두 그렇다고 한다. 첫날은 마음 한편에 ‘이렇게 힘들어서야 어떻게 나머지 이틀을 견딜 것인가’하는 걱정을 했고 심지어는 따라나선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결국 발목 부상으로 아라비카님은 마지막 날 산행을 포기하고 박물관으로 갈 수 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좋았다고 한다.

사흘을, 그것도 자칭 국민약골, 혹은 경로부대로 불린 멤버들이 별 탈 없이 답사를 마쳤으니 각자 그 감개무량함을 말로 할 수 없을 것이다. 마지막 코스인 탑곡 마애조상군을 보고 내려올 때는 인상에 남는 유적을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 정도였다. 

 

천년사랑님은 불자로서, 나머지 멤버는 문화재 답사자로서 각자 입장은 달라도 평생 기억에 남을 답사였던 점은 분명하고 모르는 사람끼리 만나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었던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소득이다. 길도 없는 깊은 산 중의 유적을 자기 동네처럼 안내를 한 카페지기 광나루님의 열정도 대단하다. 경주 답사는 4번째라는데 다음에 다시 오더라도 난 가이드가 없으면 안내판만 보고서는 찾을 자신이 없다. 다음에는 식물을 주제로 해서 경주 남산을 꼭 다시 찾고 싶다.

 

오후 2시에 공식적인 경주 남산 완전정복은 끝났다. 4시 10분 버스로 군산으로 돌아가야 하는 아라비카님과 경주국립박물관에서 합류하여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갔다. 경주에 들러 처음으로 간 한정식당 부성식당으로 가기로 전원 합의를 봤다. 그 동안 쌓인 친분과 고마움 때문에 한턱 쏘겠다는 아라비카님으로부터 기분 좋게 점심을 얻어먹고 시외버스 터미널로 바래다 준 후 광나루의 목표 중의 하나라는 금척리 고분군과 월성 용명리사지 삼층석탑으로 갔다.

 

금척리 고분군은 경주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건천읍에 있는데 집안의 고구려 고분처럼 일대 장관이다. 왕족이나 귀족들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50여기의 무덤군으로 고분군 사이를 도로가 관통하고 있다. 무덤 하나하나의 규모는 고구려의 산성하 무덤떼와 비슷하지만 느낌은 많이 다르다. 더 둥글둥글하고 친근감이 있다고 할까? 크기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기단이 없는 둥근 봉분이다. 경주 시내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왕릉과 느낌이 사뭇 다르다. 답사 사흘 동안 포근하고 맑던 날이 갑자기 흐려지더니 강풍이 불기 시작한다. 잠깐 동영상 촬영을 하는데 춥고 바람이 심해서 오래 버티기 힘들다. 

 

고속도로를 타기 전 마지막으로 월성 용명리사지의 3층 석탑을 보러 갔다. 누추한 민가 몇 채가 있고 깔깔거리는 아이들과 어른이 보이는 마을 어귀 밭에 있는 전형적인 통일신라 양식의 탑이다. 그 탑을 마지막으로 귀경길에 올랐다.

 

 

<경주 건천읍 금척리 고분군>

 

 

<월성 용명리사지 3층 석탑>

 

 

차 안의 라디오에서 서해안에 폭설이 계속 내리고 서울은 영하 몇 도로 꽁꽁 얼어붙었다가 이제는 폭설까지 내린다는 뉴스가 들린다. 일행들이 폭설로 길이 막힐 것을 염려하는 휴대폰 전화를 받는 걸 보니 비로소 서울로 가는구나, 길이 막히면 어쩌나 하는 현실이 다가온다. 1시간 여를 달리니 어두워진 차창 양쪽으로 눈보라가 흩어진다. 피곤할 테니 한숨 자라는 광나루님의 말에 누구도 눈을 붙이지 못한다. 답사에 대한 여운 반, 눈길에 대한 걱정 반일 것이다. 서서히 차량 흐름이 느려지더니 결국 2시간 반 쯤 지난 지점에서 눈이 본격적으로 내리고 길이 막히기 시작한다. 그 뒤론 주차장이 된 고속도로...

 

 4시 10분경에 월성을 떠나 사당역에 12시 넘어 도착했으니 휴게소에서 잠깐 쉰 시간을 포함해 8시간 동안 차안에 갇혀 있은 셈이다. 운전대를 잡은 사람의 고통이야 말해 무엇 할까? 고속도로를 벗어나니 쌓인 눈 때문에 아예 차선조차 없다. 혼자 떨어져서 멀리 가야하는 나를 걱정하는 광나루님과 천년사랑님을 보내고 사당역에 내리니 사태가 심각하다. 

지하철은 이미 끊어지고 드문드문 다니는 버스는 아예 불을 끈 채 지나친다.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손님을 골라 태우는 택시를 잡으려고 30여분을 헤매다 운 좋게 집 근처가 회사인 택시를 만났다. 원래 예정지인 강남역에서 내렸더라면 오늘 과연 집으로 들어올 수 있었을지, 들어왔더라도 5만원 이하의 택시비로 해결을 할 수 있었을지 전혀 가늠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집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1시 20분. 정말 즐거운, 그리고 평생 기억에 남을 답사였다. 그래서 힘들었던 귀가 길도 팁으로 넘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