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국민약골 경로부대의 경주 남산완전정복 2일차-2

큰누리 2012. 5. 31. 13:10

<남산 용장사지 유적(용장사곡 삼층석탑, 용장사지 마애여래 좌상, 용장사지 삼륜대좌불)>

 

 

   2009. 12. 27. 맑음

<경주 남산 배리 삼존불 앞의 이름 모르는 열매>

 

 

답사 내내 비슷한 불상의 호칭과 지명 때문에 애를 먹다. 오늘 답사지는 표지판에는 삼릉이라고 적혀있는데 계곡이 깊어 여름에도 찬 기운이 돌아 냉골이라고도 한단다. 종교와 관련한 문화재는 문외한인데다 비슷비슷한 불상과 많은 지명들 때문에 더욱 혼란스럽다. 같은 삼릉계곡에 있는 데도 어느 것은 삼릉계, 다른 것은 삼릉계곡이라 적혀있고 같은 유적인데도 부처골, 불골 하는 식이다.

 

이어 지척에 있는 삼릉계곡 선각육존불을 보다. 돋을새김을 하지 않고 선으로만 2개의 바위에 그렸다. 왼쪽 바위에는 입상 본존불을 좌우에서 앉은 보살이 보좌하고, 오른쪽의 바위는 반대로 앉은 본존불을 좌우에서 선 보살들이 보좌하는 형태인데 왼쪽 바위의 그림이 훨씬 눈에 잘 들어온다. 오른쪽을 석가삼존이라 하고 왼쪽을 아미타삼존이라고 한다.

종교, 특히 불교에서 부처님이나 보살의 호칭은 내게 너무 어렵다. 힌두교와 얽혀 아바타까지 염두에 둔다면 머리에 지진이 일어난다. 바위 위로 올라 오른쪽 석가삼존불을 보호하기 위해 누각을 세운 흔적을 확인하다.

 

 

<경주 남산 삼릉계곡 선각육존불>

 

 

20분쯤을 올라 보물로 지정된 경주 남산 삼릉계 석불좌상을 보다. 하체와 머리 윗부분을 제외하고 상당 부분을 복원해서 천년이 넘은 유물이 아니라 최근에 조성한 불상 같다. 연화대좌와 받침대는 온전한 편이고 광배도 윗부분을 제외하고는 보존 상태가 좋다. 안내 책자에 소개된 모습이 코가 찌그러지고 납작해서 특별히 기억에 남았다. 

복원된 상태로 보니 표정은 근엄하고 몸체는 원만하다. 정교하고 아름다운 광배와 돌로 높이 단을 쌓아 단을 만든 후 불상을 안치한 장소가 인상적이다. 파손된 유물을 보물로 지정하는 범위에 대해 의문이 들게 한 작품이다.

 

 

<경주 남산 삼릉계 석불좌상>

 

 

1시 10분경 삼릉계곡 선각여래좌상 앞에 이르다. 얼굴만 돋을새김을 하고 나머지는 선각을 한 좌상이다. 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정한다는데 그래서인지 남산에서 만난 다른 불상들과 생김이 많이 다르다. 밋밋한 얼굴의 미완성 작품이랄까? 내 눈에는 불상보다 배경의 바위가 솔직히 더 예술적이다. 불상이 있는 아래쪽으로 수평으로 갈라진 바위가 마치 알리바바와 도둑에 나오는 ‘열려라, 참깨!’의 동굴 입구 같다.

 

 

<경주 남산 삼릉계곡 선각여래좌상>

 

 

삼릉계 석불좌상 옆으로 되돌아 나와 시내를 건너 다음 코스로 올라가다 냇가 옆에 우뚝 선 바위에서 삼릉계 선각여래상을 발견하다. ‘지도상으로 이 위치 쯤 되는데...’라며 안내 책자를 꺼내 두리번거리는 광나루님 어깨 너머로 책자를 보니 바로 옆 개울 건너의 바위와 모양이 똑 같다. 자세히 보니 희미하게 선각한 부처의 머리와 어깨선이 보인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이 삼릉계 선각여래상을 찾는 것이 광나루님의 이번 답사 목표 중의 하나였단다. 새로운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호기심과 뚝심이 광나루님이 이 일을 계속하는 중요한 원동력일 것이다. 본인이나 가족에게는 힘든 일이지만 이런 분이 있어서 문화가 유지되고 문화재도 보호되는 게 아닐까 다시금 생각하다. 

하지만 나는 이 양반을 따라나서기만 하면 구박을 받는다! 일 욕심이 많은 분이라 빨리 따라줘야 하는데 건강이 부실한데다 사진까지 찍어야 하는 나는 항상 ‘문제아’이자 ‘요주의 인물’이다. 내가 이 양반과 함께 하면서 지난 1년간 받은 구박은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한테 받은 구박을 다 합쳐도 모자란다.ㅠㅠ... 그래서 가끔은 섭섭할 때도 있지만 일에 대한 열정과 사심 없는 모습을 보면 섭섭함도 묻히고 존경스럽다.

 

 

<경주 남산 삼릉계 선각여래상>

 

 

다음 코스인 상선암은 10분 거리지만 경사가 만만치 않아 힘이 들다. 단촐한 요사채 옆의 상선암으로 오르는 길목에서 대책 없이 누워있는(!) 선각보살입상의 파편을 보다. 원래 크기가 5~6m로 추정되는 대형 입상인데 바로 위의 바위에서 떨어진 것은 아닐까? 옷 주름만 흐릿해서 안내판이 없다면 그냥 바위조각으로 보기 십상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요사채 장독대에 올망졸망 붉은 플라스틱 통을 엎어 놓았다. 항아리 대용인 모양인데 위, 아래 모두 플라스틱인 통 안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

 

 

<경주 남산 삼릉계 선각보살입상>

 

 

10분도 안 되지만 험한 산길을 올라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앞에 이르러서는 대실망이다. 사진으로 본 마애석가여래좌상은 크기부터 사람을 압도했고 앞을 향해 팔을 벌린 듯한 모습이 모든 중생을 포용할 것처럼 넉넉했다. 그런데 얼마 전 불상 위의 바위가 굴러 떨어져 보수를 하느라 장막을 쳐놓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제대로라면 남산 전체를 통틀어 가장 크고 멋진 불상일 텐데 아쉽다. 출입금지 표지를 무시하고 장막을 넘어 들어갔지만 워낙 커서 턱과 콧구멍 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쉬움을 안고 나오다 조금 떨어진 바위에서 보니 장막 사이로 반쯤이나마 그 모습을 볼 수 있어 조금 위로가 된다. 표정이 석굴암 본존불과 비슷하다.

 

 

<경주 남산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삼릉계곡(냉골)은 불교 유적이 가장 많이 있는 곳이다. 볼 게 많으니 어제보다 몸이 덜 고달프다. 보는 재미에 빠져 그렇기도 하지만 유적을 보는 동안 지친 몸이 숨을 돌리는 것이다. 이후론 정상부근이라 삼릉계곡의 풍경과 멀리 내려다보이는 경주 시내를 다소 느긋하게 조망하면서 상사바위를 지나 금오봉으로 향하다.

 

30여분 후에 삼화령에 있는 연화대좌에 도착하다. 절벽 위의 통으로 된 거대한 바위에 새긴 연화대좌이다. 탁 트인 조망에 정교하면서도 거대한 그 대좌 위에 앉았을 부처님의 모습이 자못 궁금하다. 일제강점기 때까지만 해도 하반신만 남은 불상이 이 위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기둥을 꽂은 구멍만 보이고 말끔하니 추측불가다. 연꽃이 늘어진 모습도 자연스럽고 남아있는 형태도 완벽하다. 부처님이 앉았던 자리만으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은 경주 남산 유적이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경주 남산 삼화령 대연화대좌>

 

 

삼화령을 다시 지나 오늘 답사의 피크라는 탑상골의 용장사지를 향해 내려가다. 가장 위에 있는 용장사곡 3층 석탑은 절벽 위에 있어서 사진발이 유독 잘 받는다. 하늘에 떠 있는 듯 역광으로 보이는 탑이 수려하다. 신라인들은 산 속의 절에 탑을 조성할 때 배경까지 고려한 걸까, 아니면 위험한 곳에 불사를 해야 더 효험이 있다고 생각한 걸까? 늠비봉의 5층 석탑이나 용장사곡 3층 석탑 모두 바위를 다듬지 않고 그대로 위에 탑을 세웠는데 그 또한 신라인들의 자연을 최대한 살린 건축기법인 듯하다.

 

탑보다 아래에 있는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은 규모는 작지만 돋을새김한 상체가 무척 안정되어 보인다. 마애여래좌상 앞의 특이한 남산 탑상골 용장사지 삼륜대좌불은 뒷모습부터 본 까닭에 타이어를 3개 포개 놓은 걸로 착각했다. 둥근 공과 타이어를 번갈아가며 쌓아놓은 것 같다고 할까? 사진으로 이미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맨 위의 물체(?)가 무언지를 몰랐다. 앞에서 보니 머리를 잃은 불상이다. 맨 위의 타이어 같은 받침대는 연꽃으로 곱게 장식이 되어있고 그 위 불상의 단정한 매듭과 여러 겹으로 옷 주름이 무척 아름답다. 머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안정된 자세와 아름다움이 어느 불상에 뒤지지 않는다. 절대 잊지 못할 독특하고 인상에 남는 대좌불이다.

 

그 아래로 험한 길을 더 내려가서 탑과 삼륜대좌불이 저 멀리 위로 끄트머리를 보이는 지점에 용장사지가 있다. 용장사는 용장골에서 가장 큰 절이었고 매월당 김시습이 은거하며 금오신화를 집필한 유서 깊은 절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대밭 앞의 자그마한 빈터일 뿐이다. 용장사지에서 내려오다 만나는 예쁘장한 다리는 김시습의 법호를 딴 설잠교이다. 그 다리를 끝으로 아름다운 용장사 관련 유적들이 끝난다.

 

 

<경주 남산 탑상골 용장사곡 3층 석탑>

 

 

<경주 남산 탑상골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

 

 

마애여래좌상 옆의 <경주 남산 탑상골 용장사지 삼륜대좌불>

 

 

<경주 남산 용장사지에서 올려다본 용장사곡 3층 석탑과 용장사지 삼륜대좌불>

 

 

<경주 남산 탑상골 용장사곡 설잠교> 

 

 

설잠교를 지나 오른쪽으로 꺾어 올라가면 용장사지로부터 30여분쯤 떨어진 곳에 머리를 잃은 절골 약사여래상이 앉아있다. 주변은 어두워지는데 외진 곳에서 만난 목 없는 허연 불상은 자비심을 느끼기에 앞서 무섭다. 뒤처진 걸음이라 일행이 모두 내려온 뒤에 혼자 불상을 보자니 더욱 그렇다. 사각형의 대좌도 멀리 떨어진 곳에 남아있고 큰 절이 있었던 곳이라는데 오래 머물기가 부담스러워 바로 자리를 떴다. 

절골 약사여래상과 아주 비슷한, 머리가 없는 석불을 어제의 마지막 코스인 약수골 마애대불 아래에서도 봤다. 답사의 마지막 코스마다 머리 없는 좌불을 만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경주 남산 절골 약사여래상> 

 

 

어둑한 산 속을 벗어나니 붉은 석양이 여유 있게 남아있는 마을이다. 냇가를 따라 양쪽으로 들어선 집들, 하늘 여기저기로 어지럽게 이어진 전선들을 보니 이틀, 정확히 하루 한 나절의 답사를 무사히 마쳤구나 하는 안도감과 자부심이 솟는다. 잘했다, 힘든데 참고 견디니까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지? 평생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유물들을 어디 가서 또 만날 수 있겠어?

 

마을 끝, 정확히 용장골 입구에 있는 김종대 Art 공방 마당의 퉁방울눈 장승을 감상하며 내려와 광나루님의 추천하는 회덥밥집으로 향하다. 근처에서 현재 발굴 중인 황성동 고분을 찾았는데 현대적인 건물 틈에서 파란 비닐로 대강 씌우다 만 돌 축대 같은 것을 보자니 고분이라는 느낌보다 쓰레기장 같다.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인데 어떻게 고분이란 걸 알았는지 궁금하다. 경주는 천년 유적지라는 특성 때문에 함부로 건물을 지을 수 없고 각종 규제가 심해 심한 경우 공사를 하다 시원찮은 유물 부스러기가 나오면 제재를 받을까봐 덮어버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경주 토박이인 지인이 한편으로는 유적, 유물에 대한 자부심을, 다른 한편으로는 그 때문에 개인적으로 받는 제약에 대해 불만을 터트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유물도 보존하고 현지인들의 삶도 어느 정도 보장할 대안은 없는 걸까?

 

추천 받은 집 답지 않게 에미 성 애비 성도 없는 회덥밥을 먹으며 내내 한 생각이다. 회덮밥은 별로이고 매운탕은 맛있는 그 수정횟집, 뒤틀린 나무 가지와 나무를 자연스럽게 이용한 실내장식이 자기 색깔이 분명해서 좋다.

 

 

<발굴 중인 경주 황성동 고분>

 

 

<나무와 가지를 이용한 실내장식이 독특한 수정횟집>

 

 

오늘은 예정보다 답사가 일찍 끝났지만 온천욕을 하기에는 시간이 빠듯하다. 온천욕은 내일 새벽으로 미루고 간단히 씻은 후 우리 방에 모여 한잔씩 했다. 그 동안 더 가까워져서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다. 나이가 가장 많지만 마음이 순수한 천년사랑님은 ‘이렇게 마음이 맞는 일행은 처음이다, 같은 멤버로 다시 여행을 꼭 가고 싶다’고 한다. 어제 운동화를 신고 산을 타느라 고생한 아라비카님은 발목을 삐끗했는지 많이 고통스러워한다. 동작이 굼띠다고 우리에게 핀잔을 준 광나루님이 밤에 밖으로 나가 파스를 사서 내민다.

오늘은 답사 내내 어제보다 ‘아이고’ 소리가 훨씬 잦아졌고 그것도 나 혼자가 아니라 일행 모두가 그랬다는 것이다.^^ 차라리 골골한 내가 더 생기를 찾았다고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