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국민약골 경로부대의 경주 남산완전정복 3일차-1

큰누리 2012. 5. 31. 13:12

남산리 삼층석탑

 

 

2009. 12. 27. 맑았다 눈 옴

숙소에서 짐을 꾸려 나오다. 오늘은 일정에 다소 여유가 있다고 특별히(!) 8시 집합이다. 숙소 근처에서 아침을 먹고 오늘의 주 코스 입구에 있는 서출지로 가다. 여름의 화려한 연꽃과 배롱나무 꽃은 볼 수 없지만 말라버린 연잎과 정자가 어울려 나름대로 운치가 있다. 開見二人死 不見一人死(열어서  보면 두 사람이 죽고, 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

 

다음은 바로 곁의 남산리 삼층석탑이다. 얼핏 같아 보이지만 동, 서 두 탑이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처럼 크기와 양식이 다르다. 서탑의 5층의 지붕돌 아래에서 처음으로 빗물 홈을 찾다. 동탑은 모전석탑이고 서탑은 일반 석탑 형식인데 기단에 팔부중상을 새겼다. 석탑은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양식이다. 닮은 듯 서로 다른 탑이 인상적이다. 탑 사이에 연꽃 모양의 받침대 위에 있던 비석은 뭐였더라? 자세히 볼 걸...

 

 

<경주 남산 입구 서출지>

 

 

<경주 남산리 3층 석탑>

 

 

초라한 민가 사이의 골목을 지나고 대궐을 방불케 하는 솟을대문을 지나니 새하얀 염불사지 쌍탑이 기다린다. 탑이 너무 말끔한데다 뒤의 으리으리한 한옥을 보니 ‘저게 어떻게 유적인가?’라는 의문이 든다. 나중에 사진으로 확인해 보니 남아있는 탑의 일부에 새로 덧대서 복원한 것 맞다. 탑이나 건물 모두 깨끗하니 오해할 만하다.

탑 뒤 한옥엔 염불사란 간판이 붙어있고, 탑 앞의 표석엔 남산사라 쓰여 있다. 이건 또 뭐지, 남산사야 염불사야? 으리으리한 새 한옥 뒤쪽엔 박정희대통령 스타일의 한옥이 있다. 모든 것을 다시 손 본 모양인데 그 어느 것 하나 어울리지 못하고 따로 논다. 

 

 

<경주 남산 염불사지 쌍탑>

 

 

나무에 남아있는 사과를 감으로 착각했던 그 과수원을 지나 남산으로 올라가다. 왼편에서 ‘음메’ 하는 소 울음소리가 계속 들린다. 10시가 넘었는데 아직 밥을 못 얻어먹었나? 그 유명한 경주 한우를 이런 시 외곽에서 키우나보다.

 

오르는 중에 간혹 일반인 묘를 만나다. ‘불법으로 매장하지 말라’는 현수막을 남산에서 몇 번 봤는데 실제로 남산을 3번 오르내리는 동안 일반인 묘는 거의 만나지 못했다. 남산일원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서 그런 건가, 아니면 땅 속에 묻혀있을 문화재를 염두에 둔 건가? 경주의 지인이 몇 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가풍이나 유지인 점으로 미루어 넉넉한 유택을 마련할만 한데 화장을 하는 걸 보고 놀란 적이 있다. 돌아가신 분 연배에서 화장은 몹시 꺼리는 장례방식이기 때문이다. 결국 경주 시립화장장으로 간다는 말을 듣고 문화유적 보호 차원에서 국가에서 꽤 오래 전부터 강력하게 화장을 추진한 게 아닐까 생각했다.

남산에서 가끔 만난 일반인 묘 중에서 심한 경우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 위에 있어서 얼핏 무덤이 아니라 약간 솟은 부분으로 생각하고 그 위에 올랐다가 깜짝 놀라 내려온 적이 있다. 그런 곳이 아니라 조용한 곳에서 쉬고 있는 고인들도 언젠가는 이장하거나 파서 화장하지 않을까? 이미 들어와 있는 묘는 그대로 두는 게 자연스럽고 다양한 사람 사는 모습인데... 

 

 

<경주 남산의 일반인 묘>

 

 

답사가 한 나절 남아서 느긋한 마음으로 45분가량 내를 따라 오르다. 옆으로 잘 생긴 금강송과 벚나무, 감태나무, 고사리, 청미래덩굴들을 보다. 중턱에서 나무 둥치를 열심히 쪼는 예쁘고 작은 새를 만나 촬영하려 했으나 거리가 멀어 실패하다. 대밭이 보이고 둥그렇게 뚫린 대숲 사이에서 역광으로 보이는 억새가 빛을 뿜다. 가파른 돌계단과 축대 위에서 기와와 주황색 처마가 얼핏 보이는 곳을 향하여 숨을 헐떡이며 오르니 눈앞에서 장관이 펼쳐진다. 천년사랑님이 답사 내내 주문처럼 말하던 그 칠불암이다.

 

 

<경주 남산의 절 초입에서 의례 볼 수 있는 대숲>

 

 

경주 남산 봉화골 칠불암 둥근 바위를 반으로 자른 단면에 삼존불이 부조되어 있고 앞쪽의 좀 작고 제멋대로인 바위에 사방불이 부조되어 마주 보는 구조이다. 훌륭하다! 인위적인지 자연 그대로인지 모르지만 두 바위의 만남이 범상치가 않다. 삼존불을 새긴 바위는 원래 이곳에 있었고 앞의 사방불을 새긴 바위는 다른 곳에서 옮기지 않았나 싶다. 삼존불과 사방불이 따로 있었다면 지금 느끼는 신비함이 반감되었을 것이다.

불상을 따로 보았을 때 풍채는 넉넉하고 표정은 근엄한, 즉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불상이어서 보물로 밖에 지정되지 않은 걸까(몇 달 전에 국보로 격상되었다고 함) 어디에서 이런 작품을 만나랴 싶은 독특하고 아름다운 작품이다.

 

불상 왼편에 새로 지은 칠불암은 아예 불상 쪽의 벽을 뚫고 통유리를 끼워 보기에 편하게 해 놓았다. 쉽게 자리를 뜰 수 없는 작품이다. 오르기 쉽지 않은 곳임에도 적지 않은 신자들이 불상 앞에서 절을 하고 바닥에는 불사를 한 기와들이 빼곡이 쌓여있다. 기와의 그림들이 재미있다. 기도하는 손, 자화상, 부처님 얼굴이나 좌상, 승천하는 용, 탁발하는 승려 등등...

 

 

<경주 남산 봉화골 칠불암> 

 

 

 

<경주 남산 봉화골 칠불암의 사방불> 

 

 

<경주 남산 봉화골 칠불암의 기와 불사>

 

 

서두르라는 독촉을 받고 칠불암 뒤 대숲 길로 가다. 내리막에 줄을 타는 오르막을 기며 10여분을 가니 아찔한 절벽 끝에 나무 난간이 걸려 있고 앞에서 조심하라, 서두르라며 소리를 지른다. 후들거리며 난간을 건너고 머리털을 쭈뼛 세우며 앞의 바위를 잡고 돌자마자 천년사랑님이 탄성을 지른다. 우리가 위태롭게 잡고 돈 바위에 신선암 마애여래좌상이 있었던 것이다.

불상의 상체는 종교적인 그윽함과 자비로움이 물씬한데 하체는 다소 부실하다. 그러나 마애불이 있는 위치는 작품 수준을 묻는 질문을 덮어버린다. 바위를 돌아서는데도 목숨에 위협을 느낄 정도로 가파르고 깎아지른 곳인데 얼마나 깊은 신앙을 가져야 그런 곳에 불상을 새길 수 있는 걸까! 천 길 낭떠러지라 너무 위험해서 정면에서는 감상조차 어렵다. 그 많은 남산의 유적들을 보면서 위험을 감수해가며 만들어 세우고 깎은 신라인들의 깊은 불심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신선암 마애여래좌상은 신라인들의 신앙심의 극치이다!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여래좌상을 右측, 아래 사진은 左측에서 본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