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국민약골 경로부대의 경주 남산완전정복 2일차-1

큰누리 2012. 5. 31. 12:43

2009. 12. 26. 맑음

7시 반에 울산의 숙소 출발하다. 바람은 차지만 어제와 달리 날이 쾌청하다. 숙소 인근에 있는 간월사지에 들러 쌍탑과 울산지역에서 유일하게 보물로 지정된 석조여래좌상을 보다. 목 부분과 오른 팔을 보수했지만 원형이 잘 보존된 통일신라의 불상이다. 

절은 남아있는 주초석만 보면 규모가 작은 편이고 쌍탑이 제대로 남아있다. 탑신 4면에는 각각 2명의 금강역사상이 새겨 있다. 일행은 팔부신중 같다는데 석굴암 입구의 금강역사상과 닮은꼴이다. 석조여래좌상이 안치된 이름 없는 맞배지붕 건물 앞 양쪽의 대머리에 팔이 훼손되고 아래 눈두덩이가 두툼한 석조상이 인상적이다.

 

 

<울산의 간월사지와 동탑>

 

 

<울산의 간월사지 석조여래좌상> 

 

 

8시 10분 경 지나는 길에 있는 국밥집에 들러 아침을 먹고 예정된 천전리 각석과 반구대 암각화를 향해 출발하다. 40분쯤을 달려 천전리에 도착하다. 햇빛이 들지 않는 청회색 바위 면 앞으로 흐르는 시내를 따라 가다 왼편으로 꺾어들다. 우리가 방금 지나온 길이 긴 바위 위인데 그 아래 단면이 바로 천전리 각석이다. 책자에서 보고 상상했던 것보다 크고 그림이 선명하다.

주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겹 동그라미와 겹 마름모꼴의 기하문양이지만 안내 책자에 의하면 신라 화랑들이 그린 그림도 있다고 한다. 긴 시간을 보듬고 있는 역사책 같은 바위이다. 표면이 고르고 붉은 빛이 고루 퍼져있어 색감이 좋으며 표면의 박리현상처럼 보이는 것은 바위의 특성에서 온 듯하다. 한 장의 사진으로 잡히지 않아 동영상으로 촬영하다.

 

얼어서 미끄러운 시내를 위험하게 건너니 맞은 편 바닥에 공룡 발자국들이 여기저기 오목하게 파여 있고 누구나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또렷하다. 우연이겠지만 중요한 유적들이 붙어있다는 게 신기하다. 게다가 반구대 암각화도 바로 산 너머에 있단다.

 

 

 <울산의 천전리 각석>

 

 

<울산의 천전리 각석 맞은 편의 공룡발자국들>

사진 왼쪽 아래부터 중앙의 오목한 곳이 발자국들이다.

 

 

차량을 반구대로 옮기기 위해 광나루님은 차로 가고 우리는 산을 넘어가다. 공룡발자국이 있는 시내를 오른편으로 끼고 산길을 20여분 쯤 걷다. 눈부신 햇살과 맑은 공기가 소풍 나온 기분이 들게 하다. 답사 코스 중 가장 아늑했던 곳이다. 어설프게 고개를 내민 개나리꽃과 개옻나무 열매, 칡덩굴 등을 보다. 오른편의 시내는 울산지역의 상수원이란다. 임시 건물 같은 암각화전시관을 지나니 기암이 눈앞에 들어오고 오른쪽의 시내가 제법 커진다. 그 앞의 밭에 돋은 풀과 시내, 하늘이 서로 다른 푸르름으로 조화를 이뤄 아름답다. 

 

입구에서 기다리는 광나루님을 만나 매표를 하고 냇가를 건너 대숲을 지나니 대곡리 공룡발자국화석 표지가 있고 이어 반구대암각화가 보인다. 이곳은 선사시대에 공룡들이 살기 좋은 곳이었거나 화석을 남기기 좋은 지질이었거나 둘 중의 하나가 틀림없다. 천전리에서부터 우리와 동행한 시내가 이곳에서 저수지로 바뀌는데 그 때문에 반구대암각화가 1년의 반 이상이 물에 잠긴단다. 우리 역시 물 때문에 암각화를 거의 볼 수 없다. 그나마 가장 잘 보인다는 멧돼지를 보려고 사람들이 망원경에 대고 눈을 부릅뜨지만 나는 포기하다. 이 정도 상황이라면 차라리 곳곳에 설치된 반구대암각화 도면이나 책, 안내서를 보는 게 훨씬 났다. 이번 답사에서 가장 기대한 일정이어서 아쉬운 마음으로 다음 코스인 경주 남산으로 향하다.  

 

 

<울산의 반구대암각화>

아무 것도 안 보인다. -.-;;

 

 

10시 45분, 가는 길목에 있는 나정에 들르다. 발굴 후 유적을 덮어 박혁거세의 탄생지라는 의미 외에 볼 게 별로 없다. 지척에 있는 양산재와 일성왕릉에 들르다. 양산재는 6부 촌장의 영령을 모신 곳이고 그 촌에서 유래한 게 이씨, 최씨, 손씨, 정씨, 배씨, 설씨란다. 근처에 있는 7대 일성왕릉은 2단의 기단도 있고 호석 흔적도 남아 제법 왕릉답다. 나오는 길에 논바닥에 있는 남간사지 당간지주를 보다. 안쪽의 십자 모양의 홈이 특징이다.

 

논을 지나 창림사지로 들어서는데 논둑과 산 여기저기에 무늬가 있는 주초석이 굴러다닌다. 신라 최초의 궁궐지였다가 통일신라 때 절을 창건했고 김생이 쓴 寺碑가 있던 곳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쌍두귀부와 사리장엄구를 노리고 되괴 당한 탑이 남아있을 뿐이다. 기단에 팔부신중이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남아있다.

 

 

<경주 일성왕릉> 

 

 

<신라 6부 촌장의 영령을 모신 양산재>

 

 

<경주 남간사지 당간지주> 

 

 

<경주 창림사지 쌍두귀부> 

일반인 묘 앞에 방치되어 있다.

 

 

<경주 창림사지 3층석탑>

 

 

11시 20분경 본격적인 경주 남산답사가 시작되다. 처음 코스는 보물로 지정된 배리 석불입상이다. 4년 쯤 전에 왔을 때와 달리 석불을 모신 누각이 사방으로 트여있다. 선방사지 근처에 누워있던 것을 모아 놓은 것으로 크기도 만만찮고 불상마다 개성이 있다. 공통점이라면 원만한 느낌이라는 것이다. 중앙의 본존불은 의젓해 보이고, 왼편의 관음보살상은 아기자기하고, 오른편의 대세지보살은 느긋해 보인다.

누각 앞에서 요염하게 빨강으로 빛나는 열매 무더기를 보다. 궁궐이나 무덤가에서 자주 만나는 구슬 같은 열매인데 도대체 이름을 모르겠다.

 

 

<경주 배리 석불입상> 

 

 

오늘의 남산 코스는 5시간 이상 걸린다고 한다. 산행 중에 내려올 수 없으므로 좀 이른 점심을 먹기로 하고 인근의 '시골여행'이라는 음식점에 들르다. 나 혼자만 고른 묵은지 김치뚝배기가 이 집의 자랑이라는데 자랑할 만하다. 3년 묵은지로 만들었다는데 깊은 맛이 일품이지만 국수류를 주로 고른 일행들은 아까운 김치찌개를 나눠줘도 반응이 신통찮다. 커피 한잔씩 뽑아 마시고 어제의 고통스런 산행 기억 때문에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은 후에 남산으로 출발하다.

 

남산 입구의 삼릉은 아달라왕, 선덕왕, 경명왕 무덤으로 전하며, 횡혈식 돌방무덤으로 두 차례에 걸쳐 도굴을 당했다고 한다. 특징 없는 3기의 묘가 상하로 이어져 있고 맨 앞의 경명왕릉에만 호석 흔적이 몇 개 보이는 게 특이하다. 다음 코스는 삼릉계 석조여래좌상이다. 머리와 두 손이 없어졌지만 단아한 몸매와 옷 주름, 3개의 세련된 매듭 끈이 탁월한 통일신라시대의 수작이다. 그 끈 때문에 용장사 삼륜대좌불과 더불어 복식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단다. 이어 부근의 삼릉계곡마애보살상을 보다. 돌기둥 같은 바위에 새겨진 부조 입상인데 크기도 작고 마모도 심한 편이어서 특별히 인상에 남는 게 없다.

 

 

<경주 남산 삼릉> 

 

 

<경주 남산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경주 남산 삼릉계곡 마애보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