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우리 집 화단의 사마귀

큰누리 2012. 8. 19. 18:06

올 봄에 이사를 했다. 오래 묵은 슬라브 지붕에다 벽은 단열제 처리가 제대로 안 돼서 이사 후 짧은 봄을 넘기는데 맹추위에 약간의 우울증이 왔고 17년 만의 기록적인 더위였다는 이번 여름을 보내면서 무기력증을 겪어야 했다. 스스로 위로하기 위해 붙인 이 집 이름은 '친환경적인 집'이다. 좋은 점은 양쪽이 open 되어 베란다를 넓게 쓸 수 있고 공동주택에 살 때 꽁꽁 닫아두어야 했던 문을 활짝 열고 살 수 있다는 점이다.

커피 한잔 들고 나갈 때마다 신경 쓰이는 이웃은 open 된 양면에 갈대발을 치니 해결이 됐다. 다가올 겨울 생각을 하면 끔찍하지만 모두 취할 형편이 못 되니 가진 부분에 대해서만 만족을 하려고 노력 중이다.

 

이사한 후 거실 남쪽 창문 아래에 줄줄이 새 식물 식구들을 들였다. 오래 전부터 함께 한 테이블야자, 스킨답서스, 스파티필름, 해피트리를 적당히 배열하고 날이 풀리면서 허브 종류를 기르기 시작했다. 장미허브, 한국박하, 스피아민트, 파인애플 세이지 등... 그 외에도 하와이안 러브, 나비란과 비제티 접란(나비란), 벌레잡이통풀(네펜데스) 였다.

 

우리 집의 식물은 대략 기존의 관엽식물과 허브 종류, 야채로 분류할 수 있다. 야채는 모종을 구입해서 심었는데 먹기 위해서라기 보다 적은 포기로 무성함을 보는 게 목표였다. 맨땅이 아닌 직사각형의 긴 화분에 심으려니 뿌리가 깊거나 덩치가 큰 식물은 고를 수 없었다. 그래서 몇 종류의 상추와 들깨, 쑥갓, 치커리, 고추 을 심었다. 고추와 상추는 제법 잘 자라서 몇번을 따먹었다.

 

하지만 땅이 깊지 않으니 지력이 없어서 전체적으로 상태가 부실하다. 심지어 벌레(응애)가 꼬이기 시작하더니 겨우 목숨을 부지하는 식물들의 잎, 심지어 줄기까지 통째로 갉아먹었다. 관엽식물만 기를 때는 전혀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다. 화원에 가니 의외로 간단히 해결이 됐다. 벌레 죽이는 약...

나만 그런 게 아닌지 다른 이들도 상추나 고추 벌레 퇴치약을 찾고 있었다. 다른 식물로 전이가 심한 응애는 결국 그 식물을 처분하고 끓는 물을 화분에 부어 옮는 것을 차단했다. 이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10년도 넘게 거실이나 방안에서 키운 관엽식물에는 그 동안 어떻게 벌레가 안 생겼는지 궁금하다.

 

매일 일어나면 현관문을 열고 화분의 식물들을 바라보는 게 요즘의 내 일과이다. 새로 꽃을 피운 놈이 있나, 어디 불편해 하는 놈은 없나?

그런데 지난 8월 12일에 매일 하던대로 화분들을 보고 있는데 사마귀 한 마리가 깻잎에 앉아 있었다. 와! 신기한 거... 사마귀야 답사 때 자주 만나지만 내 집, 그것도 화분의 사마귀라니! 처음엔 지나가다 들른 녀석이려니 했다. 하지만 다음날, 그 다음날도 처음의 깻잎에 계속 있는 게 아닌가? 이런 열악한 곳에서 터를 잡은 건가? 사마귀는 육식성 곤충인데 무얼 먹고 살지, 혹시 굶어죽는 건 아닐까? 벼라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 뒤로 틈만 나면 깻잎을 들여다보았다. 간간히 카메라 소리를 의식하는지 세모진 얼굴로 촬영하는 내쪽을 보기도 하지만 녀석은 요지부동 깻잎을 벗어나지 않고 그 자리를 고수한다.  열심히 들여다 보던 중 파리를 사냥해서 먹고 있는 녀석을 발견했다. 아, 꽃에 날아든 곤충(주로 파리나 작은벌)을 먹고 살았구나!

다른 꽃은 다 시들었는데 홀로 핀 스피아민트와 한국박하의 꽃줄기를 사마귀의 거처 쪽으로 붙여줬다. 유독 스피아민트꽃에는 파리와 작은 벌, 심지어 실잠자리까지 날아들기 때문이다. 잡히는 놈에겐 참으로 미안한 일이지만... 다행히 포기가 제법 무성한 스피아민트의 꽃은 당분간 필 것 같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불어도 큰잎 밑으로 숨는 법 없이 사마귀는 지금도 그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아지트가 깻잎 맨 위라 가끔 파리나 작은벌을 사냥하는 현장을 볼 수 있다. 사마귀란 놈은 이만저만 게으른 게 아니다. 먹잇감이 없으면 땡볕에서도 몇 시간씩 꼼짝 안 한다. 지금은 내가 붙여준 스피아민트꽃 바로 아래의 깻잎에서 정착 중이다.

 

도시의 집에서 키우는 몇 포기의 깻잎에 둥지를 튼 이 친구가 얼마나 버틸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척박한 환경에서 홀로 살아가는 사마귀의 생존능력에 경의를 보낸다.

 

사마귀 덕분에 포기할 일도 생겼다. 식물에 오는 곤충을 닥치는대로 잡아먹으니 열악한 환경에서도 제법 수확의 기쁨을 주던 고추가 수정을 제대로 못해서 더 이상 열리지 않는다.

 

 

<내 텃밭(?)>

사진 맨 왼쪽, 붉은 고추 위의 들깨 잎 중 위에서 두번째 잎이 사마귀의 쉼터겸 사냥터이다.

 

 

<사마귀의 아지트>

지금은 사마귀가 보이지 않는다(뒤편에 있음). 하지만 이 들깨 잎 중 맨 위의 잎부터 줄기와 나란한 붉은 고추가 사마귀의 행동반경이다. 그 외로 벗어난 걸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사마귀와의 첫 대면>

뭘 먹은 게 있다고 실례까지 해놓았다. 처음 발견한 날은 8월 12일, 지금(8/19)은 처음보다 확실히 더 커졌다.

 

 

<우리 사마귀의 기본 자세>

앞발 1쌍은 접은 채 모으고 나머지 발은 바람에 흔들리는 깻잎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지 쫘악 벌린 체 고정하고 있다.

 

 

<식사 후의 자세>

먹이를 먹은 후엔 양치(세수?)라도 하는 지 앞발로 입 주변을 문지른다.

 

 

<스피아민트꽃 앞에서 먹잇감을 노려보는 사마귀>

자리를 뜨지 않고 감나무 아래서 떨어지는 감을 바라는 것처럼 게으른 이 녀석을 위해 8/16부터 스피아민트꽃 자루가 바로 머리 위쪽에 위치하도록 화분을 옮겼다. 그 뒤로 이 녀석의 시선은 하루 종일 스피아민트꽃 쪽으로 향해 있다.

 

 

<지금 나를 노려보는 거야?>

내가 접근해도 전혀 반응이 없지만 카메라 소리가 나면 당차게 내쪽으로 돌아본다. 곤충 시력은 믿을 게 못 되지만 소리나 촉각은 상당히 예민할 거라 추측한다. 어떤 때는 나를 너무 정면으로 노려봐서(!) 내가 놀라 주춤하기도 한다. 예전에 식물을 촬영하다가 새끼가 있는 사마귀 집(?) 주위를 모르고 건드렸는데 차까지 따라와서 차창에 부딪쳐 미끄러지면서도 악착 같이 공격하는 것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당랑거철(蟷螂拒轍), 당랑지부(蟷螂之斧)'란 사자성어가 빈말은 아니었다. '사마귀가 수레를 가로막는다, 도끼에게 대항한다'는 사자성어로 '분수를 모르고 상대가 안 되는 사람이나 사물과 대적한다'는 의미이지만 실제로 사마귀는 나를 차까지 따라와서 공격했다.

 

 

<드디어 잡았다!>

재수 없는 파리가 사마귀의 이번 먹이. 스피아민트 뿐 아니라 다른 꽃에도 파리가 가장 많이 꼬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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