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3. 4/26. 우리집 화단

큰누리 2013. 6. 2. 13:03

작년에 이 집으로 이사한 후 처음으로 화단을 만들었다. 화단이라기보다 화분 모음이라는 게 맞을 것 같다. 2층이니 마당이 있을 리 없고 남쪽과 동쪽에 긴 발코니가 이어진 구식 집이다. 햇빛이 잘 드는 곳을 골라 발코니 구석에 무더기로 심을 수 있는 긴 화분과 기존의 화분들을 늘어 놓았다.

 

작년에는 먹거리가 아니라 푸른 잎(무성함)을 기대하고 주로 야채 모종들을 사다 심었다. 상추, 쑥갓, 치커리, 고추, 들깨 등등... 두번 정도 잎을 따 먹긴 했지만 지력(地力)이 필요했던 야채는 잎이 항상 누렇게 뜨곤 했다. 그걸 살려보려고 고체 영양제도 수없이 주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야채들 모두 꽃도 피고 씨앗까지 남겼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척박한 환경에서 자손을 퍼뜨리려는 생명의 본능 때문이었다. 들깨와 상추를 제외하고 다른 야채는 제대로 자라지도 않은 상태에서 마구 꽃을 피우고(빈약했다!) 씨앗을 만들었다.

 

그 와중에 길을 잘못 든(?) 사마귀 한 마리가 들깨잎에 둥지를 틀어 그 녀석을 바라보는 재미로 한 여름의 상당한 시간을 보냈다. 야채들도 사마귀도 우리집 같은 환경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안쓰러웠다.

 

야채를 키우니 생각지 못한 불청객도 생겼다. 바로 응에... 갖은 방법을 동원해 응에를 퇴치하려 했지만 얼마나 생명력이 강한지 상당히 신경을 쓰게 만들었다. 벌레도 생명이긴 하지만 응에가 생기니 야채들이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고 잎마다 구멍이 숭숭 뚫렸다. 잎만 먹으면 괜찮은데 줄기를 모두 부러뜨렸다. 응에가 후손들을 위해 줄기에 알을 낳았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가을에 화분마다 끓는 물을 부어 일단 진정은 시켰다. 하지만 곤충들의 질긴 생명력으로 보아 올해에도 어느 구석인가에서 살아남은 놈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작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올해엔 야채를 포기하고 까다롭지 않을 성 싶은 식물들을 몇 종류 심었다. 작년처럼 모종을 사다 심지 않고 인터넷에서 씨앗을 구입했다. 살아남을 확률이 높은 모종을 사지 않고 씨앗을 선택한 이유는 모종의 종류가 빈약하기 때문이었다. 상추, 고추, 쑥갓, 치커리 등 어느 곳에서나 똑같은 종류만 판다. 씨앗은 특이한 것을 빼고는 한봉지에 500원 정도였다. 몇 개 들어있으려니 했는데 의외로 많이 들어있고 씨앗도 튼실했다. 샤스타데이지, 한련화, 홍화(잇꽃)는 날이 풀리면서 바로 파종을 했고 봉숭아는 일주일 쯤 전에 파종했다. 프렌치 메리골드(공작초). 수레국화, 페츄니아 등은 시기가 일러 파종을 못했는데 이제 심을 곳이 없다. ㅠㅠ...

 

이미 파종한 종자들은 모두 싹을 틔웠는데 샤스타데이지는 유독 자라지를 못하고 한달 전 상태 거의 그대로이다.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그 동안 모종을 사다 사이사이에 심은 봄 과꽃, 공작초(프렌치 메리골드), 아메리칸 메리골드, 오스테오스 퍼뮴 등은 제법 잘 자라고 있다. 작년에 심은 구문초, 접란(나비란), 해피 트리, 마삭줄도 잘 자라고 있고...  보름 쯤 전에 사다심은 구근 식물인 아마릴리스는 내일 쯤 정열적인 빨간 꽃을 활짝 피울 것 같다.

 

 

2013. 4/26. <한련화와 샤스타데이지>

파종한 지 열흘에서 보름 쯤 된 시기일 것이다. 싹이 안 터서 씨앗이 불량인가 싶었는데 당시에 날이 추워서 그랬던 것 같다. 한련화는 싹은 맨 먼저 틔웠는데 의외로 요즘은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있다. 생각보다 지력을 많이 필요로 하나보다.

한련화 밑의 샤스타데이지도 한련화처럼 한달이 넘은 지금까지도 거의 이 모습이다. 똑같은 배양토를 부대로 사서 긴 화분 4개에 담았는데 다른 화분의 식물들은 그래도 말짱한 걸로 보아 흙 탓은 아닌 것 같다.

 

 

<감자와 들깨>

이 감자싹은 순전히 덤이다. 지난 겨울에 감자 4개를 사놓고 깜빡했는데 솔라닌 때문에 먹을 수는 없고, 그렇다고 감자가 썪거나 마르지도 않는 것이었다. 궁리 끝에 별 기대없이 비어있던 긴 화분에다 감자 4개를 심었더니 4개 모두 싹을 틔웠고 지금도 예쁘고 튼튼하게 잘 자라고 있다. 가장 의외의 소득이다.

감자가 처음 싹을 틔울 때 경이로웠다. 조심스럽게 흙을 뚫고 서서히 싹이 올라오는데 '내가 세상에 나가도 되나?'하면서 조심스럽게 주변을 관망하는 것 같았다. 처음엔 다른 식물에 비해 자라는 속도가 상당히 더뎠지만 지금은 올해 자란 식물 중에서 단연 왕의 위용이다. 처음에 올라온 싹은 털이 보송보송한 녹색의 장미송이 같았다!

 

감자 주변의 작은 싹들은 작년에 땅에 떨어진 들깨 싹들이다. 들깨 싹들도 너무 신기했다. 지금은 화분 중에서 개체수가 가장 많다. 솎아줘야 몇개라도 튼튼하게 살아남는데 푸른 싹들이 너무 예뻐서 당분간 그냥 둘 예정이다.

 

 

<잇꽃(홍화)>

잇꽃(홍화)은 지력을 많이 필요로 할 것 같아 긴 화분 하나를 통째로 할애했다. 아주 딱딱한 씨앗을 뚫고 거의 발아에 성공해서 65개 정도된다. 잘 자라고는 있지만 지력이 달리는지 가늘고 색이 연하다.

 

 

 

<자생력의 지존, 들깨>

작년에 내 화단(!)을 푸르게 했고 사마귀의 안식처가 되어준 식물이다. 얕고 좁은 화단에서 제 힘으로 싹을 틔운 게 정말 대견하다. 들깨 한 알이 계단 틈으로 떨어졌는지 계단의 갈라진 틈에서 들깨 순 하나가 자라고 있다. 그것도 화분에서보다 훨씬 더 튼튼하게... 행여 그 들깨가 밟힐까봐 조심스럽게 피해다니고 식구들에게도 조심하도록 일러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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