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연세대학교 언더우드家 기념관

큰누리 2013. 5. 18. 19:27

<언더우드家 기념관>

언더우드가 기념관을 찾는데 우리 일행은 무척 애를 먹었다. 학교에서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물어도 그 존재를 몰랐다. 몇 번 헛걸음을 한 후에 노란 개나리가 언덕을 둘러친 삼성관 앞을 지나자 아담하면서 그림처럼 아름다운 집이 숲에 숨어있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첫 장면에서 스칼렛 오하라(비비안 리)가 달려나오던 장면의 배경처럼...

 

언더우드가 기념관은 연세대학교 서문쪽의 삼성관(생활과학관) 옆을 지나 안쪽 숲으로 50m 쯤에 위치해 있다. 울창한 나무와 바야흐로 만개한 벚꽃에 둘러쌓인 아담한 기념관은 영화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숲 속의 별장 같다. 언더우드가 기념관은 1976년까지 언더우드 3세(원일한)가 살았던 집이다. 이 건물은 1927년 언더우드 2세(원한경 박사)의 사택으로 지은 2층 건물이었다. 6.25전쟁 때 북한군이 연희대를 본부로 삼자 UN군이 폭격하는 바람에 이 건물의 지붕이 날아가 버렸다. 전쟁이 끝난 후 자금부족 등의 이유로 원형대로 복구하지 못한 채 현재의 구조처럼 1층에 다락방이 딸린 건물로 남게 되었다.

1976년에 언더우드 2세와 3세는 기념관으로 써달라며 연세대 주변의 대지 1만평과 함께 집을 기증했다. 학교의 무관심 속에 잊혀졌다가 2003년 신과대 건물을 신축하면서 철거하려 했다. 그러자 원일한 박사가 총장실로 달려가 항의하는 과정에서 건물의 존재가 알려졌다. 이후 이곳에 거주하던 주민에게 약간의 보상을 하고 내보낸 뒤 기념관을 만들어 최근에야 지금의 모습으로 남게 되었다.

 

기념관 현관에 들어서면 단아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느낌이 집안 전체에서 풍긴다. 왼편의 '언더우드의 삶' 전시관은 1930년대의 서재를 복원해서 언더우드 가문 사람들의 사진과 벽난로, 책상, 소품들을 전시해 놓았다. 중앙의 '한국과 언더우드' 전시관은 언더우드가 발명한 한국 최초의 한글타자기, 한국전쟁 휴전회담 당시 문서를 작성할 때 쓰였던 공책 등의 물건이 전시되어 있다. 오른쪽 공간은 오동나무 책장과 기독교 서적으로 구성된 문헌자료실로 학생들이 자유롭게 와서 공부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언더우드가 기념관의 역사>

건물의 약사와 언더우드가문의 대를 이은 한국(연세대)에 대한 공로에 대해 약술했다. 6.25전의 원래의 건물 모습과 폭격을 맞은 후의 모습, 복원 후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원래는 2층이었으나 복원하면서 다락방이 딸린 단층으로 바뀌었고 왼쪽 창이 돌출했다.

 

 

<'언더우드의 삶' 전시관으로 들어가는 입구>

방 입구에는 '원일한'(언더우드 3세)이라 쓰여있다. 왼편에 연세대(연희전문)와 관련된 외국인들과 연세대의 역사가, 오른편에 언더우드가 소유의 저택들의 사진이 걸려있다.

 

 

<연세대(연희전문)와 관련된 외국인들과 연세대의 역사>

왼쪽 맨 위의 에비슨은 1894년 조선정부로부터 제중원 운영권을 넘겨받아 1904년 미국인 세브란스의 기부금으로 한국에 현대식 병원(세브란스기념병원)을 최초로 세운 분이다.

 

 

<언더우드가의 사택 및 별장들>

건물의 대부분은 고아나 선교, 선교사들을 위해 사용되었고, 가족들은 연희동의 사택(現언더우드 기념관)에서 거주한 걸로 되어있다.

 

 

<'언더우드의 삶' 전시관>

벽난로와 카페트 등이 고풍스럽다. 중앙의 유리관 안에 공책과 연필, 찬송가, 훈장, 안경, 도장, 신분증, 심지어 호미와 모종삽까지 전시되어 있다. 사방의 벽에는 언더우드 가문 사람들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언더우드의 삶' 전시관의 원두우(언더우드 1세) 부인과 가족사진>

 

 

<중앙의 '한국과 언더우드' 전시관>

입구에 '원두우'(언더우드 1세)'라 쓰여있다. 언더우드 박사가 발명한 한글타자기가 전시되어 있다.

 

 

 

 

 

<'한국과 언더우드' 전시관의 이 문서...>

내용을 좀 알아보려 했는데 내 짧은 실력으로는 내용 파악 불가. 어쩐지 고종황제에게 하사 받은(!) 글일 것 같은 느낌이...

PS : 최근(2022년 5월)에 세브란스병원에 있는 알렌기념관 등을 둘러보다가 이 문서에 대해 알게 되었다. 대궐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도록 고종황제가 특별히 허락한 일종의 프리패스권이다.

 

 

<오른쪽의 문헌자료관>

입구에 '원한경('언더우드 2세)이라 쓰여있다. 한쪽에 원두우(언더우드 1세)의 삶과 관련된 사진과 자료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각종 기독교 서적들이 있다.

 

 

 

<문헌자료관의 원두우(언더우드1세) 관련 사진들>

첫번째 사진은 현재 연세대학교 언더우드관이다.

 

 

 

 

<문헌자료관의 기독교 관련 서적들>

 

 

 

 

<집안에서 본 현관과 문헌자료실 일부>

현관 유리 너머로 마당에 만개한 벚꽃이 보인다. 독실한 신앙인, 선각자로서 머나먼 이국땅에서 3대에 걸쳐 봉사하고 뼈까지 묻은 이들의 자취를 보며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이어 5월 4일의 마포, 용산답사에서 양화진선교원묘역에 있는 이들 가족 묘를 또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