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인천

포천 영평천 창옥병 주변의 각자(바위글씨)

큰누리 2016. 4. 12. 21:26

우리는 금수정을 중심으로 금수정 앞의 금수정, 동천석문, 회란석 암각문 무리와 금수정 오른쪽 아래 강 한복판과 그 주변에 새겨진 경도, 증금옹 암각문 무리, 금수정 왼쪽 아래 강가의 창옥병 주변의 암각문 무리로 크게 나누어 이동하며 보았다. 가장 눈에 두드러지고 유려하여 '우리나라에도 이런 암각문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놀란 것은 양사언의 글을 새겼다는 '경도' 각자였다.

줄거리가 있고 판독도 쉬운 것은 창옥병 산금대의 한석봉이 쓴 '송균절조 수월정신'이었다. 영평천 주변의 많은 바위에 새겨진 글들은 마모되어 판독이 어려운 것들이 많아 아쉬웠고 아직까지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밝혀지지 않은 것도 있다고 한다.

 

 

 

<영평천 창옥병>

창옥병은 영평 8경 중 3경으로 깎은 듯한 작은 절벽으로 절벽에 굴곡, 고저, 암혈, 동물모양의 돌출한 바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창옥병 암각문은 사암 박순이 쓴 <이양정기>에 의해 밝혀졌는데, 창옥병의 이름을 짓고 기록한 사람은 이양 정주인이고 글씨를 쓴 사람은 주부 한호이며 그것을 11개의 돌에 새긴 사람은 신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사암은 당쟁에 휘말리자 외동딸이 사는 이곳으로 왔는데 기품이 달과 얼음을 담은 옥병처런 맑고 청아하다 하여 이 절벽을 창옥병이라고 했다.

창옥병에 새겨진 암각문 중 '송균절조 수월정신(松筠節操 水月精神)'이 바로 조선의 명필 한석봉이 쓰고 신이가 새겼다는 암각문이다. 선조가 박순을 헐뜯는 자를 변경으로 유배 보내면서 내린 하교로  '박순은 소나무와 대나무 같은 절개와 지조, 물과 달 같이 깨끗한 선비정신을 가진 사람'이라고 극찬한 내용이다.

 

 

<영평천 창옥병 산금대의 암각문>

바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선조가 박순의 성품을 지칭한 '송균절조-수월정신'이라 새겨져 있다. 두번째 사진 중앙에서 약간 왼쪽으로 '散禁臺'란 암각문이 있다.

 

 

 

<창옥병 산금대 주변의 영평천 풍경>

 

 

<창옥병 수경대(水鏡臺)와 주변의 암각문들>

수경대란 암각문에는 수경대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6줄의 글귀가 있고, 맨 왼쪽에 글쓴이(金OO)가 새겨져 있다.

 

 

 

 

<수경대 주변의 판독을 못한 또다른 암각문>

 

 

 

<영평천 청학대(淸鶴臺) 암각문>

 

 

<영평천 토운상(吐雲床) 암각문>

두번째 사진의 중앙 위쪽 녹색 이끼가 낀 바위에는 바로 윗사진의 '청학대(淸鶴臺)'란 암각문이 있다. 

 

 

 

<영평천의 '장란(障闌)' 암각문>

 

 

 

<영평천의 술통모양의 바위 '와준(窪尊)' 암각문>

술통 모양의 바위 와준에는 술 한말이 들어갔다고 하며 옆 바위 단면에는 '와준(窪尊)'이란 암각문이 있다. 천연 술독에 말술을 부어놓고 강물에 발을 적시며 마시는 술맛은 상상만으로도 기가 막히다!

 

 

 

 

 

<영평천 '청랭담(淸冷潭)' 암각문>

 

 

 

 

<영평천 '청랭담(淸冷潭)' 주변의 판독불가 암각문>

 

 

 

<'아우라지'의 뜻>

'아우라지'는 '두 갈래 물길이 어우러지는(합수되는) 나루' 란 뜻으로 포천에서 한탄강과 영평천의 합류 지점을 '포천 아우라지'라 부른다. 아우라지라 불리는 곳이 전국에 몇 곳 있으나 정선 아리랑의 발상지인 '정선 아우라지'가 가장 유명하다. 양평의 남한강과 북한강의 만나는 곳을 '두물머리(양수리)' 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말이다.

 

 

<포천 아우라지 베개용암>

창옥병 주변에서 조금 떨어진 영평천변에는 아우라지 베개용암이 있다. 베개용암은 용암이 차가운 물과 만나 빠르게 식을 때 그 표면에 둥근 베개모양으로 굳어서 생긴 것을 말한다. 신생대 중기 무렵 북한의 평강 오리산에서 분출한 현무암질 용암은 한탄강 게곡을 따라 남서 방향으로 흘러내리다 이곳 아우라지에서 영평천의 차가운 물과 만나 용암의 표면이 급격하게 식으면서 베개모양의 용암이 만들어졌다.

베개용암은 깊은 바다에서 용암이 분출할 때 주로 생기기 때문에 내륙의 강가에 생성된 아우라지 베개용암은 매우 희귀한 예이다. 정면의 햇빛으로 인한 난반사 때문에 사진의 상태가 나쁘지만 현장에서는 또렷하게 관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