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작품(고려의 공예, 불상)

큰누리 2016. 12. 26. 22:10

<목제 관세음보살 좌상>

고려 13세기.

왼쪽 다리는 아래로 내리고 오른쪽 다리는 올린 유희좌를 한 관음보살이다. 높은 보관과 화려한 영락 장식, 미려한 얼굴 표정은 화려하고 섬세한 고려 불교의 특징적인 면을 잘 보여준다. 머리 위에 15개의 나무 부재를 못으로 이어 붙여 복장물을 납입할 수 있게 하였다. 실제 이 불상의 머리 안에는 고려시대 <대수구다라니경>과 오색실이, 몸에는 씨앗을 담은 오보병이 들어 있었다.

 

 

 

 

 

<금동 보살 좌상>

고려 14~15세기.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보살상이다. 통통하게 살이 붙은 둥근 얼굴, 깊은 명상에 잠긴 듯한 표정, 도포 형태로 걸친 천의, 높이 올려 묶은 보개 등 고려 후기 불상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영락 장식이 번잡하게 늘어지고 가슴을 도드라지게 표현하는 것은 14세기 말부터 나타나는 특징이다. 

서산대사가 '보살은 오로지 중생에 대한 생각 뿐이다'라고 말하였듯이 보살은 자신이 깨달음의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체의 중생을 먼저 구제하겠다는 서원을 세웠다.

 

 

 

<청동 비로자나불 좌상, 청동 조사좌상>

경기도 성남시 판교. 2008년 발굴.

2008년 성남 판교에서 출토된 청동상 3점이다. 비로자나불은 왼손을 오른손으로 감싼 지권인을 한 채 깊은 선정에 빠져 미소를 짓는 듯하다. 한쌍의 조사상은 머리에 두건을 쓰고 있어 승가대사, 지장보살로 보는 견해도 있다.

 

승가대사는 서역 출신 승려로 당나라 때 중국으로 건너갔으며 수행이 뛰어나 참된 승려로 존경받았고, 입적 후에는 신앙의 대상으로 각광받은 인물이다. 청동상의 크기나 조성 기법의 차이로 볼 때 2점의 조사상이 비로자나불의 협시였을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매끄럽게 주조된 청동상은 천년의 세월이 지나서도 완벽한 모습을 드러내었다.

 

 

 

<국립중앙박물관 고려실>

중앙의 불상은 아래에 있는 철조 아미타불 좌상의 뒷모습이다.

 

 

<철조 아미타불 좌상>

강원도 원주시 출토. 고려.

 강원도 원주 지역에서 발견된 철로 만든 아미타불이다. 이 불상은 얼굴 표정과 법의 표현 양식으로 볼 때 강원도 원주 지역에서 출토된 다른 불상들보다 조금 늦은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소라 껍질처럼 들어올린 나발의 머리에 사실적이고 토속적인 얼굴이며 손갖춤은 아미타 구품인 가운데 상품상생인을 맺고 있다. 법의는 통견식으로 좌우대칭의 넓은 띠주름 형태를 이루며 매듭 형식으로 표현된 속옷 등은 고려시대 지방 불상의 새로운 표현 양식을 보여준다.

 

이 불상의 이전 모습은 석조대좌 위에 놓여진 형태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철불대좌의 앞쪽이 깨져 있었다. 그러나 어느 시기에 누군가에 의해 철불에 변형이 가해져 대좌의 깨진 부분이 뒤쪽으로 가게 되었고, 철불과 대좌는 콘크리트로 부착되었다. 현재의 철불은 고려실 전시를 위해 변형이 가해진 콘크리트를 제거하는 등 보존처리를 완료한 모습으로 처음 상설 전시되었다.

 

 

 

<청동 '청녕4년'명 종 측면>

경기도 여주군 금사면 상품리 발견. 1058년(고려 문종 12).

경기도 여주에서 발견된 '청녕4년'이 새겨진 종이다. 청녕은 거란 도종의 연호이고 청녕4년은 1058년(문종 12)으로 이 종의 제작 연도를 말해준다. 통일신라 동종의 전통을 계승한 고려시대 동종은 11세기경부터 고려적인 변화를 보이는데 이 동종은 그러한 모습을 잘 보여준다. 용이 정면을 바라보거나 위패형 명문들이 등장하고, 상단의 위를 꽃잎 모양으로 입체적으로 두른 대가 표현되기 시작하며, 종을 치는 부위인 당좌가 사방에 1개씩 4개로 늘어났다. 

 

이 동종은 명문에서 말해주듯 당시 왕이었던 문종의 장수를 기원하는 발원에 의하여 150근의 중량으로 제작되었다.

 

 

<청동 '청녕 4년'명 종 정면>

하단에 명문이 보인다.

 

 

<철제 은상감 경대>

고려.

철제로 틀을 만들고, 정교하게 금과 은을 입사한 거울걸이이다. 거울걸이 위의 장식은 연꽃봉오리 모양을 만들어 거울의 뉴에 줄을 매어 걸어두는 용도로 사용하였다. 철제봉에 은입사된 은판을 덧씌워 무늬를 표현하였다. 

 

 

 

<철제 은상감 경대와 구리거울>

고려.

 

 

<청동 쇄금(자물쇠와 장식 부재)>

고려.

청동 자물쇠와 장식 부재이다. 자물쇠는 자물통과 잠글쇠가 남아 있고, 오른쪽 열쇠 구멍에 열쇠를 넣으면 잠글쇠의 왼쪽 부분이 분리되며 문에 박는 배목도 남아 있다. 다른 2점은 문에 박았던 일종의 문고리와 그것을 장식한 8엽의 연화형 판이다.

 

 

 

<나전 경함(경전함)>

고려 후기.

나전으로 만든 대장경을 담는 상자이다. 고려 후기에 만들어진 유사한 형태의 나전경함은 세계적으로 8점이 남아있다고 한다. 이 상자에는 주로 모란당초문이고, 총 2만 5천여 개의 자개가 사용되었다. 전체적으로 자개를 가늘게 잘라내어 무늬를 만들었다. 골회 옻칠과 검은 옻칠을 여러 번 발라 도장하여 나무의 뒤틀림과 갈라짐을 방지하였다.

 

재작년(2015)에 삼성리움미술관에서 열린 <세밀가귀전>에 세계 각국에서 소장한 나전 경함이 전시되어서 눈이 즐거웠다.

 

 

<장식용 머리꽂이>

고려.

위의 금동제 머리꽂이는 하치우마 타다수 기증품 , 아래는 누금기법의 순금장식이다.

 

 

 

<고려시대 청동 숟가락>

 

 

 

<청동 밥소라, 메밀과 볍씨, 은제 숟가락과 젓가락>

메밀과 볍씨는 충남 태안 앞바다 출토, 은제 숟가락, 젓가락은 경기도 파주시 주내면 연풍리 발견. 고려.

 

 

<청동 모발구(청동 족집게와 귀이개)>

귀이개 4번은 고양시 덕양구 지축동 발견, 5, 6은 개성 출토. 고려.

 

 

<토기 병>

충북 충주시 대소원면 영평리와 청주시 흥덕구 봉명동 출토. 고려.

 

 

<청동 금고(金鼓)>

충북 영동군 양산면 가곡리 출토, 고려(1224).

지방 향리들이 후원하여 만든 쇠북이다. 이 쇠북은 1224년(정우 12)에 이의사(利義寺)의 승려 현진이 만든 것으로 호정 손시용, 호장 손준서, 검교장군 손유 등이 발원하였다. 쇠북의 중앙에는 연꽃씨 5개를 배치하였고, 그 주위에는 12개의 연꽃잎을 겹치게 묘사하였으며 바깥에는 구름과 덩굴 무늬를 넣었다. 명문은 측면에 두 줄로 새겼다.

 

 

<금동 사신문 관 금구(사신 무늬 관 꾸미개)>

고려.

목관에 부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관 장식이다. 관의 4면 중앙에는 각각 백호, 청룡, 주작, 현무를, 관의 뚜껑에는 봉황무늬를 타출하여 장식하였다. 또 관의 각 모서리에는 당초문으로 장식한 금동 투조 장식을 붙였다.

 

 

<'복녕궁방고'명 은제 도금 화형 접시('복녕궁방고'가 가 새겨진 접시)>

개성 출토. 고려 12세기.

 

 

<복녕궁주 묘지명>

1133년(고려 인종 11).

고려 제15대 왕 숙종의 넷째 딸 복녕궁주의 묘지명이다. 복녕궁주는 왕연의 부인으로 예종의 친동생이었으며, 38년의 짧은 생을 마감하였다. 이 묘지명에서 중국 송의 연호를 쓰면서도 복녕궁주를 천자의 딸이라고 표현한 것을 통해 중국과 조공 책봉관계 속에서도 천자의 나라로 자처한 고려의 자긍심을 엿볼 수 있다.

 

 

<만월대 출토 건축 부재들>

개성 만월대. 고려.

벽 왼쪽은 수막새, 암막새기와, 오른쪽은 쇠못과 철제 장식이다. 바닥 왼쪽은 동물장식 기와와 '월계신출'을 새긴 기와, 중앙은 청자로 만든 기와, 오른쪽은 전돌이다. 

 

벽 왼쪽의 기와는 만월대에서 출토된 막새로 둥근 것은 수막새, 옆으로 벌어진 U자형은 암막새이다. 고려시대 막새는 전체적으로 삼국시대 유행하던 연화문을 계승, 발전시켰다. 점차 이전 기와와는 차별화된 고려의 특징적인 일휘문이 등장하였고, 후기에는 원의 영향을 받은 범자문이 출현하였다. 만월대에서도 연화문, 일휘문, 범자문, 귀면문 막새 등이 다양하게 출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