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국립서울현충원1 (정문 주변, 장병묘역, 국가유공자묘역, 애국지사묘역)

큰누리 2017. 6. 15. 21:36

 

 

 

<국립서울현충원>

설립일 : 1955. 7. 15

설립목적 : 국가유공자의 유골 또는 유해를 안장하고, 그 충의와 유훈을 추앙

소재지 :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210(동작동 산41-2)

규모 : 143만㎡, 17만 2천여 위 안장.

 

1955년 7월 15일 국군묘지로 창설되어 전사 또는 순직군인과 군무원 및 종군자의 영현을 안장하였으나, 10년 후인 1965년 3월 30일 국립묘지로 승격되어 국가원수, 애국지사, 순국선열을 비롯하여 국가유공자, 경찰관, 전투에 참가한 향토예비군 등이 추가 안장되었다. 1996년 6월 1일 국립묘지관리소라는 관리기관 명칭이 국립현충원으로 변경되었고 2006년에는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변경되었다. 계속된 안장으로 서울의 국립현충원이 만장되자, 1979년 국립대전현충원을 창설하여 그곳에 안장하고 있다.

국립현충원 안장 대상은 군인 및 군무원으로 전사 또는 순직한 자, 전사한 향토예비군, 장관급 장교 또는 20년 이상 군에 복무한 자, 전투에 참가하여 무공이 현저한 자, 국장() 또는 국민장으로 장의된 자,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 군인·군무원·경찰관으로 전투·공무수행 중 상이를 입고 퇴직 후 사망한 자, 임무수행 중 전사·순직한 경찰관, 국가 또는 사회에 공헌한 공로가 현저한 자, 대한민국에 공로가 현저한 외국인 사망자 등이다.
묘역국가원수 묘역, 애국지사 묘역, 국가유공자 묘역, 군인·군무원 묘역, 경찰관 묘역, 일반 묘역, 외국인 묘역으로 구분되어 있고, 전체 형국은 공작새가 아름다운 날개를 펴고 있는 공작장비형()이며 또 장군이 군사를 거느리고 있는 듯한 장군대좌형()이기도 하다.

경내에는 무용용사탑, 전쟁기념관, 현충관, 충렬대 등이 있으며 2013년 기준 국가원수 3위, 임시정부요인 18위, 애국지사 259위, 국가유공자 66위, 일반유공자 19위, 장군 371위, 장교 5,864위, 부사관 및 사병 50,605위, 군무원 1,980위, 경찰 1,032위, 위패 10만 3000여 위, 무명용사 1,001여 위 등이 안장되어 있다.

서울특별시 동작구에 있으며, 전체면적은 143만 ㎡에 이른다. 1979년 8월 29일 대전광역시 유성구에 창설한 국립대전현충원은 국립서울현충원의 2배가 넘는 329만 6807㎡의 면적에 1986년 이후의 영현을 안장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퍼옴--

 

 

<국립서울현충원 정문 앞 충성분수대>

 

 

<국립서울현충원 꽃시계>

사진상 뒤로 겨레얼 마당 - 현충문 - 현충탑(위패봉안관)이 늘어서 있다.

 

 

<국립서울현충원 현충문, 현충탑(위패봉안관)>

 

 

<국립서울현충원 배치도>

--국립서울현충원 홈페이지에서 퍼옴--

 

 

<국립서울현충원 1, 2묘역과 경찰충혼탑>

 

 

<국립서울현충원 육탄10용사 현충비>

 

뒤쪽은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10, 6, 2묘역이다.

 

 

<국립서울현충원 현충문>

 

 

<국립서울현충원 1묘역(장병묘역)>

 

 

<국립서울현충원 2묘역(장병묘역)>

 

 

<국립서울현충원 3묘역(장병묘역)>

 

 

<국립서울현충원 7, 5, 6, 10, 11묘역 안내판>

 

 

<국립서울현충원 6, 7묘역(장병묘역)>

 

 

<국립서울현충원 14묘역(장병묘역)과 현충탑(위패봉안관)>

 

 

<국립서울현충원 15묘역(장병묘역)>

 

 

<국립서울현충원 국가유공자 제3묘역>

 

 

<국립서울현충원 국가유공자 제3묘역 최규식경무관 묘>

 

1960년 1.21무장공비 청와대 침투 사건 때 무장공비를 저지하고자 총격전을 벌이다 순직한 경찰관으로 창의문 앞에 동상이 세워져 있다.

 

 

 

<국립서울현충원 국가유공자 제3묘역 국무총리, 포스코 박태준회장 묘>

 

이 분이 국무총리를 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우리 세대에겐 새마을운동, 철강신화를 이룩한 포항제철 회장으로 더 익숙한 분이다. 크기는 대통령 묘소와  비교가 안 되지만 답사 날 본 모든 국립서울현충원의 묘들 중에서 가장 화환이 많았다.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입구>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충열대>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무후선열제단>

 

독립운동을 하다 순국하였으나 후손이 없거나 유해를 찾지 못한 133위 순국선열의 위패를 봉안한 곳이다. 유관순 열사, 이상설, 이위종 열사, 홍범도 장군 등의  위패와 정인보, 엄항섭, 조소앙 등 납북 독립유공자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무후선열제단에 모셔진 위패들>

 

♣ 보이는 부분 윗단 왼쪽부터 차병수 - 지용기 - 조인환 - 조도선 - 정인복 - 정남용 - 전태선 - 전덕명 - 장진원 - 장덕준.

 보이는 부분 둘째단 왼쪽부터 유상근 - 유득신 - 유관순 - 오상서 - 엄순봉 - 안명근 - 안경신 - 손창준 - 서의배 - 백시찬.

 보이는 부분 세째단 왼쪽부터 김병록 - 김기한 - 김규식 - 고두환 - 홍범도 - 이위종 - 연기우 - 나석주 - 김익상 - 오동진.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프랭크 W. 스코필드>

 

3.1운동을 적극 후원하고 제암리 학살사건을 언론을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렸으며 장학사업 등으로 불우 청소년을 도왔던 캐나다인 스코필드 박사의 묘소이다.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우당 이회영선생 묘>

 

삼한갑족의 호사를 포기하고 전재산을  팔아 만주에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했으며 죽는 순간까지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내놓은 오블리제의 표본! 일제에 의해 뤼순감옥에서 고문 끝에 돌아가신 것으로 알려졌는데 시신이나마 고국의 품에 묻혀 다행스럽다.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왈우 강우규 선생 묘>

 

노구를  이끌고 일제에 폭탄을 투척하다 불발로 끝나고 붙잡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분, 서울역사 앞에 동상이 세워져 있다.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서 내려다 본 15, 17묘역과 현충문, 현충탑(위패봉안관)>

 

 

 

<국립서울현충원 장군 제3묘역에서 내려다 본 충혼당(왼쪽), 봉안식장(오른쪽 앞)>

 

충혼당은 부부형(12,373위), 단독형(8,490위)이 있으며 봉안동, 제례동, 휴게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봉안식장은 충혼당 봉안을 위한 사전준비(서류접수 및 확인, 유골함 교체 등)와 충혼당 봉안의식을 거행하는 장소이다.

 

 

 

<국립서울현충원 장군 제3묘역>

 

 

 

<국립서울현충원 26묘역(장병묘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