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마포 전찻길 따라 근대의 풍경을 걷다1

큰누리 2017. 6. 12. 23:39

마포 전찻길 따라 근대의 풍경을 걷다1, 2는 2012. 7/2. 카페<나홀로 테마여행>에 '근대 역사의 흔적을 찾아서(6차 특별답사)1, 2로 올렸던 글이다. 카페에 올렸던 글을 블로그로 옮기는 과정에서 누락되어 뒤늦게 올린다.

 

인간의 행위에 '영원한 것'은 없는 것 같다. 나홀로....에서 답사를 다녀오면 날밤을 세워가며 사진 정리하고 글 올리는 일을 의무처럼 2년 반 정도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특별한 일이 없으면서도 하루 이틀 사진정리는 뒤로 넘어가고 글 올리는 일은 더더욱 뒤로 미루는 일이 잦아졌다. 사람의 관심사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옮겨가는 것은 당연지사이니 반성까지 할 필요는 없지만 어떤 일을 하건 초심으로 돌아가는 일은 자신의 중간 점검이나 관리를 위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은 한다. 답사기는 내 기억 강화를 위한 것이다! 나를 위한 변명! 

 

이순우선생님과의 인연은 우연히 도서관에서 <제자리를 떠난 우리 문화재?>라는 책을 접하고부터였다. 개인적으로 근대사에 워낙 관심이 많았지만 그 책을 발견한 건 정말 우연이었다. 세상에나,,, 어떤 한 가지 일에 이렇게 천착하는 바보같지만 아름다운(!) 사람이 있을까! 일본인들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이 많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정말 존경스러운 점은 그 사람들은 몇대를 이어가며 한 가지 일에 끝장을 보고 그 때문에 그 방면에서는 최고라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냄비근성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 미덕을 이순우 선생님의 <제자리를 떠난 우리 문화재?>인가 하는 책에서 보았다. 한 우물, 우직함...

 

답사 내용이 너무 진지하고 좋아 역사와 관련된 동료들에게 살짝 권했는데 반응들이 너무 좋았다. 동료나 나나 모두 책으로는절대 못 느낄 생생한 현장을 <근대유적답사>에서 느낄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근대역사의 흔적을 찾아서 6차 답사는 마포 전찻길을 따라가는 일정이었다. 부제는 <마포 전찻길 따라 근대의 풍경을 걷다>.

 

 

<우리나라 전차의 역사>

1. 최초 노선은 미국인 콜브란, 보스트윜의 주도로 설립한 한성전기회사에 의해 1899년 4월 초파일에 개통된 청량리(홍릉) - 동대문 - 경교(새문) 구간이다.

2. 1899년 12월에 종로분기점 - 남대문 - 용산 구간 확장,

3. 1900년 7월에 남대문 - 봉래동 - 서대문 구간 확장, 

4. 1906년 하반기에 경교 - 애오개 - 마포종점 구간 확장,

5. 일제 강점기 이후 서울 시내 곳곳으로 전차가 보급(60km)되어 필수불가결한 대중교통수단으로 자리매김.

6. 1928년 4월 버스가 들어오고 노선이 57km로 엇비슷한 상태였다 자가용의 보급으로 쇠퇴하기 시작,

7. 시속 30km라는 느린 속도와 시설노후에 따른 적자운영으로 1968년 전차 운행이 중지되고 선로는 철거되었다. 

우리의 답사 코스는 주로 4번 구간이었다.

 

 

<집결지인 서울역사박물관의 등록문화재 제467호 - 전차 381호(표석, 열차와 내부)>

1930년대에 일본차량주식회사에서 제작한 것을 도입한 것으로 전차운행이 중단될 때 한국전력에서 보관 - 1973년 어린이대공원 개장 시 이전 전시 - 2008년부터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인수 - 보존 처리 후 2009년부터 공개 중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전차는 전차 363호(등록문화재 제426호, 서울국립과학관), 아래의 전차 381호(등록문화재 제467호, 서울역사박물관) 및 부산전차(등록문화재 제494호,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 박물관) 3대 뿐이다. 

 

 

 

 

<서울역사박물관의 종루 주춧돌 초석>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아스팔트 아래 운종가展>>

 

 

<아스팔트 아래 운종가展>에 전시된 사진을 찍은 카를로 로세티

1902년부터 6개월 남짓 이탈리아 한국영사로 부임하면서 한국에 관한 사진을 찍어 <꼬레아 에 꼬레아니>, <한국에서의 서한> 등을 출간했다. 전시회의 내용물은 카를로 로세티의 사진에 의한 것이다.

 

 

 

 

<<아스팔트 아래 운종가展> - 당시(1902~1903년)의 서울과 현재의 서울>

 

 

 

 <서울역사박물관 뜰의 은신군(흥선대원군의 조부)신도비>

이곳에 흥선대원군의 조부 외에 그의 아들인 흥친왕(고종의 형 이재면), 손자인 영선군 이준용, 이문용, 증손인 이우의 신도비가 있다.

 

 

<돈의문(서대문) 터 표지>

 

 

<돈의문 터 인근의 4.19혁명기념도서관(이기붕 집 터)>

경교장(삼성서울병원)과 서울적십자병원 사이에 있다.

 

 

이 고가도로 왼쪽에 5차 답사 때 본 서대문정거장 터(現 이화여고, 경인선 종점)가 있다.

철로 종점과  전차 종점이 만나는 지점이다.

 

 

<질레트가옥 진입로>

서대문 (구)교차로에서 북서쪽 샛길로 들어서면 근세 이탈리아영사관이었던 질레트가옥 터 진입로로 이어진다. 현재 질레트가옥은 없어졌고 인창고교  교정이 질레트가옥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질레트가옥(이탈리아 최초 영사관) 터로 추정되는 인창고(右)>

 

 

<인창고 옆의 한국기독교 장로회 총회교육원>

이 건물을 검색해 보니 사연이 많았다. 1921년에 캐나다인에 의해 선교사 숙소로 지어져서 계속 사용되다 해방 후 한국기독교에 넘어가고 유신시대에는 해방신학의 근거지가 되었고, 근자에 소유자인 기독교 장로회에 의해 사라질 뻔 했다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되면서 겨우 연명한 것 등등... 건축사적으로는 한식과 양식을 섞은 최초의 건물이라는데 의의가 있다.

 

 

 

 <프랑스대사관이 있는 합동과 한 동네였다가 중앙을 가로지르는 경의선 부설로 왼쪽에서 독립(?)한 미근동(現 미동초등학교)>

 

 

   <경의선 철도 - 의령(아현)터널>

경의선 부설 당시 분기점이 용산역이어서 서울에서 북쪽으로 갈 경우 용산역까지 내려갔다 다시 기관차를 바꿔달고 경의선으로 접속하는 번거로움을 막기 위해 1920년에 준공, 1939년에 제2의 터널을 뚫어 쌍굴형태로 현존 중. 직선으로 가로지르느라 무리수를 둔 탓에 철로 중 가장 급커브라고... 마침 기차가 오가는 중.

 

 

<의령(아현)터널 입구에서 열강 중이신 이순우선생님>

 

 

 <충정로로 다시 나와 프랑스 대사관>

미동초등학교를 정면으로 보고 우측에 있다. 정동에 잠깐 영사관이 있었다 이곳으로 이전해서 자리를 계속 지켰으니 100년이 넘은 유서 깊은 대사관이다. 충정공 민영환선생의 별장 터였던 곳을 프랑스측에서 구입한 것이다. 

 

 

   <돌싸움(석전)으로 유명했던 애오개>

현재의 아현동. 당시에 외부에서 한양으로 들어오려면 마포나루를 건넌 후  반드시 이곳을 거쳐야 하는 교통의 요지였다. 고개 같지 않게 비교적 낮아 '애'오개로 불렸을 거라고...

 

 

 

   <아현중학교(舊 경성공립직업학교-경기도사범학교 터)>

1916년 아현보통학교로 설립(보통학교는 조선인들이, 소학교는 일본인들이 다님).

1924년 경기도공립사범학교로 10년 동안 임시 교사양성소로 운영.

1931년 아현공립보통학교로 전환.

1941년 아현공립국민학교.

1963년 경기공업전문고등학교

1952년 경서중학교

1980년 아현중학교...

건물의 골격은 1916년 이래 그대로 이되 정말 변화와 굴곡이 많은 학교이다. 

 

 

 

 <정면의 건물이 바로 문제의 건물>

 

  

 <이 을씨년스러운 건물...>

아래 사진에서 보면 이 건물의 총체적인 위치를 알 수 있다. 겨울에 외국인 손님을 동행해서 이곳을 지나다 우연히 보았는데 아직도 그대로이다. 보상금 문제가 걸린 건 아닌지... 일본인들에 의해 뒤의 산 근처가 화장장(아현리 화장장)으로 쓰인 곳이다.

 

 

   

<지하철5호선 애오개역>

우리가 답사하면서 본 애오개보다 한참 아래에 위치해 있다. 애오개역 맞은편(사진의 흰건물) 쪽으로 마포형무소 터가 있고 사진을 찍은 쪽으로 마포경찰서가 있다.

 

 

<애오개역>

왼쪽 뒤쪽으로 아현리화장장 터와 마포형무소 터가, 오른쪽 앞으로 마포경찰서가 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