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개화산 미타사 석불입상

큰누리 2017. 6. 24. 23:52

<개화산 호국충혼위령비와 호국공원>

지정 :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관리자 : 개화산 전투전사자유족회.

소재지 : 서울특별시 강서구 개화동로13길 56-33.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무력남침하여 조국의 운명이 위기에 처하자 육군 제1사단 11, 12, 15연대 소속 장병 1,100여명은 김포지구로 후퇴하여 6월 26일부터 30일까지 개화산에 최후의 방어진을 치고 아군으로 위장한 적의 대병력을 맞아 전투를 벌였으나 본부와 통신이 두절되고 탄약과 보급이 끊긴 채 북한군의 수와 화력에 밀려 부대원 전원이 개화산 골짜기에서 장렬히 산화하는 비운을 맞이하였다.

 

호국충혼비는 조국과 민족을 수호하기 위하여 개화산 전투에서 신명을 바치신 호국영령들의 넋을 위로하고 그분들의 고귀한 업적과 숭고한 희생정신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건립추진위원회가 1994년 6월 28일에 건립하였다. 개화산 전투전사유족회와 국군 제1사단은 매년 6월에 위령제를 개최하여 전사자의 충혼을 기리고 있다.

--현지 안내문--

 

그다지 높거나 크지 않은 개화산에 6.25전쟁 하루 뒤에 1,100명의 군인이 모여 있었다는 것은 당시에 상황이 얼마나 급박했으며 궁지에 몰렸는지 짐작할 수 있다. 생떼 같은 목숨들이 이곳에서 산화했는데 이전까지 전혀 몰랐고, 지금도 그런 가슴 아픈 사실을 지역주민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호국충혼위령비도 작아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내용을 알기 어렵다.  

강서둘레길 1코스(개화산숲길)에 있으며 위치는 미타사 바로 위에 있다.

 

 

 

<개화산 호국충혼위령비 주변의 살갈퀴>

 

 

<개화산 호국충혼위령비 주변의 소나무 암, 수꽃>

정상에 붉은 꽃 같은 덩어리가 있는 것이 소나무 암꽃이고, 옆에 옥수수 알 같은 모양이 붙어 있는 것이 소나무 수꽃이다. 건강한 후손 증식을 위해 같은 나무끼리 수정을 피하려고 암꽃이 높이 솟아있는 식물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강서둘레길 1코스(개화산숲길) 안내도>

 

 

<개화산 미타사>

미타사는 딱히 법당이라고 할 만한 사우는 없고 석불입상 자체가 신앙 대상인 듯 하다.

 

 

 

 

<미타사(弥陀寺) 석불입상>

지정번호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49호 / 시대 : 조선시대

소재지 : 서울특별시 강서구 개화동 산 81-13.

미타사는 고려말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오는데 석불만 남아 있었으나 1924년에 사찰이 중창되었고, 1937년에 석불 보호각(미륵당)이 지어졌다. 석불입상은 전체 높이 320cm, 상 높이 293cm로 원래 위치보다 높은 산 위쪽 흙속에 묻혀 있었으나 이곳으로 옮겨지면서 대좌가 새로 조성되었다.

 

석불입상은 커다란  석주(石柱) 같은 형태로 머리 위에는 원반형의 천개(天蓋)가 올려져 있다. 둥근 얼굴에 눈은 가늘고 길게 새겨져 있으며, 코는 높은 이등변 삼각형의 형태로 콧등이 편평하다. 목이 굵고 어깨가 각이 져 있으며, 두 손은 가슴 높이로 올려서 수인을 짓고 있는데, 설법인(設法印)을 표현하려고 했던 듯 하다.

통견식으로 입은 대의(大衣)에는 넓은 띠 모양의 옷주름이 새겨져 있고 앞면에는 넓은 4개의 호형 곡선을 이루며 치마 주름은 수직으로 음각되어  있다. 또한 발 부분은 별재(別材)의 돌로 조각되어 이어져 있다. 이 석불입상은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에 걸쳐 경기 충청 등 중부지방에서 유행하던 석불 유형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조성시기는 조선시대로 추정된다.

 

 

 

 

 

 

<개화산 미타사의 백두옹(할미꽃 홀씨)>

 

 

<개화산 마타사 바위 위의 석가모니불 좌상>

 

 

<석불입상에서 내려다 본 미타사>

원경에 김포국제공항이 보인다.

 

 

<평지에서 본 미타사>

 

 

<개화산 미타사 앞의 이정표>

 

 

<개화산 미타사 앞의 조팝나무>

다른 곳은 이미 지고 없는 조팝나무꽃이 끝물이나마 남아 있다.

 

 

<개화산 아래 내촌마을의 분홍매발톱꽃>

처음보는 색깔로 개량종인 듯 하다.

 

 

<개화산 아래 내촌마을의 벽화들>

종류는 많지 않았지만 벽화의 내용들이 다른 곳보다 덜 도식적이고 스타일이 모두 달라 꽤 괜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