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함양 상림 역사인물공원 (11인 동상, 청덕선정비와 영세불망비들)

큰누리 2017. 7. 25. 22:42

≪함양 상림 역사인물공원≫

지리산과 덕유산의 정기를 이어받아 숭고한 사상과 고귀한 정신으로 다볕골에 빛을 발한 선현들을 영원히 기리고자 고운 선생의 애민정신이 깃든 이곳 상림에 흉상을 세워 만민의 귀감으로 삼고자 한다. 옛부터 우리 함양은 좌안동(左安東), 우함양(右咸陽)이라 불리어온 영남의 대표적 선비 고장으로 오랜 역사를 통하여 훌륭한 인물이 수없이 배출되었는데 그 중 열한 분 최치원(崔致遠), 조승숙(趙承肅), 김종직(金宗直), 양관(梁灌), 유호인(兪好仁), 정여창(鄭汝昌), 노진(盧禛), 강익(姜翼), 박지원(朴趾源), 이병헌(李炳憲), 문태서(文泰瑞) 등을 이곳에 모셔 그분들의 거룩한 발자취를 밝혀 그 얼을 계승코자 새로운 천년을 열어가는 기념사업으로 역사인물공원을 조성하였다.

 

이곳에 모신 분들은 해외에 국위를 떨치고 깊은 학문을 쌓은 인물과 나라와 백성을 위해서 목숨도 아끼지 않고 고고한 선비정신을 실천한 인물, 새로운 학문이나 기술을 연구 보급하여 나라의 발전에 공헌한 인물, 효제충의(孝悌忠義)로 존경을 받는 인물, 혁신적 사상가로서 새로운 사상과 문화의 꽃을 피우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이 고장에 헌신봉사함으로써 후손들의 사기진작과 긍지를 갖게한 인물들이다.

나라와 고을을 지키고 빛낸 선현들의 고귀한 얼과 기백을 이어받아 그분들의 생활과 선비정신을 배우고 익혀서 혜안을 열어 나라의 기둥이 되고 빼어난 선조들의 후손으로서 보람된 삶을 누리고자 함이로다. 서기 2001년  11월  일   --현지의 역사인물공원기---

 

다 맞고 좋은 말인데 어쩐지 1960년대 말에 강제로 외웠던 국민교육헌장 느낌이 솔솔... '우리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났다... 하략.'

 

 

<함양 상림 안에 위치한 역사인물공원 입구>

 

 

<함양 상림 역사인물공원기와 11인의 동상>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병헌, 강익, 정여창, 양관, 조승숙, 최치원(중앙), 김종직, 유호인, 노진, 박지원, 문태서 선생 동상이다.

 

 

 

 

<함양 상림 역사인물공원기를 중심으로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첫 번째 이병헌 선생像>

 

 

<함양 상림 역사인물공원기를 중심으로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두 번째 강익 선생像>

 

 

<함양 상림 역사인물공원의 세 번째 정여창 선생像>

 

 

<함양 상림 역사인물공원의 네 번째 양관 선생像>

 

 

<함양 상림 역사인물공원의 다섯 번째 조승숙 선생像>

 

 

<함양 상림 역사인물공원 중앙(여섯 번째)의 최치원 선생像>

 

 

<함양 상림 역사인물공원 일곱 번째의 김종직 선생像>

 

 

<함양 상림 역사인물공원 여덟 번째의 유호인 선생像>

 

 

<함양 상림 역사인물공원 아홉 번째의 노진 선생像>

 

 

<함양 상림 역사인물공원 열 번째의 박지원 선생像>

 

 

<함양 상림 역사인물공원기를 중심으로 맨 오른쪽의 문태서 선생像>

안의면 광풍루 뒤편에 의병대장 문태서 기공비가 상무좌우사 접장 하경순 포선불망비와 함께 나란히 세워져 있다.

 

 

<함양 상림 역사인물공원의 각종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 청덕선정비들(淸德善政碑)>

상림의 역사인물공원에 동상을 세운 분들의 선정 기준은 역사인물공원기에 분명히 새겨져 있지만 반쯤은 어떤 분인지 존재가 와닿고, 반쯤은 초면인 분이었다. 예전에 들렀을 때는 한번 주르륵 훑고 말았다가 이번엔 사진은 그런대로 촬영할 수 있었지만 그 이상은 시간이 모자랐다.

 

대신 역설적인 역사적 유물로 나름 가치가 있는 영세불망비 청덕선정비 몇 개는 꼼꼼히 훑어볼 수 있었다. 뭐니뭐니 해도 가장 웃기는 것은 갑오동학농민전쟁의 빌미가 된 고부군수 조병갑의 청덕선정비도 이곳에 있다는 것이다. 탐관오리였기 때문에 학정을 견디다 못해 군민들이 들고 일어나 갑오동학농민전쟁이 발생했는데 (함양군수 시절 선정비이긴 하지만) 내용이 가관이다. 개 버릇 남 못 주더라고, 고부군수 때 한 짓을 그 전임지인 함양에선 안 했겠는가? 

'...유민을 편케 하고 봉급을 털어 관청을 고치고 세금을 감해주며 마음이 곧고 정사에 엄했기에 그 사심 없는 선정을 기리어...' 조병갑 청덕선정비를 세웠다는 것이다.

 

 

<열녀학생임술증 유인 밀양박씨지려>

아전 임술증의 아내 밀양 박씨의 열(烈)을 기려 세운 정려비(旌閭碑)이다. 밀양 박씨는 안의 사람으로 19세에 병든 신랑 임술증과의 혼인 약속을 지켜 결혼하였으나, 남편이 사망하자 3년상을 치른 다음 날 같은 시에 자결한 열녀로 1793년(정조 17) 안의현감으로 있던 연암 박지원이 쓴 유명한 <열녀 함양 박씨전>의 실제 모델이다.

 

밀양 박씨의 (烈)열은 당시 인근 고을까지 두루 알려져 함양군수 윤광석, 산청현감 이면제, 거창의 신도향, 선비 이학전, 벽송사의 승려 응윤 등도 기록을 남긴 바 있다. 비문은 일두 정여창의 7대손인 청하현감 정덕제가 짓고 썼다. 1797년(정조 21)에 처음 세웠고, 2009년 2월 19일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함양 상림 역사인물공원의 관찰(사) 정태현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

왼쪽의 검정(!) 비는 '함양면장 김정완' 운운한 것으로 보아 근세에 세워진 듯 하다.

 

 

<군수 박후정 청덕선정비(左)와 함양군수 조병갑 청덕선정비(右. 趙秉甲 淸德善政碑)>

안내판이 별도로 세워져 있는 사진 오른쪽의 비가 군수 조병갑 청덕선정비이다.

 

--'군수 조후병갑 청덕선정비(郡守趙侯秉甲淸德善政碑)'에 새겨진 내용을 풀어보면--

 '조선말 조병갑 군수는 유민을 편케 하고 봉급을 털어 관청을 고치고 세금을 감해주며 마음이 곧고 정사에 엄했기에 그 사심 없는 선정을 기리어 고종 24년(1887) 비를 세웠다.   

--이 글  안 본 눈, 삽니다!!!!--

 

--별도의 안내문에 의하면--

이 비는 조선 말기 함양 군수를 지낸 양주 조씨 조병갑(趙秉甲)의 선정비이다. 조병갑은 함양 군수로 재임(1886.04~1887.06)하다 1887년 8월 김해 부사로 부임하였고, 이후 1892년부터 1894년까지 고부군수로 재임하였다. 조선 말기는 외세의 간섭이 많아지고 국정이 혼미하여 매관매직이 심했던 때이다. 조병갑은 고부 군수로 재임하면서 온갖 방법으로 백성을 착취하였다. 이 시기 탐관오리의 대표적인 인물로 갑오동학농민운동 발생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하였다고 평가된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 때문에 우리 군의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탐관오리 조병갑의 선정비를 철거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선비정신과 구국정신이 강한 함양군에서는 이러한 역사를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것도 역사의 교훈이라는 점에서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여 이 비를 보존하기로 하고 안내문을 설치하였다.   2015년 6월 25일 함양군.

 

철거 안 하길 얼마나 다행인가! 반면 교사도 훌륭한 교사이다. 잘못된 역사적 사실을 부끄럽다고 덮으면 부끄러운 역사가 반복될 뿐이다.

 

 

<함양 상림 역사인물공원의 군수 오영덕 淸德善政碑>내용은...

'조선말 오영석 군수는 청렴하여 덕화가 뻗쳤고 봉급을 털어 세금에 보태며 형벌은 가볍고 관리가 편하여 백성들이 덕을 입으니 고종 25년(1888) 이를 기리어 비를 세웠다.' 

이런 청덕선정비나 영세불망비의 반 이상은 碑의 주인공들의 행태를 반대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원래의 취지는 덕행, 선정을 베푼 지방의 위정자를 위한 것이었겠지만 후세로 갈 수록 '옆구리 찔러 절 받기'으로 변질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함양 상림 역사인물공원의 군수 이헌주 청덕선정비>

내용은 '조선 후기 이헌주 군수는 3년 동안의 정사에서 법도를 바로 잡고 덕화를 널리 펴 그 치적이 지대하므로 사심 없고 선정을 베푼 공을 기리어 순조 23년(1823) 비를 세웠다.'

 

 

<함양 상림 역사인물공원의 군수 이상선 영세불망비(李象先 永世不忘碑)>

내용은 '이상선 군수는 공청을 쇄신시키고 인자하게 백성을 구제하여 사랑으로 다스렸기에 고종 15년(1878)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해 이 비를 세웠다.'

 

 

<함양 상림 역사인물공원의 군수 정무(鄭堥) 영세불망비>

내용은 '조선 후기 정무 군수의 치적을 잊지 않고 기리기 위해서 숙종 27년(1701) 영세불망비를 세웠다.'

 

 

<함양 상림 역사인물공원의 고상국 잠곡(故相國 潛谷)ㅇㅇㅇㅇㅇㅇ>

숙종 10년(1684)에 세워진 것 외에는 내용 불명.

 

 

<함양 상림 역사인물공원의 수많은 영세불망비, 청덕선정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