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쿠바

멕시코, 쿠바여행26 - 멕시코 국립인류학박물관2 테오티우아칸, 마야, 톨텍 문명실

큰누리 2018. 7. 2. 23:03

멕시코 국립인류학박물관 선사시대실을 본 후 이어 본 멕시코 고대문명 전시실의 내용이다. 몇 실인지도 모르겠고, 사진을 찍고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따라가다 보니 이 전시실이 나타났다. 테오티우아칸, 마야, 톨텍카카스틀라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스페인어였어도 제목, 시대만이라도 알면 검색을 해서라도 내용을 유추할 수 있었을 텐데 대부분 휴대폰으로 촬영해서 이름조차 파악이 어려웠다.

테오티우아칸은(Teotihuacán)은 멕시코시티에서 50km 떨어진 지점에 있으며 문명의 이름이기도 하다. '신들의 집합 장소' 란 뜻으로 4세기~7세기까지 전성기였다. 전시실에서 처음 본 것은 아기자기한 꼬마 건축물(재현)이었는데 사진정리하면서 확인한 결과 테오티우아칸 태양의 신전 옆에 있는 뱀의 피라미드였다일일 대타 가이드는 관람 시 자갈 길 때문에 넘어지는 사고가 잦아 통제한다는 말을 하며 그 쪽 방향으로 눈길도 주지 않았었는데... 하긴 당시의 뱀의 신전 존재를 알았다 하더라도 그 땡볕에서 아스라히 보이는 뱀의 신전까지 혼자 찾아갈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이쯤에서 멕시코의 고대사가 궁금해져서 검색을 했더니 위키백과에 내용이 잘 요약되어 있었다. 스페인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가 지배를 시작한 근대까지만 해도 비교적(!) 간단한 편인데 현대로 들어서면 쿠데타와 암살이 몇년 단위로 이어져 복잡하기 그지없고, 그 내용을 알 필요가 없다고 판단되었다. 그래서 멕시코 국립인류학박물관과 관련된 고대사만 요약해 보았다.

 

 

<멕시코의 고대사 : 나무위키/멕시코/역사에서 요약 발췌>

1. BC 2만년 경 베링해협을 건너온 주민들이 멕시코에 정착          

2. BC 8,000년경 농경시작

3. BC 14(혹은 12)세기부터 멕시코 동남부 지역에서 올메카(올멕) 문명이 최초로 등장

4. 이후 본토에서는 사포테카(사포텍), 미스테카(미스텍), 테오티우아칸, 톨테카(톨텍) 등의 문명이, 남부 및 유카탄 반도와 과테말라에서는 마야문명이 번창

5. 14세기경 아즈텍이 멕시코 고원의 주도권을 잡고 북부의 톨텍 제국을 제압

6. 1521 스페인의 에르난 코르테스에 의해 아즈텍(메시카) 문명 멸망

7. 지속된 정복으로 18세기에 메소 아메리카 전역이 스페인의 식민지화

 

 

<멕시코 고대 유적지 지도>

이 지도 왼쪽 아래에 십자가형의 나무 같은 그림이 있고, 그 사방 끝에 각기 다른 독수리가 있었다. 지역이나 시대에 따른 독수리 무늬 변천사가 아니었을까 추측했다. 아래 지도에는 와하카, 테오티우아칸, 톨텍, 마야, 메시카, 아즈텍, 사포텍, 골프해안 문명  등이 있겠지만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다. 

 

 

<테오티우아칸뱀의 피라미드(신전)>

거의 1개의 전시실을 차지할 정도로 크게 재현해 놓았다. 채색이 그대로 남아 있어 더욱 눈에 들어오는 뱀(케찰코아틀)의 입에서 분수처럼 물이 흘러나왔다고 한다. 앞의 좌, 우에 달의 신전, 태양의 신전 대형사진이 있다.

이 신전을 왜 못 보았을까? 현지 일일 가이드 말로는 자갈 길에서 관광객이 넘어지는 사고가 잦았는지 우리가 들렀을 때 이 신전은 이미 출입금지 상태였다. 그런데 뱀의 신전(피라미드)은 중간에 태양의 신전을 두고 '죽은 자의 길' 을 통해 맞은편의 달의 신전(피라미드)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우리는 정면의 태양의 신전(피라미드)를 올라갔다 내려온 후 사자대로(죽은 자의 길)를 지나 달의 신전으로 직행했다. 그리고 뱀의 신전 앞에는 내가 멕시코 고대문화를 대표하는 조각상으로 여기는에 찰치우틀리케(Chalchiutlicue, 옥 치마를 입은 여신) 석상이 있었다.

 

 

<테오티우아칸의 달의 신전(Piramide de La Luna)과 출토된 유물>

태양의 신전은 정상까지 올라갔는데 그 보다 낮은 달의 신전은 중간 계단참(중간 높이 정도)까지만 허용이 되었다. 즉, 인신공양이 행해진 정상부위는 못 올라간 것이다.

 

 

 

<테오티우아칸 죽은 자의 길에서 출토된 유물>

 

 

<테오티우아칸 3번 출구쪽 유적(회색 기둥)과 찰치우틀리케(Chalchiutlicue) 신 석상>

찰치우틀리케(Chalchiutlicue)옥치마를 입은 여신이란 뜻으로 물, 강, 바람, 바다를 주관하는 여신 물의 여신이라고 한다. 내가 느끼기에 이 찰치우틀리케 여신상이 가장 멕시코스러웠다! 여신 뒤로 보이는 기둥과 그 내부는 테오티우아칸 3번 출구쪽에 위치한 신전이라는데 뱀의 신전의 일부거나 그 주변 신전일 것이다. 우리는 뱀의 신전 방향으로 아예 진입조차 할 수 없었다.

 

 

<테오티우아칸 유적으로 추정되는 신전(방)과 그 내부에 진열된 유물들>

인류학박물관에서 가장 섬세하고 아름답고 세련된 벽화였으나 이름을 놓쳤다. 벽화 뿐 아니라 내부에 전시된 조형물도 상당히 섬세하고 아름답다. 테오티우아칸 신전(방)으로 추정하는 이유는 테오티우아칸 전시실에 이 신전이 재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테오티우아칸의 또 다른 신전(방)의 벽화>

테오티우아칸 신전(방) 중의 하나로 conjunto departamental(연결 부분?)이라는 설명이 있으며 3개의 네모 기둥 뒤에 있는 벽화이다. 정교한 윗 사진의 신전(방)과는 달리 벽화가 추상화 같기도 하고 조악해 보이기까지 한다.

 

 

<테오티우아칸 주변의 고대문명관 도자기>

 

 

<Estela 31 de Tikal(티칼의 31 기념비?)이라 적힌 마야 상형문자가 새겨진 거석>

상형문자 외에 인물상이 크게 새겨져 있다. 티칼은 과테말라 정글 안에 있는 대표적인 마야 유적지 겸 고대 마야의 왕국 중 하나로 현재 20% 정도만 발굴되었다고 한다.

 

 

<마야 문명 시기의 도기와 인물 모양의 도기>

 

 

 

<마야문명 시기의 유물>

 

 

<테오티우아칸 유물? 마야 유물?>

토기로 고양이, 쥐, 발 등 소재가 아기자기하다.

 

 

<설명을 놓쳐서 시기를 알 수 없는 고대문명관의 유물들>

장신구로 추정되는 붕어 모양의 물건, 그림이 그려진 토기, 흑요석으로 만든 송곳 비슷한 도구 등이다. 휴대폰 촬영이라 해상도가 깨지기도 하지만 안내 글을 보았어도 스페인어 위주라 번역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전시실은 영어 안내가 일부 병기되어 있었다.

 

 

 

 

<Lapidaria(보석)이라 명명된 작품>

크기나 사실적인 표현(덜 괴기스럽다!)으로 보아 장식품이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안내문을 놓쳐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으나 마야 문명 유물로 추측된다.

 

 

 

<카카스틀라(Cacaxtla)의 <그란 바사멘토 내부의 벽화>

카카스틀라(Cacaxtla) 올멕-시카얀카스족 유적지로 테오티우아칸이 몰락한 후 650년에서 900년 사이에 전성기를 누렸다100년간 방치되다 1975년 도굴꾼들에 의해 발견되었다그란 바사멘토는 카카스틀라의 중심에 위치한 길이 200m, 높이 20m의 피라미드로 주변에는 소치테카틀(Xochitecatle)을 비롯한 작은 피라미드(신전)들이 있다. 그란 바사멘토 내부의 기울어진 85m의 긴 벽화가 유명한데 마야에서 떨어져 있음에도 벽화에서 마야 양식을 보이고 있다.

 

하늘색(마야 블루)과 붉은색으로 강렬하게 채색된 마야 양식벽화 독수리와 재규어로 묘사된 전사들의 전투장면을 그렸다내용은 재규어 종족이 독수리 종족을 제압하는 모습인데 독수리 종족은 마야인을 의미한다고 한다.

왼쪽 그림은 얼룩 뱀을 밟고 있는 재규어 전사, 오른쪽 그림은 깃털 달린 뱀(케찰코아틀)을 밟고 있는 독수리 전사이다.

 

 

<카카스틀라의 유적, 창조자(Cacaxtla의 El Creador)>

역동적으로 고개를 바짝 쳐들고 반가부좌식으로 쭈그리고 앉은 자세, 독특한 인상 때문에 한번 보면 잊지 못할 인상의 창조신이다.

 

 

<시기 미상의 La Guerra란 제목의 전시물>

시기가 미상이란 것은 내가 내용을 놓쳤다는 뜻이다. 중앙의 조각난 인물상은 무기를 든 모습이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주변 전시물이 무기용 돌, 끈을 이용한 투석기, 돌 화살촉이기 때문이다.

 

15년쯤 전에 전쟁기념관에서 대대적인 잉카문명전이 열렸는데 그 때 여러 모로 놀란 기억이 있다. 시기적으로 따져보니 우리나라의 고려말 쯤 해당되었는데 무기라고는 돌 덩어리를 줄에 묶어 던지거나 반달모양으로 된 무딘 칼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바짝 붙어서 원시적인 무기를 가지고 반쯤은 몸으로 싸우는 방식이었다. 당시 고려에서는 청자가 황금기를 이루고, 최무선의 화약이 나올 시점이었는데...

장식용 관이나 장식품 재료도 청동으로 고려시대에 비하면 조악하기 짝이 없었다. 그 때 느꼈던 것은 이유야 어떻든 무기부터 청동기 수준이어서 불과 몇백명의 스페인 침략자들에게 당할 수 밖에 없었겠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마야문명실로 추측>

 

 

<치첸잇사에서 경기장에서 본 '죽음의 경기(틀라치틀리)' 골대>

오른쪽의 타이어 같은 물건(!)은 El Juego de Pelota(죽음의 공놀이의 골대)이다. 틀라치틀리(죽음의 공놀이)경기장 양쪽 벽에 타이어처럼 붙은 골대에 축구공 크기 정도의 고무공을 무릎, 팔꿈치, 엉덩이로 넣는 경기이다벽에 걸린 그림은 익숙한데 아직 이름을 못 찾았다, ㅠㅠ...

 

 

<톨텍 문명의 중심인 툴라에서 발견된 Cabeza Coyote(늑대 머리, 늑대 가면)>

톨텍 문명은 아즈텍 문명 이전의 문명이다. 늑대 머리 속에 인간의 얼굴을 집어 넣은 작품(!)으로 부족장이나 왕의 시신에 씌웠거나 부장품이었을 것 같다. 인상은 고약하지만 지금까지 본 석조나 토기가 아니라 조개껍질나 옥으로 보이는 물건을 붙여 만들었다.

 

 

<Deidades Esgrafiadas란 이름이 붙은 은제 장식품>

인간(신)이 어떤 행동을 하는 선묘인데 원본이 많이 훼손되어 내용 파악이 어려웠다.

 

 

<용도를 알 수 없는 자루 달린 인물형 도기>

설명을 놓쳐서 제작 시기나 용도, 이름을 알 수 없지만 해골 모양 때문에 한 눈에 들어왔다. 국자나 다리미로 보자니 사방에 구멍이 뚫려 용도에 맞지 않고, 장식품으로 보기에도 좀 그렇고... 화로, 혹은 신을 위한 제기가 아니었을까?

 

 

<과카마야(Guacamaya, 앵무새) 석조상>

마야인들은 앵무새의 화려한 깃털을 신들이 다양한 색을 입혔다고 생각했으며, 그 때문에 앵무새를 '신의 사자'라고 해서 신성시 했다현재 온두라스를 상징하는 새이다 

 

 

<착 물(Chac Mool)>

제물로 바친 인간의 심장을 올려놓은 로 반와상 자세를 취하고 있고, 심장을 놓는 위치는 쟁반처럼 둥그렇고 평평하다착 물(Chac Mool) 고대관 끝부분(야외 전시실쪽)에 놓여 있는데 스페인 정복 이전의 멕시코 고대문명에는 비슷한 형태의 착 물이 있다고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