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이집트17 - 룩소르(테베)의 카르낙 신전

큰누리 2019. 5. 1. 02:52

1/19(토). 이집트 5일째 일정(룩소르-후르가다)

- 07:00 왕들의 계곡 도착- 왕들의 계곡에서 3개 파라오의 무덤 내부 관람(사진 촬영권 별도 지급)- 하셉수트 장제전 관람- 멤논의 거상(아멘호텝 3세 장제전) 관람- 펠루카로 나일강 동쪽으로 이동- Iberotel호텔 별관 중식당에서 점심- 룩소르 카르낙신전 관람- 후르가다 Desert Rose리조트 투숙

 

 

≪이집트 유적의 보고 룩소르 유적, 편안함과 친절의 상징 크루즈와의 이별≫

룩소르 신전과 카르낙 신전은 글을 이어 써서 비교해보려 했는데 룩소르 신전은 1/18(금)에 보았고, 카르낙 신전은 다음날(1/19. 토) 마지막 코스로 보았다. 그래서 글의 분량이 맞지 않아 부득이 룩소르 서안의 멤논(아멘호텝 3세)의 거상, 나일강 펠루카 탑승, 후르가다로의 이동을 뒷글(이집트 18)로 묶었다.

 

1/19(토) 아침에 크루즈에서 아침식사를 마지막으로 하고 짐을 내놓은 것을 끝으로 그동안 즐겁고 편안했던 크루즈와는 룩소르 항구에서 이별했다. 직원들은 모두 나와 일렬로 서서 정중하게 우리를 배웅했다. 어디에서든 다시 만나고 싶은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크루즈는 안전 문제 때문에 아스완에서 룩소르까지만 운행한다고 들었는데 나일강에서 동쪽으로 90도 꺾이는 지점에 있는 후르가다를 가려면 어차피 룩소르에서 내려야 한다. 룩소르에서 오전에 나일강 서쪽의 유적을 보고 마지막으로 카르낙 신전을 들린 후 관광버스를 타고 긴 사막을 건너 후르가다의 리조트로 갔다. 

 

 

카르낙 신전(karnak Temple)

룩소르(과거의 테베) 시 나일강 동쪽에 위치한 현존하는 이집트 최대 규모의 신전으로 아문(Amun) 대신전으로도 불린다. 3km거리의 나일강변에 위치한 룩소르 신전은 카르낙 신전의 부속신전으로 도로 양쪽에 1천개의 스핑크스가 늘어선 도로와 연결이 되어 있다. 현재 남아있는 스핑크스는 많지 않고 복원 중이다. 

 

♣ 테베지역의 전쟁, 혼돈의 신이었던 지역신 아몬(unknown, 언 노운알 수 없는 것이란 뜻)아문-라로 바뀌면서 주신이 되어 봉안된 신전이다.

 주신인 아문과 부인인 무트, 아들인 콘수가 3위신으로 카르낙 신전에 지성소가 따로 있으며, 신전 입구의 양머리 스핑크스는 아문신을 상징한다.

 신전 규모는 동서 1,100m, 남북 540m의 사다리꼴이며 건축의 주재료는 흙벽돌이다

 고대에는 신전이 룩소르 신전, 나일강까지 배로 연결되고, 범람하는 경우 기둥의 1/5 정도까지 잠겼으나 아스완 하이 댐 건설 후 지금처럼 상황이 바뀌었다. 

 

 

<테베, 카르낙 신전의 약사>

룩소르는 고대에 테베라고 불렸으며, 중왕국 시대 제11대 왕조 때와 신왕국 시대 제18 왕조 때 이집트의 수도였다BC. 1990 경부터 아메넴헤트 1세에 의해 신전이 건립되기 시작한 이후 후대 파라오들에 의해 끊임없이 증축되거나 개축되었다. 투트모스 1, 핫셉수트 여왕, 아멘호텝 3세, 투탕카멘 등 역대 왕들이 신전을 증축하고 기념비, 탑문, 소신전, 왕들의 석상을 건립하여 거대한 신전이 되었다신전 안에는 소신전, 지성소 외에도 숫양 머리를 한 스핑크스 열주 도로 2, 10개의 탑문(파일론), 성스러운 연못, 정원, 야외 박물관 이 있다.

 

신왕조 19왕조의 람세스 2세는 카르낙 신전과 룩소르 신전을 확장하고 히타이트와의 카투시 전투 기념비를 세웠다. 뿐만 아니라 원래 아멘호텝 3세를 기리는 건축이었던 카르낙 신전의 2번째 탑문 안쪽을 자신을 위한 건물로 바꾸고 증축했다열주대로 입구 파일론(탑문) 앞에는 람세스 2세의 거대한 석상과 다리 사이에 그의 딸(부인 테페르타리라고도 함) 조각상이 있다.

 

이집트 신전은 가장  작은 지성소부터 점차 밖으로 크기를 키우며 지어나가는 구조인데 나는 카르낙 신전에서 지성소를 제대로 찾지 못했다. 사전 지식이 없기도 했고, 콘수 신을 제외한 아문 신과 그의 부인 무트 신전이 전혀 예상 밖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집트 여행을 마치고 글을 쓰는 이 순간까지 사진촬영은 커녕 아문 신과 무트 신은 신전조차 찾지 못했고, 콘수 신전만 겨우 위치 파악을 했다.

중앙의 열주대로 끝에 있는 지성소를 아문 신 지성소로 오해를 했기 때문에 삼위신 지성소에 대해 혼란스러웠는데 그곳은 핫셉수트 여왕을 위한 소신전이었던 것 같다. 바로 앞에 투트모스 1세와 핫셉수트 오벨리스크가 있었고. 지성소치고는 제법 크고 반듯한 그 신전 안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다른 블로거들의  글도 수없이 찾아봤는데 정확히 아문신전 내부사진을 찍어 올린 곳은 두 어곳 밖에 없었고, 중앙에 반질반질한 검은 돌이 있었다.

 

카르낙 신전은 크게 고대 이집트 신 아문, 무트, 멘투에게 바치는 세 개의 신전으로 나뉜다이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문 대신전이다입구에 양의 머리를 하고 있는 스핑크스가 양쪽으로 20개씩 늘어서 있으며, 첫째 탑문을 지나면 커다란 광장이 나타난다중앙에는 큰 원기둥이 주춧돌이 있고 그  중 온전한 것은 유일하게 1개이다. 광장의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신전이 하나 있는데 이곳은 람세스 3세가 람세스 2세를 위해 지은 신전이라고도 하고, 아문 신에게 바친 신전이라고도 한다너비 113m, 높이 37m의 거대한 제1탑문을 지나면 16134개의 대원주가 서 있는 대열주실(大列柱室)이 있고, 일직선상으로 높이 30 m하트셉수트 여왕의 오벨리스크와 투트모스 1세의 오벨리스크가 있고, 신전의 가장 안쪽에  투트모세 3세의 축제전(祝祭殿)이 있다. 축제전의 벽에는 다양한 식물이 새겨져 있다영원할 것 같았던 카르낙 신전은 이집트가 로마의 식민지가 된 후 자연적인 모래 바람 속에 묻혀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1895년 프랑스의 조르주 루그랑의 지휘 하에 발굴이 시작되었고, 현재에도 발굴이 진행 중이며, 신전 바닥을 흐르는 물 때문에 진행이 더뎌 10% 정도만 발굴된 상태이다.

 

 

<카르낙(karnak) 신전 배치도 요약>

1. 입구 양쪽에 아문 신을 상징하는 양머리 스핑크스(클리오)가 늘어서 있다.

2. 4겹의 파일론(성벽, 탑문)맨 앞의 것은 3층으로 사각형 문이 있고, 오른쪽은 미완성, 왼쪽은 신전 안쪽에 돌을 올려 쌓기 위해 쌓은 진흙 지지대가 있다.

3. 파일론(성벽, 탑문)은 신전에서 '통과하는 문' 정도로 이해하면 되는데 카르낙 신전의 탑문이 여럿인 이유는 1500년에 걸쳐 여러 왕들이 자신이 숭상하는 신을 위한 신전을 짓거나 개조, 증축했기 때문에 구역이 나뉘고 그에 따라 탑문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또한 카르낙 신전은 현재 규모가 세계 최대라고 하는데 발굴된 것은 10% 정도 밖에 안 된다고 한다.

4. 안마당의 흑인 파라오가 세운 10개의 대형 원형 석조기둥 중 남은 것은 1개이다.

5. 제2탑문(파일론) 앞에는 도리깨와 지팡이를 들고 가슴에 손을 엇갈리게 올린 오시리스 상을 한 거대한  람세스 2세 입상이 있고, 다리 사이에 딸(혹은 부인)이 있다.

6. 제3탑문(파일론)은 아멘호텝 3세 때 건축되었으며, 제4탑문은 투트모스 1세 때 건축된 것을 세티 2세가 복원했다. 3탑문과 제4탑문 사이에는 작은 광장(SMALL COURT)이 위치하며, 동 광장에는 투트모스 1세의 OBELISK, 4탑문 안쪽에는 핫셉수트 여왕의 OBELISK가 있다.

   7. 투트모스 1세와 3세가 건설한 제5 탑문과 제6 탑문을 지나면 태양신 AMUN의 지성소 도달한다.

   8. 19왕조 람세스 1가 세운 대열주실, 18왕조 투트모스 1세와 핫셉수트의 오벨리스크, 투트모스 3세 신전이 가장 유명하다. 특히 대열주실은 높이 23m에 이르는 중심 기둥 12개와 높이 15m, 둘레 8m122개, 총 134개의 원기둥이 장관을 이룬다. 기둥머리는 연꽃이나 파피루스 모양이고, 기둥엔 왕의 업적을 섬세한 부조와 상형문자로 새겨 놓았다. 열주 기둥 끝쪽에는 시대를 달리 건설한 왕들의 탑문이 있고, 기둥 사이에는 신전 건축과 관련된 왕들의 조각상이나 소신전이 남아있다.

9. 기둥 숲을 지나면 투트모스 1세와 핫셉수트 여왕의 오벨리스크 있고, 더 안쪽에 핫셉수트 여왕의 것으로 알려진 누운 오벨리스크 있다.

10. 사원 동쪽 끝에 중왕조부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까지 증축했지만 결국 파손되어 복원을 포기한 큰 사원이 있지만 우리 가이드는 개괄적인 설명만 하고 들르지 않았다.

11. 신전 남쪽 밖 벽에는 다른 나라를 점령(을 희망)하는 선묘 벽화가 있고, 서쪽-동쪽으로 이어지는 중심축과 같은 내용의 파일론이 4개 있다. 이 부근에서 손이 뒤로 묶인 포로들 벽화, 람세스 2세가 자신이 정복한 국가와 도시 이름을 새겨 놓은 내용을 보았다.

12. 지성소는 2중 구조로 되어 있는데 외실은 투트모세 3세가 건축한 것이며, 내실은 기원전 3년경 프톨레마이우스 왕조가 건설한 것이다.

13. 지성소 남쪽에는 제사장들이 종교의식을 행하기 전 목욕 재개하던 성스러운 호수 있다.

14. 성스러운 호수 입구에는 고대 이집트에서 신성한 동물로 여겨졌던 쇠똥구리(SCARAB)의 석상 있고, 호수 입구 쪽에 핫셉슈트 여왕의 누워있는 OBELISK가 있다.

 

 

<카르낙 신전 배치도>

1,500여년에 걸쳐 끊임없이 변화한 이 신전을 이해하느라 글 쓰기를  멈춰야 할 정도로 복잡한 작업이이었다. 우리는 사진 오른쪽 끝의 서문에서 입장하여 열주도로를 관통하며 신성한 호수까지 갔다.

 

 

<카르낙 신전 입구의 수로와 관련 시설들>

나일로 미터일 수도 있고, 해자라고 부를 수도 있는 나일강의 범람을 대비한 시설들이다. 현대에 이르러 나일강과 별 관련이 없는 걸로 보이는 룩소르 신전, 카르낙 신전은 아스완 하이댐 건설 이전에는 4개월 이상 나일강 물에 잠겨 있었다. 

 

 

<카르낙 신전 입구와 제1 탑문>

아문 신을 상징하는 양 머리를 한 스핑크스(클리오)들이 입구 양쪽으로 도열해 있다. 이곳 뿐 아니라 탑문  안쪽에도 2열로 도열한 양 스핑크스들이 있다. 양 스핑크스 다리 사이에는 여인들의 조각상이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다.

 

 

<카르낙 신전(Amun-Ra Temple, 아문-라 대신전) 배치도>

 

 

<카르낙 신전(Amun-Ra Temple 탑문과 안쪽의 양머리 스핑크스)>

사진 왼쪽 끝에 람세스 3세 신전이 있다. 탑문 안쪽의 흙벽은 지지대라고 하는데 왼쪽에만 있다. 양머리 스핑크스 다리 사이에는 작은 여성 조각상들이 서 있다.

 

 

<카르낙 신전(Amun-Ra Temple 오른쪽 탑문과 성스러운 배 저장고>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아스완 하이 댐이 완성되기 이전에는 4개월 이상 이곳이 나일강에 잠겨 있었기 때문에 카르낙 신전에서 주변의 나일강이나 룩소르 신전을 드나들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었던 배들의 저장고이다. 각각 아문 신, 무트 여신, 콘수 신의 배 저장고란 명칭이 붙어있다.

 

 

<카르낙 신전 제2 탑문과 (Amun-Ra Temple 탑문과 흑인 파라오가 세운 10개의 대형 석조 기둥>

카르낙 신전을 처음 들어섰을 때의 모습이다.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어마어마한 기둥의 숲이 있고 좌우 어디를 둘러 보아도 놓칠 만한 것은 없지만 특별히 설명을 해 주는 이도 없다. 1,500년 동안 끊임없이 증축하고 변화를 거듭한 이집트 역사의 중요한 장인데... 밀도도 너무 높아 평범한 일반인이 판단하고 감상하기엔 카르낙 신전의 벽은 너무 높고 깊다!

 

 

<카르낙 신전 제2 탑문과 람세스 2세 조각상>

이 부분이 카르낙 신전의 주요 코스이다. 중앙으로 통과하면 카르낙 신전의 가장 중심적인 구조를 볼 수 있다. 정면의 대형 인물상은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이집트의 왕이자 카르낙 신전을 부흥시킨 람세스 2세 동상이다.

 

 

<카르낙 신전 제2 탑문과 람세스 2세 조각상>

공사 중이지만 보기엔 큰 불편은 없다. 다리 사리에 위치한 여인상은 아부심벨 신전에서 보았듯이 딸이 아닌 부인 네페르타리 상으로 추정된다. 

 

 

<카르낙 신전 열주도로>

중앙의 12개의 열주상 + 122개 = 134개의 열주도로 기둥이다. 사진으로 판단하기에는 역부족인 엄청난 크기의 대형 열주들이다.

 

 

<카르낙 신전 열주도로와 세티 1세, 람세스 2세 거리>

 

 

<카르낙 신전 아멘호텝 3세 기도실>

 

 

<카르낙 신전 열주거리>

오른쪽 기둥에 음경이 발기된 풍요의 신 민 상이 있다. 134개의 기둥 중에 상당한 부분에 지붕의 안쪽면에 채색이 남아있다.

 

 

<카르낙 신전 대열주거리의 민, 프타, 아문 신>

민 신은 발기된 음경, 프타 신은 오시리스 신의 변형, 신들의 왕인 아문 신은 지팡이를 들고 '우'자 모양의 앙크를 들고 이중의 깃털을 쓴 신으로 표현된다.

 

 

<카르낙 신전 제3 탑문>

 

 

<카르낙 신전 제3 탑문의 벽화>

 

 

<카르낙 신전 열주대로의 기둥들>

 

 

<카르낙 신전 열주대로 기둥 속의 파라오 상>

 

 

<카르낙 신전 투트모스 4세 오벨리스크(좌)와 핫셉수트 오벨리스트(우)>

 

 

<카르낙 신전 투트모스 4세 오벨리스크(좌)와 핫셉수트 오벨리스트(우) 뒤의 지성소>

 

 

<투탕카멘왕과 부인 안케세나멘으로 알려진 조각상>

아버지인 아멘호텝 4세(이크나톤, 아케나텐)는 신관들의 권력을 약화시키고 중앙집권을 강화하기 위해 수도까지 옮기고 아톤(아텐)신을 믿었는데 아들은 어려서 신관들의 권력에 떠밀린 탓인지 아버지가 새로 세운 수도를 버리고 이곳으로 돌아와 이름까지 (투트 앙크) 아문으로 바꾸고 신전 재건에 참여했다.

 

 

<주신전이 긑나는 지점에 있는 아문신과 민신 조각 파편>

 

 

<신전이 처음 나들어진 중왕조부터 마지막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까지 증축이 계속되었다는 동쪽 끝의 대형건물>

현지 가이드는 별로 볼 것이 없다고 했고 시간도 모자라 들르지 않았는데 그래서 아쉬움이 남는다.

 

 

<윗 건물에서 돌아본 본전 마지막 지성소>

 

 

<열주 속에서 발견한 검은 돌로 만든 파라오상>

머리가 훼손되어  정확히 누군인지 알 수 없으나 세티 1세, 아멘호텝 3세 구역 중 북쪽구역에 있었던 것 같다.

 

 

<남쪽 구역의 앙크를 쥔 파라오상들과 주변의 파편들>

아멘호텝 3세나 세티 1세, 혹은 핫셉수트 여왕의 구역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중심이 되는 정사각형 안쪽 파빌리온(탑문) 안에 있던 오시리스형의 조상이다. 오시리스로 분장한 파라오 상이 있다는 것은 어느 왕의 신전이거나 지성소일 가능성이 높다.

 

 

<핫셉수트의 누운 오벨리스크>

신성한 호수 옆, 대형 쇠똥구리(스카라베)상 옆에 있다. 아문신으로부터 핫셉수트 여왕이 파라오로 인정받는 그림이다.

 

 

<핫셉수트의 누운 오벨리스크에서 본 열주대로와 두 개의 오벨리스크>

작은 것은 세티 1세의 오벨리스크, 큰  것은 딸인 핫셉수트 여왕의 오벨리스크이다.

 

 

<신성한 호수(누운 오벨리스크) 앞의 대형 쇠똥구리(스카라베)상>

쇠똥구리상 주변을 돌면 아들을  낳는다고 관광객들이 열심히들 돈다.

 

 

<아문신과 신성한 호수 배치도>

신관들이 제사를 지낼 때 몸을 정결히 하기 위해 씻던 곳이라고 한다.

 

 

<파피루스 묶음과 오리를 묶음으로 들고 코브라와 원반을 허리에 잔뜩 묶은 신>

어느 부분에서 촬영했는지 기억이 없으나 훼손이 심한데도 불구하고 내용이 아주 생생하다.

 

 

<한쪽 팔이 잘린 노예들 부조벽화>

람세스 2세와 관련된 장소가 아닌가 추측한다. 카데쉬 전투 장면일 수도 있는데, 포로를 잡으면 다시는 전투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포로의 한쪽 팔을 자른 그림은 신전에 자주 등장하는 내용이다.

 

 

<아멘호텝 3세 조각상, 혹은 세티 1세 조각상?> 

 

 

<핫셉수트 여왕의 오벨리스크>

이곳에 제대로 된 오벨리스크가 4개, 혹은 6개가 있었으나 현재 핫셉수트 여왕과 아버지인 세트 1세의 것, 2개가 남아있다.

 

 

<오벨리스크 2기와 주변의 벽화>

 

 

<미완성인 오밸리스크와 주변의 열주들>

신전 서쪽 탑문 앞에도 람세스 2세 오벨리스크로 알려진 짧달막한 오벨리스크가 서 있다. 1,500년에 걸쳐 신전이 증축되었으니 왕들은 저마다 자신의 신전이나 장제전을 지으며 오벨리스크를 관행대로 2개씩 세웠다면 어마어마할 것이다.

 

 

<돌아나오는 길에 본 열주대로>

지붕 쪽의 약간 굽은 곳 아래에는 채색이 낭아있다. 나는 놓쳤지만 다소 어두운 아문신전 쪽 지붕, 혹은 내부는 채색이 상당히 화려하게 남아있는 곳이 많았다.

 

 

<람세스 3세의 신전>

람세스 2세를 존경한 람세스 3세가 만든 람세스 2세 오시리스상과 신전라고도 하고, 아문신을 위한 신전이라고도 하는데 아문신전은 따로 있었다. 아문신전은 중앙에 검은 돌이 있고, 사람들이 하도 만져서 반질반질해서 그 점으로 구분이 되었다. 이 신전의 위치는 나중에 파악한 바로는 카르낙 신전 제1탑문 오른쪽 숫양 옆에 있었다. 추측컨데 반대편에는 삼위신(아문, 마트, 콘수) 신의 배와 다른 지성소가 한 개쯤 더 있었을 것 같은데 놓쳤다.

 

신전 입구에 람세스 2세로 보이는 상이 2개 있고, 안에는 양쪽으로 오시리스 상을 한 람세스 2세 조각상이 도열되어 있으며 중앙에 지성소 있다. 이집트 신전은 가장 작은 지성소부터 짓기 시작하여 점차 밖으로 넓히고 높혀가며 탑문이나 신전을 증축하는 특징이 있다.

 

 

<제1 탑문 안의 10열주와 람세스 2세 상>

현재 1개만 남은 기둥은 원래 10개였으며 흑인왕이 지은 것이라고 한다. 커다란 열주 뒤로 흰천을 두른 람세스 2세와 부인(네페르타리), 혹은 딸로 보이는 조각상이 보수 중이다.

 

 

<카르낙 신전 앞에서 본 나일강쪽>

현장에서 볼 때에도 어떻게 저 정도의 거리와 높이 차가 있는데 나일강이 범람할 때 카르낙 신전 기둥이 5m나 잠겼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룩소르 신전과 배로 왕래했다는 것도 그렇고, 탑문 안에 있는 삼위신을 위한 나룻배 보관소도 상징적인 의미로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스완 하이댐이 생기기 전까지 실제로 룩소르(과거의 테베)는 카르낙 신전의 하부 상당 부분이 잠겼고, 신전 하부의 물은 아직도 신전 복원을 더디게 하는 주된 원인이라고 한다.

지평선이 끝나는 부분에 스핑크스 대로가 왼쪽으로 룩소르 신전까지 이어지고 앞으로 조금만 더 직진하면 나일강이다.

 

 

<룩소르 신전과 카르낙 신전을 잇는 3km 구간의 스핑크스 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