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북인도 여행5. 델리의 꾸뚭 미나르 유적군(Qutub Minar Complex)

큰누리 2020. 3. 8. 05:23

<1/12. 일. 일정> 델리의 유적들3

인도 최대의 이슬람 사원 자미 마스지드(Jami Masjid)- 간디의 화장터 Raj Ghat(라즈 가트)- 인디아 게이트와 대통령궁, 국회의사당(라즈파트 거리)- 인도 전통식당 Lazeez Affaire에서 점심- 바하이교(연꽃) 사원- 꾸뜹 미나르(Qutb Minar Group)- 뉴델리 Radisson PV 호텔에서 다시 숙박

 

<꾸뚭 미나르 유적군(Qutub Minar Complex)>

입장 요금 : 외국인은 500루피(약 1만원)지만 내국인은 10~20루피.   이용 시간 07:00~17:00.

꾸뚭 미나르 유적군(Qutub Minar Complex)델리를 대표하는 유적이다. 외국인과 내국인의 줄이 다르며 외국인은 동전만한 파란 코인, 내국인은 흰색 코인을 준다코인은 나올 때 정지선 구멍에 집어넣으면 된다.

꾸뚭 미나르 유적군(Qutub Minar Complex)1193년 인도 최초 이슬람 왕조인 노예 왕조(Slave Dynasty) 시기에 만들어졌다'노예 왕조' 는 왕조를 세운 술탄 꾸뜹-웃딘-에이백(Qutb-ud-din Aibak)의 조상이 터키에서 노예였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100여 년에 걸쳐 건설했으며, 첨탑 공사 기간 동안 이슬람 사원을 중심으로 부속시설이 하나씩 늘어나 지금의 유적군을 이루고 있다.

南문인 알라이 다르와자(Alai Darwaza)가 유적군의 정문이며, 꾸뚭 미나르, 꾸와뜨 알 이슬람 모스크, 알라이 미나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외에 꾸뚭 웃 딘 에이백왕의 사위이자 후계자인 일투뜨미쉬(Iltutmish) 왕의 무덤, 알라 웃딘 칼지(Ala-ud-din Khalji) 왕의 무덤 등이 있다술탄 알라 웃딘 칼지(Ala-ud-din Khalji)왕이 짓다 만 탑 알라이 미나르(Alai Minar)와 이슬람 전통 교리를 가르치는 대학건물인 마드라사(Madrasa)도 있다. 넓은 장미정원이 있어서 젊은이들에게 결혼식 사진촬영 장소로 인기가 있다고 한다.

 

<꾸뚭 미나르(Qutub Minar).‘신의 지팡이 탑>

꾸뚭 미나르는 델리 노예 왕조의 술탄 꾸뜹-웃딘-에이백왕(Qutb-ud-din Aibak)1193 델리의 힌두 왕조를 패배시킨 기념으로 건설한 승전탑이다술탄 꾸뜹 웃딘 에이백은 1199년에 건축을 시작했으나 1층 밖에 짓지 못했고, 그의 후계자인 일투뜨미쉬(Iltutmish 1230~1368)가 나머지 3층을 완성시켰다

벼락을 맞아 탑이 손상되자 피로즈 샤 투글라크가 가장 위층을 2개 층으로 개조하여 대리석으로 표면을 장식해서 원래 4층탑에서 5층탑이 되었다1~3층은 붉은 사암, 4~5층은 대리석과 사암을 사용했으며, 탑 둘레에 쿠란 글귀와 기하학적인 문양을 새겨 넣었다탑의 바닥 직경은 15m, 꼭대기는 2.5m로 위로 올라갈수록 가늘어지는 모양을 하고 있으며 높이는 73m이다탑 내부의 계단은 379로서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었으나 좁은 계단 때문에 압사 사고가 나자 올라가지 못하도록 철문을 설치했다.

 

 

<꾸뚭 미나르 유적군(Qutub Minar Complex)과 꾸트 미나르 탑>

현장에서 꾸뚭 미나르 전체만 제대로 촬영한 사진이 없어 어플을 소개하는 안내문으로 대체했다.

 

 

<꾸뚭 미나르 유적군(Qutub Minar Complex) 입장 검색대>

인도의 중요한 유적이나 건물에는 검색대가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심한 경우 유적지의 여성 경찰이 공항처럼 일일이 몸을 더듬어 검색하기도 한다. 내국인과 외국인, 남성과 여성, 비상문 등 서로 다른 문으로 입장만 한다.

 

 

<꾸뚭 미나르 유적군(Qutub Minar Complex) 배치도>

1. 꾸와뜨 알 이슬람 모스크(Quwwat-ul-Islam Mosque) : 이슬람 사원.

2. 쇠기둥(Iron Pilar) : 꾸와뜨 알 이슬람 모스크 마당(중정)의 7.2m 높이 쇠기둥.

3. 꾸뚭 미나르(Qutub Minar) : 73m의 인도에서 가장 높은 이슬람 미나렛(기도를 알리는 아잔을 외치던 곳).

4. 알라이 다르와자(Alai Darwaza) : 이슬람 사원의 정문.

5. 알라이 미나르(Alai Minar) : 알라 웃딘 칼지(Ala-ud-din Khalji)왕이 1층만 짓고 암살되어 미완성으로 그친 탑(완성되었다면 꾸뜹 미나르의 2배).

6. 일투뜨미쉬(Iltutmish) 왕의 무덤 : 뜹 웃 딘 에이백 왕의 사위이자 후계자로 1층만 조성된 꾸뜹 미나르를 완성.

 

* Qutb Complex라고 쓰인 안내문 바로 아래(가장 왼쪽 위) 건물은 쿠란을 가르친 이슬람 대학 터이다.

* 꾸뚭은 'Qutb' 이라고 표기된 곳도 있고 'Qutub' 이라고 표기된 곳도 있다.

 

 

<꾸뚭 미나르 유적군 안의 꾸와뜨 울 이슬람 모스크(Quwwat-ul-Islam Mosque)>

꾸뚭 미나르와 함께 유적군 중 가장 넓고 유적이 그런대로 남은 대표적인 건물이다. 이곳은 좁은 의미에서 모스크의 뒷문이고, 앞문은 맞은편의 대형 아치 3개로 이루어진 서문이 있다. 모스크의 정문은 꾸뚭 미나르 왼쪽에 있는 둥근 돔을 인 남쪽의 알라이 다르와자(Alai Darwaza)이다.

 

 

<꾸뚭 미나르 유적군정문인 알라이 다르와자(Alai Darwaza)>

꾸뚭 미나르(Qutb Minar)의 남쪽에 사원으로 통하는 정문을 알라이 다르와자(Alai Darwaza)라고 한술탄 알라웃딘 킬지(Alauddin Khilji A.D 1296~1316)쿠와트 알 이슬람 모스크(Quwwat-ul-Islam Mosque)를 더 크게 확장시킬 목적으로 세웠다문밖에는 현지인들이 애용하는 장미정원이 있을 것이다. 첫번째 사진 오른쪽 끝은 꾸뚭 미나르(Qutub Minar)이다. 두번째 사진은 꾸뚭 미나르(Qutub Minar)이다. 너무 높아서 가까이에서는 화각 안에 들어오지 않는다. 아래의 사람들과 비교하면 탑의 크기나  높이를 가늠할 수 있다.

 

우리 가이드 Mr. Santoth휴대폰을 반대편 방향으로 돌려서 탑과 자신을 함께 찍는 방법을 알려줬다. 돌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섬세하고 아름다운 쿠란 글귀와 무늬를 새겨 넣었다.

 

 

 <꾸와뜨 알 이슬람 모스크(Quwwat-ul-Islam Mosque) 서문과 꾸뚭 미나르(Qutub Minar)>

꾸와뜨 알 이슬람 모스크(Quwwat-ul-Islam Mosque)의 서문은 밋밋한 아래 사진의 문과 왼쪽의 더 온전한 문, 2개이다. 다른 시기에 건축했기 때문에 양식이 약간 다른데 왼쪽 문은 찬사를 들을 정도로 아름다운 무늬와 쿠란 글귀가 새겨져 있다. 이쯤 떨어져야 꾸뜨 미나르가 제대로 보인다.

 

 

꾸와뜨 알 이슬람 모스크(Quwwat-ul-Islam Mosque)≫

꾸뚭 미나르 탑 옆에 있는 인도 최초의 이슬람 사원으로 '이슬람의 힘' 이라는 뜻이다원래 이곳은 힌두교의 비쉬뉴(Vishnu)신을 모시던 사원이었다Qutb-ud-din 왕이 이곳의 힌두사원과 델리에 있던 27개의 힌두사원을 모두 허물고 거기에서 나온 자재로 1193이곳에 이슬람 사원을 지었다그 때문에 힌두 양식과 이슬람 양식이 공존한다후대 왕들이 증축을 했지만 현재 대부분 폐허가 되어 버리고 동, 서문과 회랑, 무덤 등이 일부 남아있다.

 

사원 서문

Qutb-ud-din왕이 지은 이 문은 폭 6.7m, 높이 16m로서 중앙에 아치가 있는데 이 문의 양측에 크기는 작지만 모양이 똑 같은 두 개의 문이 있다오른쪽(남쪽)의 문은 밋밋하지만 왼쪽의 문은 무늬가 대단히 화려하고 아름답다. 왼쪽 문은 Iltutmish왕이 이 사원의 크기를 두 배로 증축하면서 만들어진 문으로 쿠란과 기하학적인 무늬가 아름답게 조각되어 있다.

 

 

<꾸와뜨 알 이슬람 모스크(Quwwat-ul-Islam Mosque)와 왼쪽 서문>

가장 왼쪽의 네모난 건물은 일투뜨미쉬(Iltutmish)왕의 무덤이다. 노예왕조의 창시자이자 꾸뚭 미나르 최초 시공자인 꾸뜹 웃 딘 에이백 왕의 사위이자 후계자로 1층만 조성된 꾸뜹 미나르를 완성했다. 
사진 오른쪽의 건물군은 왼쪽 서문과 앞의 건물들이다. 서문 안의 건물은 이슬람 모스크 안마당과 기도처이고, 중정에 1,500년 동안 녹슬지 않은 쇠기둥도 보인다. 회랑에도 힌두식의 섬세한 무늬와 이슬람 무늬가 함께 새겨져 있다.

 

 

<꾸와뜨 알 이슬람 모스크(Quwwat-ul-Islam Mosque)와 왼쪽 서문 앞 건물> 

서문 앞 건물의 기둥에는 힌두사원을 부수고 재활용한 기둥이라 이슬람 사원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다양한 무늬들이 새겨져 있다. 매듭 무늬는 다른 힌두사원에서 많이 보았다. (검정색) 둥근 지붕은 글을 쓰면서 파악한 것(!)인데 그 아래 돔에 화려한 무늬가 새겨져 있고, 주변은 문이 있었을 것이다.

 

 

<꾸와뜨 알 이슬람 모스크(Quwwat-ul-Islam Mosque)와 왼쪽 서문 안쪽 무늬>

정교한 무늬도 예술인데 약간씩 다른 돌의 색깔도 환상적이다. 바깥쪽엔 테두리처럼 쿠란 글귀를 새기고, 안쪽 세 줄에는 기하학적 무늬, 혹은 덩굴 무늬를 새겼다. 섬세한 무늬와 아름다운 돌 색깔에 홀려 한참을 바라보았다.

 

 

<꾸와뜨 알 이슬람 모스크 왼쪽 서문에서 본 쇠기둥과 꾸뚭 미나르>

3개의 아치 중 중앙 아치를 통해서 본 모스크 회랑과 쇠기둥이다. 회랑은 보이는 사진에 보이는 동면(입장 시 처음 본 방향)과 남, 북면에 있다.  

 

 

 <꾸와뜨 알 이슬람 모스크 중정의 쇠기둥(Iron Pillar)과 밖의 꾸뜹 미나르>

모스크 중정에는 높이 7.2m, 무게 6톤짜리 쇠기둥(Iron Pillar)이 있는데, 힌두 신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이 기둥은 꾸뜹 미나르가 지어지기 훨씬 전인 4세기 굽타왕조 때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1,500년이나 지난 지금까지 녹슬지 않았다철은 붉은 녹이 당연히 슨다는 우리 상식과 달리 순도가 100%에 가까우면 녹이 슬지 않는다고 한다. 원래 다른 힌두사원에 있던 것을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쇠기둥에 등을 댄 채 뒤로 양팔로 기둥을 안고 두 손을 깍지 낀 채로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속설 때문에 유적을 보호하고자 울타리로 막아 놓았다.

 

 

 <꾸와뜨 알 이슬람 모스크 중정의 무덤들>

무슨 의미가 있는 무덤인가 싶어 열심히 찍었는데 큰 의미는 없는 것 같고, 후대에 세운 무덤이라고 한다.

 

 

 <꾸와뜨 알 이슬람 모스크 본 건물의 북쪽 회랑>

시간 상 이 방향 회랑만 자세히 보았다. 서문 앞 건물처럼 (힌두식) 매듭과 꽃 무늬 등으로 화려하게 조각이 되어 있고, 꾸뜹 미나르와 함께 보존상태가 가장 좋다. 세 번째 사진은 이슬람식 건축 형태라고 하는데 차이는 잘 모르겠다. 내가 촬영한 것보다 훨씬 큰 똑같은 원형 천장이 있다고 하는데 당시에는 전혀 몰랐다. 아마 입장할 때 처음 본 문(동쪽)에 있었던 것 같다.

 

 

 <꾸와뜨 알 이슬람 모스크 본 건물의 북쪽 회랑 밖>

바로 윗 사진의 문을 통해 나가서 본 모스크 본 건물 밖 모습이다. 두 번째 사진에 관이 보이는데 따로 명칭이 없는 것으로 보아 왕족이거나 좋은 자리라서 끼어든 왕족과 무관한 관(무덤)인지도 모른다.

 

 

 <꾸뚭 미나르 유적군(Qutub Minar Complex)의 알라이 미나르(Alai Minar)>

쿠와트 알 이슬람 모스크 밖 북서쪽에 있던 울퉁불퉁한 건물은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했다당시엔 무덤인 줄 알았다. 술탄 알라 웃딘 킬지(Ala-ud-din-Khilji)꾸뚭 미나르보다 더 큰 승전탑을 만들고자 만든 지름 25m의 구조물이다하지만 그가 중간에 암살당해서 현재의 모습으로 방치되었다. 꾸뚭 미나르의 지름이 15m이므로 이 승전탑이 완성되었을 경우 엄청난 높이와 크기였을 것이다.

 

 

꾸뚭 미나르 옆 건물(남문) 쪽으로 우리가 패스한 커다란 장미정원과 여러 개의 모스크, 무덤들이 있다고 한다담장까지 두른 것으로 보아 왕의 무덤으로 추측되었지만 우리는 아예 존재조차 몰랐다가 앞의 안내판을 보고 인터넷을 뒤져 찾은 것이다.

꾸뚭 미나르 유적군(Qutub Minar Complex)은 델리의 최고 명물이란 수식어답게 탑뿐 아니라 남아있는 유적군의 규모도 크고이슬람과 힌두교의 건축 양식이 공존하는 건물들의 독특한 구조와 섬세한 조각들이 아름다웠다꾸뚭 미나르는 지진에 의한 상단의 피해 외엔 완전한 모습으로 남아있을 정도로 건축적으로도 완벽하며 세로 골이 있어서 비와 바람의 피해를 막는다고 한다. 탑 사이사이에도 작은 구멍(투조)들이 있어 공기, 바람의 저항을 분산시킨다고 한다.

꾸뚭 미나르 유적군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것은 3개의 거대한 아치로 된 2개의 서문과 그 앞의 섬세한 기둥 조각들정문인 남문과 1개의 회랑, 쇠기둥과 3면 회랑이 남아있는 꾸와뜨 알 이슬람 모스크(Quwwat-ul-Islam Mosque)이다거대한 탑 못지않게 기둥에 새겨진 섬세하고 아름다운 조각들과 쿠란 글귀 등 복합적이고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인도 문명의 가장 큰 장점인 여러 문화가 어울린 현장을 최초로 본 것이기도 했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본 거리 풍경들>

가이드 말로는 인도인들은 아침식사로 가볍게 우리나라의 뻥튀기 같은 음식을 먹는다고 했다. 첫 번째 사진은 그런 음식인 듯 하다. 

두 번째, 세 번째 사진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다음 날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 입구의 길 중앙에서 줄 지어 앉아 구걸을 하는 사람들을 보긴 했는데 아래 상황을 이미 보아서인지 충격이 덜 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주민이 집안의 쓰레기를 잔뜩 담아 대로에 버리는 것을 보고 공공의식의 부재에 대해 충격을 받았는데 이 장면은 비교가 안 되었다. 캄보디아 같은 빈국에서도 못 본 풍경인데... 이 쓰레기 더미를 만삭인 소와 다른 소떼, 돼지떼들이 먹이를 찾아 헤집고 있었다.

네 번째 사진은 쓰레기 더미에서 가까운 곳의 야시장 풍경이다.

 

 

 <쓰레기 더미 만큼이나 충격적이었던 델리 거리의 노숙자들>

낮은 더웠지만 밤은 섭씨 6도까지 내려가는 우리나라의 초겨울 정도의 날씨인데 델리나 바라나시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았다. 근처의 담장에는 힌두 신이나 신과 관련된 그림이 많았는데 이들이나 행인이 벽에 소변보는 것을 막기 위한 조처라고 한다.

 

 

 <해는 다시 떴다 다시 지고...>

차창으로 스친 델리의 저녁 노을.

 

 

 <처음 만난 뉴델리 대로의 '소'님!>

인도에 갈 때만 해도 소가 거리에 득실거리는 줄 알았는데 뉴델리에서 유일하게 만난 '소님'이다! 인도인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소가 자신의 어머니라고 믿는다고 한다. 그래서 소가 인간보다 우선일 경우가 많다는데 지금은 그것도 아닌 듯 했다.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서인지, 관광객의 눈을 의식해서인지 어쨌거나 현재 델리의 대로에는 소가 거의 없었다. 대신 시골에 가면 어슬렁거리며 도로 한복판이나 시장, 상가 앞을 배회하는 소를 많이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