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인천

이천 선읍리 입상석불, 두미리 미륵댕이석불

큰누리 2020. 9. 28. 12:13

<2015년 여름의 답사를 추억하다 5>

 

≪이천 선읍리 입상석불≫

지정별 : 경기도 향토유적 제10호

소재지 : 경기도 이천시 장원읍 선읍리 산110.

1986년 4월 이천시 향토유적 제 10호로 지정되었다. 설성산 기슭의 신흥사로 오르는 진입로에 있는 불상으로 원래는 불상 전체를 1석으로 조성한 것이 아니라 대좌, 불신, 불두, 보개 등 네 부분으로 나누어 각각 1석으로 조성한 후 연결시켜 안치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 각 부분이 선읍리 마을 앞 시냇가와 그 옆 논바닥에 흩어져 묻혀 있었는데 1978년 여름에 장마로 흙이 씻겨 내려가면서 밖으로 드러나게 되자 마을 앞 광장에 두었다가 신흥사 주지 월선스님이 현재의 위치로 옮겨 봉안하였다.

 

불두 부분은 발견되지 않아 1983년에 새로 조성하여 안치하였다. 대좌는 자연석 윗부분을 다듬은 뒤 5엽의 연꽃을 복련으로 새겨 넣고 대좌 윗면 한가운데 홈을 파고 촉을 넣어 불신과 연결시켰다. 대좌의 크기는 높이 20cm, 폭 97cm 정도이다. 불신은 둥근 형태로 광배를 새기고 그 안쪽으로 신광을 새겼으며 다시 그 안쪽으로 도드라지게 불신을 새겼다. 불신의 크기는 폭 113cm, 높이 155cm이며 어깨 폭은 약 60cm이다. 보개는 긴 쪽이 103cm, 짧은 쪽이 86vm인 타원형 판석을 불두 위에 얹은 형태이다. 불상의 전체적인 양식으로 볼 때 통일신라시대 말기에서 고려시대 초기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천 선읍리 입상석불>

이 석불을 보고 느낀 점은 모든 것이 밸런스가 안 맞고 어색하다는 것이다. 얼굴표정이 전체적인 분위기와 동떨어지고 발도 역시 몸체와 연결이 어색했는데 설명을 보니 이해가 되었다. 특히 보개로 인해 그림자가 드리운 얼굴은 두광으로 인해 여성으로 보이기도 하고 전체적인 느낌이 어색했다. 게다가 목과 상체, 특히 팔이 긴데다 머리 위에 보개까지 얹혀 있으니 상체는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인도의 불교박물관에서는 많이 본 보개는 우리나라 불상에서는 별로 본 적이 없는데 이렇게 불편하게(?) 만났다. 새로 붙여 어색한 얼굴, 비교적 온전하지만 주름만 보이는 몸통, 혼자 세월을 뒤집어 쓴 것 같은 발 부분...  

 

 

 

 

 

 

<이천 두미리 미륵댕이석불>

이천시 모가면 두미 1리 산57-3. 미륵댕이 마을에 모셔진 불상.

돌미륵 주변에는 국화 화분이 단정하게 놓여서 주민들 누군가가 항상 돌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돌미륵과 관련한 전설이 있는데 옛날에 마을 뒷산에 포악한 산적이 틈만 나면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곤 했다. 어느 날 힘센 장사가 찾아와 산적을 내쫓고 돌미륵을 세웠다고 한다.

 

불상은 4개의 돌기둥을 세우고 장방형의 판석으로 지붕을 올린 감실에 안치되어 있는데 정면을 제외한 3면은 돌과 콘크리트를 섞어 만든 것이다. 불두도 시멘트로 봉합하였으며 마모가 심해 형체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불두에 비해 어깨는 좁고 왼쪽은 훼손되었으며 희미하지만 왼손을 가슴에 대고 오른손은 땅을 향해 내린 수인이다. 하반신은 매몰되어 있으며, 고려 후기에 조성한 불상으로 추정된다.

주변의 오래묵은 느티나무들이 미륵댕이석불의 신성함, 혹은 불상에 대한 주민들의 신앙을 반증하는 것 같다. 하지만 오래된 고목의 뚫린 밑둥은 비빌 돗자리나 비 등을 보관하는 창고처럼 사용되는 아이러니함(실용성?)도 보였다.

 

 

 

 

<앞에서 본 이천 두미리 미륵댕이석불>

불상이라기 보다 형태가 대부분 마모된 두루뭉실한 돌덩이 같다.

 

 

 

<뒤에서 본 이천 두미리 미륵댕이석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