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인천

이천 동산리 마애여래상, 대포동 석조여래입상

큰누리 2020. 9. 22. 23:11

<2015년 여름의 답사를 추억하다 4>

 

<이천 동산리 마애여래상>

이천시 향토유적 제9호

소재지 : 이천시 호법면 동산리 산 121.

동산리 남서쪽 대덕산 기슭에 위치해 있다. 불상은 화강암 자연석을 깎아 높이 203cm, 폭 79~91cm, 두께 15~20cm의 왼쪽으로 기운 사각형 판석을 세우고, 그 앞에 세련되고 유연한 조각 솜씨로 여래(如來)의 입상을 1cm 깊이로 선각해 놓았다. 머리는 소발이며 육계가 높직하고, 상호는 둥글고 원만하며 코 부위는 약간 마모되었다. 큰 귀는 양 어깨까지 늘어져 있으며, 목에는 3도가 뚜렷하다.

옷은 통견의로서 무늬는 사선 또는 밑으로 자연스럽게 흘려 선각해 놓았다. 오른손은 가슴에 올려 엄지와 검지를 마주 댄 아미타여래의 구품인 중 상품중생(上品中生)의 수인을 하고 있다. 왼손은 엄지를 구부린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여 배 위에 살짝 올려 놓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 불우조(佛宇條)에는 '입석사재호법리대덕산(立石寺在戶法里大德山)' 이라 기록된 것으로 보아, 이 산에 입석사가 위치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불상 서쪽으로 입석재 고개란 지명이 붙여진 것으로 보아, 이 모두가 여래상이 새겨진 입석에서 유래되었을 가능성이 짙다. 불상의 현 위치가 원 위치인지는 알 수 없으나 조성 연대는 고려 초기~중기로 추정된다.

 

 

<이천 동산리 마애여래상>

수많은 불상들을 보았지만 독특한 돌 모양으로 인해 결코 잊을 수 없는 불상이다. 두께는 너무 얇고, 울퉁불퉁하고, 판석은 한쪽으로 기울고... 어떻게 이렇게 열악한 조건의 돌에 불상을 새길 생각을 했는지 신기하고, 불상을 그런대로 새긴 것도 신기할 따름이다.

오른쪽으로 기운 앞모습도 특이하지만 휘고 얇은 옆 모습 보면 더 독특하다. 논과 야산자락에 위치해 있고 불상 주변에 큼직한 두릅나무가 있었던 것도 기억에 남았다.

 

 

 

 

<이천 대포동 석조여래입상>

지정 : 이천시 향토유적 제11호.

단월동을 지나 행족 방면의 도로변에 위치한 이 불상은, 전신이 1개의 돌로 조성되었고 높이 3.6m, 어깨폭 96cm 규모의 석불입상으로 본래 하반신이 매몰되어 있었으나 2009년 5월 전체를 노출시켜 현재의 모습으로 정비했다.

 

머리는 소발로 육계는 큰 편이며 상호는 원만하나 양볼이 약간 비대하여 고려불상의 특징을 지니고 있고, 이마에는 큼직한 백호공(白毫孔)이 있어 보주를 박았던 흔적이 있다. 두 귀는 파손되었으며 시멘트로 보강한 목에는 삼도가 있고, 법의는 통견으로 양팔에 걸쳐 옷주름이 밑으로 흐르고, 허리 부위에는 요대를 둘렀는데, 그 복판을 묶은 결대의 조각이 주목된다. 수인은 오른손을 가슴에 들어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게 하고 엄지와 검지를 마주 하며, 손바닥에 뚜렷이 새긴 손금이 있고, 왼손은 바로 내려 옆에 대었다.

 

이 석불상은 경기도 남부지역에 많이 건립된 거석불(巨石佛)의 하나로, 당시의 신앙과 불교미술의 양식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고려중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현지 안내문---

 

 

<이천 대포동 석불입상>

고려시대의 불상이라 그런지 인근의 갈산리 석불 입상과 설명이 겹치는 부분이 많은데 갈산리 석불입상의 허리가 길고, 왼손 수인이 다른 점을 제외하면 외형적으로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다. 허리에 묶은 끈과 뒷면의 무늬로 추정되는 점은 갈산리 석불입상과 많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