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22.01. 서귀포 정방폭포

큰누리 2022. 1. 31. 19:48

≪제주 서귀포 정방폭포(正房瀑布)≫

지정일 : 2008. 8. 8.

종류 :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43호

소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서귀동, 동흥동

 

-현지 안내문을 요약-

정방폭포는 폭포수가 수직 절벽에서 곧바로 바다로 떨어지는 동양 유일의 폭포로 규모는 높이 23m, 너비 10여 m이다. 영주 10경의 하나인 정방폭포는 여름철 서귀포 바다에서 배를 타고 바라보는 폭포수가 아름답다고 하여 정방하폭(正房下瀑)이라 불렸다. 

폭포의 수원은 정모시(正毛淵)라는 못이며, 폭포수 아래에서 북과 장구를 두드리면 거북이들이 물위로 올라와 장단에 맞춰 춤을 추었다고 한다. 진나라 시황제의 사자 서불(徐市)이 영주산(한라산)의 불로장생초를 구하러 왔다가 정방폭포를 지나며 서불과지(徐市過之)라 새겨놓고 서쪽으로 떠났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정방폭포(正房瀑布) 관람요금 및 입장 시간≫

* 관람요금 : 어른(25세 이상) 2,000원 / 청소년, 어린이, 군인 1,000원 (10인 이상 단체는 각각 1,600원 / 600원)

* 입장시간 : 09:00~17:20

 

 

≪4·3 정방폭포 유적지≫

정방폭포와 소남머리 사이(정방폭포와 서귀포관광미항 사이의 서쪽 절벽)에 있는 해안절벽은 아름다운 절경을 자랑하지만, 4·3의 슬픈 역사가 서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4·3 당시 서귀리는 산남지방의 중심지로, 면사무소와 남제주군청, 서귀포경찰서가 있었다. 때문에 서귀면사무소에 대대본부가 설치되었고 토벌대의 주요 거점지가 되었다.

 

서귀면과 중문 일대의 주민뿐 아니라 대정, 남원, 안덕, 표선면 주민들도 이송되었기 때문에 당시 수용소로 사용되었던 전분공장과 단추공장은 수감자로 넘쳐났다. 특히 군부대 정보과에서 취조 받던 주민들 중 즉결처형 대상자들 대부분이 이곳 해안절벽으로 끌려와 희생당했는데, 그 수가 256명으로 산남지역에서 가장 많이 희생된 곳이다.

 

 

<정방폭포 입구의 왈종미술관>

시간이 있었다면 들러보고 싶었지만 늦은 시각에 도착해서 포기했다. 정방폭포 주차장, 매표소 앞에 있다. 정방폭포 주차장에 진입하기 직전 이 미술관 옆에 삼거리가 있는데 내리막길인데다 건널목이 없어서 아주 위험하다.

 

 

<매표소에서 정방폭포로 내려가는 계단 입구에 있는 괴이한 소나무>

 

 

<매표소에서 정방폭포로 내려가는 계단과 검표소>

이곳(정방폭포)이나 천지연폭포 모두 매표소와 검표소가 떨어져 있다. 정방폭포는 주차장에서 매표를 하고 검표는 계단 중간 쯤에서 한다.

 

 

<서귀포 이중섭거리에서 본 섶섬, 문섬, 서귀포관광미항>

지난 겨울에 서귀포올레시장과 이중섭거리를 들렀을 때 이중섭미술관 옥상에서 본 서귀포관광미항과 주변의 섬들이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이중섭미술관(거리)과 정방폭포는 지척에 있었다.  

이중섭거리 끝까지 내려온 후 도로를 따라 동쪽(지도상의 섶섬 방향)으로 조금만 더 가면 정방폭포가 있고, 서쪽(새섬 방향) 새연교 앞에 천지연폭포가 있다.

 

 

 

<정방폭포 검표소 아래에서 본 문섬, 서귀포관광미항>

 

 

<검표소에서 내려가며 본 4·3 학살지 소남머리와 정방폭포>

정방폭포에 들렀을 당시에는 4·3사건과 정방폭포의 관련에 대해 몰랐다가 글을 올리면서 학살현장이란 걸 알게 되었다. 토벌대(군부대)에서 잡아들인 주민 중 빨갱이(!)로 의심받은 즉결처형 대상자 256명을 이곳에서 밀어 떨어뜨려 죽였다. 

소남머리는 정방폭포 위 서쪽 끝(사진의 왼쪽 끝)이다. 시각이 석양무렵이라 난반사가 심해 서쪽 방향은 정면으로 촬영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정방폭포 아래 멍게, 해삼 판매 장소>

바닷가 현장에서 먹는다는 것 때문에 먹긴 했는데 싱싱하지만 가격이 3만원으로 꽤 비싸다!

 

 

 

 

<멍게, 해삼 판매 장소에서 정방폭포로 다가가며 본 풍경>

우리는 해삼, 멍게 때문에 도중에 이곳으로 내려왔다가 정방폭포로 걸어갔지만 너무 위험하다. 그런데 계단을 따라 끝까지 가도 폭포 아래는 대체로 사진처럼 큼직한 바위들이 대부분이어서 상당히 위험하다.

 

 

 

 

 

<정방폭포 앞에서 본 문섬, 서귀포관광미항>

사진에서 문섬의 일부와 서귀포관광미항으로 들어가는 일부가 보인다. 사진 중앙의 튀어나온 부분이 소남머리로 4·3 당시 민간인 256명이 토벌대에 의해 희생 당한 곳이다.

 

 

<정방폭포를 가장 가깝게 촬영할 수 있는 바위와 주변>

 

 

 

 

<정방폭포 동영상>

 

 

<가까이에서 본 정방폭포 물줄기>

 

 

 

<정방폭포 앞 풍경들>

 

 

 

 

<정방폭포 쪽에서 본 섶섬과 계단 통로>

사람들이 모여있는 중경 부근에 멍게, 해산 등을 파는 좌대(!)가 있다. 사진 왼쪽의 계단을 따라 정방폭포 아래와 매표소, 주차장을 오르내린다.

 

 

 

<문섬과 서귀포관광미항>

 

 

<정방폭포 옆의 서복전시관(徐福展示館) 입구>

-현지 안내문 요약-

서귀포에 전해오는 서불(徐市, 徐福이라고 함)에 대한 전설은 정방폭포 암벽에 서불과지(徐市過之)라는 마애명으로부터 비롯된다. 진시황의 사자인 서불이 시황제의 불로장생을 위한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동남동녀 500(혹은 3,000)명과 함께 대선단을 이끌고 불로초가 있다는 삼신산의 하나인 영주산(한라산)을 찾아 항해를 하였다. 영주산의 제일경인 정방폭포 해안에 닻을 내린 서불은 영주산에 올라 불로초를 구한 후 서쪽으로 돌아갔다. 서불이 돌아가면서 정방폭포 암벽에 '서불과지(徐市過之)'라는 글자를 새겨 놓아서 '서귀포'란 지명이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중략-

백락연 제주목사(1877.1~1881.5)가 이러한 말을 듣고 폭포 아래 긴 밧줄을 내려 글자를 그려오게 했다. 글자는 전부 12자였는데 과두문자여서 해독할 수 없었다는 기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