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딸이 물은 전복장 레시피에 대한 회고

큰누리 2022. 3. 1. 16:58

3개월쯤 전인가? 타 도시에서 직장 때문에 따로 사는 딸이 갑자기 내게 전복장 레시피를 물었다.

"엄마, 전복을 몇 개 샀는데 어떻게 전복장을 담가야 하죠?"

"손질이 쉽지 않았을 텐데 몇 마리 샀니?"

여섯마리였다던가?

갯수를 들은 순간 성공하기가 쉽지 않겠구나 직감을 하면서도 대답할 레시피를 머릿속에서 정리해보았다.

"진간장은 들어갔고, 비린내 잡기 위해 생강과 마늘을 넣었었고, 그 다음은 뭐였더라?"

다음부터는 생각이 얽혀버렸다. 다이어트를 위해 밥은 전혀 입에 대지 않고 반찬이나 부식, 간단한 요리로 끼니를 해결하는 딸이 반찬을 만든다는 것은 굉장한 사건이다. 그런 딸이 6마리이긴 하지만 직접 전복장을 만들 생각을 했다는 것은 그만큼 집에 들렀을 때 먹은 내가 자주 만드는 전복장이 입에 맞았다는 뜻이다. 문제는 레시피가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

확실하게 대답하지 못하는 나를 향해 휴대폰 너머로 딸의 표정이 느껴졌다. 정확해야 하고 딱 부러져야 직성이 풀리는 딸에게 나이가 들면서 기억이 남들보다 더 가물거리는 내가 때로는 답답한 것 같기도 하고 '그럴 줄 알았어' 같은 실망감이나 불신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결론은 진간장에 물을 넣으면서 자신에게 맞게 간을 조절하고 그 외에 마늘과 생강, 버섯 등을 넣고 끓인 후 손질한 전복을 넣으라는 것이었다. 2~3일 뒤에 냉장고에 넣은 전복장의 국물만 다시 다려서 붓고 그때 간을 조절하라는 내용도 덧붙였는데 딸이 원하는 답에 못미친 것은 확실했다.

일주일쯤 후 딸은 아무런 맛도 없고 짜고 질기기만 해서 전복을 버렸다고 했다. 그래, 집에 오면 내가 해주면 되지. 그냥 반찬은 신경도 안 쓰는 줄 알았던 네가 반찬을 만들려고 했다는 자체만으로도 나는 좋다! 그리고 내가 만든 전복장이 입에 맞았다는 것으로 나 편한대로 해석해도 될 것 같았다.

 

그 일 뒤로 몇 개월 동안 전복장을 담글 일이 없었는데 어제 물좋은 전복이 있길래 1kg을 사서 손질을 했다. 딸이 물은 전복장 레시피를 기억하려고 노력을 하면서... 먼저 양파, 대파, 다시마, 멸치, 통마늘, 통후추, 청양고추, 마늘, 생강편을 넣고 끓여 채수를 만든 후 걸른다. 다음 채수에 진간장 위주로 간을 하되 국간장을 조금 넣고, 맛술과 요리당을 넣어 끓인 후 손징한 전복에 부어 식힌다. 식혀서 냉장보관을 한 후 2~3일 후에 다시 국물만 걸러 끓여 붓고 일주일 쯤 뒤부터 먹는다.

 

딸, 이게 엄마의 전복장 레시피이다. 멸치와 생강편을 넣는 점이 다른 사람과 좀 다를 거야. 나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딸이 고맙고 기특하면서도 가끔은 내 속을 후비는 말을 할 때는 원망스러울 때도 있다.

"엄마는 과장이 심하잖아요?" (내가 그랬나? 네 맘에 안 든다고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가 있니?)

"그 때 어떻게 상처를 줬잖아요?" (너도 나한테 준 상처가 너무 큰데...)

그런 말들이 맞을 때도 있고 내게 억울할 때도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딸을 키울 때 많이 억압을 했다는 죄의식이 있어서 변명은 안 하기로 했다. 그나마 회복 중인 딸과의 관계가 망가지는 것이 싫어서 대부분은 입을 다물고 만다. 그렇지만 나도 누구의 도움도 없이 부실한 건강으로 엄청난 빚을 갚아가며 딸들을 키우는 것이 당시엔 얼마나 힘들었는지에 대해 할 말은 있다. 좋은 엄마는 못되었지만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딸 둘을 키우기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죽을 것처럼 버텼었다. 그 과정에서 섬세하게 배려해야 할 딸들의 감정까지 돌아보지 못한 것이 지금의 내게는 스스로에게도 참기 힘든 고통이다.

2022. 3. 1.

 

 

<오늘 담근 전복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