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23.01.영주 부석사

큰누리 2023. 3. 29. 14:17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山寺, 한국의 山地僧院)은 대한민국 산사 7개(통도사, 부석사, 봉정사,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를 묶어 2018년 7월 4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대한민국의 13번째 세계유산으로, 7세기에서 9세기에 창건된 이들 7개 사찰은 신앙과 수행, 일상생활을 중심으로 한 한국불교의 역사적인 발전 모습을 보여준다. 중략... 산사는 조선시대 억압과 전란으로 많은 손상을 입었다.  --이하 현지 안내문이나 그를 요약한 내용--

 

 

부석사(浮石寺)

부석사는 경상북도 영주시에 있는 사찰로, 신라 문무왕 16년(676) 해동 화엄종의 종조인 의상대사가 왕명으로 창건한 화엄종의 수사찰로 우리나라 화엄사상의 발원지이다. 부석사라고 불리는 이유는 무량수전 서쪽에 큰 바위 하나가 있는데 이 바위는 아래의 바위와 붙어있지 않고 떠 있어서 '뜬 돌'이라 한데서 연유한다. 

무량수전 우리나라 最古의 목조건물 중 하나이며, 조사당 벽화 목조건물에 그려진 벽화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부석사의 문화재들>

국보 5개, 보물 6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2개...

 

 

<매표소에서 부석사로 올라가는 길과 관람료>

수령이 꽤 된 은행나무들이 늘어서 있어서 가을에 들르면 운치가 있다.

 

 

<영주 부석사 일주문>

바깥쪽에는 '태백산부석사' 안쪽에는 '해동화엄종찰(海東華嚴宗刹)'이란 편액이 걸려있다.

 

 

<부석사 당간지주> 보물 제255호

당간지주의 높이는 428cm이며, 마주 보는 안쪽 측면과 바깥쪽 측면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고, 앞면과 뒷면에는 3줄의 세로줄이 새겨져 있다. 당간지주 윗부분 안쪽에는 깃대를 단단하게 고정시키기 위한 네모 모양의 홈이 파여 있다. 기둥 사이에 있는 정사각형의 받침돌 위에는 연꽃을 조각하고 중앙에는 직경 30cm의 구멍을 뚫어 당간의 밑면을 받칠 수 있게 하였다. 통일신라시대 9세기 전후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부석사 천왕문>

 

 

<부석사 천왕문의 사천왕상과 발에 밟힌 아귀(?)>

 

 

 

<부석사 회전문>

 

 

<부석사 삼층석탑>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30호

부석사 삼층석탑은 동서로 마주 보고 있는 2개의 탑이다. 원래 부석사에서 동쪽으로 200m 정도 떨어진 절터에 있었는데 1966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왔다. 부석사 삼층석탑은 무량수전 옆에 있는 영주 부석사 삼층석탑과도 크기와 모양이 비슷하다. 다만 지붕돌 받침이 4단이고 바닥돌 크기가 작다는 점에서 무량수전 옆의 삼층석탑보다 조금 늦게 만들어졌다고 판단된다.  

바닥돌은 각 면의 모서리와 중앙에, 몸돌은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장식하였다. 지붕돌의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가 양 끝에서 살짝 치솟아 경쾌한 느낌을 준다. 머리 장식부는 없어져서 새로 만들어 얹었다. 전체적으로 비율이 좋으면서 짜임새가 있어 통일신라 후기의 석탑 모습을 잘 보여주는 자료이다.

 

 

<부석사 범종루>

 

 

<부석사 범종루의 하부와 상부>

 

 

<부석사 안양루(안양문)>

'안양'은 극락을 의미한다고 한다. 안양문을 들어서면 극락 영역인 무량수전이 있다.

 

 

<부석사 무량수전(국보 제18호)과 석등(국보 제17호)>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본전으로 협시불 없이 화엄도량에 서방극락세계의 주불인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다. 신라 형식으로 보이는 돌기단 위에 초석을 다듬어 놓고 그 위에 배흘림 기둥을 세웠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규모로 주심포(柱心包) 양식의 대표적인 건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중의 하나이다.

고려 현종 7년(1016) 원융국사(964~1053)가 중창하였고, 공민왕 7년(1358) 왜구에 의하여 건물이 불타서 우왕 2년(1376) 다시 지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조선 광해군 3년(1611)에 서까래를 깔고 단청을 하였으며, 1969년에도 보수하였다. 건물 천장부의 아름다움과 장엄함은 외관의 세련된 풍모와 더불어 한국 건축의 가장 빼어난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통일신라시대 일반형 석등으로 가장 아름답고 우아한 작품이다. 팔각을 기본형으로 삼고 네모난 지대석 측면에는 안상(眼像)을 2개씩 배치하고 그 위의 아래 받침돌은 큼직한 연꽃 조각을 얹어 가운데 기둥을 받치고 있다. 팔각의 가운데 기둥은 알맞은 높이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불을 밝혀두는 火舍石 사면에 도드라지게 새긴 보살상이나 연꽃무늬 등은 우수한 조각으로 손꼽히고 있다. 연꽃 하대석에 조각된 8엽 복판 연꽃의 첨단부에 귀꽃의 장식문이 조각되어 있다. 제작연대는 9세기 중엽으로 추정된다.

 

왼쪽 사진은 해질녘에 올라가면서 본 모습, 오른쪽은 해가 진 후에 내려오면서 촬영한 것이다.

 

 

<부석사 무량수전 편액과 배흘림 기둥>

'無量壽殿' 편액은 공민왕의 글씨라고 한다.

 

 

<부석사 소조아미타여래상> 국보 제45호

이 불상은 흙으로 빚어서 만든 것으로 높이 278cm, 광배 높이는380cm이다. 무량수전 안 서쪽에 마련된 불단 위에 봉안되어 있으며, 다리는 결가부좌를 하고 수인은 항마촉지인이며 무릎 위에 올린 오른손의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다. 통일신라시대 불상 조형을 충실히 계승하였지만 도식적이고 상징적인 점에서 시대적인 양식 차이를 보여 주고 있으며 조성 시기는 고려 초기로 추정된다. 고려시대 불상으로는 상당히 정교한 수법을 보이는 걸작이다. 

 

 

<부석사 浮石>

신라 문무왕 1년(661)에 의상대사가 화엄학을 공부하기 위해 당나라에 갔을 때 스님을 연모한 선묘라는 낭자가 있었다. 스님이 10년간의 수학을 마치고 귀국 뱃길에 오른 후 뒤늦게 소식을 들은 선묘가 달려갔으나 벌써 떠나고 없자 선묘는 바다에 몸을 던져 용으로 변신하여 스님이 탄 배를 호위하여 무사히 귀국하도록 도왔다. 그 후 의상대사가 이곳에 절을 지으려 할 때 많은 이교도들이 방해하자 선묘신룡이 나타나 이 바위를 공중으로 들어올려 물리쳤다 하여 '부석'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하략... 

 

 

<부석사 부석 앞에서 본 무량수전과 아랫단의 전각들>

 

 

<부석사 선묘각과 선묘 초상>

 

 

<부석사 삼층석탑> 보물 제249호

이중기단 위에 3층 몸돌을 쌓은 전형적인 석탑이다. 높이는 526cm로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되었다. 하층 기단의 너비가 지나치게 넓고 바닥 층 몸돌이 높이에 비해 그 너비가 넓어 장중해 보인다. 1960년 해체 수리 당시 3층 몸돌 중앙에 얕은 방형 사리공이 발견되었으나 사리구는 없어졌고, 기단부에서 철제탑, 불상 파편, 구슬 등이 발견되었다.

탑은 원래 법당 앞에 건립되는 것이 통례인데 이 석탑은 법당 동쪽에 세워져 있는 것이 특이하다. 앞은 석탑과 관련 없는 부도...

 

 

<부석사 조사당 정면과 측면> 국보 제19호

조사당은 부처님의 법을 이어온 조사 스님, 또는 사찰 창건주 등을 기리려고 만든 전각으로 부석사 조사당에는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를 모시고 있다. 처음 지은 시점은 분명하지 않으나 고려 신종 4년(1210)에 단청을 했다는 기록이 있어 그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고려 우왕 3년(1377)에 다시 지었으며, 조선 성종 21년(1490)에 고쳐 지었다. 

 

조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출입문 좌우 벽 안쪽에는 고려시대 후기에 그린 벽화(국보 제46호)가 있다. 일제강점기인 1916년 수리하면서 떼어내어 무량수전에 보관하다 지금은 부석사 성보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찰 벽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제석천, 범천, 사천왕상이 그려져 있다. 원래 벽화가 있던 자리에는 본뜬 그림을 복원해 두었다. 조사당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까지의 사찰 건축 연구에 매우 중요한 전각이다. 

 

 

<부석사 조사당 내부>

부석사 창건자인 의상대사 조상과 선묘 초상화 등이 있다.

 

 

<부석사 조사당 출입문 안쪽 좌우의 벽화(국보 제46호) 사본>

사진 좌우 밖으로 1점씩이 더 있다. 고려시대 후기에 그린 벽화로 우리나라 사찰 벽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며 제석천, 범천, 사천왕상이 그려져 있다. 진품은 부석사 성보박물관에 있고, 원래 벽화가 있던 자리에 있는 그림은 모사본이다. 

 

 

<조사당에서 옆길과 응진전, 자인당, 단하각>

 

 

<북지리 석조여래좌상, 부석사 석조석가여래좌상>

보물 제220호-1호와 220호-2호, 제1636호.

아래의 불상은 자인당 안에 있는 불상으로 원래 부석사 동쪽 절터에 있던 것을 옮겨 놓은 것인데, 보물 제220호로 지정된 불상은 양쪽에 봉안된 두 분의 비로자나불상이다. 대좌와 광배가 완벽하게 남아있는 통일신라시대 석불로 8각의 하대석에는 향로와 사자상이, 중대석에는 앉아 있는 형태의 불상과 연꽃 등을 봉양하는 보살상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동쪽 불상은 얼굴이 타원형이며 약간의 미소를 머금은 흔적이 있으며, 서쪽 불상은 동쪽 불상보다 더 당당하게 신체를 표현하는 선들이 부드러운  편이다.

 

세 분의 불상 중에 가운데 모셔져 있는 불상은 2010년에 보물 제1636호로 지정된 '영주 부석사 석조석가여래좌상'이다. 동그란 얼굴, 항마촉지인의 수인과 꽃문양이 조각된 승각기(내의), 부드러우면서도 사실적인 옷주름의 표현, 높은 삼단의 대좌에 부조된 향로와 사자, 합장한 보살상 등에서 통일신라 9세기의 불상 양식을 찾아볼 수 있다. 

세 불상 모두 부석사 인근의 절터에서 발견되었으며 조각수법이 같다는 점에서 같은 시기에 동일인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부석사 단하각과 내부>

자인당, 응진전 옆에 있는 정면, 측면 1칸의 가장 작은 전각이다. 왼손으로 쥐를 잡은(누르는?) 나한상이 봉안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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